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권] 다섯째 아이 - 도리스 레싱



022. 다섯째 아이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도리스 레싱의 중편(?) 소설. 대강 줄거리는 다음과 같습니다. 헤리엇과 데이비드는 시대에 맞지 않게, 큰 집에서 많은 아이를 낳아 행복한 가정을 꾸리는 꿈을 꿉니다. 그리고 차근차근 실행에 옮깁니다. 하지만 돈도 없고 체력도 약한 부부인지라 양가 부모에게 심한 민폐(돈과 노동력)를 끼치면서도, 무슨 만용인지 꾸역꾸역 애들을 낳아대다가, 그만 다섯째 아이로 괴물 벤을 낳게 됩니다. 결국 그 아이 덕에 행복하다고 착각하던 가정은 붕괴되고, 헤리엇(엄마)은 고통스러워지는, 그런 내용입니다.


소설은 쭉쭉 잘 읽힙니다. 도리스 레싱의 필력에 감탄했습니다. 하지만 안타까운 점 하나. 현대인인 제 눈에는 '다섯째 아이'가 기대만큼 괴물스럽지 않았습니다. '오멘'이나 일본 막장만화의 미친 캐릭터를 기대했고,  레싱은 '빙하시대 고대 인종이 격세유전되어 현세에 태어났다' 정도로 컨셉을 잡고 벤을 묘사하지만, 저에게는 그냥 감정(조절)장애가 극심한 지진아나 문제아 정도로 느껴졌습니다. 새삼, '내가 자극적인 이야기에 너무 익숙해졌구나.'싶었어요. 하여튼 그런 벤이 행복한 듯 보이던 가족을 파괴하는 과정에서 엄마인 헤리엇은 정신적으로 쇠약해져 가고, 그럼에도 모성애를 발휘하지만, 결국 좋게 끝나지 않습니다. 최선을 다했지만 힘에 부쳤던 거죠.


그런데 문제는, 제가 헤리엇을 좋게 보지 못하겠다는 점이에요. 돈도 없고 미래도 불안해서 결혼도 아이도 포기한 현대 한국 젊은이(?)로서, '8명의 아이가 뛰노는 해피 하우스'를 꿈꾸며 별 준비도 없이 주변의 만류에도 고집스레 애를 낳아대는 이 사람은 너무 나이브해서 화가 나고, 너무 피곤해서인지 성격인지, 되는 대로 사는 것 같아 지켜보기 불편합니다. 피임은 왜 안 하는 거야. 그정도로 고생했으면서 왜 애를 계속 낳는거야. 그래도 벤의 일이 커지자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능동적인 반응을 보이는데, 이게 또 좋게 작용하지 않습니다. 그 후는 계속 잠잠한 내리막길. 이 부분은 안타까워요. 그녀는 '엄마'라는 입장에서 늦게나마 최선을 다 하지만, 혼자 힘으로 어떻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죠. 헤리엇에 대한 제 입장은 안쓰럽긴 하지만, 그래도 좀 화가 난다 정도. 화목한 가정이 환상이 얼마나 허구인지 드러내려고 레싱이 이 소설을 쓴 듯 하고, 화목한 가정에 대한 집착이 가장 강했던 것이 그녀니, 헤리엇에 대한 제 이런 반응은 크게 이상한 것은 아닐지도요. 그만큼 이 소설이 잘 쓰여졌다는 이야기도 될테고.


