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써보는 집값얘기

1. 20세기 말 제가 신입수준이었던 시절, 은행 신탁부서에서 주식딜러를 오래했던 저의 사수(당시 대리)는 주식에 대해 많은 얘기를 해주었고, 특히 기술적 분석이라는 신세경을 보여주었습니다.  저는 기술적 분석으로 주식시장에서 돈을 벌 수 없다고 믿었기에 기술적 분석에 크게 신경을 쓴 적은 없었지만  유일하게 피보나치의 수열과 제 5파 이론은 지금도 또렷하고 현실에 대한 정합성이 분명히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제 5파 이론이란 주식시장의 한 파동(사이클)이 5단계를 거쳐 완료된다는 경험적 주장이고,  그 핵심은 가장 높은 꼭지를 찍는 5파는 여러 번의 등락을 거쳐 가장 강력하고 거침없는 상승을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2. 저는 자산시장에서 이것이 바로 그 5파라고 실제로 느껴보았던(사후적이 아닌 당시의 확신) 경험은 2000년의 코스닥 시장과 2006년 가을의 주택시장이었습니다.  어떤 주식 어떤 주택을 사도 값이 오르고,  교사 공무원들이 빚을 내어 주식, 주택을 사는 행태는 전형적인 제 5파의 모습입니다. 그리고 그 절정의, 광폭한 상승뒤에는 급격한 폭락과 지루한 횡보가 있습니다.   저는 당시 주식을 나름 열심히 하고 있었지만 코스닥 기술주는 단 한번도 산 적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집값이 어떻게 될지 어지럽던 상황에서 하루만 지나면 집값이 오르던 2006년 가을, 이제는 꼭지에 왔구나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와이프와 꽤 격렬한 마찰속에 집을 사지 않(못)았습니다.   물론 제가 아주 똑똑했다면 코스닥 주식이든  집이든 빨리 사서 금방 팔고 나올 수 있었겠지만, 저는 범인에 불과해 그 경지에 오를 순 없었습니다.

 

3. 매우 오랜만에 한 2년만에 다시 집에 대한 얘기를 써보려고 합니다.  제가 자신있게 집값은 내릴 거예요라고 글을 쓴게 한 3년쯤 되었고, 전세값이 왜 오를까요?라고 글을 쓴게 한 2년쯤 된 것 같네요. 이제 집값이 내릴 것이다 내지는 내리고 있다는 거의 뉴스로서의 가치가 없어지게 되었습니다.  전세값이 오른다는 건 집값이 약세다라는 반증(Put Option가격 강세)이라는 글을 쓸 때만 해도 집값이 꽤 반등하고 있어, 집값이 오를지도 모른다는 생각들도 꽤 있었습니다만, 잠시 반등후 계속 집값은 줄줄줄 빠지고 있습니다.   그 글에서 특히 주부인 여성분들은 집값이 빠진다고 해도 자가 거주의 편익이 집값하락을 능가한다는 분들도 계셨습니다.  물론 그럴지도 모릅니다.  그렇지만 집값이 주식이나 채권처럼 시장가격이 정확히 산출되고, 그 차액을 매일 또는 매달 결제해야 한다고 해도 과연 그런 선택을 하게 될지는 좀 궁금하기는 합니다.  

     50대의 수도권 가구당 순자산이 한 4억수준(미래에셋 연구조사)이라면 결국 수도권 가구가 평생 마련하게 되는 자산은 평균적으로 5억을 넘기 힘들것 같습니다.   간단히 계산해 보면 서울의 아파트 평균 가격이 5억~5억 5천만원이니 전형적인 50대 수도권 가정은, 5억짜리 아파트 한채와 빚 1억이 있을 것이고 퇴직금으로 빚을 정리하고 은퇴시엔 집한채와 예금 조금이 남게 될 것입니다.   본인 재산이 십수억원이 있다면, 집 말고 예금, 펀드, 주식이 몇억원이상이 있다던가,  작은 빌딩이라도 1채 갖고 있다면 집값이 오르던 내리던 그건 남의 얘기입니다.  그러나 본인이 제가 예시한 그런 전형적인 평균적 가구라면 집값 1~2억원(큰 평수라면 수억원)은 노후의 생활의 질을 좌우할 결정적인 재산입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의학의 발달로 우리는 우리의 할머니 할아버지보다 무지 더 오래 살 것입니다.  교육경쟁은 날로 치열해져 애들에게 들어갈 교육비는 엄청납니다. 

