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집권 시절 경제에 대한 간단한 소고

  요즘 게시판들에 숫자로 본 박정희 경제라는 글이 떠돌길래 보게 되었는데, 사실인 부분도 있지만 몇가지 자의적인 통계 왜곡도 눈에 띄여서 간단하게 박정희 집권시절의 경제를 찾아봤습니다. 
 사실 별 관심이 없다가, 요새 다시금 이슈가 되길래 팩트들이랑 몇가지 요소들이 궁금해서 찾아봤고, 아래와 같이 간단히 정리했으니..혹시 의견 있으시면 달아주세요. 
 
 공부하는 차원이니깐, 빠지거나 부족한 부분이 있을 겁니다. 
 그리고 블로그에 개인적으로 올린 글을 COPY&PASTE 하다보니 문체가 좀 어색할 수도 있는건 양해 바랍니다. ^^;;

 1. 박정희 정권의 시작 및 개요

 

1961.5.16일 쿠데타를 통해 박정희 집권. 이후 3년간 군부에 의한 통치 이후에 1963년 민선 이양이라는 명분으로 군부 통치를 끝나고 선거에 돌입함.

이 선거에서 박정희는 공화당 후보로, 윤보선은 민주당 후보로 나와서 박정희가 당선됨. 야당이 유리할 것으로 예상되었으나, 후보 난립과 늦은 단일화,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윤보선은 박정희의 남로당 경력을 문제 삼는 색깔론을 펼치고, 이게 오히려 역풍을 불러일으켜서 전라도민들이 박정희를 밀어주고, 결국 박정희가 당선됨. 최종 스코어는 42.6% vs 41.2%..

이후 박정희는 1979년 김제규에 의해 죽기 전까지 장기집권하게 됨.

 

2 박정희 정권의 경제성장

 

1962년도 수출은 1억 달러에서 1977년 100억 달러까지 증가

1961년도 1인당 국민소득은 1034달러 였으며, 1979년도에는 10841달러로 증가.

1961년도 1인당 국민소득은 1131.94$ (2000년도 US달러로 환산치), 1979년도에는 3321.51$ (2000년도 US달러로 환산치)로 증가 

  --> 이부분은 1인당 GNP, GDP, $의 환산가치, 환율 등등의 요소가 많이 작용해서 신뢰할만한 통계가 잘 없네요. 

다만 무역수지는 계속 적자였으며, 이러한 적자를 해외차관으로 막음. 특히 일본과의 한일협정은 이러한 무역수지 적자가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까 함.

 

 

 

 

위의 표는 연도별 경제성장률과 실업률 표임.

74도와 80년도 급격한 성장률 둔화는 1차 석유파동과 2차 석유파동으로 인한 것임. 특히 1차 석유파동 때 대만 포함 대부분의 국가가 마이너스 성장을 했던 것에 비하면 굉장히 양호한 성적을 보임

특히 1차 석유파동이었던 1974년도에는 전세계적으로 물가폭등과 마이너스 성장의 스테그플레이션 기간이었으며, 이 때 우리나라도 물가상승률이 3.5% –> 24.8%로 폭등하긴 했으나 성장률은 12.3%->7.4%로 비교적 선방을 하였음.  이러한 현상은 1975년도까지 계속 이어짐.

 

그러나 2차 석유파동은 한국 경제에 심각한 데미지를 주었으며, 이는 박정희 정권이 몰락하게 되는 큰 원인 중 하나가 됨.

 

3. 경제개발계획

 

박정희 시절의 경제성과에 대해 가장 논란이 많은 부분은 경제개발계획 부분임.

반대쪽에선 이미 장면정부가 계획 해 놓은 걸 실행하였을 뿐이라고 하며, 지지쪽에선 실행과 계획은 다르다라고 항변하기 때문임.

 

우선 장면시절의 경제개발계획은 이승만 시절의 경제개발3개년 계획의 연장선 상이었음.

이 때 주요 골자는

 

1. 미국에 '원조각서요청'서를 제출 4억 2천만 달러 지원요청

2. 대일국교정상화 및 식민지지배권 배상

3. 미국, 영국등 외국 차관 도입

4. 국군5만명 감축을 통한 국방비 절약

5. 태백산 종합개발계획 (년간 2천만톤의 석탄 생산목표)

6. 농어촌고리채 정리

7. 식목 및 도로건설

 

그리고 박정희에 의해 실행된 경제개발계획은 광업/농업부분이 빠지고 화학/섬유 공장 건설이라는 안이 들어감.

이를 수정한 주요 인물의 나이는 당시 29세~37세였음. (헉..난 이 나이에 뭐하는거지?-_-;;)

수정안의 기본 이론은 서울대 박희범 교수의 수입대체전략이 아닌 제철, 제강등 금속공업과 기관차, 조선, 공작기계, 자동차 기계공업, 기초화학공업등의 토대를 마련하는데 중점 이라는 이론을 받아들여서 만들어졌고, 1962.1.23일에 발표함.

 

물론 발표만 한다고 되는 것은 아님.