그리고 가족 안의 이질적인 존재에 대해. 이 소설은 벤을 이해를 초월하는 괴물로 그리지만, 저는 읽으면서 정신병 환자나 알코올, 약물, 도박 중독자들을 생각했어요. 그리고 그들을 ,저를, 가족의 일원으로 품고 있는 가족들이 느낄 정신적 물질적 고통에 대해서도. 폭력을 휘둘르는 알코올중독자를 가족이라며 억지로 품고 있다간 다 죽을지도 몰라요. 실제로 그런 가장에가 아내가 살해당하는 일도 많죠. 그런데 그게 자식이라면? 모성애가 걸려 좀 복잡하겠지만, 그래도 환자(?) 상태가 심하면 어쩔 수 없지요. 전 그런 사람을 가족으로 둔 사람들에게 '당신들 가족이니 당신들이 끝까지 같이 살면서 책임지라.'는 말을 못 하겠어요. 가족애나 모성애로 해결되는 것이 있고, 절대 해결할 수 없는 것이 있다고, 저는 믿어요. 그리고 아마 레싱도 이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 같아요. 가족애에 환상을 가지지 마라. 모성애가 만능은 아니다. 화목한 가족은 쉽게 부서지고, 모성애에 기적같은 힘은 없다.


작품 해설에 따르면, 레싱은 소설가의 공헌은 "우리가 자기 스스로를 다른 사람이 보는 시각으로 볼 수 있게 하는 점"이라고 생각한다는데, 그런 면에서 이 소설은 성공적이에요. 책을 읽고 난 후 이 글을 쓰면서, 저 때문에 고통을 겪었을 가족들을 안쓰러워 하며, 저를 버리지 않은 그들에게 감사하고, 너무 힘든 나머지 가끔 내치려고 했었던 사실도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거든요. 오죽 힘들었으면 그랬겠어요. 그리고 실제로 안 그랬잖아. 그럼 된 거지. 당시 내가, 아니, 내 안의 병마가 좀 많이 괴물이었지. 고생 많았어요. 그리고 지금 저는 출산을 뜯어 말리던 가족들의 입장, 그리고 약간은 벤의 입장에서 이 책을 읽었지만, 제가 혹 결혼을 하고 아이를 가지게 된다면, 가족 안의 어머니로서 아주 새롭게 이 책을 읽을 것 같아요. 결혼하고 싶은 생각이 뚝 떨어트려서 탈이지. 혹시 결혼해서 아이를 낳게 되면 다시 읽어봐야겠어요. 












