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아워스 - 세월 - 댈러웨이 부인(스포 포함?)

오맹달님께서 <댈러웨이 부인>을 근래에 읽으셔서 저도 다시 생각이 났어요. 그리고 문득 세개의 영화, 소설에 대해 이것저것 주절거리고 싶은 맘이 들어서요..

어차피 두어번 본 것들일 뿐인데다가 본 시기도 그리 최근이 아니라 세부사항의 정확성이나 내용의 짜임 같은것은 크게 기대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디아워스>는 마이클 커닝햄의 <세월>을 영화화한 것이고 마이클 커닝햄의 소설은 버지니아 울프의 <댈러웨이 부인>에게서 영감?같은 것을 받은 작품이죠. 

사실 비단 <댈러웨이 부인> 뿐 아니라 버지니아 울프라는 여성 자체에게 큰 빚을 지고 있는 작품이 아닌가 생각해요. 


1.

제가 이 세개의 콘텐츠를 접한 순서는 디아워스 -> 댈러웨이 부인 -> 세월 순이에요. 


특히 처음 디아워스란 영화를 보기 전에 절 낚았던 소개 문구는, 버지니아 울프가 가슴 깊이 답답함과 울분을 간직한채 

도망치듯 향한 기차역에서 남편의 팔에 붙들려 집으로 되돌아오는 모습을 묘사한 것이었어요.

정말로 나이브하게 저는 그 문구를 남편에 의해 자유를 억압당하는 '옛날 여성' 의 내러티브로 받아들였어요. 

나중에는 조금 더 복잡한 이야기가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긴 했지만, 그래서 거칠게 표현하면 이 영화를 그냥 '페미니즘 영화'로 받아들이게 된 측면이 있었죠.

('페미니즘 영화'에 대한 어떤 평가는 아니에요.)


2.

<댈러웨이 부인>에서 제가 좋아하는 부분이 있어요. 

 

"그 차는 지나가버렸다. 하지만 미세한 파문을 남겼다. 그 파문은 본드 거리 양쪽에 있는 장갑 가게들, 모자 가게들, 양복점들을 통해 흘렀다. 삼십 초 간 모든 머리들이 똑같은 방향으로, 창문을 쏠렸다. 장갑 한 켤레를 고르다가 - 팔목까지 아니면 그 위에까지 올라와야 할까, 레몬색으로 아니면 창백한 재색으로 할까? - 부인들은 말을 하다 멈추었다.

 일회적인 경우로는 너무나도 사소한 일이어서 아주 정확한 어떤 도구라도, 비록 중국에서는 충격을 인지하는 것이 가능할지라도, 그 진동을 기록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그 진동이 차 오르는 힘은 꽤 엄청났으며 감정적으로 모든 이게게 호소하는 힘이 있었다."

 

'수수께끼의 차량' 안에 탄 인물에 대한 호기심, 제 멋대로 이런 관심이 정말 미적이고 또 여성적이라고 느껴졌는데, 
이렇게 모호하고 수동적인 감정을, 버지니아 울프처럼 정확하고 당당하게(?) 묘사하는게 쉽지 않을 것 같아요. 

3.
디아워스 - 세월 - 댈러웨이 부인 모두가 내용이나 형식면에서 연결되어 있는 것들이지만, 특히 소설인 <세월>(그 중에서도 클래리사의 이야기)과 <댈러웨이 부인>
은 굉장히 섬세하게 맞추어진 부분이 보여요.
 
특히 저는 2번에서 인용한 수수께끼의 차량이 불러일으킨 파문을,
<세월>에서 여배우가 들어가 있는 트레일러를 보고 클래리사가 받는 느낌과 대응되는 것으로 느꼈는데요.
책 속에서 이 부분은 어쩌면 여배우에 대한 굉장한 찬사처럼 표현되기도 해요.
 
"그러나 이 소녀들의 유골이 땅 밑에서 치아에 씌운 몇 점의 은 충전재로만 남을 때에도 트레일러 안의 저 여자는, 메릴 스트립이든 바네사 레드그레이브든 심지어 수잔 서랜든이든 그때까지 여전히 이름을 전할 것이다. 그녀는 기록 보관소와 책 속에 존재할 것이고, 녹음된 그녀의 음성은 소중하고 존경받는 다른 물건들과 함께 영원히 소장될 것이다."

그리고 <디아워스>에서 클래리사 역은 메릴 스트립이 하게 되죠!
원작자나 감독이나 배우 모두에게 멋진 일인것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4. 
 저는 <댈러웨이 부인>의 읽는 것 자체가 체험인 듯한 아름다움을 제일 좋아하지만
 <디아워스>에서 좀 더 분명한 메시지를 받았던 것 같아요. 