이를 실행에 옮기는 것이 가장 큰 문제인데, 독재체제의 장점(?)인 자원의 강제적인 배분, 당시 얼마 없는 해외 차관과 자본의 몰아주기를 실행함.

 

4. 한일협정 및 경부고속도로/포항제철 건립

 

대표적인 예가 위안부 할머니에게 1/n로 지급되어야 할 보상금을 경부고속도로와 포항제철 건설에 몰빵하는 결정을 내리는 것임.

사실 저 두 개가 한국경제 성장에 미치는 영향을 생각하면, 국가적인 측면에서는 매우 타당한 (?) 결정이었으나, 개개인에게는 평생의 상처를 남겨두는 결정이 됨. 뭐가 옳은가? 라고 하면 쉽게 대답하기 어려움.

당시 일본 차관 및 보상금은 농업 회생과 보상에 쓰여지도록 되어 있었음 (이건 일본의 요구사항이었다고 함. 그리고 이대로 되었으면 우리는 아직도 초근목피에 헤메고 있었을 듯..;;;..나쁜넘들..)

 

그러나 이걸 박정희가 무시하고, 경부고속과 포철에 투자하였음.

나하면 중공업 발전엔 양질의 제철소가 필수인데, 당시 우리나라 경제로는 자생적으로 생길 수가 없는 상황이었음. 따라서 국영으로 제철소를 짓기로 하였으나, 당시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의 차관 공여 형식의 건립안은 쓰레기에 가까웠기 때문에 이를 박정희가 대일구상청구권을 활용하는 방안으로 변경하고, 일본을 설득해서 기술과 자금을 들여오고, 73년도에 완공됨.

 

말 많은 경부고속도로는 박정희가 서독 방문 시 당시 세계최초/최고 고속도로였던 아우토반에 감동 받은 것으로 시작되어 일본 보상금과 베트남 파병 대가를 쏟아붇어, 수많은 반대와 어려움을 뚫고 건설함.

사실 고속도로 건설 자체는 의미 있는 결정이었으나, 왜? 하필 경부고속도로인가? 에 대한 논란은 많았다고 함. 김대중이 반대하기 위해 들어누웠다..라는 건 실제론 거짓이고, 가장 후순위였던 경부 안이 첫번째로 진행되는가? 에 대한 반대였다고 한다…이건 참고..

 

5. 내맘대로의 결론?

박정희의 공과는 경제발전과 독재라는 뚜렷한 스펙트럼으로 나눠짐.

과에 대해선 이견이 없으나, 공이 경졔발전에 대해서 반대쪽에선 그게 박정희의 공이냐? 없으면 더 잘 되었을거다?  라는 의견이 많음

개인적으로 당시 척박하고 자본이 부족한 우리 나라 상황에서 당시 대다수의 농업인들을 밟고, 중공업으로 Turning 하는 결정을 내리고, 부족한 자원과 자본을 몰빵하도록 결정하는건 박정희가 아니었으면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생각됨.

이 때 결정의 다행이 올바른 결정이었기에 우리가 이렇게 나름 세계 10위권의 경제국가가 되어 있는 것이며, 만약 박정희가 인기에 영합해서 농/광업 위주의 경제개발계획을 그대로 시행했으면 아마 지금은 필리핀과 비슷한 위치에 있었을 거라고 봄.

따라서 경제발전에 있어서 박정희의 공은 매우 크며, 그가 올바른 결정을 할 수 있도록 옆에서 도운 테크노라트들 또한 공을 인정받아 마땅함.

다만, 독재에 의한 민주주의 홰손과 인권 억압, 부패구조 등의 악에 대해서도 반드시 잊지 말아야 할 것임.

