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생활바낭]

안녕하세요. 에아렌딜입니다.

드디어 비 내리던 날들을 청산하고 일본의 하늘이 개었습니다.
...덥네요. 크아.
제 방은 특히나 직빵으로 덥습니다...
아침부터 땀을 줄줄 흘립니다. 흑흑.


이곳 생활도 조금씩이지만 익숙해져가고 있는 나날입니다. 
다들 친절하셔서 잘해주십니다.
물론 겉치레만일 수도 있고 일본 사람들의 몸에 익은 예의범절 때문에 친절하게 보이는 것일 수도 있겠지만...
아아, 여기까지 생각하면 또 울적해지는군요.
사람을 믿는다는 건 과연 좋은 일일까요?
좋은 일이라고 믿고 싶지만, 한편으로 사람을 믿었다가 그 믿음이 역으로 해가 되는 일이 있다는 것을 알기에 마냥 사람을 믿을 수가 없고... 또 그렇게 남을 의심하는 자기 자신이 서글프고 한심합니다.
그냥 믿는다는 것만으론 부족한 걸까요. 
괜히 울적해지는 건 역시 그날이 다가와서 그럴까요... ㄱ-


어쨌든, 일도 조금씩 배우고 있지만... 사실 제 일의 대부분은 전화 응대입니다.
...무지 힘드네요. 뭐 한국에서 치매노인 수발하는 우리 어머니에 비하면야 어디 고되겠느냐만서도;; 뭐랄까 고유명사에 속하는 인명이나 지명, 단체명은 도무지 뭔 소린지 알아들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몇번이고 '죄송합니다만 다시 한 번 말씀해 주세요'를 말하고;; 상대방의 기분이 상할까봐 조마조마하면서 응대를 하고 있노라니 그냥 심장이 쫄아드는 기분입니다.
누구에게나 조금씩은 있겠지만... 전 누군가를 실망시키는 일에 굉장히 두려움을 느끼곤 해요. 물론 시간이 지날수록 그 욕구를 100%ㄲ 채운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은 지 오래이고 어느 정도는 포기하고 있습니다만서도... 그래도 때때로 이 욕구가 고개를 쳐들고 나타나 곤란합니다.
어쨌든 잘 보이고 싶은 사람이나, 잘 보이지 않으면 곤란한 사람에게는 특히 자주 나타나지요. 손님이란 존재도 거기에 들어가니 어쩔 수가 없군요. 

조금 딴 소리지만 일본에 와서 말한 '죄송합니다'나 '감사합니다'가 평상시의 세배는 되는 것 같아요. (물론 일본어로지만)
서비스업이라서 그렇다 쳐도 확실히 일본에서는 죄송합니다도 감사합니다도 아주 자연스럽게 많이 나와요. 대화 도중에 심심하면 죄송합니다 하고 꾸벅꾸벅 하게 되는 느낌이랄까요?
제 생각엔 참 좋은 예의같아요. 한국에서는 남이 무언가를 해주는 것을 어느 정도는 당연하게 받아들이게 되는데(물론 자신이 손님이거나 할 때는 당연하다 할지라도) 그래도 기왕이면 감사를 표하는 쪽이 감사하는 쪽도, 감사받는 쪽도 서로 기분이 좋아지는 윈윈 전략이 아닐까 싶군요.
지나치게 꾸벅꾸벅 하느라 시간을 잡아먹는다는 점이 문제긴 하군요. 확실히 직설적인 한국인이나 중국인들에겐 영 답답하게 비칠 것 같아요.

