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인을 받는다는 것
(제가 받아둔 몇몇 싸인 사진을 올리려 했는데 여긴 직접 이미지 업로드가 되지 않는군요)
일전에 고향집에 들러 책과 다이어리를 정리하다보니 몇몇 싸인이 나오더군요. 가장 최근에 받은것은 김훈씨의 싸인이었고 가장 오래전에 받은 것은 자오즈민씨의 싸인입니다.
저와 비슷한 세대라면 다들 자오즈민을 기억하실거라 생각합니다. 중국 탁구 국가 대표 출신으로 한국 선수와 결혼을 했습니다. 며느리 삼국지란 드라마에도 나왔었던거 같고.
실제로 보고 상당히 놀랐던 기억이 납니다. 20년전쯤 제가 살던 곳의 탁구대회에 사인회를 하러 자오즈민이 왔었습니다. 근데 이게, 너무 예쁜겁니다. 생각보다.
당시에도 아줌마 이미지가 제법있던 캐릭터였는데 (제 기준) 실제로 보니까 상당히 미인이란 느낌을 받았던 것이죠.
(이때의 경험 이후로 '티비에서 이쁘게 느껴지면 실제론 정말 자비없겠구나'란 인식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사인은 마이클 안트에게 받은 사인입니다.
마이클 안트는 리틀 미스 선샤인의 각본가로 79회 아카데미 각본상을 받은사람입니다. 중앙일보에서 엔터테인먼트 마스터클래스란 거창한 이름으로 초청 강연회를 진행했던적이 있습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이 공동 주관사였는데 메일링 서비스를 받던중이라 강연회 소식을 접할 수 있었죠. 현직 작가 및 관련인을 대상으로 한 일종의 원포인트 레슨 강의 같은 것이라서
참여가 쉬워보이지는 않았지만 가고 싶으면 또 일단 가봐야하는게 인생. 주최측에 구구절절한 사연을 담아 이메일을 보냈더니 참석증을 하나 주더군요.
강연 내용은 3장 구조에 대한 것이었고, 당시 재미삼아 습작을 제법하던 시기여서 그랬는지 아주 유익하게 들었었습니다. 저 역시나 3장 구조의 신봉자라 그랬겠지만 뭔가 시원하게 정리가 되더군요.
강연 후에 사인회자리가 있었는데 인상적이었던것은 외국인이 많았다는 것. 자신들이 속한 단체의 티셔츠를 주며 환호성을 지르기도 했습니다. (창작 집단으로 추정)
저는 거의 마지막 순번이었고, 머리속으로 건낼말을 영작해서 중얼중얼대며 차례를 기다렸습니다. 동생과 전공이 같다며 반가워해주더군요.
한창 필름 카메라를 열심히 들고 다닐시기라서 사진도 같이 한장 찍었었습니다. 제가 즐겨하는 포즈가 있는데 부탁해서 쌍둥이처럼 연출했었고.
하지만 나중에 보니 카메라 배터리가 다되어서 사진이 남아있지 않더군요. (이 아쉬움은 제법 오래가더군요)
돌이켜보면 사인을 받은적 보다는 사인을 해준적이 훨씬 많은거 같습니다.
물론 이건 개념이 다른 싸인입니다. 전 보통 선물을 할때면 책을 선택하는 편이고, 책의 앞부분에 짧은 메세지와 일자, 제 이름을 적어서 주거든요.
예를 들자면 학점이수제로 인턴을 한적이 있는데 수료시에 전 직원에게 책 선물을 했었습니다. (사람이 많지는 않았거든요)
고민을 해서 어울릴만한 책을 각자 선별했었습니다. 사장님에겐 허영만씨의 '부자사전'을 선물했던건로 기억하네요. 메세지도 전부 다 다르게 적었고.
이런 습관이 오래되다보니 자연스레 간단한 싸인 필체가 생기더군요. 아주 가끔씩 제가 준 책을 보다가 제 생각이 났다며 연락이 오고 할때면 기분이 참 충만해지곤하더라구요.
사람을 많이 만나지않고 다녀서 그런지 이런 책 선물을 한지도 참 오래된 거 같네요.
구제샵에서 일어로 싸인이 되어 있는 티셔츠를 사서 입고 다닌적이 있습니다. 찾아보니 그 티셔츠는 어딘가의 온천 티셔츠 같았는데 사인의 정체는 확인하기 어렵더군요.
입고다니다보면 호기심 넘치는 지인들이 간혹 묻곤 합니다. 누구 사인이냐고. 질문자의 취향을 고려해서 그때마다 답변이 달라졌는데
일반적 취향인 - 기무라 타쿠야 싸인이야 / 도서 애호가 - 무라카미 하루키 싸인이야 / 영화 애호가 - 기타노 다케시 싸인이야
반응들이 재밌어서 즐거웠구요.
- 싸인을 받고 싶었지만 어쩔 수 없었던 경우는 에릭클랩튼 내한공연이었고, 요즘 싸인을 받고 싶은 사람은 켄 로치.
잠이 안와서 뻘글 한번 써봤네요. 다들 좋은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