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틸 때도 있는 거지, 뭐.

태어나서 죽기 전까지, 100년 가까이 되는 시간을 살아가면서

우리에게 소위 슬럼프란 몇 번이나 찾아올까요.

슬럼프란 역시 슬럼프다워서

'슬럼프가 오면 이런 이런 것을 해야지' 하고 야무지게 다짐했던 것들이

지우개로 지운 듯 하나도 기억나지 않고

설마 기억이 난다 해도 손 하나 까딱하고 싶지 않아서,

또는 '그딴 것 열심히 해 봐야 이 나락에서 벗어날 수 있을 리 없어' 란 부정적 상념에 잔뜩 싸여 있어야 바로 슬럼프겠죠.

 

말하는 건축가를 보며 베개를 짜면 물이 뚝뚝 떨어질 정도로 울고

고기와 술을 먹고 잠을 자고 또 일어나 초콜릿에 프렛젤을 먹고 다시 잠들고 일어나면 진을 마시고

지인들에게 힘들다 징징대는 문자를 보내 다정한 문자를 받고

그러다 보니 할 일이 먼지처럼 쌓여 버려, 곧 죽을 것 같은 괴로운 표정으로 벼락치기를 하고

책을 펴면 욕이 나오고

멋진 문장을 보면 짜증이 나고

빛나는 사람을 보면 열패감이 듭니다. 아뿔싸. 만날 욕해오던 못난 인간이 여기 있네.

 

아, 내가 내가 이런 사람이 아닌데. 황당해요.

에너제틱한 척 하며 외면해 온 고단함과 자기연민이 쌓여, 쌓여

팍, 하고 터져 버렸어요. 하던 일들 모두 택배박스에 담아 먼 곳에 보내 놓고 딱 한 달만 누구도 나를 모르는 곳에 있다가 오고 싶은데.

다른 이들에게 피해 주지 않으려는 마음에,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고 있네요. 그만두는 것에도 에너지가 드니까요.

어쩌죠.

아무 것도 하고 싶지 않을 정도로 에너지가 떨어져 본 일이 없어서 당황스러워요.

어쩌죠. 시도 때도 없이 걸려오는 클라이언트의 전화가 제일 싫어요. 전화기, 호수에 던져 버리고 싶다......

운동을 하면 좋겠죠. 여행을 가면 낫겠죠. 친구를 만나면 ....근데 그건 별로다. 말하는 내가 보기가 싫어요. 제 목소리가 짜증이 나요. 으악.

무엇보다 일을 하기가 싫어요. 싫은 마음으로 일을 하면, 고스란히 나쁜 결과가 나오는 일이 제 직업이라....꾸역꾸역 참으며 하는 게 민폐인지도 모르겠어요.

 

어쩌니, 너.

 

 

+제목은, 사람많은 대낮의 커피숍에서 갑작스레 울음을 터뜨리게 한 문자 메시지.

나는 버티기 싫은 거구나. 만날 잘하고 칭찬받고 우쭐해하는 거에 익숙해졌구나...알았죠. 그순간.

너는 별 생각없이 던진 위로일지도 모르는데 말야.

다정한 친구, 너 이녀석 나뻐.

