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미 대선후보 토론에서 오바마가 롬니에게 완패했더군요. '블랙 케네디'로 칭송받던 오바마가 기죽은 모습을 보이니 안타까웠어요. 근데 내용을 보면 롬니는 어쨋든 뻔한 얘기를 하면서도 능수능란하게 공격을 잘 하네요. 의외의 재능이 있어요. 정작 변호사 출신은 오바마인데 롬니가 더 변호사같은 면모를 보인 느낌입니다. 오히려 미국에선 이런 이미지가 비호감일 수도 있을 거같은데.
오바마캠프는 지지율만 믿다가 큰 코 다친 거죠. 그래도 전반적으로는 오바마캠프가 전략을 잘 짜고는 있지만 믿는 도끼에 발등찍힌다거나 만만하게 보던 과목에서 피보는 경우라고 할 수 있겠죠. 아직까진 두 번의 기회가 더 있으니 아무쪼록 만회했으면 합니다.
아무리 잘 준비해도 결국은 전략싸움에서 오바마가 불리할 수밖에 없어요. 롬니가 내세우는 건 단지 '미국다움이 무엇인가'이죠. 미국 경제 어렵고 힘든 건 알겠는데 어쨋든 정부지출 강화와 복지를 위한 증세는 '미국식 해법'이 아니라고 못박는 겁니다. 세계 최강대국 국민들이 자신들 체제의 패배를 쉽게 인정하긴 어려울테니 어떻게 보면 감정에 호소하는 전략입니다.
따지고 보면 공화당의 전략은 참 일관적이에요. 깅리치의 선거혁명 당시에도 슬로건은 '미국과의 계약' - 즉, 우리 조상들은 미국을 건국할 때 절대 큰정부를 구상하지 않았다 - 이고 오바마를 비판하는 만평에서는 그를 미국이 아닌 EU 대통령으로 묘사하기도 했죠. 이에 대한 정공법은 제 예상컨대 눈에는 눈, 코에는 코라고 역시 역사에서 정당성을 얻는 거아닐까 싶어요.
토마스 제퍼슨. 민주당 입장에서 제퍼슨만큼 자신들의 프로파간다에 역사적 정통성을 부여하는 인물이 없죠. 버지니아 종교개혁법(인류 역사상 최초의 정교분리 선언!)을 작성했고 계몽주의적 정치관을 가졌던 사람이 건국의 아버지 중에 포함되어 있으니 나름 든든하지 않겠습니까. 텍사스에선 역사교과서에서 제퍼슨을 삭제하자는 움직임까지 있다고 들었습니다. 근데 사실 이양반도 반연방주의자라 큰정부를 지지하는 데 이용해먹긴 힘들듯. 결국은 FDR과 JFK의 이름을 빌려 미국민들을 감동시키는 수밖에 없으려나요. 어쨋든 다음 토론에선 오바마의 선전을 기원해봅니다.
정작 롬니도 주지사 시절 행보를 보면 극우 정치인은 아닌데.. 이민자에게 우호적인 정책을 만들기도 하고 오바마케어 비스무리한 복지제도를 시행한 적도 있죠. 아무래도 공화당에서 대선 후보로 지명되려면 선명한 정체성이 필요했던가 봅니다. 근데 재밌게도 그런 선명성때문에 본선거에선 불리할 거에요.
지지율은 원래 박빙이었습니다. 지금도 그렇고. 다만 확보된 선거인단 수에서 오바마측이 꽤 여유있게 앞서가는 상황이었죠. 사실 어제 토론에서 롬니가 판정승을 거두긴 했지만 당장 뒤쳐지던 판세가 박빙으로 바뀔 정도의 임팩트는 아니었죠. 다만 말씀대로 원래 오바마 우세로 예상되었던 양자 토론에서 "예상 외로" 롬니가 너무 잘 해내서 "47% 발언" 이후 거의 불가능하게 보였던 기사회생의 기회를 잡았다는 게 중론이더군요. 다만 오바마측이 어제 소위 "47% 발언"을 위시한 롬니의 자폭성 약점들을 전혀 공격하지 않은 게 화제가 되었듯이 비록 예상치 못한 일격을 당했지만 아직도 앞서가는 입장인 오바마쪽에서 과연 남은 두 번의 기회에서 그냥 "수비"에 만족할 것이냐가 관건이긴 하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