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 부부싸움

대선 이틀 전에 어머니한테 전화가 왔습니다.

누구 찍을 거냐고 물으시데요.

아버지는 워낙 보수적이시고 어머니는 아들 말도 듣긴 하지만 대개 아버지 뜻을 따르시다 보니 정치 얘기는 웬만하면 안 꺼내려고 합니다.

지난 한가위 때도 괜히 언성만 높아져서 죄송하다는 말로 마무리했고요.


어머니도 보수 언론에서 하는 얘기를 그대로 하시길래 그런 게 아니라고 말씀을 드렸죠.

그리고 친한 친구가 노무현 재단에서도 일했고 지금은 진보정의당에서 일하기 때문에 저도 잡혀갈지 모른다고 좀 뻥튀기도 했죠.

혹시라도 놀라실까 봐 우리 부부도 진보정의당에 가입했다는 얘기까진 안 했습니다.

ㅂㄱㅎ가 된다고 설마 그러겠느냐 하시길래 설마가 사람 잡는 거 박통 시절 모르시냐.

그리고 이 아들은 그런 억압적인 사회로 뒷걸음질치는 것이 싫다.

어머니가 절반쯤은 수긍하시는 것 같더군요.

하지만 화제가 바뀌는 바람에 그냥 거기까지만 했습니다.


근데 오늘 전화에서 2번 찍으셨다더군요.

아들 말이 일리가 있다면서요.

선거날은 투표하고서 아버지랑 산에 가시다가 싸우셨대요.

그래서 갈림길에서 따로 가시고

집에 돌아와 점심 드시면서 얼굴 보니 서로 웃음이 나오더래요.

그러고 그냥 마무리됐죠.


웬만하면 민주당도 아닌 진보 쪽을 찍던 아내도 이번엔 문재인을 밀었으나 잘 안 돼서 어제도 참 기분이 거시기했는데

오늘 어머니 얘길 듣고 둘 다 좀 나아졌습니다.

뉴스타파에 후원도 하고 시사인 정기구독도 하면서 마음을 추스려 볼까 합니다.

뜻을 함께하는 아내를 만나 참 고맙습니다.

    • 저는 부모님 설득에는 실패했고 아내도 장인장모님 설득에 실패했습니다. 말그대로 세대 격차가 제대로 발현되었었죠.
      어제 투표결과 후 하루종일 멘붕이었는데 그래도 옆에서 함께 공분해주며 또 마음 아파해주는 아내를 보니, 마음이 추스러지고 진정되더군요.
      사는 게 이런 게 아닌가 싶습니다.
    • 글 잘읽었습니다. 마음이 따뜻해지는 글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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