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 고양이, 벨 훅스, 홍루몽

1.날씨가 정말 본데없이 덥습니다.

 

2. 어제는 저희 집에서 밥을 주는 고양이 두 마리(우리 집 고양이의 딸 고양이들)이 하루 종일 안 보이더군요.

저는 '날 더운데 저그들 엄마 새살림 차린 데 가서 놀다 오겠지'하고 까닥도 안 하고 있는데 우리 엄마는 애기들 어디에 잡혀간 것 아니냐고 노심초사.

그 고양이들 이름은 이쁜이 곱단이인데 각자 애인인지 서방인지를 두고 삽니다. 제가 미워서 죽고 못 사는 두 마리 도적놈들의 이름은 만보와 두꼬리.

체격이 말도 못하게 크고 못생긴 것 하며, 사람을 무서워하지도 않는 점이 더 미워요. 저는 우리 이쁜이 곱단이를 일년 반이 되도록 밥을 줘서 길렀어도 털도 못 만져 보고,

털은커녕 지금도 사람 발소리만 나면 처묵던 밥도 먹다 말고 부리나케 도망가는 판국인데, 어디서 굴러먹던 말뼉다귀같은 짐승들이 와서 제 이쁜 이쁜이 곱단이를 탐하고,

저를 무서워하지도 않아서 겁을 줘도 쫒아내보지도 못할 뿐더러, 제가 밥을 두면 그 두 날강도가 밥을 먼저 먹고 우리 아기들은 나중에 먹는단 말입니다.

 

지금 약간 흥분해서 말이 샜는데, 어쩄든.

 

한 오후 정도 되니까 만보가 어슬렁 어슬렁 어디서 기어오데요. 야옹 야옹 울면서 '이 호구드라~ 이 호구드라~'하길래

쓰레빠로 문턱을 짝짝 치면서 시원하게 닦아세웠음.  '아니 이 무도한 놈, 마누라가 집을 나갔는데 처갓집에 와서 밥을 달라는 빙충맞은 놈이 어디 있단 말이야?

이놈! 니 마누라 찾아와라 이놈! 이쁜이 있을 때야 니가 우리 집 사위지 이쁜이 없으면 너 뭐 없어!' 엄마는 뒤에서 '오냐! 밥 주지 마라!

마누라 찾아오라고 해 빨리! ' 막 이러고. 그런데 우리 엄마도 참 우리 엄마에요. 소리친지 한 20초 지나서 '점례야, 우리 맘보 밥 줘라'  이럼.

 

기가 막혀서 원.

 

제가 '엄마! 밥은 무슨 밥이야! 지금 이쁜이가 없는데 밥은 무슨 밥!'하고 화를 내니 엄마는 또 그 사이에 맘보 살 빠질까봐

얼른 고양이 사료 퍼 오면서 '안돼, 맘보 어제부터 내내 굶었어, 오늘 밥 줘야돼'  이러고...언제 저 미운 놈들을 쫒아낼 수 있을 것인가....

 

3.남자친구가 무슨 책 읽기 시작할 거냐길래 ' <페미니즘 이론. 주변에서 중심으로>라고 해 주고 '하지만 난 이해하지 못하겠단 말이야'라고 말하고

작가의 다른 저작 제목을 읽어주었습니다.

 

"<나는 여자가 아닙니까: 흑인 여성과 페미니즘> -이런 게 내가 이해하기 어려운 종류들이지- 인종 문제는 나에게 익숙하지 않아.

<사랑의 모든 것>뭐가 될진 모르겠지만 어쨌든 좋은 말은 절대 안 쓰여있을 거야. 우리의 긴 관계를 위해 이건 좀 치우자(우스개;)"

 

지금까지 흑인 여성하고는 두마디 말도 해 본 적 없고, 미국땅도 못 밟아 본 입장에서 블랙 페미니즘은 너무 생소합니다.

제가 블랙 페미니즘에 관해 아는 모든 건 앨리스 워커 책과 the help에서 얻은 것이에요. 우리 나라에서도 젠더와 계급, 인종이 결합한

새로운 문제가 있습니다만, 미국 같은 양상은 결코 아니라서....

 

4. 홍루몽 읽었습니다. 너무 시원하게 몰살을 시켜서 속이 시원할 정도더군요.  벌써 망쪼가 들어 있는 집인 건 알았고,

이게 다 망한다는 사실은 너무 스포일러를 많이 당해서 알고 있었기에 별로 쇼킹하진 않았지만, 역시 느끼기로는 감사가 무섭긴 무섭다..는 것.

옛날에 회사랑 은행 다녔던 엄마가 '감사 한번 나와 봐, 씨도 없이 망하는거야'라면서 '어쩄든 법에는 못 이기니까'라고 입버릇처럼 말했는데

그 많던 재산이 없어지는 것 보니까 무섭긴 무섭네요. 

 

참 중국인들은 몰살 몰락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사실 이건 제 개인적인 이론이긴 한데 중국인들은 누군가가 잘 되는 이야기보다

위세당당하고 자격 있던 누군가가 몰락하는 이야기를 더 좋아하는 것 같음. 사대기서 생각해 보세요. 서유기 빼고 잘 되는 거 없음.

뭐 서상기, 비파행, 초한지, 다 그렇습니다. 힘은 산을 뽑을 만 하고, 기개는 천하를 덮을 만 하나, 때가 이르니 추조차 가려 하지 않는구나 하잖아요.