또 한 가지 느낀 게 일본어에는 굉장히 돌려 말하는 표현이 많다는 것이죠. 한국인은 직설적으로 '~~해 주세요'하고 딱 부러지게 말할 수 있고 그런다고 당사자도 상대방도 크게 신경쓰지는 않죠. 
하지만 일본에서는 그게 좀 무례한 어법이 되나봐요. 일본어에서는 일상적으로 '죄송하지만 ~해 주시지 않으시겠어요?'라든지 '조금 ~~인 것 같은데....'까지만 말해도 상대가 알아서 이러저러하게 해 주죠.
오늘도 전화 응대를 하다가, 상대방의 목소리가 잘 들리질 않아서 '죄송하지만 좀 크게 말씀해주시겠어요?'했다가 '하?' 하고 화난 어조의 대답을 들었습니다. 
우리야 그게 무례가 아니지만 여기선 상당한 무례가 되는 것이죠. 전화가 끝난 후 같은 사무실에 계시던 분께서, 그럴 때는 '전화 상태가 조금 나쁜 것 같아서 그런데 조금 크게 말씀해주시겠어요'라는 식으로 말하는 게 좋다는 조언을 들었습니다.
저도 늘 돌려 말하는 것을 염두에 두고 일본어를 구사하려 애쓰지만, 종종 생각없이 대화하다가 아무렇지도 않게 '직설적인' 어법이 튀어나와요. 과연 전 한국인이군요(?)



그건 그렇고 배가 고파 죽겠습니다...OTL
김치 먹고 싶어요. ㅠㅠ
김치볶음밥이나 김치찌개가 먹고 싶어요. 으흑흑.
회장님이 신라면을 좀 두고 가셨지만 전 신라면은 한국에서도 잘 안 먹었는걸요...ㅠㅠ
고추장이라도 있으면 라볶이라도 해먹었을텐데. 
우리집에서 어머니가 만드신 기막힌 고추장맛이 그립습니다. ㅠㅠ 올해는 특히 맛있게 됐다고 어머니랑 만들면서 서로 좋아했었는데.

역시 먹을 게 제일 그립네요. 
특히나 장을 보러 잘 나갈 수가 없는 곳에 있으니, 가능한 오래 보존할 수 있고 값싼 것만 샀더니 레토르트 카레랑 식빵밖에 없어요. ㅠㅠ
회장님이 달걀을 한 판 사 두고 가셨는데 이걸로 뭘 해먹을까요... 계란찜은 적당한 냄비(?)가 없어서 해먹을 수가 없는데.. 역시 달걀말이 뿐일까요. 달걀프라이만 해 먹으면 질릴 것 같은데.ㅠㅠ
잼도 다 떨어져 가요. 소스도 없네요. 다음에 장 보면 꼭 잼과 소스를 사 와야겠다고 다짐합니다. ㅠㅠ...
혹시 맛난 소스같은 게 있으면 추천 좀 해주세요... -///-


흑흑. 회장님 기왕이면 비빔면이나 짜파게티를 사오시지 그러셨어요... OTL


아아 음식도 그립지만, 서서히 몸이 안 좋아져가고 있습니다. 
한 달에 한 번 오는 마법의 전조지요. ㅠㅠ...
몸이 안 좋아지니 역시 집이 새삼 그립네요.
우리집, 우리 엄마가 보고 싶어요.
먼지 쌓인 내 방도 보고 싶네요...
왠지 생각하면 울컥 눈물이 날 것 같아서, 일부러 떠올리지 않으려고 애쓰고 있던 한국 생각이 자꾸 납니다.

센티멘탈하네요.... ;_;

엉엉.
그래도 내일도 힘내야겠지요.
다들 좋은 밤 되세요.


