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해적과 오노라아타

가장 기억에 남는 소설과 가장 감명 깊었던 소설은 다를 수 있습니다.

저 역시 누군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가 무엇이냐 물어보면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동사서독'이거든요.

가장 감명 받았던 영화, 보면서 가슴이 먹먹했던 영화, 보고 나서도 한 동안 목이 꺽꺽 막히던 영화는 따로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누군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를 물어보면 반사적으로 '동사서독'이 나옵니다.

 

소설도 마찬가지로, 가장 좋아하는 소설, 가장 많이 읽은 소설, 가장 감명 깊었던 소설 등이 다 달라요.

우선 가장 많이 읽은 소설은 서유기 -_- 입니다. 아놔 서유기는 뭐 읽으면 읽을 수록 새롭네요. 하지만 가장 많이 펼친 책은 또 다릅니다.

그 외 '가장'은 아니지만 아직도 머리에 깊히 박힌 책은 '검은 해적'입니다. 이게 삼총사처럼 대중소설이죠. 걍 한 번 읽히고 쓰레기통에 박힐 그렇고 그런 책. 그나마 이 소설을 기억하시는 분이 계실런지도 궁금하네요.

 

...부끄럽지만, 우선 밝히고 지나가야할 게 -_-

 

제가 좀 싸나이 뭐 이런 거에 약합니다;;

정작 현실에서는 누가 '남자가 돼 가지고 말야~'라던가 '여자가 말야' 뭐 이런 말 들으면 덮어놓고 반발합니다만 -_-;; (긍정적으로) 싸나이스러운 걸 상당히 동경합니다.

제 가장 사랑하는 노래는 벅의 '맨발의 청춘'이고요 -_-;; (먼훗날 내 덕에 호강할 너의 모습 그려봐~ 언젠가 네 앞에 이 세상 전부 가져다 줄거야~)

 

여튼.

[검은 해적]을 읽은 건 어릴 적이었고, 꽤 오랫동안 잊고 있다 대학 간다고 집 나간지 한참 뒤에 돌아오니 마마님이 제 모든 책을 공간 차지한다고 버린 지 오래 orz

결국 기억과 인터넷에 의존하여 적어봅니다만. [검은 해적]의 주인공 검은해적은 사랑하는 동생 '붉은해적'을 마라카이보 총독에 의해 잃고 맙니다. 본보기로 처형당하고 목이 매달린 시체를 찾아 해적의 관습대로 바다에 수장하며 그 시체에 복수를 맹세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어째 값 나가 보이는 배 하나를 털었는데 엄훠 입흔 아가씨가 하나 타고 계시네요. '오노라아타'라고 자신을 밝힌 부잣집 아가씨는 당장 몸값 흥정이 잘 되지 않을 경우 상당히 안 좋은 상황에 처해질 지경임에도 참으로 우아하고 품위있습니다. 어째 검은해적에게 호의도 있어 보이고 시간이 갈 수록 검은 해적의 온갖 불법적인 일에도 불구, '너 머시뜸 나 반해뜸' 분위기도 풀풀 풍겨주시구요. 하지만 우리의 검은해적 -_- 이쁜 아가씨도 눈에 안 들어옵니다 -_- 걍 나으 살앙하는 동생 뻘건해적을 죽인 마라카이보에게 복수부터 해야합니다. 이를 득득 갑니다. 하나하나 복수가 성공합니다. 옆에서 이쁜 아가씨가 '검은 해적 홧팅!'을 외치며 응원합니다. 쫌 맘에 듭니다. 동생 복수 끝나면 몸값이고 나발이고 므흣한 분위기 풍길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아... 이 여인의 정체는...!! 어째 집에 보내달라고 징징거리지 않는다 했더니 아가씨 이건 반칙이야 ㅠ_ㅠ

 

지금에 와서 다시 읽어보면 참으로 -_- 예측가능 평범한 내용입니다만 (무려 액션조차 그저그렇다!) 당시로서는 검은 해적과 빨간 해적 사이의 진한 형제애;;가 감동스러웠고 피로 맹세한 복수 앞에선 사랑이고 여자고 나발이고 없는 점이 감명깊었습니다.

 

 

아직도 제 안의 진짜 싸나이-_-에 대한 동경은 죽지 않았습니다만.

[검은 해적]은 이런 제 안의 싸나이-_-에 대한 동경을 일깨운, 에릭 크리스티앙의 [노예 이야기] 다음으로 좋아하는 소설입니다.

마지막 오노라아타가, 사랑했던 남자 검은 해적의 결정을 묵묵히 받아들이는 장면은 지금 생각해도 참 좋아요.

물론 -_- 제가 오노라아타의 입장이라면 이 색히 웃기고 있네 라며 노로 갈기겠습니다만 -_- 해적의 낭만을 생각하며 본인이입은 그만두겠습니다.

