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영화제 간단 리뷰
처음 간 부산영화제 일주일.
16개의 영화를 봤습니다. 개막식날 일반 극장에 가서 본 '우리도 사랑일까'를 포함하면 17개 보았네요.
만점을 주고 싶은 최고의 영화들은 : 아무르, 어둠 뒤에 빛이 있으라, 사랑에 빠진 것처럼, 먹다 자다 죽다, 비욘드 더 힐즈, 앤젤스 셰어
이렇게 6편이나 되네요.
나름 재미있게 본 영화들은 : 홀리 모터스, 킬 미, 까마귀들, 버베리안 스튜디오, 가족의 나라, 세션 : 이 남자가 사랑하는 법.
그리고 좀 아쉽다(더 잘만들 수 있지 않았을가) 생각되었던 영화들은 : 이프 온니 에브리원, 마리 크뢰이어, 로얄 어페어, 모스크바 탈출.
댓글에도 쓴 적 있지만 빌 어거스트의 마리 크뢰이어는 무지 실망한 영화고요. 너무 안일하게 만들었다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첫영화가 영화의 전당 중극장에서 '아무르'였는데 마지막 영화도 중극장에서 '앤젤스 셰어'였습니다.
이보다 더 좋은 시작과 끝은 상상할 수 없을듯~
두 노장 감독이 처음과 마지막에 엄청난 감동을 주었습니다. 중간에는 (너무나 귀여운 영화의)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감독님이 계셨고요. :)
어둠 뒤에 빛이 있으라는 멕시코, 카를로스 레이가다스 감독 작품인데 완전히 새로운 (영화적)경험을 했어요.
이게 뭔가 하면서 귀와 눈을 사로잡힌채 화면 속에 빠져있다보니 두 시간이 지났더군요.
소리와 영상의 공명이 머릿속에서 한동안 계속되는 느낌이었지요.
이후 홀리 모터스를 봤을 때, "어쩌면 까락스도 레이가다스 감독과 같은 의도를 가지고 이 영화를 만들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관객에게 충격을 주고 어떤 강렬한 이미지를 남기려 목적.
굳이 비교를 하자면 레이가다스 감독이 무한한 상상력과 남아도는 능력의 일부로 편안하게 영화를 만들었다는 느낌이라면
까락스는 뭔가 힘을 엄청 박박 긁어가며 썼다는 느낌이 들면서 보는 일이 조금 힘겹더군요.
물론 보는 동안 눈은 즐거웠다고 할 수 있지만..
어쨌든 앞으로 레이가다스 감독을 특별히 눈여겨보게 될 것 같습니다.
사랑에 빠진 것처럼을 보고 키아로스타미 감독은 빼도박도 못하는 천재구나orz 느꼈습니다.
카페, 택시(와 동상앞), 노교수집(과 입구), 노교수의 차 안.
극히 제한된 공간에 카메라를 정지시켜놓고 어찌 그런 이야기를 (순전히 대사로) 펼쳐보일 수가 있으신지. (각본상 안 주나요)
정말 깨알 같은 예쁘고 멋진, 섬세한 그림 한 편 같은 작품이었습니다.
GV가 있는 영화는 두 편이었는데 우연히도 모두 30대의 젊은 여자 감독, 거기다 두 감독 다 데뷰작이었습니다.
그러나 느낌은 완전히 달랐습니다.
일단 '이프 온니 에브리원'은 경험이 없는 데뷰 감독의 느낌이 고스란히 실려있는, 살짝 어설프면서 천진스럽게 밝은 영화였습니다.
아르메니아가 처한 정치적인 상황과 전쟁의 아픔을 배경으로 하는데 감독이 그다지 깊은 이야기를 하고 있지는 않고요. (이게 나쁘다는 건 아니고)
반면 '먹다 자다 죽다'는 이번 영화제에서 제가 가장 생각없이 보다가 깜짝 놀란 작품이었습니다.
자세한 정보 없이 영화를 봤기 때문에 보면서 많은 생각을 했는데
여주인공 배우가 너무 잘하고 주변사람들도 너무 잘하고 상황이나 대사가 너무 작위적인 구석이 없어서
"음. 이건 극영화가 아니구나. 다큐인데 모르고 들어왔구나" 했다가 카메라 같은 게 아무래도 설정이 아니면 불가능한 장면들이 나와서
"아, 이게 극영화라면 배우들도 대단하고 연기를 지도한 감독, 이렇게 집중력 있는 각본을 쓴 감독은 누군지 몰라도 엄청 노련하고 여우같고 경험이 많고 능력있는 노장 감독이겠구나"
생각했어요. 하네케 감독을 떠올리면서요...
하지만 GV에 나타난 감독은 30대 초중반의 북구 모델 외모에, 이 영화가 무려 그녀의 장편 '데뷰작!'이라는 겁니다.
영화는 시종 조절이 잘 된 에너지가 가득했는데 실제 감독은 말하는 것도 수줍어하는 분이어서 이런 아이러니한 기분이 없더군요.ㅎㅎ
영화의 인물들처럼 감독(가브리엘라 피츨러)의 부모는 공장 노동자들이었고 자신도 과자공장에서 일한 경험이 있다고 해요. (헐)
그래서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꼭 영화로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고요.