추신: 도시락 사진을 올리려고 하는데, 지금 이글루스 링크는 안 걸리나요?
혹시 링크하기 좋은 방법을 아시는 분 계시면 댓글 부탁드립니다... (__)
    • 첫단락의 크아.. 귀여워요

      잘 지내는군요

      삶의 향이 물씬!!
      • 크아 부분에선 도모군을 떠올려 주세요. :D
        넵 잘 지냅니다. 이인님도 잘 지내시는지? 건강 조심하세요.
    • 새내기때 국어 기초교양(한국어작문 1 기초작문 생활과 글쓰기 뭐 이런 거-.-)듣는데 중국어 잘 하는(필히 일어도 잘 하겠지 싶은) 교수님이
      "언어는 마스터한게 아니면 한다고 아예 말을 하지 말아야 해요! 한국어로는 저 회사 그만두고 싶은데요를 일어로는 저 회사 그만두는
      것을 해 받고 싶은데요, 한단 말이야!'라고 말씀하셨죠. 들으면서 '그래...난 일본어를 못하지...'하고 생각했습니다.
      회사 그만 두는 것을 해 받는대...저거 몇번 공손하게 만든 말이야....
      • 그분은 중국어를 마스터하셨을지 조금 궁금하네요. :3 가끔은 자국인도 자국어를 헷갈릴 때가 있는데 말입니다요.
        • 잘 모르겠어요. "그것 때문에 난 어디 가서 일본어 한다고 안 해"라는 말을 붙인 걸 보면, 중국어는 한 거겠죠.
          만다린인지 칸토니즈인지는 몰라요. 국어 가르치고 있는 선생님이었는데 묘하게 중국말을 잘 했음. 이태백 시도 읽어 주고(사랑을 얻어 사랑에 괴롭고
          사랑을 잃어 사랑에 괴롭고)문화도 꽤 해박하고. 자기 김용 안 읽고 와노사깨나 읽었다고 수업시간에 커밍아웃했는데
          웃은 사람이 저밖에 없어서 캐민망했음.