 

 

깜딱!

 

    • 검은 해적 붉은 해적 푸른 해적 3형제지요. 3형제의 큰형을 팔아먹은 배신자 반 구르드는 보상금을 받아 지브롤타 어디로 튀는군요. 동생들 다 죽고 검은 해적만 남습니다. 돌추에 섬을 근거지로 한 해적들은 힘을 합쳐 반 구르드를 쫓습니다만 요리조리...여하튼 대승을 거두고 번개호로 돌아오니 반구르드를 버리고 해적편에 붙은 장교 한사람이 "어엇! 저 여자는 반구르드의 딸!" 난 말이지...반 구르드 일족을 다 죽이기로 맹세했단 말이야 그러니 너도.../ 한번씩 목숨을 주고받은 멋찐 싸나이 스페인 귀족을 다시 만나자 스페인 귀족이 난 스페인 귀족, 과거는 잊고 결판을 냅시다..그러면서 검은 해적의 칼에 죽으며 난 괜찮소..귀족으로 싸나이답게 명예롭게 죽으니까...그 귀족을 끌어안고 슬퍼하는 검은 해적. 이 장면이 더 기억이 강하게 나네요. 지금 내 상자 어디에 분명히 있는 책입니다/ 그 전집...몇 권만 남고 버렸네요.
    • 김전일: 아니 제가 책 안 읽으신 분들을 위해 나름 결말 숨겼더니 깨알처럼 스포해주시는 센스 ㅋㅋㅋ 역시 후회하고 자백한 범인마저 죽이는 냉철탐정님 답게 스포도 냉철하셔 ㅋㅋㅋ
      그나저나 검은해적 불쌍치 않나요 ㅠ_ㅠ 저는 바깥물 좀 먹고 왔더니 제 책들 그새 알뜰하게 버려주신 마마님 덕에 다시 읽고 싶어도 못 읽는다는 ㅠ_ㅠ 어디 가면 구하나요 흑흑
    • 추억에 젖는 바람에/ 공증인이라는 단어를 처음 배운 책이기도 하고
    • 저는 반 구르드와 싸울 때 '상대와의 간격은 100m, 눈썹털까지 보이는 거리'(맞나 이 구절 -_-;;)가 잊혀지지 않습니다. 앞뒤 다 필요없고 100m인데 상대의 얼굴 특징이 보인다는 글에 100m 전방에 사람이 보일 때마다 상대를 째려봤던 기억이 -_- 아놔 난 어릴 때부터 시력 마이너스 4였단 말이지;;
    • 닥쳐! 네 놈 목까지 매달면 내가 얼마나 속이 시원하겠니! 쫓겨다니느라 몹시 피곤한 반 구르드님
    • 딸은 잘못 키웠을 뿐이고.
      이래서 딸자식 키워봤자 소용 없다니까 (꺼이꺼이)
    • 어린 시절 책들은 번역이 참 정감이 있고 좋았던 기억입니다. / 그런데 가장 머리에 박힌 책이 검은 해적이라...흥미롭군요 싸나이들 이야기라면 삼총사에 수호지에 그 전집에도 여럿 있었을 텐데
    • 아니 진짜 싸나이 이야기에 총사 주제에 걍 칼쌈놀이 하던 삼총사나 건달패 수호지를 껴넣으시다니 전일님 실망이염 -_ㅠ
      그러나 삼국지는 좋아합니다-_- 정색. 이건 뭐 리얼 사나이가 드글드글.

      (글고 본문에도 적었지만 [검은해적]이 '가장'은 아니랍니다 -_-)
    • 철가면의 거인 포르토스의 죽음도 꽤...그만 오늘 일과를 접어야 겠습니다. 책 이야기 또 다음에 나누면 좋겠는데요. 힛~ 검은 해적 이야기를 듣게 되다니
    • 그러나 마누라 죽이던 아토스는 춈 -_-;;

      안녕히 주무세요 ^^ 저도 설마 [검은해적]을 기억하시는 분이 계실 줄은 몰라서 놀라면서도 반가웠습니다 ^ㅁ^
    • 제가 읽은 책에서는 검은해적,붉은해적,녹색해적 이었어요. 가장 기억나는 장면은.. 재규어(자칼?)와 악어와의 싸움 묘사.
    • 바로 얼마전에 바다에 표류하는 사람들 이야기를 보면서 문득 "검은해적"에 나온 그 아가씨는 결국 어떻게 되었을까 (혹은 얼마나 괴로웠을까)하고 생각한적이 있었는데 여기서 이런 글을 볼줄이야...
      근데 저는 여태 총독의 딸로 기억하고 있었네요. 아무튼 반가운 마음에 댓글 남깁니다.
    • zodiac/총독의 딸 맞아요. 반 굴드가 총독이거든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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