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모(1960)라는 영화를 보면서 이런 의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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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컨의 일생이라는 책을 읽으면서 1820년 미주리 타협, 1830년대 은행전쟁, 캔자스-네브래스카법, 1846년 미국-멕시코 전쟁 무수히 많이 나오는 미국의 역사를 한올 한올 추적해볼까 싶어,
옛날 TV에서 봤던 이영화를 어제 다시 봤습니다.
20년여년이 지나서 보게된 이 영화때문에 세월의 흐름에 감개가 무량했지만 당시 80년대 TV에서 봤던 그때의 감동이 전혀 없는겁니다.
도대체 왜? 그때는 재미있게 감동적으로 봤을까? 이런 의문이 들었는데 생각해보니 아마 그것은 드라마틱한 텍사스 샌안토니오에 있는 알라모 요세의 186명의 옥쇄작전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천여명이 넘는 멕시코 산타안나 장군과의 13일간의 걸친 혈투! 오합지졸같은 멕시코 군대였지만 지금 이영화를 보니 자기나라 자기땅 찾는 전쟁이었습니다.
멕시코가 스페인으로 부터 독립(1821년)을 하니 국가영토정리를 해야되는데 미국쪽에서 멕시코 영토내 텍사스에 터잡고 살면서 나가지 않은거죠.
(거기다 땅을 비워주지 않고 나 이왕 이렇게 살고싶다-자치권주장. 거기다 이 땅 사고싶다는 미국의 주장) 멕시코는 당장 미국의 텍사스 이민을 막고 몰아내기로 작전을 새웁니다.
수천명의 멕시코군들은 산타 안나장군을 필두로 알라모 200여명은 1836년에 전투를 벌입니다. 결과는 전원 옥쇄.
이후 텍사스 반란군 샘휴스턴 장군은 알라모의 희생적인 작전으로 지원군모집을 하면서 시간을 벌어 산타안나 장군을 산히신토 전투에서 승리를 거둡니다.
한마디로 오늘날 미국의 정신적지주같은 전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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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3시간여 내내 별이야기가 없습니다. 알라모라는 폐허가된 교회터에서 민병대간의 이야기가 주를 이루는데 이야기라는것도 별이야기 없습니다.(대실망)
나름 이 요세의 방어 의미를 좀더 에피소드로 표현을 했으면 좋았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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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네시주 출신의 너구리 가죽 모자를 쓴 사나이 데이비 크로켓역에는 미국 정치적 매파였던 죤웨인(왼쪽) 윌리엄 트래비스에는 로렌스 하비(오른쪽)
보이 나이프라고 칼을 발명한 짐보이에는 리처드 위드마크(가운데 2008년 사망)가 열연을 했습니다.
■ 사족 - 이영화를 보면서 특이한 질문거리가 하나 생겨서 듀게에 한번 올려봅니다. 이영화에도 미국영화에서 자주 볼수있는 눈물샘 자극하는 애국하는 모습이 나옵니다.
알라모 요세를 지키기 위해 최후의 인원 점검을 하면서 장인아내를 둔 가족의 남편을 수비대장 로렌스 하비는 너는 가족과 함께 이 성을 떠나라 네가 가도 너에게 비겁하다고 할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 남편의 장인 아내는 화를 내면서 우리남편은 이성을 지켜야한다면서 끝내 머무르고 전투에 임하게 됩니다.
중과부적 그 성이 수천명의 멕시코 군대를 이길수는 없습니다. 지원군도 오지 않습니다. 함락되고 싸우다 죽는것은 당연한 사실입니다.
여기서 과연 이 영화를 작품적으로 끌고 가기 위해서는 아니면 우리가 삶속에서 이런 현실을 부딛칠때 과연 어떤것이 최고의 선택이냐는거지요.
1. 과연 성을 지키는 저들과 같이 싸워서 죽어서 영원히 역사속에서 사느냐.
2. 라이언 일병 구하기 처럼 가족들을 지키기 위해 성을 빠져 나와 행복하고 건강하게 살아 많은 식구들에게 이 역사적 전투를 이야기 해주면서 미미하나마 국가건립의 밑바탕이 되느냐 입니다.
이 두가지 선택이라면 상황에 따라 다를수도 있지만 이런 딜레머는 존재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해봤습니다.
사실 당장은 1번처럼 싸워야죠. 그리고 동료들과 함께 전사하고 역사속에 남는것도 좋지만 2번처럼 이 전투를 기억하며 많은 식구를 거느리고 건강하게 살아 후세에 이 이야기를 남기는것도 그렇게 비겁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는겁니다.
역사를 인식하는 자세로서 1번처럼 모두 싸워서 죽는게 나을지 2번처럼 가족과 함께 살면서 이 사실을 길이길이 후세에 남기는 역활을 하는게 좋을지 이런 영화의 작가로서 이런 스토리를 써야한다면 어떤 결말을 선호할것 같습니까?.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