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내 안방 화장실 변기 위에 가장 오래 올려두었던 책

1997년도 이상문학상 수상작품집.

 

개인적으로 내게 특별한 결기가 있었던 것도 의미가 있었던 것도 아니었지만, 당시 한창 문청 때의 촌스러울 만큼의 열정으로 사들였던 책을, 정작 그 나이땐 이게 뭐야 전혀 이해하지 못하던 수상작과 자전작을, 어느 순간 부터 달달달달 읽어내고 그 감성과 문장의 세련됨에 무릎을 치면서 동시에 지적 또는 어쩔 수 없는 여성적 허영심으로 그니는 또 얼마나 이쁜가 안 이쁜가 따지면서 책날개를 수도 없이 펼쳤다 접었다 했던 어린 속물의 기억. 당시의 내 미관으로는 도저히 미인이라 말할 수 없었던 치기의 계절을 지나, 내 가장 외롭고 고독했을 때 일주일에 한 두번 볼까말까 한 화장실 큰소식에서 늘 가장 보드라운 동반자가 되어 마치 암송하는 시처럼 무르게, 이제 비로소 그니의 화법을 이해하게 되었다고, 그러므로 다시 한국으로 떠나올 때 내 뇌에 남기고 물리적 흔적도 없이 책을 버리고 온 지 근 3년 째.

 

얼마 전, 부음을 들었습니다. 유방암으로 향년 71세로 별세. 이 속물적인 눈으로는그저 마틴 마르지엘라 스타일을 가장 엣지있게 소화할 수 있을 것 같이 가장 세련되고 시크했던(실제로 그 작가가 이 브랜드의 옷을 입었다는 것은 아님), 그리고 저를 한없는 우울과 동감으로 이끌던 내 변기 위의 두 소설처럼 너무 나긋하게 소곤거리며 , 무엇보다 인생이 무엇이다 라고 쉽게 말하지 않은 채로 지나간 어느 날을 보여준 김지원 작가님의 명복을 뒤늦게 빌어봅니다. 영면하소서.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01&aid=0006080930

    • 김지원 김채원 자매 소설들 참 좋아하는데요. 이 분이 나이 들어 병으로 돌아가셨다니 기분이 이상하네요. 제 마음엔 영원히 30대일 것 같은데.
    • 그러니까요... 실제로 보면 엄청 세련된 도시적 미인이셨다는 평을 많이 들어서 영영 청춘일 줄 알았는데 말이죠. 이래서 한 인간, 한 작가의 작품에 대한 이해는 이렇듯 더디고, 떠난 뒤엔 이리 믿을 수 없이 허털한가 하는 생각을 저도 했습니다.
    • 기억은 가물가물하지만/ 이상하게 작가의 부고는 진짜처럼 안 와 닿아요. 작가는 영원히 살 것 같고, 죽었다 해도 어딘가에서 살아있을 것 같아요.
    • 동감합니다. 작가는 영원히 살 것 같고, 죽었다 해도 어딘가에서 '작품' 으로 살아있을 것 같아요, 저도.
    • 앗!앗! 제가 제일로 좋아하는 작가 중의 한분이셨습니다. 아쉽네요...
      • 네, 그런 스타일의 소설가가 또 나오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제 생각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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