 

4. 한국사회는 아직 은퇴세대를 본격적으로 경험해 본 적이 없습니다.   천황의 신민이 아니라 대한민국 국민으로 호적에 등재된 사람들, 처음으로 대학교육을 받거나 회사란 걸 다녀본 세대들(50년대생)이 이제 은퇴를 목전에 두고 있습니다.  게다가 55년생이후는 적은 수도 아닌 매우 많은 사람들(연생당 80만이상)이 대규모로 매년 은퇴를 합니다.   이 분들은 이제 자녀를 결혼시켜야 하고, 본인들은 20년 어쩌면 30년이 넘는 은퇴생활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 분들이 가지고 있는 자산은 거의 모두다(약 80%)가 부동산(내 집)입니다.   이제 은퇴를 해서 더 이상의 수입이 없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여러 분들이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위의 통계가 틀린(알고보니 그 세대들은 공식적인 재산외 땅에 다 파묻은 현금이 가구당 수억은 된다) 것이 아니라면, 과연 그 분들이 종신까지 그 집을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이 뭐가 있을까요?

 

5. 수도권의 집값이 6.25전쟁이후 지속적으로 계속 오를 수 있었던 것은 1) 급격한 소득의 증가  2) 급격한 인구의 증가 3) 도시화 및 수도권 집중화로 요약됩니다.  제가 나름 자신있게 집값이 향후 전망이 어둡다는 얘기를 할 수 있었던 것은 1) 2) 3) 모두 이제는 그 추세가 종료되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1), 2)는 누구나 다 아실 것이고, 2000년대 수도권 집값의 랠리를 이끌었던 수도권 집중화까지도 이제는 그 추세가 종료되고 있습니다.  90년대 말부터 2000년대 후반까지 수도권 인구는 주로 영남에서 온 250만명의 증가가 있었지만, 지난 해 수도권의 인구가 최초로 순유출이 일어났습니다. 수도권인구의 유출은 공기업 이전 등의 영향도 있을 것이나, 은퇴자의 증가와도 필연적인 인과관계가 있다고 생각합니다.(이건 통계가 아니라 저의 개인적 생각) 

    2006~7년의 광폭한 집값 상승은 과거 집값을 견인했던 3가지 요인이 결합하여 마지막 시세를 분출한 제 5파라고 생각합니다.  주택시장은 주식시장처럼 시장이 꺽였다고 급락이 오진 않습니다만 오랜기간의 부진은 피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게다가, 별 관심이 없는 분들은 모르실 수도 있겠지만, 서울시내 잠재적 주택공급은 사실 향후에도 엄청납니다. (위례신도시, 마곡지구, 강남 및 잠실 재건축, 강동지역 재건축, 미사지구, 용산국제업무지구, 삼성동 한전부지)

 

6.어찌 보면 이제는 뻔한 얘기를 장황하게 쓰는 건, 아직도  종이신문에서는 재건축 시세 바닥, 어쩌구하는 기사들이 계속 올라오기 때문입니다.  서울시의 정책에 따라 재건축은 가끔식 단기적 랠리를 할 수 있습니다만,  장기적으로 집값이 유의미하게 오르는 건 제가 장황하게 쓴 이유외에도 간단하게 가계부채만 생각해 보셔도 답은 명확합니다.  만일향후 수도권 집값이 전반적인 랠리를 한다면 그것은 멀지않은 미래에 한국이 외환위기를 겪는다는 의미라고 생각하셔도 된다고 봅니다.  내재산이 많아서 집값이 오르던 내리던 내집에서 사는 게 좋으신 분들에겐 해당사항이 없으시겠으나,  위의 평균 또는 평균이하의 자산을 보유하신 분들은 빚을 내서 집을 사는 것이, 이사 자주 다니는 게 얼마나 고달푸던, 전세금 올려주는 게 얼마나 피곤하던, 적어도 금전적으로는 별로 좋은 선택이 아니란 생각에 긴 글을 씁니다.  