 

 

    • 글 재미있게 읽었어요~ 이 글 보니 6권인가로 나온 홍루몽 1권 반 넘어 읽다 말았는데 다시 시도할까 싶네요.. 뭐 재미가 없어선 아니고 책을 빌려보느라 그랬던거지만..홍루몽이 삼국지, 수호지 같은 것보다 중국문화 원형에 가까운 문학, 이런 걸 어서 봤는데 말이죠.
    • 빙충맞은 야옹이... 아 대사가 맛깔져요. *_*
    • 4. '감사가 무섭긴 무섭다'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전 왕희봉 보면서 눈물을 또록또록 흘렸답니다^^;;
      서유기도 좀 불교적인 분위기로 끝나지 않나요. 홍루몽과 비슷한 시기에 달렸는데 기억이.... 전체적인 분위기에 비해 차분하게 끝나는구나 싶었습니다.
      저는 그런 비극적인 정서가 잘 맞는지 몰살 몰락에 참 열광합니다. 사극 같은 것만 봐도, 예전 일본 드라마 중 88년도에 만든 오오쿠 봤을 때 제일 좋아하는 에피소드는 모두 일본 역사상 최악의 쇼군 이야기에 몰렸고 제일 싫어하는 에피소드는 모두 일본 역사상 최고의 쇼군 이야기에 몰렸다는...
      위세당당하고 자격 있고 훌륭하던 누군가가 몰락하는 이야기를 볼 때마다 한 편의 그리스 비극 보는 듯한 느낌입니다.
    • 어머니 귀여우셔라..
    • 4. 전 중국인들이 남 몰락하는 얘기 더 좋아한다.. 이것보다는 중국인들은 되게 현실적이고 출세지향적이고 물질주의적인 거 같으면서도? 묘하게 도가적인 무위, 허무주의 이런 걸 좋아하는가보다 하는 게 느껴졌어요.
      한국고전소설들 읽어보면 대부분 무척 현실지상주의인 게 많거든요. 현실에서 잘 먹고 잘 살았다가 압도적으로 많아요. 그게 인기있고요. 춘향전, 무슨무슨 부인전, 낭자전, 군담소설류, 하나같이 잘먹고 잘살았다예요.
      현실에서 과거급제, 현실에서 신분상승, 죽어선 승천했다까지 해피엔딩의 마무리.
      근데 중국고전소설 읽어보면 비극적인 것도 많지만 도교적인 무위나 허무주의적인, 일장춘몽의 이야기가 많죠.
      유교적인, 현실적인 입신양명을 더 추구하는 쪽은 오히려 한국고전소설에서 더 많이 찾을 수 있고, 중국은 좀 다른..
      중국인들 전반에 깔린 사고방식이, 고대에서부터 현실에선 유교에 종속된 거 같지만, 그 밑바탕은 도교나 불교의 세계관에 지배되고 있는 것은 홍루몽에서도 그려지고요.
      그래서 전 이런 점에서 인생의 비극이며 아이러니 등을 더 느낄 수 있는 거 같아요. 작품의 결도 더 다채로워지는 거 같고.
      근데 읽고나면 허무는 하죠. 새빠지게 아등바등하며 살았는데 결말 왜 이럼? 뭐 이런..-_- 삼국지도 허무하기로 따지면 첫손꼽고요. 수십년간 피터지게 싸웠는데, 끝판왕은 웬 갑툭튀질 않나.

      그리고 중국은 유난히 '대가족 몰락'의 얘기가 많습니다. 이게 홍루몽에서 시작된 전통인지는 모르겠는데, 홍루몽 각색한 드라마(홍루몽의 틀을 현대적으로 각색한 거라든지)는 물론이고, 대가족 나온다 그러면 대개는 떵떵거리며 잘 살던 대갓집이 자손들의 방탕이나 무절제 등으로 쫄딱 망한다..는 얘기가 많아요.
      한국은 보통 대가족 나오면 하하호호 해피엔딩 홈드라마지 않나..;;

게시판 2012

번호 제목 글쓴이 조회 날짜
[공지] 게시판 규칙, FAQ, 기타등등 462,409 01-31
[공지] 게시판 관리 원칙. 147,940 12-31
제 트위터 부계입니다. 3 122,151 04-01
130354 새해복 많이 받으세요 10 187 12-31
130353 아바타 3를 보고 유스포 2 192 12-31
130352 [핵바낭] 올해 잉여질 결산 잡담 14 334 12-31
130351 아바타: 불 과 재 보고 왔어요 짤막 소감 6 231 12-31
130350 [영화강추] '척의 일생' 8 249 12-31
130349 흑백요리사 2 8~10회, 싱어게인 4 탑 4 결정 6 285 12-31
130348 Lacombe Lucien(1974) 7 131 12-31
130347 [관리] 25년도 보고 및 신고 관련 정보. 15 324 12-31
130346 Isiah Whitlock Jr. 1954 - 2025 R.I.P. 2 139 12-31
130345 [왓챠바낭] 우편배달부 말고 '포스트맨은 벨을 두번 울린다' 잡담입니다 12 268 12-31
130344 [넷플] 말 많고 탈 많은 '대홍수' 드디어 봤습니다 14 454 12-30
130343 [반말주의] 다들 올해 고생 많았어!! 새해 모두 건강하고 복 터지길 바래!! 12 186 12-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