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나 3D를 보고 왔습니다ㅎㄷㄷㄷ

뭔 축제한다고 학교가 떠들썩하길래, 도서관에서 공부하다가 일찌감치 접고 여자친구랑 극장 가서 '피나'를 봤습니다.

제가 피나 바우쉬에 대해 아는 거라곤 알모도바르의 '그녀에게'에 나온, '카페 뮐러'의 그 장면 뿐이었습니다. 빔 벤더스의 경우엔, 우연히 봤던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으로 푹 빠졌다가 스폰지하우스 특별전 때 '베를린 천사의 시'와 '돈 컴 노킹'을 연달아 보고 꽤 실망한 바 있어요. '베를린 천사의 시'는 분위기나 일부 장면들은 정말 좋았지만 끊임없이 나오는 나레이션과 주제를 전달하기 위해 상당히 감상적으로 흐르는 내용 전개 때문에 손발 상당히 오그라들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개인적으론 '돈 컴 노킹'이 오히려 나았는데 그 영화도 잔잔한 드라마 그 이상의 큰 감흥은 없었고요. 그 뒤로 빔 벤더스 영화는 아예 한 편도 안 봤습니다. 이 양반 다큐는 몰라도 극영화는 나랑 안 맞는구나, 싶어서.

잘 모르는 피나 바우쉬, 썩 좋은 인상으로 남아 있지 않은 빔 벤더스, 그럼에도 두 명의 조합이 낳은 영화 '피나'는 진작부터 묘하게 기대감을 품게 만들더라고요. 그리고 오늘, 기대감을 훨씬 웃도는 놀라운 경험을 하고 왔습니다.

사실 피나, 라는 제목의 다큐멘터리지만 이 영화는 피나 바우쉬의 전기 영화도 아니요 그렇다고 그녀의 생전 공연 실황을 온전히 담아낸 것도 아니요, 오히려 그녀를 사랑했던 이들이 그녀의 사후에 그녀에게 띄우는 찬가에 가까운 영화예요. 저 같은 사람은 이 영화 봐도 피나 바우쉬에 대해 아는 거 없는 건 마찬가지예요. 다만 그녀가 감정과 춤을 대하는 태도에 대해 어떤 인상들을 받게 되긴 합니다.

영화는 피나 바우쉬가 만든 네 편의 작품, '봄의 제전', '카페 뮐러', '콘탁트호프', '보름달'을 담고 있지만 분절된 부분부분들만을 보여주기 때문에 각 작품당 전체적인 주제 의식에 가 닿는 건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보고 나면 각 작품을 온전한 형태로 감상하고픈 욕구가 샘솟아요ㅜㅜㅜ 이 점에 있어선 이 영화에 대해 꽤 불만이 남는 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영화는 피나와 그녀의 작품의 온전한 이해를 돕는 대신, 그녀의 네 작품의 공연 실황 파트를 접점 삼아, 생전 그녀와 수 년 혹은 수십 년 교류해 온 부퍼탈 무용단원들에게 집중합니다. 그들의 인터뷰는 입도 뻥긋하지 않는 얼굴 위에 보이스오버 나레이션으로 깔립니다. 말 그 이상, 말이 표현하지 못한 것들을 춤으로 표현하는 것이라 했던 피나의 말을 실현하려는 듯, 생전 피나가 그들에게 어떤 존재였는지를 회상하는 짧은 나레이션이 입 뻥긋 않는 얼굴 위로 흐른 뒤에 각 단원들의 춤이 이어지는 식이죠.

