103년만에 다시 외치는 조선 독립 만세!

생각해보면

예전에 외쳤던 구호는

대한 독립 만세가 아니라
조선 독립 만세 아니었을까요?

인터넷 상의 수많은 탄압과 검열을 뚫고

21세기 유관순 외칩니다


조선 독립 만세!
    • 혼용 사용 되었습니다. "대한으로 망했으니 대한으로 흥하자" 라는 정서가 그 당시 독립운동가들에게 널리 퍼져 있었고, 이는 임시정부에도 그대로 이어져서 대한민국 임시정부라는 이름으로 굳어지죠. (임정 수립 시기는 3.1운동 직후입니다.) 대핝베국에서 대한을 계승하고, 제국이 될 수는 없으니 민국으로 했습니다.(중화민국의 영향을 받았을 것으로 보입니다.) 대한독립만세가 그 당시 쓰이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가끔 인터넷 일각에서 보이는데.. 임시정부 이름이 제일 강력한 반증입니다;

      단, 북한에서는 조선독립만세'만' 쓰고 있는 경향이 있는데 그거는 뭐... 북한 국명이 그러니(....) 걔들은 70년대 이후로 고고학이니 역사학이니 다 정치 때문에 작살이 나버려서 어쩔 수 없지만; (실제 60년대까지만 해도 고고학분야에서 상당히 수준 높았죠.)
    • '대한으로 망했으니 대한으로 흥하자' 라는 표현에 대해서는 약간 더 설명이 필요할 듯하네요.

      19세기말 당시 일본과 조선의 근대화 과정을 양립해서 보고 있으면 의외로 재미있는 점이 있습니다. 일본인들은 조선을 근대화가 안 된 나라라고 멸시하는 정서가 널리 퍼져 있었습니다만 조선사람들은 그 당시에도 '저것들은 우리한테 문화를 받아 간 주제에 뭔 개소리임?' 이란 생각이 있었다고 하죠. 즉 저 문화전파론이 70년대 박통시절에 날조된 게 아니라 그 당시에도 이미 그랬단 얘깁니다(...) 그러다 일본인들이 조선 와서 전기 시설 보고 데꿀데꿀 멍멍 하며 찍소리 못하는 경우도 있었고요. (이 전기 설비 쪽은.. 심지어 일본 패망때까지도 경성의 일본인 거류구역이 도쿄보다 더 휘황찬란했을 정도입니다. 쿨럭. 대략 지금의 명동 백병원 그 근방.) 요컨대 19세기말 근대화의 과정에서 의외로 두 나라의 외형적 발달수준은 근 10여 년 정도밖에 안 났다는 걸 여러 증거를 통해 알 수 있습니다.

      다만 일본에 비해 조선 - 대한제국 - 이 결정적으로 실패한 건 "근대 국민 국가"의 성립 과정이었습니다. 이건 일본이 30년 이상 빨랐고, 1890년대쯤 되면 이미 국회를 열고 근대 정치체제와 시민 개념이 인텔리들에 의해 퍼지기 시작합니다. 반면에 대한제국은 초기에 국가체제 타겟 세팅을 좀 잘못 잡았고 (대한제국 헌법을 보면 고종은 절대왕정 체제를 추구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 외 이런저런 요인으로 인해 일반 백성들이 '대한제국의 국민'으로 거듭나는 과정이 꽤 늦어졌습니다. 만민공동회니 하는 원시적 시민 운동이 없지는 않았지만 실제적으로 불붙기 시작한 게 1900년대 초반부터입니다... 너무 늦었죠. 이미 1890년대초에 일본군은 평양성에서 청나라 군대랑 지지고 볶고 하고 있던 시절;; (청일전쟁이 우리나라 역사에서 좀 스킵되는 경향이 있는데.. 양측 통틀어 10여 개의 대부대가 평양성을 사이에 두고 포격전과 백병전을 벌인 대규모 전투였습니다. 이미 19세기말에 남의 나라에서 이 짓거리를 하고 앉아있었단 얘기.)

