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신 얘기를 빙자한 바보 인증
이십대 초반이었습니다. 그때 한참 윤상의 디스크쇼에서 개그우먼 (그 누구냐, 길 떠나는 은장도 개그 했던 분이요)이 나와서 무서운 사연을 이야기해주던 때였거든요. 사연 중엔 일상에서 대낮에 귀신 본 이야기가 꽤 많았어요. '그냥 평범한 여름 대낮이었습니다. 동생과 저는 여느때처럼 마루에서 구르고 있었죠.' 등으로 시작하는.
딱 고걸 즐겨 듣건 때쯤에 학교 갔다 집에 오느라고 골목으로 들어섰어요.
저쪽에서 예쁜 여자가 걸어옵니다. 아주 예쁜 여자였어요. 예뻐서 계속 쳐다보고 있었는데 그 여자도 계속 저를 봐요. 예쁜 여자를 훔쳐 보는 입장이었던 저는 살짝 안 보는 척 하는 시선이었는데 이미 그쪽에서 저를 보고 있는 겁니다. 눈도 안 피합니다. 저를 보고 웃어요. 머리카락이 쭈뼛 섭니다. 뭐라고 말도 안 하고 그냥 다가오는데 눈에 친근감이 가득합니다.특히 여자가 예쁘다는 것, 그리고 웃고 있다는 게 섬뜩했어요.
골목 안에는 아무도 없습니다. 여자는 점점 다가옵니다. 그러더니 제 팔을 잡으면서 으흐흐흐 웃어요.
중학교 동창 영란이.-_-
고등학교를 각자 다른 곳으로 진학하고 어영부영 연락이 끊겼는데 그쪽은 저를 한 눈에 알아본 거고, 저는 못 알아 본 거죠. 원래 예쁜 아이였는데 중학교때는 김원준 같은 인상이었어요. 예쁜 여자가 아니라 미소년의 분위기. 몇 년 뛰어 넘어서 예쁜 '여자'가 돼서 나타나니까 못 알아 봤죠.
제 평생 가장 초자연적으로(?) 무서웠던 순간 중 하나입니다.
또 하나는 비슷한 상황에서 골목에 쭈그리고 앉아 있던 여자 노인이 갑자기 저를 보면서 입을 크게 벌린 사건. 하품하는 거였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