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항) 드라마《언덕 위의 구름》을 보고 있습니다.

제가 실제로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이 드라마는 오프닝 때부터 자각시켜주더구요. 근래는 냉소적인 말이나 표현을 하는 경우가 굉장히 드물었는데 이 드라마를 보면서 그게 막 폭발합니다. 덕분에 제 성향을 다시 자각하네요. 드라마 자체는 볼만은 한데 드라마의 방향성 자체가 극우는 아니더라도 우향우에 위치해있다 보니 머릿 속으로는 그러한 점에 대해 조롱하거나 빈정대는 경우가 정말 많아집니다. 

가령 오프닝에서 '참으로 작은 나라가 어쩌구 저쩌구 하면'  '그 참으로 작은 나라' 운운하는 표현에 오글거리는 감정이 든다거나 극 중에서 나오는 대동아공영권의 사상과 그를 옹호하는 듯한 여러 발언들을 듣다 보면 저도 모르게 욱하게 됩니다. 최대한 객관적으로 보려 하지만 저도 별 수 없는 한국인인가 봅니다.  


뭐 일본 사극이니 일본 입장에서 서술하는 것은 당연하긴 한데 말이죠.

청일전쟁 전 이토의 입을 빌려 조선의 독립을 걱정하는 듯한 스탠스를 보여준다거나, 의화단 사건 당시 일본군은 국제법을 준수했다는 나래이션을 넣으면서 청일전쟁 때 일본군이 벌인 뤼순의 학살은 얘기하지 않고 넘어가는 장면 등은 머릿 속에서 좋은 말이 나오기 힘들더군요. 


한편으로 이런 드라마를 보다보니 몇몇 이들이 이런 드라마가 나오는 일본이 부럽다 운운했던 소리가 어떤 맥락에서 나왔는지 이해가 되더군요. 김관진 국방장관이 드라마가 아닌 소설 《언덕 위의 구름》을 장병들 추천도서로 선정을 한 것도요.(하지만 과연 그 책이 적절한 선정인지는 의문입니다)


p.s 제가 즐겨먹는 카레가 일본 해군 짬밥이 유래였더군요. 처음 알게 된 사실이라 재밌네요.

