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고과는 잘 처리하고 계십니까?

연말이네요. 고과 철입니다.

 

자기평가부터가 고욕입니다. 한 줄 쓰는 것도 아니고 각종 능력치별로 다 자기 평가를 해야하는데 그 자화자찬이 참 어렵습니다. 팀웍이 뛰어남, 기획력이 좋음, 리더십이 뛰어남, 분석적 사고가 돋보임 등등. 지금 회사는 다행히 본인에게 점수를 주는 시스템은 아닙니다만, 전에 다녀본 회사에서는 등급을 직접 줘야 했습니다. 주변에서는 "당연히 스스로에게 S를 줘야한다. 본인마저 스스로를 S등급으로 평가하지 않는다면 누가 S로 봐주겠는가?" 했었는데, 일부 팀장들은 "팀장이 평가할 여지를 줘야하는 거 아니냐. 무조건 다 S라고 해서 들고오면 이거 뭐 어쩌라는 거냐?" 며 일종의 "자수"를 선호하기도 하더군요.

 

이제 저에게 여러 명의 평가가 할당되었습니다. 역시 능력치별로 평을 쓰고 이번엔 점수를 줘야합니다.

 

문제는 아마 모든 회사가 그렇지 싶은데... 여기서 또 '온정주의'가 고개를 든다는 겁니다. 사실 저에게 배당된 피평가자들은 다들 딱히 뭐 잘못한 건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렇다고 대단한 업적을 이룬 사람도 없죠. 이렇게되면 자꾸 다른 걸 고려하기 시작합니다. "음.. 이분은 이번에 승진하실 때가 됐지. 고과를 좀 높이 줘야 도움이 되지 않을까" "얜 신입이잖아. 신입은 좀 바닥 깔아줘도 괜찮아." 등등.

 

마음먹기에 따라서 피평가자들의 점수 격차를 확 벌이면서 특정인에게 고득점을 몰아줄 수도 있습니다. 승진이 절실한 분에겐 큰 도움이 되겠죠. 문제는 점수의 범위가 정해져있기 때문에 그러려면 누군가는 그만큼 피해를 확 봐야한다는 점. 게다가 누가 누구를 평가했고 몇 점을 줬는지는 당연히 특급비밀인데, 전 그동안 당연히 모르고 살았습니다만, 아는 사람들은 또 안다고 하더군요. 이렇게되면 특정인 밀어주겠다고 다른 특정인을 깔아버렸다가 나중에 그게 밝혀져서 인간관계 개판되는게 아닌지도 또 걱정이고...

 

사실 말단의 평가는 결과에 큰 영향을 주지 못합니다. 결국은 팀장의 하향평가가 승부를 가른다고 하더군요. 그렇다보니 고과가 발표될 때 승진을 앞둔 분이 점수가 영 안나오면 대놓고 팀장과 대판 싸우는 경우도 은근히 있다고 합니다. "나 승진 기수인거 알면서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느냐?"고 항의하지만, 팀장은 다른 반발도 감수해야 하죠. "아무리 저 사람이 승진이 걸려있어도 그렇지, 내가 정말 저 쓰레기보다 일을 못했다고요? 쟤 일 하나도 안하고 노는거 아시잖아요!! 저런 애 승진시키면 회사 개판되요!!" "아 나도 아는데.. 그래도 동기들은 다 승진했는데 혼자 과장이고.. 딸린 식구들 생각도 해야... 당장 나한테 들이받을 것도 겁나고.."

 

뭐 길게 썼지만 내용이야 뻔히 다들 아실거라고 생각합니다. 스스로를 평가하는 것도 고욕, 남을 평가하는 것도 고욕. 평가, 판단 다 힘들어요. 교사나 판사가 되지 않길 잘했...(못된건 아니고?) ㅡㅡ;;

 

p.s. 근데 다면평가가 도입되서 팀원이 팀장을 평가하게 되면, 정말 팀장이 고과철만 되면 난데없이 잘해주던가요? 저희는 다면평가가 도입되어 있습니다만 별로 그런걸 느껴보질 못해서요. (모르죠 아직 끝이 안났으니 어느날 조용히 불러 부탁하실지도.. ㅡㅡ)

 

p.s. 언젠가 인사팀으로 발령이 나서 과거의 다면평가 기록을 다 까볼 수 있는 권한을 가지게 된다면, 본인을 평가했던 타인의 기록을 까볼 것 같으신가요? 이거 의외로 피하기 어려운 유혹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ㅎㅎ

