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공계 위기와 '천재론' 함정

http://scienceon.hani.co.kr/73656


"학생들이 진학하지 않아 이공계의 위기가 생긴다고 주장하는 이들의 논리는 간단하다. 학생들이 기초과학 관련 학과보다 의·치대 등을 선호하기 때문에 대학과 대학원은 인력난을 겪으며 결국 이는 한국 과학 발전에 도움이 안 된다는 식이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에서 언급하는 ‘학생’이라는 것은 ‘뛰어난 학생’을 의미한다는 점이다. 기초과학 분야가 인력이 없어서 고민하고 있을까? 전혀 아니다. 실직적인 연구직을 바라며 진학하는 대학원만 놓고 보더라도 학생은 충분히 많이 있다. 그 학생들이 모두 박사를 받으면 어떻게 먹고 살게 할 수 있을지 교수사회에서 걱정할 정도로 많다."


"모든 이들에게는 어떤 중요한 결정을 하게 만드는 ‘결정적 순간’이 존재하는데 이건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이다. 과학을 하고자 결정한 이들에게도 그들 개개인이 겪은 결정적 순간이 있는 것이다. 과학자가 되고자 하는 사람들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우리나라의 미래 인적 자원은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사람은 생각하는 동물이고, 누구나 창의력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자유로운 환경만 조성되면 그 창의력을 무한대로 펼칠 수 있다. 국가나 대학에서는 이처럼 호기심과 열정으로 가득한 미래 과학자들이 그 열정과 창의력을 자유롭게 펼칠 수 있도록 뒷받침을 해주면 될 터이다. 그런데 대학원에 막상 진학해보면 이런 미래 과학자들의 열정에 물을 끼얹는 일들이 생기곤 한다.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일이 지도교수와의 문제다."


http://weekly.donga.com/docs/magazine/weekly/2009/07/01/200907010500031/200907010500031_3.html



"과학기술 분야엔 특출한 능력을 지닌 사람들이 정말로 있다. 가끔 자괴감이 들 정도로, ‘선천적으로 다른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갖게 만드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은 그저 부러움 비슷한 것이다. 영재급의 대학원 신입생도 박사과정 말년차 선배에게는 ‘갈 길 멀고 가르칠 것 많은’ 병아리 후배일 뿐이다. 이 병아리가 선배보다 IQ가 높고 수학문제를 더 빨리 풀어낼지 모르지만, 그 분야 연구에서 세월과 고생이 선사한 ‘내공’만큼은 선배를 따라갈 수 없다(‘내공’이라는 말은 무협지 용어를 패러디한 것이 아니라 실제 연구자들이 즐겨 사용하는 말이다. 연구자끼리는 고수를 한눈에 알아본다)."


"훌륭한 과학기술인을 많이 양성해야 하는 이유는, 로또 복권을 많이 살수록 당첨 확률이 높아지는 것과는 다르다. 수만명의 과학기술인 중 몇 명의 천재를 골라낼 수 있으면 성공이라는 식의 접근은 피해야 한다. 과학기술인은 일꾼이다. 일 잘하는 사람이 많아야 좋다는 것은 상식이다. 진짜 대단한 천재가 있다고 치자. 그의 생각을 과학 이론이나 혁신 기술로 현실화하려면 수많은 동료가 필요하다."


"‘1명의 천재’를 강조하는 슬로건은 “1명에게 보상을 몰아줄 테니 천재가 돼보렴”이라는, 언덕 위에 금덩이 1개 놓고 언덕 아래 일꾼들에게 밥도 제대로 안 먹이며 경쟁만 부추기는 꼬임과 다를 바 없다. 1명의 천재를 노리기보다 십만명의 양질의 지식노동자를 양성하는 것이 목표가 돼야 한다. 그것이 현대 연구개발 활동의 본질에 더 잘 맞을 뿐 아니라 실질적인 이득을 키우는 방향이다."










배현진(연세대학교 천문우주학과 박사과정)과 박상욱(scieng.net 운영위원)의 글입니다. 관련지식이 부족한 상태에서 단순한 사고를 할 경우 이공계 문제해법을 흔히 "의대생을 공격한다"로 가기 쉬운데, 그것은 똑똑한 이공계학생들과 종사자에게 모욕을 주는 말이겠지요. 하지만 위에서 지적하는 문제는 이공계만의 문제가 아니고, 한국사회 전반에 걸쳐 성장을 막는 문제죠. 그래서 해결하기 어렵지만, 그만큼 이공계와 무관한 분들에게도 의미있는 지적이라고 생각합니다.


http://edpolicy.kedi.re.kr/EpnicForum/Epnic/EpnicForum01Viw.php?Ac_Num0=14904&Ac_Code=D0010103

도 좋은 글이니 시간되면 한번 읽어보세요.


    • 이공계의 위기는, 진학을 안해서라기 보다는 '취업이 잘되는 과' 에만 몰린다는 것입니다. 이건 물론 이공계만 그런 것이 아니죠. 전반적인 대학 교육의 문제입니다.
      그리고 대학원생이 많아지는 건 마찬가지로 '취업이 어려워서' 영향 받은 바가 크죠. 일단 석사 정도 되어야 좀 더 좋은 직장에 들어갈 확률이 높다고 하니 대학원으로 몰리고 그 중에 박사과정까지 가려는 사람도 증가하겠죠.