    • - 오타 두 군데 지적드리면 10841불은 1841불의 오기인 듯하고, 마지막 줄은 훼손이 맞습니다.(...)
      - 4.에 대해서 보론하면 1)박정희는 만주국 장교단에 있던 인물이었고 만주의 5개년계획을 간접적 체험한 인물이긴 했지만 사실상 그가 주도적으로 전략육성을 했다기보다는 엘리트 관료들에게 강력한 추진력을 실어줬다는 편으로 보는 게 더 맞을겁니다.
      2)즉 박정희 시대(+전두환 초기 시대까지) 한국을 이끈 관료들이나, 전후 일본 부흥을 일궈낸 관료단은 대부분이 만주건국대학 계열이었다는 점이 재미있죠. (물론 100% 만주건국대가 아니긴 하지만 대부분 방계로 보면 맞습니다.) 한국 쪽에서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최규하. 김재익은 국내파고 서석준은 농고 출신의 입지전적 인물이긴 합니다만.
      - 양국의 공통점은 1) 1933년 일본이 군부우경화될 당시 쫓겨났던 (당시로서는) 좌파 지식인들이 못 배겨내고 도도칸릿츠나 만주건국대 등으로 가게 되었고 그 밑에서 자라난 인맥이었다는 점 (물론 기시 노부스케는 예외입니다. 얘는 그냥 쇼와의 요괴) 2)이들이 전후 양국에서 재건의 중심축이 되고 어느 정도의 커넥션을 형성했다는 점 3)전쟁 전에는 좌파소리 들었고 전쟁 후에는 운동권에게 수구꼴통 소리 들었다는 점(...)이 있겠네요. (대표적인 게 아마 교토대학 총장 지낸 다키가와 교수가 아닐까 싶습니다.)
    • @01410 저도 그부분이 이상해서 다른 레퍼런스를 찾아서 수정했습니다.
    • 경제발전을 꼭 필리핀과 비교하는데, 한국은 냉전이라는 국제상황을 고려할때 대만과 비교해야 가장 적합하다고 봅니다. 지금도 대만은 한국과 비슷한 경제수준이죠.
      • 그리고 대만은 지금도 강력한 독재체제죠.
        • 루아™/독재, 냉전, 남북/양안관계, 중공업/경공업 등 여러가지 비교대상으로 필리핀보다 적합하죠. 그런데 타이완은 수평적 정권교체도 한 마당에 민주화 과정에 있다고 평가해야지, 현재 강력한 독재체재는 아니지 않나요?
    • 60년대와 70년대의 한국경제의 성장은 일국적인 관점에서만 볼 게 아니라, 동아시아 전체로 시야를 확장해서 봐야하죠.
      한국만 경제성장을 한 게 아니거든요. 일본과 대만, 홍콩, 싱가포르 모두 고도의 경제성장을 했습니다.
      동아시아에 존재하는 일련의 공통된 원인들이 동아시아 전체의 경제성장을 촉진시킨 것입니다.
      예를 들어, 첫째, 지주계급이 농지개혁으로 소멸(일본과 한국)했고, 아예 지주계급이 존재하지 않았던 (홍콩,싱가포르) 출발선상의 유리한 조건들이 미리 형성되어 있었고, 둘째, 높은 교육수준과 저렴한 인건비의 인적자원이 풍부했고, 세째, 동아시아는 이미 근세이전까지만 하더라도 서구보다 큰 경제규모를 자랑하는 국가였고, 또 중앙집권적인 행정화가 중세시대 이전부터 잘 이루어졌다는 역사적 유산이 존재한다는 점입니다. 반면에 중동국가들이 풍부한 석유자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늘 빌빌대는 이유가 부족간의 다툼이 심한 봉건화의 전통이 근대에도 청산되지 않고 중세시대부터 계속 내려왔던 것도 큰 이유죠.
      경제성장에 유리한 이런 내적인 요소들에, 미국이 동아시아의 상품을 소비하는 시장역할을 거의 무한정으로 해내었다는 요인과 동아시아 국가들이 서로 분업체계를 이루었다는 외적 요인들까지 결합해서 동아시아 각국의 급속한 경제부흥이 가능했던 것이죠.

      따라서, 박정희가 아니더라도 설령 지주계급의 민주당 출신 민간 정부라도 이러한 유리한 객관적인 조건을 갖춘 상태라면 충분히 일정 수준 이상의 경제성장을 거두었을 겁니다.
      • 그래서 간단히 찾아봤는데, 대만/싱가포르는 독재자의 리더쉽이 큰 영향을 미쳤고, 일본은 한국전쟁과 미국의 전략적 지원, 그리고 2차대전을 일으킬 만큼 원래 강한 나라였죠.
        다만 홍콩은 다른 아시아 국가들과 많은 면에서 차별점이 있었네요. 우선 정부는 시장경제에 대해 무간섭주의를 내세우며, 사회간접자본 확충과 세금 감면등의 혜택만을 제공했을 뿐이었는데도, 중소기업 위주의 발전과 혁신이 이뤄졌었군요. 아주 예외적인 케이스인듯.

        필리핀은 1960년대만 해도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왠만한 아시아 국가들보다 잘 사는 나라였습니다만, 독재가 반대로 경제를 악화시킨 대표적인 케이스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악명높은 마르코스의 임기가 박정희와 거의 유사하였죠.
        • 교육의 역사적 전통은 커녕, 에스파냐가 침략하기 전까지만해도 '문명화' 자체가 되지 않았던 필리핀과 한국을 비교하는건 어느모로 봐도 어불성설입니다.
          • 70년대까지만 해도 필리핀은 아시아에서 일본을 제외하고 제일 잘 사는 나라였습니다.
        • 본문에는 차라리 상당부분 동의를 하는데, 필리핀 수준이 될 것이다, 라는 말은 자본주의의 역사적 발전, 동아시아 문명권의 역사적 형성 같은 것에 입각해 생각해보자면 너무나도 터무니없다, 라고 밖에는 말씀드리지 못하겠군요.
    • 뉴라이트가 이런식으로 일제시대의 경제발전을 다루지 않았나요?
      그러면서 공과 과를 함께 봐야합니다..라고 떠들었지요?
      나찌 독일의 히틀러 총통의 시대도 경제부분만 따로 본다면 엄청난 발전과 성장의 시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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