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연극 '필로우맨'을 봤습니다.

호평이 굉장히 많았던 극이라 기대를 너무 한 탓인지 생각보다는 실망스러웠습니다.


하고 싶은 이야기들이 무언지는 그때그때 설명을 잘해주는 편이라 잘 알겠어요.


말 혹은 이야기가 가지는 힘, 

누구는 이야기로 자신을 드러내고 누구는 이야기로 자신을 숨기는 양상,

진실과 거짓이 말, 이야기, 문장들에 파여있는 함정들로 인해 교묘히 역전되며

말 혹은 이야기에 대한 해석이 어긋나면서 벌어지는 파국, 

그리고 그 틈새를 이용해 이야기가 화자와 청자 자체를 압도해 버리고 나아가 현실 자체를 압도하려 드는 그 가공할 힘...


또한 현실의 비참함을 굳이 버텨내며 사는 게 의미가 있을까? 어쩌면 그 이전에 죽음을 선택하는 게 나을지도 모르지 않나?

하지만 겪지도 않고서 그 비참함을 이해하고 죽음을 선택한다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인가? 


더불어 그 선택을 조장한 '이야기'가 유죄인가 아니면 그 화자가 유죄인가 혹은 청자가 유죄인가?

이야기에 죄를 부과할 수 있겠는가? 아니, 그 이전에, 이야기에 어떤 실체가 있기나 한 것인가?

이 질문에서 주제는 다시 처음으로, 이야기 그 자체가 가지는 힘에 대한 이야기로 꼬리를 물고 이어집니다.


그런데! 이러한 주제들이 그저 흩뿌려져 있어요. 

극본 내에서 그때그때 설명도 꽤 해 주는 편이고 

배우들 연기나 연출(현실과 이야기를 오가고, 세트와 스크린 등을 이용한 연출이 탁월합니다)도 좋은데도

이야기가 좀체 수렴이 되지를 못하고 그저 산발적으로 제시되다 흩어지고 마는 느낌입니다.

본 사람이 능동적으로 뛰어다니면서 하나하나 다 그러모아서 정리하지 않으면, 

볼 땐 흥미진진하지만 다 보고 나와서 내가 뭘 얘길 본 건가 하기 십상인 극 같아요.


뭐, 돈 아까웠다 시간 아까웠다 이런 건 아니고 따지고 보면 꽤 만족스러운 극인 것도 사실이지만

호평을 너무 들은 탓에 정말 잘 짜여진 극을 기대하고 들어간 탓인가봐요ㅠㅠㅠ 아쉬움이 큽니다ㅠㅠ

    • 필로우맨을 했었군요. 지금 예매하려 가니까 매진이네요. 아쉬워라 보고 싶었는데요.
      • ㅜㅜ사람이 많긴 하더라고요ㅠ안타깝습니다...
    • 저는 무척 재밌었어요. 한 편의 잔혹 동화 같아서요. 저는 한 쪽 끝을 향해서 우르르 달려간다는 느낌을 받았고 산발적이라기보다는 그게 하나하나 쌓아져서 마지막까지 힘을 잃지 않고 확 끝을 내버리는 게 시원했거든요. 집요하고, 구원할 길 없는 그런 동화..모두 모두 행복하지도 않고 뭐 위로될 것도 없는 그 마지막이 참 좋았어요. 잔인했고요.
      • 제가 기대했던 게 그런 거예요. 하나하나 쌓아가며 끝까지 달려가서 빵 터뜨리는 그 무서운 폭발력. 사실 담고 있는 주제 자체가 그런 폭발을 일으키기에도 걸맞다고 여겼는데, 개인적으로는 이 극이 그런 면에서 제대로 주제를 발전시키지 못했다는 느낌이 강했습니다ㅜㅜ 아 그런 얘기구나, 근데 이렇게 보여주는 게 다야? 이런 느낌...ㅠ
    • 그동안 대학로의 개연성없는 극들에 질려가던 차였는데, 전 오랜만에 쫀쫀한 극을 봐서 좋았어요 :)
      • 전 연극을 그렇게 자주 보는 편은 아니라... 올해 들어선 대학살의신, 모범생들, 그을린사랑에 이어서 필로우맨이 네 번째였어요. 모범생들은 크게 실망했지만 대학살의신, 그을린사랑은 대만족이었고 특히나 그을린사랑은 엄청난 위압감에 짓눌린 채로 극장을 나와야 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해요ㅜ 연극을 적게 보는 편이고 타율도 좋았던 터라 필로우맨이 더 아쉬웠던 것 같아요ㅜㅜㅜ 김소희 나오는 욕망이라는이름의전차 올라올 즈음에나 다시 연극 보러 나갈 것 같네요.
    • 저도 꽤 만족스럽게 본 작품입니다. 원글님과 비슷한 후반부 응집력이 조금 부족한 것 아닌가 하는 느낌도 들었는데, 제 개인적으론 김준원의 카투리안이 좀더 이야기꾼으로서 광끼랄까, 그런것을 보여줬어야 하지 않나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야기에 비해 캐릭터가 좀 얌전하게 해석된 게 아닌가... 최민식 버전은 어땠을지 궁금해지기도 했구요. 전반적으론 좋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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