소통의 욕망, 끝없이 방해받는데도 사랑하고자 하는 욕구, 몸서리쳐질만큼 괴로운 외로움, 삶 자체가 주는 무게, 사람이 주는 무게, 그걸 견디어내는 숭고함, 그리움, 결핍과 충족, 기쁨 혹은 슬픔, 때론 공허하며 때론 분노로 폭발하고... 수많은 욕망들과 들끓는 감정들... 피나 바우쉬는 그것들을 자연물, 기타 일상의 오브제들과 사람의 몸을 결합시켜 표현, 아니 발산하다 못해 폭발시키고자 한 것 같습니다. 좀 더 미쳐야 해, 좀 더 놀라게 하지 않으면 안 돼, 춤 춰, 춤 춰, 그러지 않으면 우린 길을 잃고 말아... 거의 발악과도 같은 몸부림으로 인간의 몸뚱아리를 매개 삼아 온갖 감정들이 날것으로 끄집어내 온 그녀. 그녀는 그 자세를 단원들에게서 유도해냅니다. 많은 말은 필요 없었어요. 그녀는 그녀의 몸짓 혹은 단 한 문장으로 그들을 일깨우곤 했노라고 단원들은 회상합니다.

피나의 작품, 단원들의 얼굴과 보이스오버 나레이션으로 이루어진 인터뷰, 피나가 사라진 뒤 단원들이 추는 춤의 구조가 반복되는 것은 그렇기 때문에 더 특별해 보여요. 피나의 춤과 감정에 대한 태도가 단원들에게로 확장되는 과정을 탁월히 잡아내는 방식 같아서요. 단원들은 피나와의 교류를 통해 물려받은 유산과도 같은 그 태도를 자신들이 추는 춤을 통해 증명하며, 바로 이 방식으로써 피나를 기립니다. 때로는 무대 위에서, 때로는 자연 속에서, 때로는 일상의 공간에서 그들은 피나의 분신이 되어 그녀의 춤을, 그와 조응하는 자신들의 춤을 추며 인간 본연의 감정들을 표현하고, 상징적으로 그녀의 흔적을 온 공간에 증식시켜 나갑니다. 한 분야에 있어 엄청난 족적을 남기고 떠난 위대한 예술가를, 동시에 자신들을 일깨웠으며 자신들과 깊게 교류해 온 사랑하는 스승이자 동료를 기리는 데 이보다 더 아름다운 방법이 있을까요? 영화를 보는 내내 몸을 타고 흘렀던 그 벅찬 감동과 전율은 굳이 글로 표현하려는 시도 자체가 구차하게 느껴질 정도입니다.
    • 궁금한 영화였는데 감사합니다 모모에서 3D로 볼 수 있는건가요?
      • 저는 메가박스 코엑스에서 봤는데 모모에서도 3D 상영하더라고요!
    • 저도 피나를 봤는데 저는 솔직히 이해할수 없는 몸짓과 무대 장치들 그런것이 어떤 메세지를 가지는지 알지 못했고
      내가 무엇을 보고있는 건지 자꾸 의문이 들더군요.. 아무래도 제가 아직 소양이 부족한거겠죠
      나름 영화도 많이 보고 책도 많이 읽어왔다고 생각했는데. 단순 취향의 차이가 아니라 제가 캐치하지 못한 무언가가 있는 영화같아서 더 찝찝하고 그러네요 무튼 큰 감동 느끼셨다니 부럽습니다..
      • 머리로 이해하려고 하기보단 그냥 보면서 그 날것 그대로 표출되는 그 감정을 껴안아 보려고 하니까 그들의 몸짓이 더 가깝게 느껴지더라고요ㅜㅜㅜ
    • 코엑스에서 3D로 봤었는데. 공연이라던가 춤에 대해서 잘은 모르지만. 그래도 무척 감동받았어요. 공연을 가닥가닥 나누어서 보여주는 점에 대해서 언급하셨지만 ㅎㅎ 덕분에 일생에 꼭 한번은 무대로 공연을 꼭 보러가야겠다는 다짐이 들었습니다. 영화 정말 좋았어요. 국내에서 사진전이 열리는데 혹시 보셨나요? 서교동에 있는 갤러리에서 도나타 벤더스 사진전을 해요.
      • 우와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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