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글 보고 : 부모로부터 언제, 어떻게 독립하셨나요?

한동안 듀게에 못왔는데 여러 가지가 쓸고 지나갔군요. 다 따라가긴 어렵지만 최근 종교와 결혼 문제를 보고 생각나서 몇 자 적어봅니다.

 

1.

 

일단 종교 이야기를 하자면, 뭐 답이 없습니다. 해결책도 워낙 다양하죠. 그냥 결혼을 포기하는 사람도 많고, 제 주변에는 남자 집안이 독실한 불교, 여자가 개신교였던 경우에 여자가 불교로 개종하고 결혼한 경우를 봤고(남자측이 개종하지 않으면 연애는 되도 결혼은 절대 안된다고 한 모양), 천주교 집안의 남자와 개신교 집안의 여자가 만나 여자가 천주교로 개종하고 성당에서 결혼한 경우도 봤습니다. 아직까지는 남자가 개종한 경우는 못봤는데, 아직 결혼하지 않은 한 친구는 자기는 어려서부터 교회, 성당, 절을 다 다녀봤다며 어디든 다녀줄 수 있다고 하더군요. 하지만 현실은 아직 미혼 ㅡㅡ;;

 

종교라는 것은 결국 가치관의 표출이고, 강요할 수 없다는 것 또한 명백합니다만, 그렇게 이성적으로만 해결되면 그게 종교겠습니까. 저도 종교가 있지만 종교에 관한 생각이나 행동을 하는 동안만은 이성의 끈을 완전히 놓습니다. 도저히 그럴 수 없는 포인트가 오면 미안하지만 종교의 교리를 무시해버리죠. 그게 심해지면 종교를 버릴지도 모르고요. 하지만 여튼 이성적으로 생각해서 '아 이건 강요하지 말아야지' 라고 생각하기는 어려운 가치관이 종교라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냥 만나지 말던가, 한 쪽이 그냥 무조건 '희생'하는 수밖에요. 희생입니다. 이긴 측이 이걸 희생이 아니라 '교화되었다'고 보면 절대 안되요. 나중에 '너도 좋아서 다닌거 아니었냐?' 이딴 소리 하면 곤란해요.

 

2.

 

그런데 댓글을 보다가 제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이게 종교 문제가 아니라는 댓글이었습니다. 저도 공감하는 바이고요. 이건 단순히 종교를 믿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라, 결혼을 하면서 자기 부모님이 원하는 것을 배우자가 될 사람에게 하라고 강요할거냐 말거냐의 문제입니다. 종교는 그 중에 대표선수일 뿐이죠. 특히 우리나라의 결혼 구도에서 여자는 결혼 후 시댁으로부터 이런 저런 주문을 받아야 하는데, 그걸 남편이 단호하게 잘라버리고 '이쪽은 내 가정이니까 아무리 내 부모라도 간섭하지 마시오'라고 들어받아버리지 않으면 그 수많은 주문을 이겨낼 길이 없습니다. 해당 글 쓰신 분은 종교가 문제가 아니라, 홀로 시댁으로 어웨이게임을 뛰러 가야 하는데 이 남편이 나랑 같은 편인지 아니면 이 사람도 상대편인지를 생각해셔야 할 것 같군요.

 

3.

 

많은 분들이 부모로부터 독립되지 않은 남자는 결혼할 자격도 없다고 하셨더군요. 사실 저도 부모로부터 그렇게 화끈하게 독립되어 있진 못합니다. 최대한 제가 생각해도 아내가 듣거나 하기 싫어할 것 같은 내용은 제 선에서 잘라보려고 하지만, 그래도 뭐라고 하시건 일단 주문을 받긴 하죠. 아직까지는 부모님의 생각을 바꿔놓지 못했습니다. 옛날 분들인 그 분들은 여전히 "쟤는 내 아들이고, 며느리는 내 아들의 아내. 생활 전반에 대해 간섭하고 잔소리할 권리가 있다"고 생각하시니까요. 얘들이 어디에 살지, 애를 몇이나 낳을지, 며느리는 언제까지 일을 나갈건지 같은 큰 문제부터, 아이에게 뽀로로를 보여줄건지 말건지, 며느리가 더운 여름이라고 민소매티에 미니스커트를 입으면 되는지 안되는지까지.

 

4.

 

독립. 좋은 말이죠. 그런데 전 매우 궁금합니다. 혹시 주변에 부모로부터 깔끔하게 독립한 인격체를 많이 보셨습니까? 전 사실 이른바 '내놓은 자식' 빼고는 못본 것 같습니다. 아마 그 자식은 내놓아 지기까지 부모와 엄청나게 싸우고 속을 썩였겠죠. 결혼을 현실적으로 생각하는 나이가 30살 전후라고 할 때, 그때까지는 부모에게 별 반항 없이 부모 말 잘 듣고 살던 사람이(보통은 어릴 때부터 부모와 대립하며 반항적으로 자란 사람보다는 이렇게 자란 사람이 '반듯하게 잘 자랐다'는 평을 들으며 더 이상적인 배우자로 꼽히지 않나요?) 난데없이 결혼을 계기로 '난 이제 독립 가장임. 지금까지처럼 간섭할 생각하지 마셈' 이라고 선언한다면.... 글쎄요.. 제가 보기엔 그 집안 한 번 난리날 것 같은데요.