    • 저도 요즘 이거 보고있습니다만. 생각보다 아슬아슬해도 수위는 지키는거 같던데요.... 이토가 조선의 독립을 걱정하는 스탠스를 보여준다기 보다는 조선이 러시아나 청의 손에 들어가지 않고 적절한 완충지대가 되어야 일본에 유리하기땜시.... 이 드라마에서 조선은 첨부터 끝까지 먹잇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명성황후 시해에 대해서도 '있어서는 안되는 사건'이라고 표현하는거나.... 청일전쟁에서 일본군의 횡포를 기자로 뛰어든 주인공이 목격하는장면이나....애초에 주인공 셋중에 두명이 육군,해군이라 우향우일수 밖에 없는 드라마긴 하죠.... 그리고 그 시대 자체가 그렇기도 했고.
    • 디나/보면서 여러 감정이 교차하고 있습니다. 《쇼와사》를 볼 때도 비슷한 감정이었지요^^;
    • 유우쨔응 / 저랑 관심사가 비슷하신듯 저도 작년에 쇼와사 봤어요.
    • 디나/오, 그렇군요. 쇼와사에서도 일본이 전략상 조선 반도를 필요로 하는 이유를 설명해주거나, 난징 대학살 역시 (규모의 과장을 떠나) 일본군 입장에선 보급선의 위협을 차단하기 위해 학살을 벌였다라는 설명이나, 사실 히로히토는 잘못 없고 꼭두각시였다라는 설명 등등은 참 미묘하더군요;;
    • 유우쨔응 / 전쟁사를 보면 전문용어로 완충지대라고 하고 ㅎㄷㄷ하게 털리는 불쌍한 나라들이 몇몇 있죠. 지정학적 위치때문에...대충 2차대전의 폴란드같은... 20세기초 조선이 딱 그 케이스였고.. 히로히토의 전쟁책임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한거같아요. 아무것도 몰라요인척 하지만 사실은 알거다알고 영향력도 크고 죽일놈맞다는 의견과 진짜로 그냥 꼭두각시에 불과했다는 설과....
    • 쇼와사에서 제일 흥미로운건 전쟁발발과정이나 항복과정이나 그나마 아시아에서 제일 발달했다는 일본이 세계정세를 못따라잡아서 외교적인 실패를 연속적으로 했다는거... 그리고 중대사를 결정하는 과정을 보면 작년 대지진이후에 신속한 대처를 못하고 헤매는 모습이랑 오버랩 되더군요.
    • 디나/혹시 일본사 관련해 재밌는 책 또 아시는 거 있나요?
    • 디나/천황에 대한 언급이 계속 나오다가 경제 발전할 쯔음해서 자취를 감추는 것도 인상적이더군요.
    • 메이지 시대를 긍정하고 찬미하는 것은 일본 우파나 일본 리버럴이나 거의 비슷하더군요.
      메이지 시대의 제국주의를 비판적으로 성찰하지 않는 한 일본의 반성은 말짱도루묵이고, 일본 리버럴이나 우파나 다 거기서 거기일 뿐이죠.
      쇼와시대의 야만성은 메이지 시대때 이미 다 형성된 것입니다. 남경대학살의 예고편이 청일전쟁때의 뤼순학살이라는 점에서 알 수 있듯이 말이죠.
    • 세간티니/ 리버럴은 왜 그러는거죠?
      • 근대화에 성공하고, 러일전쟁에서 이겨서 비서구 민족의 자긍심을 높였다는 것이 메이지 시대에 대한 일본 리버럴이 갖고있는 인상이죠.
        메이지 시대는 일본 보수와 리버럴 모두에게 전설적인 리즈 시절로 찬미의 대상입니다.
        그저 쇼와 시대의 일본 군부의 폭주만이 나쁜 것이라는 입장이 일본 리버럴의 입장이고, 또한 쇼와시대의 일본 군부에게만 책임을 돌리는 행위는 일본 주류보수와 거의 일치하죠.
        극우는 아예 쇼와 일본의 군부 폭주까지 찬미하는 답없는 인간들이고...
        메이지시대부터 저질렀던 식민지배나 제국주의적 침탈은 불가피했다는 것이 일본 리버럴과 주류 보수 양 집단의 공통된 입장이죠.
      • 허, 리버럴마저 그렇다니-_-;
        • '언덕위의 구름'의 저자 시바 료타로의 역사관이 바로 쇼와시대 일본 군부의 폭주만을 비난하는 일본 주류 보수의 역사관을 대중적으로 널리 알린 인물이라고 할 수 있죠.
          주류 보수 역사관의 일종의 가이드라인을 제공한 셈이라고 볼 수 있겠죠.
          그래서 생전에 국민작가로서의 영광과 인기를 얻은 것이구요.

          시바료타로의 소설을 읽으면, 메이지 시대의 일본인들과 쇼와 태평양전쟁의 일본인들은 전혀 별개의 인종인 것처럼 기록됩니다.
          "메이지 시대의 위대하고 진취적인 일본인들 VS 쇼와시대의 광신적이고 편협한 일본인들"
          이 게 바로 시바 료타로및 일본 주류보수와 리버럴이 과거를 해석하는 구도입니다.

          그런데, 실은 메이지 시대의 일본인들이나 쇼와시대의 일본인들 모두 일본인이 아닌 외국인의 입장에서 보자면 다 똑같은 부류들이죠.
          만행과 학살과 폭력의 기술적 차이만 있을 뿐, 즉 우금치 고개의 맥심 기관총이냐? 아니면 진주만 공습때의 항공모함이냐라는 기술적인 발전의 차이만 있을 뿐 일본 군사주의적 근대화가 갖고있는 근본적인 폭력성은 동일한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들떨어진 한국인들은 이런 메이지시대를 이상화하고 찬양하는 일본 주류보수의 역사관에 계몽(?)되어서 청일전쟁이나 러일전쟁때의 일본군들은 군기가 엄정했다는 이유로 찬양하는 경우가 있던데 한심스러운 일이죠.
          청일전쟁때 동학군을 학살하고, 뤼순에서는 중국군 포로들과 민간인들을 학살해버리고, 러일전쟁때 러시아의 스파이로 의심되는 한국인들을 재판도 없이 처형하는 일본군들에 관한 각종 기록은 의도적으로 무시하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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