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장에서의 사건 사고.

# 1.
고3 소풍날로 기억하는데 소풍이 끝나고 반 친구들과 우루루 몰려 극장을 갔어요.
극장가에 가서 보니 다른반 아이들도 꽤나 몰려왔더라구요.
극장 두개가 거의 붙어있던 곳이었는데 다른반 아이들은 상대적으로 작은 극장에 줄을 섰어요.
당시는 람바다(-_-) 열풍이 엄청났었는데 열정의 람바다였나 여튼 관련 영화가 상영하고 있었죠.
다른반 아이들은 모두가 그곳에 줄을 서서 아잉아잉. 룰루랄라 하고 있었습니다.

저희반 친구들도 모두 그 줄에 동참하고 싶어했습니다만!
제가 20여명 정도 되는 친구들 모두를 이끌고 옆 극장으로 들어갔어요.
이 영화가 말이지! 작년에 베니스에서 상을 받았는데 말이지!
감독이 후 샤오시엔이란 분인데 말이지!
이 영화가 말이지! 중국의 문화혁명이랑 대만의 2.28 혁명을 말이지!
하면서 람바다줄로 가고 싶어하던 아이들을 비정성시가 상영하는 극장으로 끌고 갔습니다..
너희가 정 람바다를 원한다면 나 혼자 이걸 볼테니 그럼 영화 끝나고 만나자는 풀죽은 목소리와 함께 말이죠.  -_-;;

꽤나 큰 극장이었는데 관객은 저희가 전부였습니다.  ( ")
여하튼 영화는 시작했고 20여분 정도 지나면서부터 아이들의 한숨 소리가 제 귀에 쩌렁쩌렁 울렸고
원망 가득한 차가운 눈빛이 제 주변으로 속속 모여들기 시작했습니다.
대만의 롱테이크가 한국의 나를 사망으로 이끌겠구나..  하는 심정이었어요.
급기야 영화는 스토리 연결이 안되기 시작했습니다.  흑흑흑.
이건 영화가 망필이라 그런 것이 아니라 비정성시의 러닝타임은 158분입니다.
그런데 당시 시국이 시국이라 그런 지 싹뚝싹뚝 거의 30여분 넘게 잘라냈어요.
대사도 적은 영화가 여기저기 짤려나가 스토리 연결까지 안되니 저도 한숨에 동참 시작. 
영화 후반에 가면 양조위 때문에 아주 조금 재미있는 장면이 있습니다.
냉정하게 보면 재미있다고 하기엔 약간 부족하지만 이렇게 된 이상 뭐라도 건져야겠다는 아이들의 보상심리 때문인 지 오버해서들 웃는 것 같았어요.  

당시 극장은 입석도 있었지만 상영 중간에 걍 들어와서 중간부터 보다가 다음편을 또 보고 뭐 그러기도 했는데요.
초큼 재미있는 장면이 나오는 즈음에 입장하신 어떤 언니가 한분 계셨어요.
앞의 내용은 전혀 모르시고 그 장면부터 보시면서 저희들과 함께 키득키득.
영화가 끝나고 줄지어 상영관 밖으로 나가는 아이들은 모두가 한숨을 푹푹푹.
역시 람바다를 봤어야 했어! 를 외치며 제 등짝에 소소한 손놀림을 하는 친구들.
그 언니가 불안한 눈빛으로 저희에게 물으시더군요.
앞에는 재미가 없나요?
저희는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광속으로 그곳에서 탈출했고 람바다를 보고 나와 되지도 않는 람바다 몸부림을 하는
다른반 친구들을 보며 저는 또 다시 생명에 위협을 느꼈습니다.


# 2.
91년.  아이다호를 보러 갔습니다.
제가 세어봐서 정확히 기억하는데 저 포함 12명이 상영관 안에 있었습니다.
아주 작은 극장이었고 난생 처음 보는 사람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린 아이다호를 보러 왔다고! *으쓱으쓱* 
하며 보이지 않는 친근감을 서로 느끼던 아늑한 극장 분위기였습니다.
영화가 시작하고 5분이나 지났을까요.
화면이 갑자기 타들어가는데 그게 엄청난 리얼리티 그 자체!
헉. 아이다호가 이렇게나 극사실주의를 추구하는 영화였어?  *.*

그럴 리가.  -_-;;
영사기 안에서 돌아가던 필름에 불이 났던 것 뿐이었습니다..
12명은 한숨 쉬며 환불 받고 각자의 길을 총총총.


# 3.
이건 사건 사고는 아니고 당시를 회상하다보니 덩달아 떠오른 기억.
고2때 친구와 손잡고 주윤발. 임청하 주연의 몽중인을 보러갔습니다.
순전히 임청하 언니 팬이라서 보러 갔어요.
주윤발의 그 길다란 앞가르마 헤어 스타일 따위와는 상관없이 말이죠.
영화 내용은 뭐 그냥 뭐 그냥 뭐 그냥.  -_-;;

그런데 말입니다.
영화가 은근 야하지 말입니다?
지금 다시 보면 까르르하며 야하기는 개뿔! 이라 할 수도 있겠지만 나름 순진하고 풋풋했던 시절이라 그런 지 어머? 부끄부끄 하면서 봤네요.  :)
심지어 그런 영화가 19금이 아니었다는 사실!

@ drlinus

-- 쓰고 나니 그닥 사건 사고가 아닌 듯 합니다.  >.<
    • 2번은 엄청난 사건인데요? 영화 시네마천국에서 중간에 필름이 타들어가면서 불나던 장면이 떠오릅니다.
    • 예전 단관 극장일 땐 시설 낙후된 곳이 많기도 많았지만, 극장 관계자들도 참 인간적(?)인 분들이 많아서 별 일이 다 있었죠. 요즘 같아선 당장 환불하고 따지고 인터넷 올리고 그랬을 것 같지만,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대부분 아련한 재미로 기억되는ㅠㅠ

      그런데 저 영화들 개봉할때 보셨다니 부럽네요.
    • 1번도 나름 사건이네요. 절로 ㅋㅋㅋ 소리로 웃으며 읽었습니다.
      군에서 야간당직하고 주말외출 나온 후배와 코아아트홀에서 무려 <희생>을 보는데.. 미안해 죽는 줄 알았지요. 그래도 끝까지 안졸고 봐주던 후배가 너무 고맙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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