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새 읽고 있는 책들에 대한 짧은 글

1. 괴테- 이탈리아 기행


지난 주말에 주문해서 오늘 받아본 책이예요. 점심을 먹고 나서 한참 사진을 찍으러 다니다가 지친 뒤에, 카페에 들어가서 읽기 시작했습니다. 

오후의 독서를 위한 책으로 이걸 가방에 넣으면서도 '이거 왠지 고리타분하지 않을까. 별의별 책에서 인용한 문장들로 골치아프게 하는 거 아냐'등등의 걱정을 했답니다. 그런데 막상 읽어보니 그런 걱정은 안드로메다 저 편으로...... 


아직 얼마 못 읽었지만 정말 좋은 책입니다. 부드럽고 소박하면서 간결해요. 과시한다는 느낌은 전혀 없으면서 곁들여지는 인문학적 교양과 인간적인 깊이가 느껴집니다. 얼마 읽지는 못했지만 정말 행복하게 읽을 수 있는 책이예요. 


괴테는 <파우스트>밖에 못읽어봤었고, 사실 전 <파우스트>가 그저 그랬어요. 그래서 <이탈리아 기행>도 한참 망설이다 보게 되었죠.... 그렇지만 지금은 이 책을 떼고 난 뒤에는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과 에커만이 쓴 괴테 전기까지 읽고 싶다는 마음이 강하게 드네요.....그래 파우스트는 그냥 내 취향이 아니었을 뿐이구나!! 

앞으로 한동안은 괴테 선생한테 버닝하게 되겠네요...ㅜㅜ 


전 펭귄클래식 버전으로 구입했고요, 번역이 아-주 좋습니다. 표지도 아름답고요. 천천히 곱씹어 읽으면서 오래오래 소장하고 싶어요.


2.존 버거-피카소의 성공과 실패


존 버거가 쓴 책으로는<way of seeing> 한권만 읽은 상태였지요. 아주 얇고 그나마 7장 중 3장은 오직 그림이나 사진으로만 되어 있는, 정말 간결하기 짝이 없는 책이지만 <way of seeing>은 정말 놀라운 책입니다. 영어로 되어 있는 걸 버벅거리면서 읽으나 고생을 좀 하긴 했지만, 그만한 보람이 있었어요. 

(동문선에서 나온 번역본은 너무 오역이 많더라고요... 부분적으로만 읽었음에도 제가 찾은 오역만 다섯개는 되더군요.)


어떻게 그렇게 간결하면서도 하고 싶은 얘기를 다 할까요? 또 그 하고 싶은 얘기가 서양의 이미지 역사가 가진 본질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읽는 이가 이것을 깊이 생각하게 한다는 점에서....이 책은 진짜 걸작입니다. 아직 보잘것 없는 예술가로서 <way of seeing>을 모든 예술가들에게 추천하고 싶어요.


그리고 이 <피카소의 성공과 실패>도 정말 흥미롭습니다. 이 역시 아직 얼마 못 읽은 책이라 긴 평은 쓰는 건 불가능하지만 몇자 적자면, 우리는 피카소를 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에 대해 모른다는 것을 알려주고요, 피카소가 진짜 누구이고 그가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깊이 생각하게 합니다...


안타깝게도 절판된 책이지만 도서관에서 빌려 읽을 수는 있었답니다. 아무도 안건드린 새 책이었어요. 이럴땐 기뻐해야 하나요 슬퍼해야 하나요...


3.아르튀르 랭보-지옥에서의 자유


사실 시(詩)는 저하고 별로 친하지 않아요. 전 산문의 논리적인 무거움에 익숙해 있지요. 시를 읽기 시작한지는 진짜 얼마 안되었습니다. 올해 초쯤부터 릴케의 <두이노의 비가>를 읽기 시작한 게 거의 최초예요. 중, 고등학교때 반강제로 배운 걸 빼면 시를 거의 읽은 적이 없거든요.

부끄럽지만 전 얼마 전까지만 해도 시라는 게 적당히 분위기 잡는 짧은 단어들의 모임 정도라고 생각해 왔지만......릴케의 시도 그렇고 랭보의 이 시집도 읽을수록 영혼을 울리게 하네요.  시 한편을 옮겨 놓을테니 한번 읽어 보세요.


모음

 
검은 A, 흰 E, 붉은 I, 푸른 U, 파란 O: 모음들이여,
언젠가는 너희들의 보이지 않는 탄생을 말하리라.

A, 지독한 악취 주위에서 윙윙거리는
터질 듯한 파리들의 검은 코르셋, 


어둠의 만(灣); E, 기선과 천막의 순백(純白),
창 모양의 당당한 빙하들; 하얀 왕들, 산형화들의 살랑거림.

