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원 감독의 <송환>을 다시 보고 왔어요.
1. 오늘부터 영화의 전당에서는 부독협에서 뽑은 독립영화 텐 베스트가 상영되는데요.
그 중 한 편인 <송환>을 보고 왔습니다.
이 영화는 중학교 때 시네마테크 자료실에서 조악한 화질의 VHS로 본 게 먼저였는데,
그 때 본 감상은 '할아버지들이 안됐다' '그냥 좀 사이좋게 지내지 왜 남북은 이렇게 서로 으르렁댈까' 정도의 현실감각을 갖고 본지라
그냥 아아아무 생각없이 봤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물론 그 덕에 미전향/비전향 같은 사소한 단어차에서 오는 함의 같은 게 다르다는 것도 알게 되고,
누군가가 한 평생을 바쳐서 지키려는 가치에 대해 궁금해지기도 했어요. 당시 김동원 감독에게 꽂혀서 <상계동 올림픽>, <행당동 사람들> 같은 작품을 보면서도 비슷한 감정을 느꼈었죠.
누군가 정말 저렇게 치열하게 지켜내고자 하는 게 있다면, 그게 사상이나 거주의 문제나 그런 걸 떠나서 일단은 존엄이 아닐까 하고요.
아무튼 그 뒤로 시간이 흘렀고, 다시 본 <송환>은 또 다른 느낌이네요.
우선은 대립되는 두 입장이나 가치의 차이에 대해 이해를 안고 보니 이 영화에 얼마나 논쟁적인 지점들이 많았는지 느껴지구요.
사실 처음 봤을 때에는 납북인사가족협의회가, 우익단체와 함께 나와서인지 송환 행렬을 막으려는 과정이 우악스러워보여서인지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이번에 볼 때는 그 입장도 이해되더군요.
그리고 다른 의미로 이 다큐가 찬사를 받는 이유를 알 거 같았어요. 12년이란 세월을 차치하고라도 어떻게 보면 상당히 무모할 수도 있는 기획이지 않습니까.
2. 김동원 감독도 오셔서 상영 후 관객과의 대화가 있었는데요.
저는 묻고 싶은 게 있었는데 오늘도 또(!) 못 물어봤어요.
(울렁증 때문에 늘 관객과의 대화에선 궁금한 게 있어도 질문하기가 참...... 생각해보면 관객과의 대화 뿐 아니라 수업 끝나고 질문있는 사람? 해도 눈치만 보다가 타이밍 놓치고 못 물어보는 일이 비일비재..)
다큐 수업 같은 걸 하면, 김동원 같은 감독이, 찍고자 하는 대상에 거리를 두고 멀찍이서 관찰하기보다 그 안에 들어가서 오랜 시간을 두고 함께 지내며 대상에 대한 이해를 갖고
대상을 존중하며 찍는 대표적인 감독이라는 얘길 많이 들었어요. 실제로 그런 게 영화에서 느껴지기도 하구요.
그러다 어떤 에피소드를 들었는데, (김동원 작가 1인칭 시점의 에피소드지만 얘기는 수업해주는 교수님이 들려주신 거죠.)
김동원 감독이 <송환>을 찍을 때 늘 카메라를 들고 다니다가 어느 타이밍에 카메라를 차에 두고왔던가 방에 두고왔던가 한데
하필 '감독으로서 탐날만한 그림'이 두 할아버지 사이에 연출됐었대요. 그 상황이 뭐였는지 디테일은 들었는데 까먹었어요.
그 때 김동원 감독이 잠깐 갈등을 했대요, 지금 이 타이밍에 얼른 달려가서 카메라를 들고 올까 아니면 조용히 있을까(?)
찍어놓으면 다큐의 하이라이트 같은 걸로 쓸모있게 쓰일 거 같은 상황이었는데, 고민하다가 그 상황의 공기나 분위기를 깨고싶지 않아서
그렇게 하지 않았다고- 이런 게 다큐 연출 윤리의 좋은 예지! 라며 교수님이 말을 하셨었는데
혹시 이 얘기에 대해 디테일하게 기억하시는 듀게분 계신가해서 여쭤봅니다 ㅋㅋ 전 어쩔 수 없는 키보드워리어..
3. 그런데 재밌는 게, 역시 처음 볼 땐 몰랐는데 이번에 보면서 좀 우웅스러웠던 장면이 있었어요.
비전향 장기수 할아버지 한 분이 이북에 계신 따님이 보낸 편지를 읽다가 중간에 울컥하고 울음이 치미는 듯한 장면이었는데
처음 시작은 바스트샷? 정도로 잡다가 울컥! 하는 시점에서 엄청 촌스럽게 줌인을 해서 저는 콧잔등이 시큰하려다가 그 노골적인 카메라 워크에 감정이 깨졌거든요.
웃긴 건, 김동원 감독이 GV를 하면서 그런 얘길 하시더라구요. 자기는 잔잔하고 조용한 편이라서 막 우는 사람 얼굴을 줌해서 갑자기 클로즈업 잡고, 우는 장면을 길게 내보낸다든가 하는 걸 싫어한다구요.
그런 장면을 보면 나오던 울음도 쏙 들어간다구요.
대체 그럼 제가 본 장면은 뭐였을까........ 싶었는데 생각해보니 다른 분이 촬영을 하시고, 소스가 그 줌땡긴 것 뿐이라서 울며 겨자먹기로 김동원 감독이 편집 단계에서 살려둔 걸까.. 싶었습니다.
4. 아, 그리고 맨 첨에 말한 이 독립영화 텐 베스트에서 재밌는 거 많이 하네요.
푸른영상의 다큐들을 비롯해서 <신성일의 행방불명>이랑 <마이 제너레이션> 같은 것도 하고..
전 <신성일의 행방불명>을 한 번 더 보려고 하고요. (이 영화는 좋아해서 두 번 봤는데, 요번이 세 번째네요.)
<마이 제너레이션>은 칭찬만 많이 듣고 한 번도 못 봤는데 궁금하네요. 근데 신재인 감독은 뭐하나요?
아버지가방에들어가신다 같은 제목의 영화를 만든다고 제작계획표 같은 데서 본 거 같은데.. (지금 검색해보니 '어머니가 상했다'였네요.)
그 영화는 안 나오길래 무산됐나보다 했는데 그 뒤론 아무 소식도 T_T
<너무 많이 본 사나이>를 보고 컬쳐쇼크ㅋ받게 만든 손재곤 감독과 더불어 엄청 기대되는 감독이었는데.. 차기작이 나왔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