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에게도 예우를 표하라

내일은 미국 날짜로 마틴 루터 킹 데이입니다.

이것저것 관련 자료들을 찾아보다가 우연히 1963년에 킹 목사가 자원봉사자들의 지원서를 만들면서 넣은 '10개의 계명' 을 보게되었습니다. 그중 제 눈길을 끈 것은 다음의 두 조항입니다.

 

I will observe with both friend and foe the ordinary rules of courtesy.

저는 저의 친구와 적에게 예우를 갖추어 대할 것입니다.

 

I will remember always that the nonviolent movement seeks justice and reconciliation - not victory.

저는  비폭력 운동이 승리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정의와 화해를 추구한다는 것을 기억할 것입니다.

 

  

위의 두가지 조항을 읽다보니 거의 10여년전에  브래트 피트가 나오는  영화 트로이 (Troy) 를 본 때가 기억납니다. 솔직히 이 영화는 제가 기대하고 본 영화는 아니었어요.

허나, 이 영화의 한 장면은 두고두고 잊을 수 없게 인상적입니다.

 

바로 이 장면,

     


(아킬레스가 죽은 사촌동생의 복수를 하기위해 단신으로 트로이 진지에 들어가 헥토르와 싸웁니다. 물론 아킬레스의 승리. 그는 죽은 헥토르의 시체를 마차뒤에 밧줄로 매달아 끌고 그리이스 진영으로 되돌아옵니다. 그날밤, 한 초라한 노인이 아킬레스의 장막안에 들어옵니다. 그는 헥토르의 아버지이자 트로이의 왕인 프리암입니다. 한밤중 적진으로 찾아들어온 그는 아킬레스를 보자 그 손등에 입을 맞춥니다.)


아킬레스: 당신은 누구요?
프리암: 나는 이 지상의 그 누구도 견디어내지 못할 일, 즉 내 아들을 죽인 자에게 입맞춤하는 자요.

아킬레스: 프리암...? 여기는 어떻게 들어왔지?
프리암: 난 트로이의 왕이요. 그리이스인들이 이 땅에 대해 알고 있는 것보다는 훨씬 많이 알고 있소.

보시오. 난 내 아들을 시신을 찾아 장례를 치르고 싶소. 난 그 애가 세상을 향해 눈을 떴을 때부터 당신에 의해 눈이 감겼을 때 이후까지 계속 사랑해왔소. 이제 그 아이의 두 눈 위에 동전을 올려 놓게 해주시오. (당시의 장례의식)

(울어서 짓무른 노왕의 눈자위…… 그리고 떨리는 목소리. 아킬레스의 마음이 흔들린다.)

아킬레스: 당신은 용감한 분이오. 허나 그런다고 해서 바뀌는 건 없소.
내일 아침이면 당신은 다시 나의 적이 될 것이오.

프리암: 바로 오늘밤, 당신은 나의 적이오. 허나, 적들도 서로  예우를 갖춰줄 수 있지 않겠소.

아킬레스: 잠시 시간을 주시지요.


(아킬레스, 장막 밖으로 나가 헥토르의 시신을 붙들고 흐느낍니다.)


이 영화를 본지가 꽤 오래 되어서 제가 이 장면과 대사를 제대로 기억하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저 제 머리안에서 재구성된 영화의 장면은 위와 같습니다.

이 영화는 싸움에 대한 영화이자 사랑과 분노를 다룬 영화입니다. 몇차례 크고 작은 승리와 패배속에서도 유독 빛을 발하는 전투는  바로 위에 나온 노왕과 아킬레스의 전투입니다. 결국 아킬레스의 분노는  노왕의 간곡함과 예우에 대한 요청에 지고말지요.  정중함과 간절함이 가지는 힘이 분노가 가지는 힘을 이긴 것입니다.

이 장면이 눈에 들어오는 것은 저희가 살고 있는 세상이 너무나 폭력적이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저희가 생각하는 의를 추구함에 있어서도, 또는 단순한 의견 차이를 놓고 논쟁을 할 때에도 분명 물리적이거나 언어적으로 폭력적인 요소들이 존재합니다.  게시판의 크고 작은 논쟁을 보면서 단순한 의견의 차이가  큰 싸움으로 번지는 것을 보며 답답했었습니다. 사실 의견 차이가 있는 것이 너무나 당연한 일이 아닐까요?  하지만 대부분의 논의가 대립을 더 심화시켜가며 소모적인 논쟁으로 가는 이유는 바로 그 논쟁에서 서로 접점을 찾기보다는, 이기기를 원하는 마음과  지나치게 방어적인 마음, 그리고 다른 유저들에 대한 예우의 부족에 있는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듭니다. 즉 정 (thesis)-반(antithesis) -합 (synthesis) 의 변증볍적 과정에서 합은 없고 정과 반만 난무하는 것이지요.

 

잠시 게시판의 논쟁 소강 상태를 이용해 끄적여봤습니다.

 

 

    • 말하고자 하는 의도를 읽지 않으려는 논쟁은 피하는 것이 좋죠. 싸워서 이기는 게 목적인 토론은 성실히 대답해도 도돌이일 뿐입니다.
    • 사실, 저도 논쟁을 좋아하는 사람이지만 듀게에서의 논쟁은 피해왔습니다. 단문 위주의 댓글로는 논쟁하기에 적합하지도 않고요. 또 반론 제기가 한 유저에 대한 공격으로 이어지는 경우를 많이 봐서인지, 너무 과열된 포스트는 피하게 되더군요. 하지만 어느정도 듀게 차원에서의 자정 노력은 있어야겠지요. 논쟁에서 반드시 이기겠다는 생각도 포기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 저도 저 장면 정말 좋아합니다. 프리아모스-헥토르 부자한테 반해서 영화관에서 두번이나 보고 디비디까지 샀어요.
    • 피터 오툴과 브래드 피트가 나란히 나온 사진을 찾고싶었는데 결국 못찾았어요. 그래서 다른 사진으로 대신했습니다. 왜 저 장면 사진을 찾기가 어려운지 모르겠어요. 그 영화 중 가장 감동적인 장면인데요.
      • 반면에 헥토르와 파리스 그리고 아킬레스의 벗은 모습과 싸우는 모습은 쉽게 찾을수있지요. 대중들이 어디에 집중하는지 알수있는 대목입니다.
        • 아, 그렇군요. 생각해보니 간단한 이유입니다. 아무래도 선전용 스틸로는 시각적으로 보기좋은 액션신이 효과적이겠네요.
    • 자식 잃은 부모의 마음이 절절하네요. 저 장면은 이제 기억이 흐릿한데 글로 읽으니 더 마음에 와닿아요.
    • 마틴 루터 킹 목사가 암살을 당하게 된 데에는 63년의 저 '10계명'을 스스로 거스르는 것이 가장 큰 이유가 되었죠.
      마냥 평화적인 방법으로는 흑인 인권 운동이 벽에 부딪히게 되자 목사 스스로 더 활동적이고 변혁적인 변화를 모색하게 됐는데 바로 폭력투쟁을 외치고 있던 흑인 인권 단체들과 연동해 가면서 운동의 틀을 확대해가는 방법이었죠. 그리고 그 시점에 그는 불의의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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