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바낭글) 서울아트시네마와 나

많은 사람들이 소격동 시절의 서울아트시네마를 그리워하지만, 제가 아트시네마를 처음 알게 된 건 이미 낙원상가로 이사 간 뒤였습니다.

2006년 대만 뉴웨이브 영화제 공짜표가 생겨서 간 게 처음이었죠.

 그때 무려 열여섯 살이라는 꽃다운 나이였는데, 어째서 혼자 예술영화관에 영화를 보러 다녔던 걸까요.

질풍노도의 시기, 뭔가 에너지는 넘치는데 어떻게, 또 어디로 발산해야할지 몰라서 혼란스러웠던 기억이 납니다.

 그래도 음악을 듣고, 책을 읽고, 영화를 보고 그에 대한 글을 끼적이면 마음에 후련해졌어요.

그 시절에 이미 유행이 지난 홍콩느와르를 봤고, 마침 유행하고 있었던 일본 영화들을 보고,

온전히 이해하긴 어려웠지만 유럽이나 미국의 오래된 영화를 봤었네요.

 

 제가 아트시네마에 처음 간 날에 허우샤오시엔의 <연연풍진> 상영이 있었어요.

 

솔직히 영화는 지루했습니다.

무슨 내용인지도 이해가 안 가고… 흑흑흑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예술영화는 원래 이렇게 이해가 안 되는 건가!!!라며 속으로 궁시렁댔죠.

엔드크레딧이 올라가고 불이 켜지는데 갑자기 영화관 관계자가 들어와서 얘기하더라구요.

필름 순서가 뒤바뀌는 바람에 내용까지 뒤바뀐 상영사고니까 환불해 주겠다구요.

…….......

 

 공짜표로 영화를 봤던 저는 환불 대신 예매권을 받게 됐고, 그것이 제가 서울아트시네마를 다시 찾게 한 이유가 되었습니다.

예매권으로 차이밍량의 <안녕 용문객잔>을 봤는데대단하더군요.

, 그는 천재라고 생각합니다. 안녕 용문객잔을 본 이후로 제가 영화를 보는 시각이 바뀌었을 정도로 충격이었어요. 저에게는.

이것이 서울아트시네마와의 추억 제1장입니다.

 

얼마 전에 어떤 계기로 인해 저 자신에 대해 곰곰히 생각해 보게 되었어요.

내가 이 공간을 좋아하게 된 계기가 뭐였을까,를 시작으로 내가 좋아하는 사람 그리고 나 자신에 대한 여러 가지를 생각해보니 초심으로 돌아갈 수 있었어요.

나 자신에 대해 생각하는데 굳이 서울아트시네마라는 공간을 떠올리는 이유는, 이곳에 너무나도 많은 추억이 담겨있기 때문이에요.

이런 추억이 저를 반짝반짝 빛나게 해요. 이런 장소가 있다는 게 참 행복하죠. 달리 표현하고 싶지만, 행복하다고 표현할 수밖에 없네요.

 

다들 좋은 밤 되세요:)

    • 연연풍진 이야기에서 빵 ㅋㅋㅋ 릴 순서를 바꿔 상영하다니..

      전 정상적인 상영으로 보고도 (저도 08년에 부산에서 한 대만뉴웨이브 전에서 <연연풍진>과 <안녕, 용문객잔>을 봤어요.) 너무 지루하다, <비정성시>는 재밌었는데 이 영화는 왜 이모양이지! 이 감독이 뭐가 대단하단 거야! 라고 툴툴댔는데 꼭 3년 뒤에 그 영화를 다시보고 완전히 감명받아 연달아 두 번 보고 무릎 꿇고 말았...

