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있음] 토탈 리콜을 봤습니다.

1990년도 것을요. 어쩐 일로 DVD가 컴퓨터에 생겨서 DVD를 빌리러 갔는데, 토탈 리콜이 있더군요. 하지만 그게 20년이나 된 영화의 DVD인지는 몰랐죠.


오래된 영화를 보면 마치 오른쪽 뇌와 왼쪽 뇌가 따로 영화를 보는 듯 합니다. 양쪽 뇌로 구분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한 쪽에서는 '이건 오래된 영화야. 그러니까 너도 그 시대에 이 영화를 보러 갔다고 생각하고 보자구'라고 합니다. 하지만 전 1990년대의 SF 영화에 대해서 아는게 거의 없죠. 그래서 어떤 효과가 그 당시 뛰어난 효과고 어떤 효과가 심드렁한 효과인지 알지를 못합니다. 말하자면 그 시대에 맞춰 겸허하게 보는 쪽은 거의 1930년대 수준으로 영화를 보는 걸 꺼에요. 뭐든지 멋져 보이거든요. 다른 쪽 뇌는 이렇게 말하죠. '오래된 영화군. 온갖 것이 코미디처럼 보이네. 저 효과를 봐.' 이렇게 보면 진지하게 감정이입을 하며 영화를 볼 수가 없어요. 토탈 리콜은 온통 양키 센스 개그가 충만하더군요. 그래서 끊임 없이 웃을 수 있었어요. 왜 진지할만 하면 웃음을 주는 건지. 2가지 포지션을 동시에 취하면서 영화를 보려니 지치긴 했지만 해볼만한 경험이었습니다.



(아래부터는 내용이 있습니다)



끝나고 생각해보건데, 쿠웨이트(아놀드 슈와츠제네거)는 사이코패스가 아닌가 싶습니다. 꽤 많은 사람들을 죽이면서 마음에 감정을 담지 않아 보이더군요. (영화 전체에서 서로가 서로를 죽이는데 별 의미를 담지 않긴 했습니다만. 자기 아내가 죽었을 때라던가, 윤락가에서의 총격전일 때는 조금 있었지만) 지하철 씬에서 시체를 '말캉'하고 밟고 지나가는 씬도 그래라고 집어넣은 거겠죠. 지구라고 찍은 장면은 멕시코에 실제로 있는 지하철이라고 하더군요. 그런 근미래적인 지하철이 실제 있을 줄이야. 세트인지 알았는데.


그리고 보너스 영상을 보니 그 당시 TV 광고가 몇 개 들어있더군요. 저는 DVD로 바로 봤으니 광고는 접할 길이 없었고 내용도 전혀 모르고 봤지만, 광고를 보니 이렇게까지 기대되는 장면을 넣어도 되나 싶더라구요. 1. 뚱뚱한 아줌마의 얼굴 해체 2. X레이 투시같은 검은 판을 뚫고 나오는 아놀드. 3. 네 손가락 버튼에 다섯 손가락 올리기. 4. 부셔지는 자동 택시 기사 등 장치들이 한 번 나오고 다시 나올 때 새롭게 사용되는데 이미 그런걸 알고 영화관에 가게 된다면 슬플 것 같습니다. 광고에 어떤 영상을 넣고 빼느냐는 현대에 이르러 더 세련되어졌겠죠. 뭐, 지금도 광고가 적절하지 않은 영화도 가끔 가다 또는 꽤 있습니다만.


세 가슴 아가씨가 죽는 것은 너무 안타까웠습니다. 영화를 통틀어서 가장 죽지 말았으면 했는데, 역시나 장렬하고도 의미 없이 죽더군요. 다른 이들은 나중에 기념비라도 세울 때 거기에 이름 한 줄 박을 수 있겠지만 이 아가씨 이름이 박힐지는 의문입니다. 뭐, 그 외에도 정체성 없는 많은 군인과 저항군이 나오긴 하죠. 저는 화성을 다스리는 그 분이 돌연변이화 되서 고통스럽게 살아갈 줄 알았더니, 고생하다가 그냥 죽었어요. 아마 화성 날씨에 주인공이나 악당이나 사실은 그렇게 오래 버틸 수 있는 것도 아니겠죠. 주인공들이 고통스러워하다가 하얀 연기가 지나가자 별일 없었다는듯 정신차리고 일어나는 부분이 웬지 웃겼습니다.


그런데 아무도 화성에 식물을 가져갈 생각을 안 했던 걸까요? 화성에 도착한 이후 채소나 과일을 가져온 게 있냐고 묻기는 합니다만 그게 식물 제한이었던 걸까요. 외계인의 시설을 빌릴 필요 없이 화분을 많이 가져다 놓으면 될텐데 아쉽다 싶었습니다. 그랬다면 애초에 외계인 시설 자체를 두려워하는 총독도 없었긴 했겠죠.


영화의 내용 자체는 좋았습니다. 적절한 템포로 긴장을 주며 상황 전체를 뒤집는 시도를 꾸준히 합니다. 그런 영화를 제가 좋아하나봐요. 리콜이라는 회사로부터 주입된 꿈이라는 것으로 인식시킨다거나. 많은 부분이 현대의 SF 영화에서 오마쥬로 쓰이고 있다 싶었습니다. 인셉션이나 메트릭스의 빨간약이라거나. 기억과 가상세계는 SF에서 자주 쓰이는 소재이긴 하지만요. 횡설수설은 이쯤 해야겠네요. 2012년의 토탈 리콜이 보고 싶어졌어요. CG가 쓰이기 직전의 이런 영화라면 현대에 다시 한 번 만들어보고 싶은 생각이 들긴 하겠습니다. (현대의 토탈 리콜에 대해서 이야기를 들어보면 이미 전혀 다른 이야기로 보이지만. 기대를 안 하면 재미있겠죠.)

