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낭] 레 미제라블을 기다리며

돈 많은 배우들이 출연하고 돈 많은 제작자가 제작한 돈 많이 든 영화 레 미제라블을 민중의 혁명을 주된 배경으로 하는 훌륭한 작품으로 즐긴다는 건 어딘가 이상하지 않을까, 하고 어느 잡지의 기사에선가 언급했다는군요. 두 시간 흥겹게/감동스럽게/슬프게/전율을 느끼게 해줄테니 돈을 내어라, 는 측면에서 상업영화는 그저 상업영화일 뿐이라고 하시는 분도 있겠지요. 그런데 레 미제라블 같은 소설을 거창하게 뮤지컬로 만들고 영화로 만드는 것은 좋으면서도 어딘가 거북스러워요 제게. 혁명 내지 민중 운동을 돈벌이 수단으로 삼기 때문이려니 싶습니다. 무엇이건 상품으로 만들어낼 수 있는 힘, 혹은 이토록 훌륭한 배우들을 다 모아서 이런 영화를 거대한 규모로 제작할 수 있게 한 힘은 놀라우면서도 무서운거 아니겠습니까. 영화의 방점이 어디에 찍혀 있을지는 몰라도, 민중의 삶과 투쟁을 세밀하면서도 거창하게 (특히 전투씬!)그려낼 수 있어야 돈 들어갔다는 티를 낼 수 있을테니 아마도 바리케이트를 친 시가전은 실감나게 보여주겠지요. 


레 미제라블 10주년이었나, 25주년 녹화영상을 보면 정장 차려입은 백인 관객들이 마지막 부분에 각국의 장발장들이 각국의 깃발을 들고 입장하니 열렬하게 박수를 보내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 순간 장발장들이 한 소절씩 돌아가며 부르는 노래가 'Do you hear the people sing?' 이어서 좀 어이가 없어지는 경험을 했어요. 적기를 흔들며 싸우다가 모조리 죽고 마는 민중들의 저항 속에 장엄하게 울려퍼지는 노래가 돈 많은 관객들의 유흥거리가 되고 있구나 싶어서요. 그러나 덕분에 더 많은 사람들이 '장엄한 투쟁'을 간접적으로나마 경험하게 되고, 나중에 뭔가 싸울 일이 있을 때 그 투쟁을 흉내내는 경우도 없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보면, 이렇게 민중의 투쟁을 이런저런 경로를 통해 많이 대중적으로 알려두는게 예상치 않은 효과를 낼 수도 있겠구나 싶기도 해요. 저처럼 디븨디로 접하는 사람들도 많을테니까요. 게다가 사실 프랑스 혁명의 부르주아 혁명적 성격을 떠올려보면, 비록 레 미제라블은 파리 코뮌을 그리고 있다 해도 관객들은 그게 그거인 프랑스에서 일어난 '시민 혁명'으로 보고 나름 시민으로서 뿌듯해 할 수도 있겠구나 싶기도 하네요. 


아마 안 볼수는 없겠지만, 영화관에서 봐야하나 디븨디 나오면 빌려 봐야하나 조금 고민이 되긴 하는데... 그래도 영화관 가겠죠. 아마. 

    • 그런 관점도 있을 수는 있겠네요. 근데 너무 그러다 보면 할 수 있는게 별로 없을 것 같아요. 그리고 사람들의 이중성은 어느정도 인정할 수 밖에 없기도 하고.
      • 네, 사실 007은 별 생각없이 영화관가서 보면서 레 미제라블에만 까탈스럽게 구는 것도 이상하구나 싶어요. 랜드 앤 프리덤은 또 영화관에서 잘만 봤으니, 메이저 영화사가 메이저 배우들을 써서 이런 영화를 만들어 버리는 바람에 평소의 판단 기준 적용에 혼란함을 느끼고 있는지도요.
    • 자본주의야 혁명도 팔아먹으니까요 뭐. 저도 뮤지컬 영상 처음 봤을때, 아마 축소되거나 생략될 거라고 생각했던 바리케이트 장면이 중심적인 볼거리;;;;로 등장해서 좀 놀랐어요. 저런 것도 볼거리로 취급해버리는구나 싶어서 좀 불편했던 기억이 납니다.
      한편으로는 원작에서 공화주의에 대해 별 생각이 없었던 마뵈프나, 거리의 부랑아였던 가브로쉬가 바리케이트에 참여하는 것처럼 그런 걸 다 녹여내버리는 것이 역사가 아닌가 싶기도 하구요. 넘 긍정적인가요ㅎㅎㅎ
      쓰고보니 끝부분에 언급한 것과 비슷한 이야기같아요.
    • 저는 혁명이란 소재를 빌려 인간 일반의 이야기를 하는 작품으로 받아들여서인지 말씀하신 모순성은 느끼지 못했는데 듣고 보니 그렇네요 근데 그런 비장미가 대형 뮤지컬에선 필수요소이기도 해서..
      그리고 혁명이나 투쟁에 대한 이야기들이 알게 모르게 간접경험으로 영향을 끼친다는 것엔 동의해요 레미즈와 성격은 매우 다르지만 어릴 때 베르사이유의 장미를 안 봤다면 혁명이란 단어를 훨씬 늦게 깨쳤을 듯;
    • 뮤지컬이나 영화중에서 모두가 하하호호 웃으며 볼 수 있는 작품이 몇이나 될까요 그렇게 따지면..

