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의 걍태공
파리에 대한 기억중 가장 강렬한 것은 역시 배낭여행으로 와서 노숙했던 경험이죠. 때늦은 사춘기를 겪고 있던 대학 4학년, 취업과 대학원 진학을 두고 술렁거리던 과 친구들을 뒤로 하고 아르바이트로 모아 두었던 돈을 모두 털어넣어 유럽으로 배낭여행을 왔었습니다. 남자 홀로 떠난 여행이라서 하기에 좀 쉬웠겠지만, 이삼일씩 굶고 노숙하는 것이 일상이었죠.
거지 꼴로 두어달 유럽을 돌다 도착한 파리에서 만난 다른 배낭여행자들에게서 드골 공항이 드골 호텔이라 불린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노숙하기에 최적이라는 얘기였죠. 즉석에서 의기투합한 사람들이 막차를 타고 밤을 보내기 위해 드골 공항으로 향했습니다. 기차를 잘못탔다는 사실을 알아차렸을 때는 이미 파리를 한참 벗어난 다음이었습니다. 한밤중에 내린 역의 주변엔 불빛하나 찾아볼 수 없는 암흑이 펼쳐져 있더군요. 우리가 타고 온 기차가 막차여서, 드골 공항으로 갈 수 있는 방법도 파리로 돌아갈 방법도 없었죠. 일행은 역무원의 허락을 받아 시골 기차역 플랫폼에서 밤을 보내야 했습니다. 5분마다 한번씩 굉음을 울리며 지나가는 화물기차 소리를 자장가 삼아 잠을 청했습니다.
배낭여행 이후 처음으로 방문한 파리에서 어제 공항 택시를 타고 숙소를 향하면서, 그 때의 기차 소리를 떠올렸습니다. 출장 올 때 흔하지 않은 일이지만, 내일은 아무 일정도 없으니, 잠시 파리 구경을 할 수 있을 것 같네요. 듀게에 이미 파리 여행에 대한 질문을 하신 분들이 있더군요. 댓글에 올라온 것들 중에서 하나 정도 골라 실행해볼 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