    • 식물을 가져가봤자, 이미 있는 이산화탄소를 산소로 바꾸어주는 것에 머물죠. 결국 총대기량은 달라지는 게 별로 없습니다.
    • 퀘이드가 아니라 쿠웨이트 박이었다니
    • '토탈 리콜'은 CG가 쓰이기 직전의 영화가 아니라 CG시대로 접어드는 영화입니다. 스티븐 스필버그의 '후크'로 아날로그 SFX 시대는 막을 내리고 본격적으로 CG를 도입하는 시기의 영화죠. 물론 아날로그 SFX의 비중이 더 많습니다만 '백 투더 퓨처 3편'과 더불어 CG시대의 막을 여는 영화로 꼽힙니다. 엑스레이 검색대 화면의 해골 CG와 화성 검색대를 통과하는 퀘이드의 아줌마 머리 마스크가 해체되는 모습이 이 시기를 대표하는 장면으로 항상 언급되고 있습니다.
    • 해골이 디지털 도메인이었던가요
      • 일단 해골은 차치하고서요. 영화에 ILM의 참여는 기억나는데 디지털 도메인은 잘 모르겠습니다.
    • DJUNA_ 궁금에서 검색을 조금 해봤는데 대기량 자체가 1/100이군요. 그리고 이산화탄소가 95%를 차지하고 있다고 하고.
      테라포밍에 관심은 있지만 실질적인 부분은 전혀 모르고 있네요. 영화의 끝에서 기화된 기체들이 화성의 중력권을 안 벗어나고 정착할까요?
      시원하게 비라도 내리는 결말을 생각했는데 그건 그 때의 CG로는 무리였던 것 같기도 하고. (게다가 조금 클리셰 같기도 하고)

      김전일_ 검색해보니 '더글라스 퀘이드'군요. 친절하게 자막으로도 봤는데 왜 이럴까.
      해골은 CG라고 제작 후 영상에서 말하더라구요.
    • Aem_ 제작 영상이라고 해야되나, 거기에서 말하기로는 거의 대부분을 셋트로 만들어서 했다고 하더군요.
      화성의 풍경이라던가, 돌연변이 사람들(분장), 샴쌍둥이는 인형 조율사들로 처리하고요.
      CG와 SFX에 대해서 정보 주셔서 감사합니다. CG 역사상 꽤 유명한 장면들이였군요.
      그래서 그런지 광고에서도 그 2장면은 빼놓지 않고 자랑하더라구요.
    • 조금의 검색 결과 화성을 개조하려면 일단 데워야 되네요. 그것이 숨 쉴 수 있는 대기가 되느냐와는 다른 이야기가 되지만.
      데워야 된다고 생각하면 식물을 가져오는 것은 바보스런 일이 되겠군요.
    • 잔인한오후 / 비가 내리는 엔딩으로 갔으면 일단 듄에서 써먹기도 했지만, 듄에서는 필요한게 물이었고 토탈 리콜에서는 산소였으니까 굳이 비가 내릴 필요가 없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퀘이드가 잔인하고 무감각한 캐릭터라는건.. 그 당시의 관대한(?) 폭력묘사도 있었겠지만, 원래 잔인하고 냉정한 화성정보부의 베테랑 요원이라는 점을 은연중에 묘사한것 아닐까 싶네요.. ㅎㅎ

      그나저나 90년대 토탈리콜판에서 늘 붙는 '이게 꿈이냐 현실이냐'에 대한 언급이 없어서 의외네요.
    • 가라_ 새빨간 하늘이 푸른 하늘로 변하는 게 궂은 하늘이 되는 것보단 좋았겠다 생각했어요. SF 외에서도 긍정적 의미의 비로 마무리되는 영화도 많죠.

      그렇게 생각하니 납득이 가네요. 퀘이드가 아닌 하우저는 아주 나쁜놈이잖아요. 숨겨진 무의식이 잔인한 요원이라면 그리고 영화의 한 축을 담당하는 악당이라면 그럴만도 하군요. 그러고보니 토탈리콜은 악당 주인공 이중 역할이네요.

      이미 애매하게 끝내거나 수습불가하게 판을 벌려 어쩔지 모르는 감독, 작가들이 꿈으로 대충 봉해버리는 것에 너무 익숙해서 그러려니 했습니다. 어차피 사실이면 무지 좋고 꿈이였어도 아름다운 아내와 지구에 사는거 아니겠어요?
    • 잔인한오후 / 꿈이라면 중간에 리콜사 사장이 '지금 깨어나지 않으면 넌 폐인돼!' 라고 하잖아요.. ㅠ.ㅠ
    • 가라_ 영화 전체가 꿈이라고 한다면, 주인공이 알 수 없는 상황까지도 외삽으로 알게 되잖아요.
      3인칭 꿈이라고 할 경우에, 그 전지적인 정보 전체가 거짓일 가능성이 높죠. (악당 아내가 내 아내, 지하철에서 집단 테러 등)
      어디서부터가 꿈인가가 중요하긴 하지만, 최악의 상황을 가정해도 제가 보기엔 나쁘지 않아요. 너무 긍정적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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