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싱한 콩나물

 

예전에 엄청 싱싱한 콩나물을 가족 중 누군가가 들고 온 적이 있어요.

누구한테 받았는지 샀는지 정확히 기억이 안나는데 그때 그걸 싱크대 위에 그냥 놔뒀죠.

우리 가족 모두 제 일들과 우리의 일들로 바쁘고 겨를이 없어서

서로 한방에 있다는 것 만으로도 공기가 탁해진다는 생각이 들어서 잠을 잘 수가 없는 시기였습니다.

세탁기 돌리는 건 내가 설거지는 네가 하지만 음식을 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죠.

콩나물은 무척 싱싱해서 잘 시들지 않았습니다.

저는 그것을 다듬어서 절반쯤은 쓰레기로 가득한 냉장고에 넣을 수도 있었지만 힘이 안나더라고요.

가만히 누워있다가 설거지를 하려고 싱크대 앞에 서면 마음이 좀 가벼워졌는데,

고무장갑을 끼고 물을 잔뜩 틀고 있으면 콩나물이 검은 봉투 속에 인심 좋은 양으로 넉넉히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최소한의 양심으로 내가 뭐라도 했다고 말하려고 그 검은 봉지 채로 냉장고에 넣을 수도 있었는데 그러긴 싫었어요.

냉장고 안에는 이미 그런 식으로 넣어놓은 음식들로 포화상태였습니다.

명절때 받은 맛없는 콩떡, 손이 많이 가는 나물, 박스채로 사놓았다가 물러버리려 할때야 냉장고에 자리를 찾은 사과.

우리 가족 중에 냉장고에 있는 것에 손대고 싶어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어요.

가끔 뜻밖에 즐거움으로 간신히 행복해 졌을때는 모두들 집을 피해 나오기 바뻤습니다. 외식을 하고 집에 들어가서 부엌을 지나쳤어요.

여튼 저는 그 콩나물을 그런식으로 넣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러면 부엌에 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조금 안도할 것 입니다.

내 눈 앞에 사라진 콩나물. 내 책임이 사라진 콩나물. 왜 이 콩나물은 나 아니면 처리 할 사람이 없는가.

누가 이걸 왜 들고 왔는가. 아니, 적어도 나 만큼 이 콩나물에 신경쓰는 사람은 있는가.

나는 기력이 없기도 했지만 가족들 보라고 그걸 그냥 시들게 두었습니다.

일주일 너머 싱싱하던 그것이 점점 쪼그라 들어 변해갔습니다. 저는 내내 그 모습을 지켜보았습니다.

그때 안 것이 노란 콩나물은 점점 연두색으로 변하면서 간장에 쫄아든 모양이 되더군요. 나중에는

어휴 징글징글 명 긴 노인 같아. 그래도 싱싱할때보다는 기분이 덜 나쁘더라고요.

모르겠습니다.

저는 그게 숨이 죽어서 누가 봐도 못 먹을 상황이 되자 동생을 시켜서 버렸어요.

마음이 편해졌어요. 더러운 콩나물 같으니라고.

나는 내가 벌을 주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벌을 받고 있었던 것 같아요.

 

몇주째 스트레스 받고 쉬는 날엔 술 마시고 요즘 좀 심하게 한심해요.

또 지겨운 한 주가 시작되네요.

부처님 오신날이 아니었음 어쩔 뻔 했어요.

계속 맘만 바쁘게 살다가 오늘 빨래랑 냉장고 청소를 했는데 갑자기 생각나네요.

 

 

 

    • 아스파라거스의 부재..
    • 얼마 전 싱싱하던 양상추를 두 번이나 고스란히 버렸어요. 그 때의 죄책감이 다시 돌아오는 느낌.
      냉장고 안에 곰팡이 나기 시작한 깻잎 절임이 있어서 문 열기가 겁납니다.
    • 어지간하면 절대 썩지 않는 오렌지 네개가 있어서 그걸 깎는데 슬쩍슬쩍 곰팡이가 나려 하더라고요.
      하나 깎았는데 그냥 네개 다 봉투에 넣는데 얼마나 화가나던지...
    • 그냥 콩나물 이야기일 뿐인데 이걸 영화의 한 장면으로 넣으면 어떨까 자꾸 상상하게 될 정도로 흡인력이 있네요.
    • 글 밑에 이 글은 어떻네요 하고 댓글 다는 거 좀 오그라든다고 생각했는데, 이래서 그러는 거였군요 ㅎㅎ
    • 저는 님 닉네임이 너무 좋네요. 이렇게 오그라드는 손가락을 교환합시다.
    • 나는 내가 벌을 주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벌을 받고 있었던 것 같아요. / 근래에 본...갑자기 내 마음에 어울리는 글입니다
    • 아이고 좋아라. 다 똑같이 고집부리는 와중에 먼저 움직인다는게 어렵죠. 콩나물 그게 뭐라고.. 쫌 지면서 사는게 뭐 어떻다고.. 그래도 지기 싫은 사람 마음,
      글이 참 좋아요.
    • 올 초 까지 현관 앞에 석 달간 놓여있던 ㅇ리바게트 버터크림케이크가 생각나는군요.
    • 짧고 인상적인 소설을 읽은 것 같아요.흡인력 있는 글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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