영화를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결말 부분에서 버지니아 울프는 자살을 하게 되는데, 
저는 그녀가 실제로 <댈러웨이 부인>을 통해서나, 혹은 <세월>에서 셉티머스의, (두페이지(?) 넘게 매니큐어를 바르는 여성을 묘사하기도 하는)소설을 통해서 말하고자 한 
'순간' 의 아름다움, 살아서 그저 축적해나가는 시간의 아름다움이 왜 그것의 거부인 것 같은 죽음의 선택으로 끝나느냐가 잘 이해가 안갔었어요. 

<디아워스>에서는 마지막에 버지니아 울프가 그 죽음(들)이, 남겨진 이들의 삶의 아름다움을 더욱 생생하게 만들어 준다는 내용의 독백을 하죠. 
영화에서는 일단 그런 식으로 맞물리는 것으로 이해했어요. 


+ 5. 
 치밀하게 쓰지 않은 글이라 잘 티가 안나겠지만, 제 전체적인 감상에는 '셉티머스'라는 구멍이 있어요. 
 저는 이 캐릭터에 잘 이입도 이해도 안되더라구요. ^^; 다음에 읽을 때는 셉티머스(리처드)에 좀 더 중점을 두고 봐야겠어요. 


별 주제가 없는 글이라서.. 어중간하게 마칩니다. ^^;

    • 4번-'순간'의 아름다움이 왜 그것의 거부인 것 같은 죽음의 선택으로 끝나느냐가 잘 이해가 안갔다는 부분을 읽고, 문득 영화 <디아워스>에서 클래리사(메릴 스트립)가 침대에서 하는 이야기가 떠올랐어요. 본 지 꽤 되서 정확한 대사는 가물가물하지만, 클래리사가 한 말은, 어느 날 자기가 무엇이든 다 될 수 있고, 자신의 생은 활기찰거고, 인생의 가능성을 믿게 되는 매우 고무적인 감정을 느낀 날이 있었는데, 그런 감정으로 가득 찼던 그 다음날 일어나 보니, 그 감정은 아무것도 아니었고, 아무것도 자신의 인생은 변하는 게 없었고, 앞으로도 변하지 않을거라는 식의 깨달음을 이야기하죠. 그런 낙차의 인식이 '죽음'을 선택-혹은 삶 자체를 절망-하게 만든다는 걸, 말씀하신 대로 버지니아 울프의 작품들 속에서 공통적으로 발견하게 되요.
      버지니아 울프의 단편소설집 중에 작가의 그러한 절망적 감정이 아주 함축적으로 쓰여진 짤막한 소설을 읽었던 적이 있어요.(어떤 작품이었는지 찾아보려 했는데, 그 단편소설집 자체가 오래전 출판된 것이어서 명확하지 않군요.) 몇 페이지 안되는 작가 자전적인 소설이었는데, 정규교육은 안받았지만 매우 어릴 적부터 부친의 서재에서 자유로이 공부하고, 부친의 훌륭한 인맥들 사이에 끼어서 보석처럼 반짝이는 어린 여자애가 지적인 교류를 나누고 그녀가 매우 가능성에 가득 차고 아름웠다는 식의 묘사가 이어지는데, 거기에 대한 강한 향수와 작가가 서술하는 방식이 '지금 짊어지고 있는 삶과의 낙차'를 관조하는 듯 해서 슬펐죠. 이 글 읽고, 괜시리 언니네 이발관의 <순간을 믿어요>의 메시지가 떠오르네요. 덧붙여 영화 <디아워스>만큼이나 인상깊게 봤던 영화는 로드리고 가르시아의 <나인 라이브즈>였습니다. 메시지가 동일한 건 아니지만, 두 영화 모두 비슷한 아름다움을 갖고 있어요.
      • 저도 클래리사의 그 대사, 기억이 나요. 딸이 그런 그녀를 보고 '엄마와 엄마 친구들은 모두 슬프잖아' 라고 이야기한것도 기억나네요. 디아워스에서 클래리사와 리처드라는 캐릭터가 티포투님이 말씀하신 그 '낙차'를 계속해서 이야기했던 인물들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것이 죽음으로 연결된다고 보니까 뭔가 큰 슬픔이 느껴집니다. 사실 '순간'의 아름다움에 천착하다보면, 그 '순간'이 말 그대로 바로 다음 순간에 지나가버릴 것이라는 것 또한 통렬히 느낄 수 밖에 없는 거니까 역설적이지만 자연스러운 느낌인것 같아요.
        좋은 말씀, 좋은 영화 말씀 감사해요. ㅎ
    • 2.저도 그 부분이 인상깊었어요. 남자로서는 비슷한 경우로 술자리에서 마구 떠들고 있다가 상당히 눈에 띄는 미모의 여성이
      가게로 들어서면 모두들 그녀를 보는 건 아니지만 미묘하게 모든 테이블의 대화가 잠깐 끊기고 멈칫하는 경우가 생각났었어요.
      책을 이미 반납한터라 정확치는 않지만 어느 사람의 인격이랄까 캐릭터를 안개와 같은 것으로 묘사해서
      모두에게 영향을 미치는 듯 표현한 부분도 떠오르네요.