 

글이 쓸데없이 길어지고 있습니다만, 여튼 직접 경험한, 혹은 주변에서 본, 10대 청소년이 아닌, 30대 성인 남자의 독립 이야기가 있다면 들어보고 싶습니다. 남들도 다 부모들과 대판 하고서 부모가 어느 정도 낙심하고 포기한 후에야 독립적인 인격체로 인정받는지, 아니면 매끄러운 과정을 통해 독립체로 커 나가는지.

    • 4. 제가 반항 없고 부모 말 잘 듣고 살던 사람은 아니었지만 나름 '효자 코스프레'는 괜찮게 하던 사람이었는데.. 결혼전은 물론 연애하기 전부터 이런저런 떡밥을 많이 깔았습니다. 주로 지인이나 인터넷 스토리를 하면서..

      - 결혼하면 첫째가 아내, 둘째가 부모, 셋째가 자식이니 섭섭하게 생각하실지도 모르지만 자식의 행복한 가정을 위해 이해해달라
      - 고부간에 갈등이 생기면 난 어쩔 수 없이 아내편을 들어야 한다. 그러니 그런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 부모님이랑 30여년을 살아왔지만 결혼하고 나면 난 그 사람이랑 남은 평생을 살아야 한다.

      같은 말로 떡밥을 깔았는데 제가 효자가 아니라 '코스프레'만 해서 그런지 집안 뒤집어 지진 않더라고요.
    • 결혼전 독립은 보지 못했고 결혼후 독립했다는 사람도 다른쪽, 즉 배우자의 부모와 친밀하게 지내더군요.
      한국에서 태어난 이상 부모를 벗어나는 건 불가능해요. 독립적 인격체의 개념이나 있나요.
      사회 기반이 혈연, 지연, 학연 등 각종 연결망인데요.
    • 김두식 교수의 욕망해도 괜찮아를 봤는데 결혼후에 문제가 생기는게 한국 남자들이 유독 부모랑 친하기 때문..이라고 한적이 있는데 그걸 방지하려면 미리미리 연습을 하라더군요. 저 같은 경우는 대학교 입학 이후부터 삐딱선을 탄듯.
    • 한국에서 태어난 이상 독립된 인격체가 되는 건 진짜 힘든 일이라는데 공감해요.
      다른 문화권 사람과 얘기할 때 알면서도 매번 놀라는 게 인디비주얼의 개념이에요.
      우리는, 부모가 애들 잘 보살핌-애들은 부모말 잘 들음- 좋은 부모, 좋은 자식- 나이에 따른 변화는 있게지만 이 관계가 인생 전반으로 쭉 이어짐.
      영어권 사람과 얘기하다보면, 부모는 애가 일정 나이가 되면 물질적 정신적으로 독립할 수 있도록 관리감독(?)하는 게 양육이라고 생각. 좋은 자식인지 나쁜 자식인지는 안중요함. 독립된 성인으로 성장하느냐 그렇지 못하느냐가 중요.
      뭐.. 제가 느꼈던 건 그렇더라구요.
    • 가라 / 요즘 인터넷은 젊은 이들의 전유물은 아니다보니 어르신들도 인터넷 보시죠. 그러다보니 "며느리 남편이 자기 아들인줄 아는 여자는 바보"라는 등의 요즘 농담도 아시고요. 차이가 있다면 젊은이들은 그런 농담이 현실을 제대로 반영했다고 생각하는 반면, 어르신들은 "일부 그런 근본없는 집안(사람)들도 있는 모양"이라며 혀를 차신다는 거죠.