I, 자주조개들, 토한 피, 분노나
회개의 도취경 속에서 웃는 아름다운 입술.


U, 순환주기들, 초록 바다의 신성한 물결침,

동물들이 흩어져 있는 방목장의 평화, 연글술사의
커다란 학구적인 이마에 새겨진 주름살의 평화.


O, 이상한 금속성 소리로 가득찬 최후의 나팔,

여러 세계들과 천사들이 가로지는 침묵,
오, 오메가여, 그녀 눈의 보랏빛 테두리여!


지금 보는 프랑스어 문법책을 떼고 나면 병기되어 있는 원서를 차근차근 읽기 시작하려고요. 이 시는 프랑스어를 해석하면서 같이 읽어봤는데 확실히 더 많이 이해하고 느낄 수 있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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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너무 훌륭한 책들이라 제 졸렬한 글로 짧은 감상을 남기는 게 부끄럽네요.ㅜㅜ 아무튼 듀게님들도 읽어보시길 바라는 마음에서 부족한 글이나마 써봤답니다.

이런 책들을 차근차근 읽는 게 요즘 제 생활이예요. 

저에게 독서는 삶의 아주 중요한 부분인데요, 시간 나는대로 늘 책을 읽습니다. 

그런데.....우리나라 사람들은 진짜 책을 별로 안 읽는 것 같아요. 학교 도서관도 소설 이외의 조금만 어려워보이는 책이면 거의 새것이나 다름없고...특히 인문서는 몇년이 가도 새책인 경우가 대부분이더군요. 으악....

주위 사람들에게 저는 책만 읽고 세상 물정을 모르는 일종의 바보 취급을 당하지만요.

듀게에는 책을 사랑하는 분들이 많아서 너무 좋아요.

    • 존 버거 책 울 학교 도서관에도 있는지 찾아봐야겠군요. 만약 낭랑님이 울 학교면 대출중...
    • 저는 낭랑님에게 산 수많은 책과 DVD들 중에 아직 4개밖에 못봤습니다. 책 많이 읽는 사람 부러워요!

      /Grey
      지역이 다르신 걸로 압니다ㅋ
    • 앗, 두권 있었으니 한권은 여유가 있네요. 만약 같은 학교여도 걱정없어요~
      헬마스터/ 무리하지 마시고 만만한 녀석부터 보시면 금방 다 보실거예요. 행복하게 보시면 저도 기쁘죠.
    • 검색해보니 두 권 다 대출가능이라고 나오네요 ^^;
    • 전 모음이란 시 전혀 이해가 안 되더라구요.
      불어를 몰라서 그런가.
    • 존버거의 [보는 방법]은 정말 명서지요. 첫 번째 파트를 몇 번이나 읽었는지 몰라요.
      그 저는 보통 도서관에서 책을 보기 때문에 그런 경우가 꽤 많습니다. 그래도 밑줄 및 자체 주석(낙서)이 있는 책보다는 나은 것 같아요. 보통 베스트셀러들은 너덜너덜한 데 비해서 교양서나 철학서 같은 경우는 나온 지 무려 5년이나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깨끗한 경우가 많아요. 그럴 때는 기뻐합니다. 사서 보는 것과 뭐가 달라..ㅜ.ㅜ
    • way of seeing은 영국에 있던 친구가 보내주어서 읽고 미술이론을 공부하고 싶다는 생각을 갖게 한 책이죠.
      지금 그 친구는 그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고, 저는 여전히 방랑 중이지만요.
    • 존 버거 책 저도 읽어봐야되겠어요. 랭보 좋죠.
    • 괴테 이탈리아 기행은 책표지가 그새 바뀌었군요. 바뀌기 전도 좋았지요.
      곧 한국에 들어가면 또 책들을 싸들고 와야하는데 이런 글 너무 좋아요.
    • 이탈리아 기행 며칠 전에 올라왔던 기행문 추천에 있었던 책인가요? 기억이 가물가물 ~_~
      저도 불어 공부하고 있는데... 10월달에 시험봐야 되는데 공부가 생각만큼 잘 되는 것 같지 않아 걱정이예요ㅜㅜ
      아 그나저나 이탈리아 기행 저도 읽고싶어 지네용^^
    • cleanroom/앗 수정했어요;;;;
      개복치/네 맞아요.^^ 아마 델프나 달프 시험 보시나봅니다. 더위가 좀 지나고 나면 다시 잘 되실거예요. 파이팅!
    •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아주 괜찮게 봤어요. 의외로 지금의 감성에 뒤떨어진다는 느낌이 전혀 없더군요. 어투는 좀 ..옛스럽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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