      3.로빈 윌리암스와 메릴 스트립은 제게 어딘가 부담스러운 배우들이에요.
      그런데 로빈 윌리암스는 보고나면 재미있기는 한데 여전히 어딘가 부담스럽고,
      메릴 스트립은 정말 일어나서 조용히 박수쳐주고픈 여운을 남겨주네요.
      -그런데 소설속에서 콕 찝은 그 배우가 영화에 출연하다니 무척 재미있네요.
      -그러고 보면 니콜 키드먼에 줄리언 무어, 거기에다가 메릴 스트립이면 더 아워스는 엄청난 영화였네요.

      4.저도 티포투님과 약간은 비슷한 느낌이었어요. 활기차고 고무된 느낌으로 하루를, 열흘을 보내건, 먹먹하게 시간을 보내건
      언젠가는 죽게되고 잊혀지리라는 것. 버지니아 울프만큼 유명해진다 해도 결국 죽고나면 무슨 의미이겠냐는 것.
      그래서 그런 활기와 고무된 느낌이라는게 우리가 삶을 버티게 만들어주는 어떤 허위가 아닌가 하는 느낌마저 들었습니다.

      +5.열린책들 버전에서는 셉티머스와 클래리사를 두 축으로 보고 그려냈더라구요. 집필 초반에는 클래리사를 죽게 하려다
      생각을 바꿨다나요? 갑자기 삼천포이긴 한데 클래리사라는 이름이 참 이쁘다 생각했습니다.

      두분 덕분에 더욱 풍성해진듯 합니다. 감사합니다. :-)
      • 2. 댈러웨이 부인을 읽다보면 사람 사이의 관계가 어떤 인물에게 미치는 영향이 참 큰 것처럼 느껴져요. 그래서 다들 독립적인 인간이 아니라 서로에 의해 경계가 희미하게 흐려지고 그 안에서 불안정하게 진동하는 어떤 존재처럼 읽혔었던것 같아요.

        3. 두 배우의 공통점은 뭘까요? ㅎ 굳이 제가 떠올리자면 '연기하듯 연기하는'? 배우랄까, 전 그런 느낌이 있네요.
        저도 확실히 처음에 느끼는 감정보다 영화를 보고 난 뒤에 갖게 되는 만족감은 메릴 스트립이 커요. 신기하죠 그런 느낌은..
        사실 제가 메릴 스트립에 약간 부담감을 느끼는 이유는 목소리 때문인 듯도.. ㅎ

        4. 그런 의미에서 버지니아 울프가 댈러웨이 부인을 '단 하루 동안 벌어지는 일'이라는 컨셉으로 쓴 것이 정말 의미심장한 것 같기도 해요.

        5. 저도 클래리사의 이름 좋아요. 사, 아모음으로 열리듯 끝나는게 너무 좋죠.
    • 아아, 제가 좋아하는 작품들. 디아워스와 댈러웨이 부인과 세월의 촘촘히 엮어진 부분들을 하나씩 짚어가다보면 책도 영화도 계속 다시 들춰보게 돼요. 그리고 한 때는 이 모든 이야기들의 구심점이었던 버지니아 울프에 빠져서 허우적거리기도 했는데, 지금은 오히려 클래리사 위주로 기억이 나네요. 문학 작품을 영화화 한 작품들 중에 원작만큼의 미묘한 뉘앙스를 표현한 영화는 드문데 디 아워스는 그걸 해낸 것 같아요.
      • 오 저도 미묘한 뉘앙스라는 표현에 동의하게 되네요. 댈러웨이 부인의 소설적 기법을 완벽하게 모방한다면 더 혼란스러운 영상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지만, 디아워스는 오히려 그러지 않고 미묘하게 뉘앙스를 살려서 이야기를 좀 더 강하게 붙잡은 영화라고 생각했어요.
        저는 촘촘히 짚어나가 본 적은 없는데 나중에 직접 그렇게 보거나 관련 텍스트를 읽어보고 싶은 마음은 들어요. ㅎ 참 아름다운 작품들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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