      뮤지컬만 봐도 빌리엘리엇의 탄광파업, 위키드의 차별당하는 엘파바, 멤피스는 인종차별, 캣츠는 메모리란 노래자체가...., 오페라의 유령도 주인공의 운명이나 여러가지가 좀그렇고, 미스사이공은 오리엔탈리즘과 동양여인의 성노리개화, 시카고는 살인과 불륜 뇌물 등이 나오구요..
      사실 라이온킹, 맘마미아, 메리포핀스 정도를 제외하고는 저런내용을 돈벌이 수단으로 삼아도 되나?란 생각이 드는게 많죠.

      사실 소설도 상업의수단이라 생각하는지라 그냥 좋은 작품은 좋게 보는게 좋은거 같아요 개인적으로는.
    • 그러고보면 봐야한다 보지 말아야 한다기 보다는, 영화에서 원 사건 그리고 원작과 다르게 그려지는 부분이 있다면 무엇인지, 그리고 그러한 변화가 작품 전체에 미치는 영향은 무언지, 왜 그런 변화를 선택했는지, 그래서 얻은 건 뭐고 잃은 건 뭔지에 대해서 생각해보는 편이 영화를 더 재미있게 보는 한 방법이 되지 않을까 싶어집니다. 빌리 엘리엇 뮤지컬은 못봤는데 만약 탄광 파업 내용이 빠져있다면, 영화 속에서 보여줄 수 있었던 빌리의 계급적인 배경에 대한 중요한 내용을 빠뜨린 셈이고 좀 더 평면적인 한 소년의 성공 스토리만을 전달했다는 점에서 아쉬웠다, 이런 평가도 가능할테고요. 누군가는 오히려 발레에 집중해서 더 좋았다고 평가할 수도 있겠지요.

      당연히 팔 수 있는 것은 모조리 팔 수 있지만 더 많이 팔기 위해서 무얼 지웠는지에 대해서는 재미나게 이야기해볼 수 있겠고, 특히 체제에 대한 저항이 담긴 부분의 '현재성'이 그저 과거에 이런 일이 있었는데 배경으로 알아둬라 이 정도 수준으로 그려질 경우, 입장에 따라 그 평가가 꽤 극명하게 갈리겠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쓰고 나니 첫 문단의 반복이지만 쓴 게 아까워서요.. ;
      • 네, 즐겁자고만 보는 것은 아니니까요. 봐야 한다, 보지 말아야 한다고 하신 말씀도 아니고요. 이것저것 생각해 볼 수 있는 지적이었어요^^
    • 근데 또 웃긴게요, 제가 요즘 레 미제라블 뮤지컬 감상글을 이리저리 찾아다니며 보고 있는데, 어쩜 바리케이트 장면만 쏙 빼고 감상을 적은 어느 목사님과 조선일보 기자의 감상글이 있더라구요. 어떻게 이 뮤지컬 감상글을 쓰면서 바리케이트 장면만 쏙 뺄 수가 있을까요. 참 신기해요.
      • 그만큼 고단수는 못된다는 거 아닐까요 ㅎㅎ 이래저래 어려운 과정을 거쳐서 성취한 것이 바로 우리 소중한 자유민주주의라네! 정도의 배짱은 있어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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