    • 다정하다고 하여 버팀을 모르겠나요(...)
    • 걍, 어떤 순간에도 스트레스 조절 못해서 몸과 얼굴과 마음이 부은 걸 보여주기 싫다는(최측근에게도) 생각에 육체적 감정적 망폭식을 절제하고 두 시간 가까운 무식한 운동을 하고 뜨거운물찬물 번걸아 샤워를 마치고 돌아와 안주없이 와인병을 따는 것으로-실은 부르르 떨리고 두려운 마음을- 무상하게 지나쳐버리는 비겁함이 저의 요즘 버티기입니다. 동정없는 세상, 아무에게도 감정적 구걸없이 독하고 건조하게 그러면서 스스로에게 또 흠뻑 자뻑하는 게 뭐가 나빠 이러는 거죠.
    • 이인/ 음, 그 시 꺼내 읽고 싶어졌어요. 지금 제게 좋은 약일 듯.
      쿠델카/쿠델카 님 글 보면서 저와 닮은 점을 듬성듬성 찾아내곤 했어요. (운동과 근면, 부분은 전혀 안 닮았습니만) 장녀병, 이라고 친구들과 말하곤 하는데. 저는 징징댐을 극도로 꺼려오며 자라서, 지금도 그게 가장 어려워요. 제2자아가 늘 말하곤 하거든요. 니가 니가 니놈이 배때기가 불렀구마이! 하고요. 지인들은 제 그런 성격을 스토익하다며 부러워하기도 했는데, (얘들아 그 결과 내가 이 밤에 이러고 있다...)
      근데 그건 그거고, 자신을 채찍질하는 동안 부정적 감정은 마음 한 쪽 구석에서 곰팡이처럼 푸르게 푸르게 자라나거든요. 어른이 된다는 건, 매일매일 자신 안에 고장난 부분이 없는지 잘 살피고 수리하고 검댕이는 깔끔하게 닦아내고 하는 부지런함을 유지하는 거라는데. 우이씽. 힘들어요. 그래서 부러워요 쿠님이!
      • 저, 어른 아니에요. 유니스님 눈에 보여진 그건 제가 성숙한 어른도 아니고 지금 아무도 제 얘기를 제 농도로 들어줄 사람이 몇년째 없기에 스스로 구원하는 방식일 뿐이죠. 누구나 어느 부분은 다 구질구질하고 찌질해요. 그거 알고 받아들이는 게 어른이잖아요!
    • 다음에 또 그래도 괜찮아요.
    • 음 저는 슬럼프에 빠진 지 몇 년은 되었네요. 내 마음대로 무언가를 이뤄내지 못한 지 너무 오래되었어요. 그래도 자기객관화는 꾸준히 하려 노력은 하는데 이마저도 힘드네요.
    • 저도 비슷한 심정 많았었네요.
      강하고 제법 어른흉내 내는 줄 알았더니 사실은 제대로된 시련을 경험해보지 못한거였고
      쉽게 포기해버리게 되고
      -힘내세요
    • 에궁........ 이런 상황에 '해야할 일'이 있고 그걸 미루면 미룰수록 더 근심이 된다는 게 가장 힘들죠.
    • 슬럼프에 빠지면 다그래요.

      그냥 그게 슬럼프인거예요. 내가 슬럼프에 빠지지않았다면 하지않았을 일들을 잔뜩하고, 허우적거리고, 그게 누가 채찍질한다고 빠져나오는것도 아니예요. 말마따나 허우적대다가 괜히 더 에너지만 소모하고 아무것도 안되고. 그냥 정말 버틸때도 있는거, 상황이 그렇게 되어버렸고. 그때는 버티는것도 최선을 다하는것일 때가있는거 같아요. 힘내세요. 저도 4년째 슬럼프예요.
    • 제가 지금 딱 저래요 ㅠㅠ 제대로 슬럼프 ㅠㅠㅠㅠ 공채는 막 뜨고 있는데 의욕이 안생겨서 자소서도 잘 안써지고 시험봐도 멍하기만 하고.. 특히 일이랑 병행하고 있어서 더 죽겠네요. 친구나 주변사람들한테 징징거리는 것도 한도가 있고(게다가 주변에 저보다 더 상황 안좋은 사람들이 많아서 ㅠㅠ 징징거리기도 미안함.. 남의 암이 내 고뿔보다 아픈 거 머리로는 당연히 알지만 그래도 내 고뿔이 안 아픈 건 아니잖아요 ㅠㅠ) 그래도 좋게 생각하며 이겨내려고 합니다. 이것또한 지나가겠지요. 슬럼프라는 게 나름 열심히 사는 사람들에게만 찾아오는 것이기도 하고요...아..아닌가?ㅋㅋㅋ 아무튼. 함께 열심히 버텨보아요 ㅠ_ㅠ//
    • 저도 요즘 우울증이 가라앉질 않아요. 오늘도 중요한 일이 있는데 하지 못하고 그냥 포기해버렸네요. 뭔가 실패한 느낌 때문에 더 우울해지고..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밖에 나가기도 싫고.. 전 이제 마지막 기회인데 말이죠.

      힘내세요. 우리 힘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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