    • 부지런히 일찍 일어나셨군요 전 괜히 부지런히 일찍 일어나졌습니다 다 잤으니까.
      동네 한바퀴를 돌아말아 하다 에이그 돌아서 뭐하나 재미 없어
      간단명료한 소설의 역할이군요,자기를 다른 사람 시각으로 보는
      끈 이론의 다중우주를 지지합니다 사람 모두모두가 개별 우주니까요 하늘의 별만큼 많아서 대충대충 사는거 같지만 별의 탄생과 멸망의 거리는 길죠.
    • 앗! 저도 이 책 읽어보고 싶어져요. 오늘 구입해야겠어요. 감사합니다~
    • 저는 벤이 너무 끔찍해서 정말 레싱이 말한대로 괴물이라고 느꼈어요. 아닌 분도 있었군요. .
    • 세상에 행복한 사람은 없는데 우린 행복해질 거라고 믿었기 때문에 벌을 받는 거라는 해리엇의 대사가 참 사무치죠
    • 잘 읽었습니다. 이 책 제목 기억해뒀다가 나중에 꼭 읽어야겠어요.
    • 저는 이 책이 정말 충격적이었어요. 엄마라서 더 그랬던 것 같아요. 내 아이 중 하나가 저런 장애를 가지고 있다면, 그래서 나는 '엄마'로의 역할을 선택했는데, 그것도 정말 100% 우러나왔다기 보다는 엄마로서의 의무감이 더 강한 상태에서 그런 힘든 선택을 했는데, 그것이 다른 가족들을 전부 소외시키는 결과를 낳는다면, 게다가 내가 선택한 그 아이마저 나와 전혀 교감을 느끼지 못하고 떨어져 나간다면...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을 보면 이런 이야기가 종종 나오죠. 장애가 있는 아이가 있어 부부가 최선을 다해 그 아이에게 헌신을 합니다. 그런데, 보면 그 아이에게 형제가 있는 경우가 있어요. 이런 경우 나오는 코멘트는 "그래서 그 아이는 일찍부터 자기 일은 자기가 챙기는 조숙한 아이로 자랐다"... 저는 장애를 가진 아이도 안 됐지만, 그 때문에 부모로부터의 소외가 당연한 것처럼 여겨지는 이 상황들도 굉장히 가슴에 남더라구요.
      그러나, 그렇다고 내가 내 속으로 낳은 아이를, 요즘 자주 말하는 대로 누가 낳아달라 부탁한 것도 아닌, 내 의지로 가진 아이를 다른 가족의 행복을 위해 포기할 것인가 하는 질문에는 정말 대답하기 힘들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죠. 정말 행복해 보이는 마을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마을의 행복은 매년 가장 허약한 어린이 한 명을 강제로 가족에게서 떼어내 지하 감옥에 가두고 사람들이 그 애에게 차갑게 대하고 멸시해야만 하는 조건 위에 이루어진 것입니다. 만약 그 애를 구출하면 마을의 행복이 무너지고, 마을이 행복하려면 한 아이의 인생에 눈 감아야 하는 거예요. 저는 "5번째 아이"가 그 이야기를 연상시키더군요.
      읽고 나서 너무 가슴이 묵직했었던 기억이 납니다. 여기서는 벤의 내면을 이해하기는 쉽지 않아요. 솔직히 벤이 피해자처럼 보이기보다는 가해자처럼 보이기도 했어요. 하지만, 2편이 나왔다더군요. 번역이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이야기에서는 벤이 주인공이라고 하니 좀 더 그를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하지만, 그 책 소개에서 '가족에게 버림받은 벤은'이라고 나왔을 때는 저도 모르게 좀 '울컥'했어어요. 해리엇이 혼자서 벤을 끌어안으려고 발버둥칠 때 아무도 그녀를 이해하지 못했고, 또 이해하려고도 하지 않았죠. 의사들은 판에 박힌 말만 했고, 직접 그 아이를 들이밀었을 때 그들도 두려움을 느꼈지만 무시해 버리잖아요. 저는 해리엇이 할 만큼 했다고 생각합니다. 이것도 역시 엄마여서 드는 생각일 수도 있지만...
    • 가끔영화 / 끈 이론의 다중우주라니, 어릴 때 보던 뉴턴을 다시 보고 싶어져요. 요새도 멋진 일러스트 계속 나오나..

      베이글, miho / 재미는 확실히 있는 책이에요.

      꿀맛 / 그러니까 이게 일본(막장류)만화의 폐해 -ㅅ-;; 그리고 현실적으로 더 괴물같은 사람들도 있어요. 전해들은 사례만 해도 뭐. 벤은 직접적으로 가족을 죽이거나 폭력을 휘두르지는 않았잖아요.

      lonegunman / 저는 그 '벌 받는거다'는 식의 사고방식이 좀 위험하다고 생각했어요.

      흔들리는 갈대 / 써 주신게 엄마 입장에서 책을 읽는 정석(?) 독해일 것 같아요.

      다만 저는 헤리엇 캐릭터에 애착이 없어서요. 레싱이 정신분석쪽에 관심이 지대해서인지, 헤리엇이 굉장히 히스테리컬하게 그려지는데, (비난받는 느낌이었다는 대사 수십 번 나온 듯;;), 제가 이 쪽을 안 좋아해서 덩달아 헤리엇에게도 호감을 덜 느낀 듯 해요.

      그리고 그 후속편에서 벤은 '세상에 이런 일이'따위에 나오는 평생 노예생활하던 지체장애자 정도로 사람들에게 착취당한다고 하네요. 사실 이 소설 내내 그런 암시가 많이 나왔어요. 존에게 애착이 심한 것이라던가 학교에서 적응하려고 죽도록 노력은 한다던가.. 바로 이 점에세 제가 벤이 그닥 괴물로 안 느껴졌다는 거에요...그냥 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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