    • 저는 b라고 썼는데 그러면 안되는거였군요.
    • 남들이 나를 어떻게 평가하는지에 별로 관심이 없어서 고과가 나온 줄도 몰랐는데 보너스 나온걸 보고 얼마인지는 짐작했습니다. 팀장님은 승진기수가 아니냐고 물어보시는데 저도 잘 모르겠어요...처자식(이 아니라 남편과 자식)이 있으면 이런데 관심이 생기려나.
    • 저희는 연초에 정해놓은 목표 달성도에 따라 적당히 90점 전후로 적어 냅니다.
      그럼 팀장이 1차로 가감해서 올리고 사업부장이 또 2차로 가감해서 적습니다.
      그러면 점수순서대로 쭉 배열이 되고 거기서 자동으로 S~C 까지 등급이 들어갑니다.
      그럼 사업부장이 등급을 조정하는데, B 받은 사람을 S로 올리면 S등급 꼴등이 A로 밀리고 식으로 줄줄이 하나씩 밀리는 시스템이라더군요.
      S를 한명 덜 주면 그만큼 C도 덜 줄 수 있다고 합디다..
    • 승진기수인데 누락시키냐고 팀장과 대판싸우는건 제가 생각하는 방식하고는 차이가 있어서 생소하네요. 당연히 능력여하에 따라서 결정될 문제라고 생각했고, 누군가 결정권을 가진사람이 그렇게 평가했다면 승복하는게 맞다고 생각하며 살아왔습니다.
      그냥 그 평가의 합당성도 중요하지만, 결정권자에게 그렇게 보여서 그렇게 됐다면 그것도 제 결과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회사에 들어오고 나니, 기수니 대우니 뭐니 해서 정당한 평가위주보다는 그 온정주의가 만연한단 사실을 꺠닫고 사실 충격먹었습니다.

      쟤는 승진시켜주고 난 왜 안돼냐고 억울해 하는 동료를 보고, 진심으로 내가 윗사람이라도 넌 승진안시켜주겠단 생각한적도 있어요. 저걸 당연히 생각하고 억울해 하는것조차 정말 생소해서, 나도 내밥그릇 챙겨서 나 잘하네 하고 살아야 하나 그런생각두요.

      능력있는사람이 그만한 대우받는데 대해서 불만없습니다.
      근데 그게 아니란점이 더 멘붕오고 의욕도 사라지고 업무에 대한 집중도도 떨어지더라구요.

      아무튼 듀나무숲입니다만, 맨날 회사불평불만만하고 남들보다 내가 뒤쳐질까 전전긍긍하고, 줄타기만 하는 너 말이야 내가 봤을땐 내가 사장이라도 넌 승진안시킨다 .
      아 속시원해..

      죄송;
    • 우리나라는 성과제 도입해도 결국 온정주의 입니다 다 소용없음
    • 솔직히 성과제 도입해봐야 10명중 2~3명정도 능력자 빼면 다 고만고만하죠. 누구는 재수 없이 힘들기만하고 실적은 별로 안나올 일 맡게 되면 성과 안나오고, 누구는 열심히 한만큼 실적도 잘나올 일 맡게 되면 성과 잘나오고요. (비슷비슷한 인재 뽑아 회사 들어가는데, 누구는 모바일 사업부가서 성과급 턱턱 받는데, 누구는 백색가전가서 구경만 해야 하고..)
      그렇다고 정말 체계적으로 옴짝달싹 못하게 평가시스템을 만들어 놓으려고하면 또 부서장이나 임원들이 싫어하더라고요. 실적외에 충성심이나 태도 같은 '주관적인' 지표를 부서장들이 반영할 수 있어야 한다나..
    • 제도 만들어봐야 적용하는 사람들이 잘해야 잘 되는거죠. 노조가 결사반대해서 힘없는 신입사원들만 성과제+연봉제ㅋㅋㅋ하는 웃기는 회사 다닌적있는데 사이코패스 팀장하나 있으면 밑에 팀원들 다 망조.
    • 저는 저한테 (아무 거리낌없이) A+를 줬습니다! 어짜피 최종고과는 팀장님 맘대로이기 때문에 ㅎ
    • 무조건 자기한테는 최고점을 주세요.
      누군가 점수를 깎아야 하는 상황인데 스스로도 점수를 낮춰 줬다면, 팀장님의 입장에서는 자기가 점수를 깎아준 이유로 사용할 수 있죠.
    • 저한테는 자기비하적인 태도가 있어요. 멍청하게 그걸 인사 고과 자기 평가에 반영했다가 연봉 협상에서 피를 봤지요. 그 때 저는 처음으로 '아, 내가 나에 대해 참 박하구나 + 아, 자기에게 후한 사람들이 이렇게 많구나 + 인사 고과는 인사 고과일 뿐' 하는 걸 피부로 느꼈더랬습니다. 그 후로는 평균은 되게 써요. 그러면 최소한 인상율을 평타로 칠 수는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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