꼭 맞는 여주인공(라샤. 정말 이 배우가 대단했어요. 존경. 아무르의 장-루이 트린티냥님과 함께 갠적으로 이번 비프의 양 주연상 드립니다.^^)을 일년동안 찾아다녔다고 합니다.
실제로 비슷한 이미지의 일반인을 추천받아 캐스팅하게 되었다고 하네요.
영화에는 실제 감독의 어머니도 배우로(물론 공장노동자) 나오고요.
이 영화는 엑스트라 하나하나까지 연기가 정말 살아있는데, 특히 제가 보다보다 그렇게 진짜 같은 의사를 처음 봤습니다.
이건 대사를 외워서 할 수 있는 경지를 넘어선 것 같은데(그 장면 보고 더 제가 다큐라고 단정..) 어떻게 그런 연기를 끌어냈는지. 그 의사가 배우여도 대단하고 진짜 의사여도 대단합니다.
주인공의 상황이 너무나 리얼하면서도, 허황되고 극적인 결말이 없으면서도 문풍지 통해 불빛이 은은히 비쳐들듯이 마음으로 '희망'을 감지할 수 있는 그런 영화.
너무 좋았어요. 다음 영화도 꼭 이렇게 좋은 영화 만들어주길...
마지막날 영화 두 개를 보았는데 그게 비욘드 더 힐즈와 앤젤스 셰어였습니다.
그동안은 영화와 영화 사이가 최소 1시간 이상 간격이 있어서 그다지 뛰지 않고 다닐 수 있었는데
비욘드..가 150분이나 되는 바람에 메박에서 영전까지 30분밖에 시간이 없었어요. 그래서 비욘드..의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기 시작할 때 극장을 나와야했습니다.
영화에서 여주인공이 불렀던 잘자라 우리아가 자장가의 관현악 연주가 흘러나오면서 크레딧 올라가는데
종종걸음으로 나오면서 제 얼굴위에는 대여섯줄의 눈물이 줄줄... 입으로는 별로 울지 않는데 눈에서 그냥 맑은 눈물이 줄줄 흐르더군요.;;
엘리베이터 앞에 서있는 동안에도 계속, 택시에 타서도 계속...
크리스티안 문쥬. 칸에서 올해 각본상 받았는데 정말 대단합니다. 상받고도 남을만큼 대단하기도 하고 150분동안 쉴틈없이 좔좔좔좔 떠들어대는 등장인물들.
아마 분량이 다른 영화 대사의 몇 배는 될 것 같아요.
그러면서도 그 안에 메세지를 다 담고 사소한 대사들 속에 뼈대가 흐트러지지 않고.
인간은 얼마나 위대하면서 또 인간은 얼마나 한심하게 사는지. 화가 나다가도 두 아이 때문에 정말 가슴이 아팠습니다.
눈물을 훔치고 본 마지막 영화 앤젤스 셰어가 너무 유쾌해서 마음이 밝아져서 돌아오게 된 것이 얼마나 기쁘던지요.
이건 정말 두고두고 마음이 우울해질 때 꺼내봐야할 필수소장 영화입니다. 대사를 다 외워버리고 싶어요. 스코틀랜드(글래스고도 스코틀랜드인가) 북쪽 사투리로다가요.
모든 등장 인물들이 극도로 귀엽습니다. 하다못해 주인공을 괴롭히는 동네 깡패의 졸개들조차도 다 귀여웠어요. 아 따뜻해.
이런 영화도 정말 필요합니다. :)
돌아오는 리무진 버스-공항-뱅기에서 민규동 감독을 봤는데 앤젤스' 티켓에다 켄 로치 감독 싸인은 못받아도 대신 민감독 싸인을 받을까 생각하면서 혼자 웃었어요.;
세션 : 이남자가 사랑하는법은 정말 특이한 영화였네요. 뒷이야기를 생략하고 네레이션으로 처리한 것은 적절했다고 보이고요.
실제 그런 직없이 있는 건 아니죠? ^^;
엔딩 크레딧 마지막 즈음에 'and thanks to' 리스트 중간에 Jonathan Salk 가 있었어요. 소아마비 백신 개발한 Jonas Salk의 오타는 아니겠지요? :-)
제가 평소 이런 영화들 하나 보려면 주말 하루를 잡고 서울에 나가야하는데 그런 영화를 하루에 서너개씩, 일주일에 16개를 봤다고 생각하니까 돌아오는 길에 너무 뿌듯하더군요. 도대체 몇 주의 주말을 번 건가요.ㅎ 고로 내년에는 좀 더 많은 영화를 봐야겠습니다.
행복한 일주일이었습니다.
글이 참 길어졌네요.
마지막으로, 부산 물 엄청 좋은 것 같아요. 이틀째부터 얼굴 피부가 반들반들;해진 걸 느꼈어요.
오늘 출근했더니 동료들이 피부가 좋아졌다고 난리입니다.
해운대 물이 좋은 건가요 아니면 좋은 영화들로 마사지한 효과일까요.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