      대체적으로 을사늑약 이후를 조선에서 근대국민국가(혹은 근대 민족국가) 의식이 발현하기 시작한 것으로 보고, 학자에 따라서는 3.1운동이야말로 국민 개념이 생겼다고 보기도 합니다. 이런 의식의 연장에서 독립운동을 하던 계층(이 시기쯤 되면 인텔리뿐만 아니라 지역의 학생들 수준까지 포괄할 정도로 넓어짐)들은 '대한'이라는 국호에 대한 계승의식이 없었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실제로 남아 있는 유물?들을 봐도 상당히 혼용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 몇 년전 국립 현대미술관에서 열린 <한국 근대 회화 100년> 전에서 청일전쟁 당시의 여러 전투들을 묘사한 일본판화(우키요에)들을 감상한 적이 있었습니다. 언급하신 평양성 전투를 비롯,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을 그린 작품들이 꽤 있었는데 그 중 가장 인상에 남는 작품이 있었죠. 제목은 <일본군의 인천 상륙 작전>;;
        순간 혈압이 올라 뒷목 잡을 뻔;;
        (역사적 맥락을 그냥 잊고 보면 작품들 자체는 꽤나 걸작들이었습니다. 그 화려한 색감하며 에니메이션을 연상케하는 역동적인 구도와 동세하며...)
        눈은 즐겁고 마음은 씁쓸했던 전시회였죠;;
    • 전통왕조가 근대국가를 건설하려니 태생부터 오류가 있었던거죠. 대한제국은 러시아 제국을 모델로 한 명백한 전제군주제 국가였습니다. 구한말의 조선왕조사 자체는 근대국민 국가를 건설하려는 개화된 사대부들과의 혈전이었고 그 결과는...

      일본의 경우는 메이지 유신으로 전통왕조라고 할 수 있는 막부를 폐지하고 천황제를 부활하여 외형적으로는 근대 입헌군주제를 만들었죠. 메이지 헌법만 봐서는 대한제국의 헌법과 거의 비슷해서 무슨 꼭 같은 전제군주제 같습니다만, 메이지 천황이 궁성 밖으로 나온건 거의 손가락에 꼽을 정도 이고 실제 일본의 국정에 천황의 통치 행위가 없었다는걸 감안하면 서구적 근대 입헌군주제가 그럭저럭 모양새를 갖추긴 했죠. (다만 군통수권을 천황에게 부여한다는 조항이 에러...통수권자가 전혀 발휘할 수 없는 권한을 준다는 얘기는 일본 군부가 의회의 통제를 벗어나서 제 맘대로 군권을 행사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줬죠 - 사실 누가 만들어준게 아니라 지들 스스로 만든거였지만;;)
      • 혹시 실례가 안 된다면 러시아 제국에 대하여 말씀해주실 수 있을까요?
    • 혁명으로 망하기 전의 차르가 다스리던 로마노프 황실 얘깁니다.^^ 황제 1인이 국가의 모든 권력을 장악하는 전통체제의 전제군주제를 생각하시면 됩니다. 서구식 근대 입헌 국가라면 왕의 권력은 거의 축소되고 국민이 선출한 의회가 법률을 정하고 정권도 그들이 담당하거든요. 태생부터 전제군주제인 조선왕조의 시스템으로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전혀 딴 세상 얘기였던거죠. 고종은 이런 주장을 하는 개화 사대부 세력 - 대표적으로 갑신정변의 주역들 - 들을 모조리 역적으로 몰아 일소했죠. 나중에 미국에서 돌아온 서재필의 독립협회나 만민공동회 운동도 결국 비슷한 꼴을 당했고;; 그렇다면 조선왕조가 전혀 변화도 없이 그냥 대한제국이 되었느냐면, 그건 아니고요 뭔가 큰 변화가 있었습니다만 제대로 된 근대국가에 대한 이해에 바탕을 둔 건 아니라는 겁니다. 일견 외양적으로도 꽤나 서구적으로 변모하기도 했으니까요. 그런데 그 서구의 나라가 시민혁명의 프랑스나 영국이 아닌 유럽에서도 가장 전제적이었던 러시아 제국이었고.
      다른 일각에서는 고종의 대한제국이 영조 정조를 모델로 한 왕권강화책의 부활이라고 설명하던데 그러기에는 바로 이웃하던 러시아 제국이 더 가까이 닮았죠.
      • 아항 그렇군뇽 ㅎ 친절하게 설명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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