      천재론은 그 다음 얘기일 겁니다.
      • mad hatter님은 제가 링크한 글들과 반대의 방향에서 천재론을 공격하시네요.
    • 교육 수요가, 국가 관점에서 설계되어있지 않고. 기업 관점에서 설계되어있는 폐해라고 봅니다.
      돈되는 연구. 돈되는 실적을 강조한다는 것은. 그게 바로 '기업 관점의 교육 수요에 대응하는 설계'라는 반증아닐까요.
      애초에 교육 문제의 본질은. 좋은 일자리에 대한 정의를 대기업이 내리고. 대기업이 우수한 인재를 뽑을 수 있는
      시스템이라는 점이라고 생각해요. 대기업이 가진 불필요한 기득권에 대한 국가적인 대응이 필요하지 않나. 싶네요.

      딴 이야기지만. 천재라는 개념 자체를 저는 신뢰하지 않아서. 어떤 과업에 뛰어난 사람은 있지만.
      그것이 다른 사람은 할 수 없는 고유한 기능을 지닌 어떤 사람이 존재한다고는 믿지 않아서요.
      • 과학이 돈이 되기도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죠. 어쩌다 돈이 되기도 하는 거고. 삼성이라는 천재가 평범한 국민들을 먹여살린다류의 신화가 한국에서 있다고 봐요. 뛰어난 과업을 가진 사람이 그 분야에 갔어도 잘 활용되지 못하고 있다는 게 문제라고 봅니다. 좀더 뛰어난 천재가 와야한다며 핑계대고 있을 뿐.
        • 멍청한 조직의 특징은 뛰어난 리더가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고 착각하는 것이고.
          단단한 조직의 특징은 실패와 성공에서 매뉴얼화하고 요인을 분석하여 시스템화하는 것이죠.
          뛰어난 사람은 어디에나 있죠. 스티브 잡스가 없어서. 아이폰을 못만들었다고 생각하는게 멍청한거죠.
          수많은 실패를 자산으로 새로 도전할 수 있는 기업 문화를 봐야 옳은거죠.

          삼성이 평범한 국민을 먹여살리는 것이 아니라고, 정확하게 말할 수 있는. 언론의 부재가 아쉽죠.
          삼성이라는 기업이 존재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기업들이 불이익을 당하며. 먹이 사슬의 하층부를 형성해주는지.
          아휴. 열받는군요.
          • 그렇기 때문에 '조직을 실패와 성공에서 매뉴얼화하고 요인을 분석하여 시스템화시킬' 이건희 같은 천재가 필요한 것 아니겠습니까. ㅎㅎ;
    • ['1명의 천재'를 강조하는 슬로건은 “1명에게 보상을 몰아줄 테니 천재가 돼보렴”이라는, 언덕 위에 금덩이 1개 놓고 언덕 아래 일꾼들에게 밥도 제대로 안 먹이며 경쟁만 부추기는 꼬임과 다를 바 없다.]
      이 부분에 완전 공감이네요. 비단 공대뿐만 아니라 우리나라가 전반적으로 이런 경향이 강한 것 같습니다. 제대로 프로세스화, 시스템화, 매뉴얼화하지 않고 중구난방으로 마구마구 몰아넣고 일시키다가 누군가 짜잔~하면서 일 싸악 정리하면 그래 역시 넌 제대로야 하면서 나머지 사람들은 무능력자...; 로 취급하는 분위기에 요즘 아주 지긋지긋하네요.
      • 정치에서도 그랬죠. 예전에 최장집이 정당정치 주장하며 예로 들던 노무현에 대한 열망과 실망. 노무현은 수혜자이자 피해자가 되었고.
    • 매우 썰렁하고 유치한 얘기인데요. -_-;;
      제가 91학번인데 이때만 해도 서울대만 기준으로 놓고 보면 의예과가 학력고사 기준 1위 학과가 아니었습니다. 전자. 제어계측. 물리 등이 1위 학과들이었고 그 아래에 의예. 컴공. 항공. 기계 등이 있었답니다.
      덕분에 제 또래들은 우리가 공부를 더 잘했는데! 흥! 하는 식의 유치한 과거사 논쟁도 가끔씩 하고 뭐 그렇습니다. :)

      이런 유치한 얘기를 떠나서 이공계의 위기 이전에 이공계 대학원 생활에서 무엇이 가장 문제인 지는 솔직히 모두가 알고 있잖아요.
      현란하게 벌어지는 각종 착취와 프로젝트 관련된 각종 불법 행위들. 문제가 무엇인 지 백만년 전부터 모두가 알고 있지만 지금도 예전과 그닥 다를 바 없는 시스템으로 굴러가고 있죠.
      게다가 정부출연연구소들은 연구원들이 영업 사원처럼 뛰어야 하는 문제들까지 지난 몇년 사이 증폭되었고.
      말도 안되는 시스템들이 전혀 개선되지 않는 상황에서 이공계 위기니 천재론이니 이런 것들이 모두 무슨 소용인가 싶습니다. -_-;;
      • 일단은 공부 잘하는 학생의 의대진학을 비난하는 게 카타르시스도 느끼고 간편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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