 

 

PS)통합진보당은 스카우터로서 저의 안목을 절대 배신하지 않는군요.  이제 13석짜리 정당이 마음껏 포텐을 폴발시킵니다.  저는 새누리당과 통합진보당중 누가 더 한국 민주주의의 적인가란 질문을 한다면 고민없이 통합진보당입니다.  정말 협오스럽습니다.

 

 

 

   

    • 집값이 오르지 않을 거라는 것에 (혹은 떨어질 것이라는 것에) 동의합니다. 문제는 가계대출인데요... 집값을 횡보장으로 막는다고 해도 부실대출이
      나타날텐데, 하락한다면 그야말로 헬게이트가 열릴 것 같은데... 이 점을 분명 정치적으로 막을 거란 말이죠. 근데 이걸 인위적으로 성공리에 막으려면
      어떤 부작용이 나타날까요?
    • 그런데 대체 부산의 집값은 언제나 하락할까요? 4년전에 사느냐 마느냐 하던 사람이 다시 그 가격으로 하락하려면 (4년전으로부터) 10년도 넘게 걸릴 거라며 사지 않은 것을 후회하던데요.
    • 잘 읽었습니다. 대체적으로 맞는 말씀 같아요. 저축 많이 한다는 자랑을 교과서로 읽던 시절이 있었는데 가계부채가 이렇게 커졌네요.
      그런데 결론을 더 세분화해서 서울의 대형 주택 가격은 많이 어두울 것이고 소형 주택 가격은 그보다 훨씬 나을 것이다, 라는 예측에도 동의하시나요? 저는 그럴 것 같아서요 ㅎㅎ
      얼마전 1인가구수가 2인가구수를 넘어서서 1인 > 2인 > 3인 > 4인이 됐다고 하는데요, 이런 추세는 인구 유입이 없더라도 주택 수요는 늘 수 있다는 거잖아요. 아무래도 더 작은 집을 원하겠죠? 인구당 주택수 봐도 한국이 낮은 편이기도 하고요. 서울 살던 은퇴자들이 집을 줄일 지언정 지방으로 가서 살 것 같지도 않고.
      어떻게 생각하세요?
    • 전국적으로 집값이 횡보/서서한 하락상태라는것은 동의합니다. 그렇다면, 압구정 현대아파트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현대아파트조차도 2006-2008년 사이의 최고가격에 비해서는 많이 빠진 편입니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파트 자체는 낡은 편이라서 결국 재건축이 향후 5년-10년 이내로는 되기는 되어야 할 텐데요. '압구정 현대아파트'라는 것도 타워팰리스 이후로의 아성이 약해진 것 같기도, 아닌 것 같기도 하고요.
    • 사실 집값이 많이 떨어졌다고 해봐야 2000년대 이후 급등한 강남, 분당 쪽이 많이 떨어졌고, 다른 지역은 또 그렇게 많이 떨어졌다고 보기도 힘들어요. 제가 사는 지역만 해도 아파트 가격이 고점일 때 3억하던 24평 아파트가 지금은 오히려 조금 더 올랐죠. 중대형은 꽤 많이 하락했지만. 중대형 아파트 가격의 거품은 인간적으로 너무 심했었죠. 어쨌거나 지금도 아파트 가격은 거품이 많이 끼었다고 생각하지만 최근 몇 년간 지방 집값은 오히려 오르고, 서울의 소형 아파트도 떨어지지는 않았던 걸 고려하면 아마도 집값이 모두들 생각하는 것처럼 많이 하락하기도 쉽지는 않을 것 같아요. 제가 4년 전에 집을 팔려고 내놨다가 금융위기 터지고 집보러 오는 사람도 없어서 그냥 잊어먹고 있다가 작년에 다시 내놨는데 2주만에 팔렸거든요. 내논 가격보다는 2000만원 깍아주기는 했지만 오히려 4년 전에 내놨던 가격보다는 1000만원 높게 팔렸죠.
    • 최알리 // 본 글의 분석은 대체적으로 투기지역과 중대형 아파트의 경우에만 적용되는 것이 맞지 않나 싶습니다. 준중형 및 소형 아파트와 투기 지역이 아닌 지역의 거주용 집들은 가격이 별로 차이가 없었죠.
    • 수도권은 설명하신 것처럼 계속 내려가는 추세라서 이해가 갑니다. 그런데, 지방 집값이 요 몇년간 상당히 오른 것은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요? 지방도 우리나라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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