          노부인이 와노사 아는 경우 첨 봤어요. 그러고 보니까 대만 무슨 아이돌 콘서트 간다고 휴강하고 그랬었음-_-
    • 한국생각하며 울컥해할 에아렌딜님을 생각하니 저도 괜히 마음이 센치해져요=.= 익숙한 것이 주는 위안이란 것이 분명 있는 것 같죠? 얼른 맛있는 잼과 소스를 구비하여 조금이나마 마음을 달래실 수 있기를! 같이 힘내서 내일도 잘 살아내요, 우리 :)
      • 익숙한 것이 위안이 되기도 하지만 슬픔이 되기도 해요. 집에서 보던 책이나 듣던 음악을 가져와 보거나 듣거나 하면서, 가끔 마치 집에 돌아와 있는 듯한 착각을 느끼다가 또 슬퍼지고... 하하. 고맙습니다. 아해님도 기운내시길!
    • 몸 조리 잘 하시고, 마법기간 잘 보내시기를 @_@ 이글루스는 링크가 안 걸립니다~ 티스토리는 걸린다고 들었는데 지금도 걸리는지는 모르겠어요 ㅎ
      • 으윽. 그렇군요... 티스토리 초대장을 받은 게 언제적이더라... 까맣게 잊어버렸어요. ㅡㅜ 에구 그럼 어케 사진을 올린담;;
        고맙습니다! 꾸벅.
    • 금방 새로운 문화에 익숙해지겠죠.
      상대는 일상적일지라도 고마운 마음 가지고 있으면 자연스럽게 전달이 되겠죠.
      잘 드시고 힘내요.
      • 그랬으면 좋겠어요.
        한국에서는 늘 고마움을 느껴도 표현을 잘 못했는데, 여기선 말이라도 좀 더 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 느껴요. 감사합니다~
    • 에아렌딜님 글 항상 보면서 많이 배우고, 응원하고 있어요
      모국어가 아닌 언어로 전화받는거 얼마나 힘들고 식은땀나는지 잘 알아서 더 공감이 됩니다ㅜㅜ
      생각같아선 뒷좌석에 깃발 달린 자전거 타고 막 달려서 시원한 맥주랑 즉석떡볶이 같은거 배달해드리고 싶어요...힘내세요! 정말 정말 멋져요^^!
      • 핫 감사합니다... 쑥쓰럽네요 -///-;;; 저야 뭐 끄적일 뿐이니까요. ㅠㅠ;;
        뒷좌석에 깃발 달린 자전거라니 멋진걸요? ㅋ_ㅋ 꿈에라도 나타나셨으면 좋겠네요! 히히. 고맙습니다! :D
    • 에아렌딜님 글을 접하면 타지생활 때문에 자주 울적해지시는 것 같더라고요. 그럴 때는 본인만의 스트레스를 풀거나 울적함을 달랠 수 있는 방법 몇개를 마련해 놓으시면 좋을 겁니다. 그리고 유독 일본 생활에서 그러는 분들이 많은데, 아무래도 생각한 것과 다르거나 한국과 비슷하다고 생각하고 대조하면서 그러는 일을 자주 겪는 것 같은데, 사람들 만나다보면 정 붙일 사람 생깁니다. 거기도 사람 사는 데니까 한국 사람같진 않더라도 정이 오고 갈 만한 사람이 생겨요. 좋은 사람 사귀세요.
      • 죄송합니다만 전 꼭 타지 생활 때문에 우울하다기보단 원래 우울한 인간이었어서요...
        유독 일본 생활에서만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전 외국에 나간 게 이번이 처음이라서요. 일본은 아무래도 옆나라인데다 비슷한 점이 많은 동양권이다 보니 비교하는 것도 자주 있을 법한데 제 생각이 틀린가요. 굳이 일본이라서 그러는 것은 아닙니다.
        • 정서적인 거나 문화적 공유는 다르죠. 한국 사람이라면 이렇게 하는데 일본 사람은 그렇게 한다든지 하는 게 있죠. 비슷하면서 달라요. 저도 오랫동안 일본에서 산 적이 있습니다. 아무튼 힘내세요.
    • 타지라서 민감하게 느끼시는 것 같은데 너무 다른사람들에 대해 생각하지 마세요.
      즐겁게 보내셨으면 좋겠네요. 재미있는 이야기도 올려주세요.
      전화통화가 어려우니까 그만큼 일본어 실력이 좋아지지 않을까요.
      • 재미있는 이야기라... 사실 오늘 같이 일하는 아리따운 일본 아가씨들에 대한 이야기를 적어볼까 했는데 어쩌다보니 얘기가 산으로 샜군요.
        사실 지금 쓰는 글도 예전에 비하면 엄청 밝아진 기분으로 쓰고 있는 거긴 한데요.(그리고 나름 즐겁게 쓴다고 썼는데 역시 잘 안 되나 보군요) 역시 전 평상시 기분의 벡터가 남들 보기엔 참 낮은가 보네요... :(
        전화통화가 어렵지만 어서 익숙해졌으면 좋겠습니다. 다른 분들은 일본어 잘한다고 칭찬해주셨지만 제가 보기엔 영 아니어서요.
    • 댓글 달아주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__) 댓글을 보면서 많은 위안을 얻고 있습니다.
      제가 글을 쓰면 울적해져서 쩝... ㅡㅜ 다음에는 좀 재미있는 이야기를 써볼 수 있도록 해보겠습니다.
      좋은 밤 되세요.
    • 전 유자폰즈를 좋아해서 이것저것 잘 찍어 먹고 뿌려 먹어요. 타국에 있을 때 토마토소스에 매운 고추 넣어서 야채 넣고 볶은 뒤 소시지와 달걀프라이 곁들여서 먹기도 했고요. 일본 고형 카레도 채소나 닭고기와 잘 어울려요. 잘 챙겨 드세요.
    • 저도 짧은 도쿄 생활 참 재미있게 지냈는데 초기엔 역시 힘들었어요. 가끔 혼자서 희한하게 놀던 거 (동네 센토 가서 탕 바꿔가며 목욕, 새벽에 돈키호테 가서 숖핑) 기억하면서 혼자 킥킥거립니다. 곧 즐거워지실 거에욧.


    • 이글루스 링크 테스팅. 저는 되는걸로 아는데요...

      추가 - 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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