      그나저나 영화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극장은 단순히 영화관 이상의 유의미한 무언가인 거 같아요.
      가끔 전 영화 만큼이나, 혹은 그 이상으로 영화관 자체를 좋아하는 게 아닐까 자문하기도 합니다 ㅎㅎ
    • 지금은 예전보다 더 좋은 환경에서 상영하고 있는데 가본지 오래됐네요. 시간이 문제지만 제 영화사랑도 옅어진것 같아 이래 저래 많이 아쉽습니다. 극장을 추억하는 글을 보니 좋네요.
    • 원래 비정성시 보려고 했는데 그때 상영시간때문에 연연풍진 봤었거든요ㅎㅎ 근데 하필 상영사고가!!ㅎㅎ 영화팬들에게 영화관은 정말 특별한 무언가예요. 다들 추억 한가지 있으실 것 같아요.
    • 마침 유행하던 일본영화들 하니까 씨네코아에 있던 스폰지하우스에 갔던 때가 생각나요. 저는 그때 꽃다운 열일곱이었는데 거기서 이누도 잇신 영화를 처음 봤어요. 그리고 감독의 전작들을 챙겨보게되고... 요즘은 예전만큼 좋아하지는 않지만요.

      서울아트시네마는 저도 낙원상가로 옮긴 뒤 공짜표로 처음 가봤는데 장소와 상영영화가 주는 느낌이 특이했어요. 압도당했다고 해야할까요.(거기서 처음 본 영화는 러시아 영화였는데 제목은 잘 기억이...;;)

      마지막 문장에 쓰신 것처럼 이런 장소가 있다는 거 참 행복해요.
    • 봄눈님/ 저도 그 시기에 메종드히미코를 봤던 것 같네요. 솔직히 요즘엔 영화에 대한 애정이 좀 식었었는데 다시 보러다니고 싶어져요
    • 서울아트시네마하면 좁다란 좌석과, 서서히 꺼지는 조명등과, 겨울이면 슬슬 올라오는 냉기와, 그리고 왼쪽편에 빔프로젝트로 쏘는 세로자막 같은 것이 생각나요. 지금도 가끔 서울아트시네마를 찾는 관객으로서 그 공간의 독특한 분위기를 너무나 좋아합니다. 저도 <안녕, 용문객잔>을 그 곳에서 처음 봤습니다.

      <안녕 용문객잔>하니 마지막 부분의 객석을 바라보는 이 롱테이크숏이 생각나는군요. 제가 꼽는 최고의 롱테이크에요.

    • 소격동 시절이 좋았다 생각했었는데 지금의 낙원상가보다 시설이 되게 좋은 것도 아닌 것 같고 그러네요 지금 공간에도 애정이 생겨서 그런 것 같아요 주관적 체감일뿐이지만 관객이 더 늘어난 것도 좋아보이고요

      <레네트와 미라벨의 네가지 모험> 볼때 '완벽한 블루아워' 장면에서 사춤 공연장 쿵쿵거리는 소리 진짜 마음 아팠었는데 인젠 그 소리가 안들리면 왠지 좀 섭섭하고;;

      나중에 전용관이 생기면 이 시절을 또 그리워하게 될 것 같아요 아래 부산 수영만 시절의 시네마테크에 대한 향수처럼요.
    • 저도 씨네코아에서 메종 드 히미코 봤을 거예요. 명동에도 Q자가 들어가는 씨네코아랑 컨셉 비슷한 영화관이 잠깐 생겼다 망한 것 같은데. 한일 교류니 뭐니 하면서 박치기 상영했던 거 같기도 하고... 기억이 뒤죽박죽.
      서울아트시네마에 자주 가진 않지만 시설 하난 정말 좋아졌죠. 시험 마지막 날이 무슨 작은 영화제 막날이라 용감하게 밤 새고 세 편 연달아 보다가 중간 중간 꿈이랑 섞여 나만의 영화를 창조(?)한 기억이 나요. 그 날 비정성시도 봤는데 잘 자면서 봤는데도 꿀재미. 그런 사치 또 누려보고 싶지만 지금 도전하면 엉덩이만 아프겠죠.
      • 씨네콰논이었던 거 같아요 ㅋㅋ 딱 한 번 갔었는데 뭘 봤는지는 기억이 안 나네요...
    • 저도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연연풍진, 안녕용문객잔 (그리고 비정성시까지) 봤던 기억이 아직까지 생생해요!
    • 저도 그때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을 봤던 기억이 나네요. 4시간 가량이라 중간에 인터미션도 있었고... 당시에 잘되가던 누나랑 갔는데, 한 여름인데다가 냉방시설도 없어서 4시간 내내 뒷 자리 방해 안가게 책으로 부채질 해줬던 기억이 납니다. 아련하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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