      예전에 비슷한 주제로 쓴 김규항의 글에서 하여간 나라건 집안이건 그놈의 뼈대는 다 무너져야 한다는 내용의 글을 본 적이 있는데 요즘 참 안타깝게도 매우 공감됩니다. 제가 유명한 양반집안의 장자였거나 아버지나 할아버지가 유림 선비셨다면 전 아마 결혼을 포기했을 겁니다. 엄한 사람 인생 망치기 싫어서. 근데 그정도로 뼈대 있지 않아도 남의 인생 안망치고 사는게 쉬운 일은 아니더군요.
      • 제 친구가 말씀하신 뼈대있는 집안의 종가집 장손이었는데 별 탈 없이 결혼생활 하고 있습니다. 물론 며느리감에 대해 부모님이 흡족치 않아 하신 점도 있고, 특히 친척 어르신들이 이런 저런 이유로 반대도 한것 같은데.. 제 친구의 '내가 이집안 장손이라는거 말고 잘난게 뭐있냐' 한마디로 부모님을 설득시켰죠.
    • 결혼할 때 부모님으로부터 어느 정도 지원 받느냐에 달려있는 거 아닐까 싶네요
      • 영향이 있긴 하겠지만, 절대적이진 않습니다. 정말 한 푼 해준 것 없이 심지어 빚만 물려줬어도 낳아줬다는 것, 그래서 내 자식이라는 것만으로 내 자식과 그 배우자의 삶에 간섭할 권한이 있다고 여기니까요. 거기다데고 "해준 것도 없으면서" 라고 하면 "그럼 돈 없는 부모는 부모도 아니냐"라는 말이나 듣게되죠.
    • 어려운 일입니다. 결혼 전 아들과 데면데면했어도 며느리 본 후에는 매일 문안 전화바라는 건 왜 그럴까요.
      • 저도 그게 되게 신기합니다.
        며느리는 남이고 낯선 사람인데, 그런 사람한테 매일 전화받는 거 안 불편할까요?
    • 몸이 독립하면 마음도 어느정도 독립하는게 아닐까... 전 대학때문에 나와살면서 좀 많이 독립한거 같아요. 일단 내가 맘에 안드는 일을 해도 실시간 태클이 안되니까...
    • 부모님과 어릴 때부터 모든 면에서 계속 팽팽한 투쟁과 반항을 통한 거래, 배신을 반복하면서 상호간에 많은 것을 포기, 협의를 거쳐 지금에 왔던 것 같아요. 부모님도 어릴 적 저의 기억 속의 모습보다 지금은 저를 통해 많이 개화(?)된 모습이에요. 아주 어릴 적에는 안 좋은 부모의 표본 같은 모습도 기억나는 데 그 때야 부모님들도 미성숙할 시기니까요. 부모 자식간에 살면서 서로간에 사람 만드는 거죠.

      결혼이란게 또 다른 부모님과 투쟁을 생산해내는 건일 수도 있겠지만 저 같은 경우 부모님이 이제 '저 놈 아무하고나 결혼이라도 하면 다행'이라는 인식 정도 가지신 지 몇 년 된 것 같아요. 중학교 때부터 비혼 선언하고 틈만 나면 결혼제도를 디쓰 해댔고 나와 살면서도 그런 삶을 실행하고 있으니..이걸 내놓은 자식 같은 거라고 보실 분도 계시겠지만 저는 나름 발전이라고 봐요 ㅋ
      결혼을 하게 되면 그 자체로 내가 부모님께 많이 지고 들어가는 듯한 포지션을 취할 거 같아요. 지금 생각에선 모두가 행복해 할만한 전략일 듯해요.

      이렇게 보니 참 인생 피곤한 것 같네요. 그래도 저의 댓글에서 부모님에 대한 나름의 애정이 묻어나지 않나요?;;
    • 아니 왠만한 집에서는 어느 정도 애가 컸다 싶으면 '저도 다 컸는데 알아서 잘 하것지' '이제 처자가 딸린 몸인데 생각하는 바가 있것지'
      하고 넘어가지 않나요. 나이가 언제까지 먹어서도 부모가 다 터치를 하고 간섭을 할 일이 남아있긴 한가요.
      부모가 자식을 정말 잘 길러놓았다는 진짜 의미는, 성인으로써 자신의 일을 잘 처리하는 사람이 되었다는 거라고 생각해요.
      나이가 삼십이 아니라 사십이 먹었어도 자신에게 필요한 일을 직접 결정하지 못하면 그런 사람은 '바른'사람은 아닌 것 같아요.
      짧게 말해 더 이상 간섭을 하려고 해도 할 여지가 안 남아 있다는 거겠죠.

      아들을(딸을)잘 길러 놓았다면 어디가서 뭔 일이 나던지 간섭을 할 게 있겠습니까,
      내가 내 아들 눈 높고 심성 바르고 똑똑하게 길러 놨으면 사회생활을 해도 잘 할 것이고, 공부를 해도 할 것이고,
      여자를 골라 와도 잘 골라 올 것이고, 옷을 입어도 추운 날은 따숩고 더운 날은 시원하게 입을 게 아니에요.
      부모가 자식을 길러서 어른을 만들어야지, 애를 영원토록 기르려고 하면 되겠습니까. 그게 믿음이고 신뢰죠.
    • 전 사실 부모님이 뭘 저한테 간섭을 하려고 한 적이 없었던 같아서 , 간섭 이야기가 나오면 좀 어리둥절 한데요...
      (뭘 하고 싶은데 못 하게 한 적은 고등학교때 있었어도;;;) 사실 다 커서 무슨 간섭할게 있기나 한가 하고 궁금해요.
      그럼 '나도 다 컸는데 내가 알아서 잘 하겠지 생각하시라'하면 안 되나요? 우리 집에선 항상 무슨 이야기 좀 하다가 이야기 길어지면
      '아이고 난 잘 모르겠다, 너도 다 컸으니까 네가 하겠지, 니가 알아서 하세요'하고 쓰루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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