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의 시

오늘 아들 아이가 숙제로 적은 시조입니다. 시조..

 

[봄경치]

 

개나리 피어나라. 진달래 피어나라.

이렇게 주문외는데 어째이리 안피나.

봄경치 꽃이없으면 봄경치가 아니라네.

 

(해설 : 3·4 3·4, 3·5 4·3, 3·5 4·4 등의 운율을 맞추기 위해 띄어쓰기 안 함.)

 

 

시 얘기 나온 김에 제가 애장하는 아들의 시 몇 수 적습니다.

 

 

[포도 한 송이]

 

오늘은 미술시간

포도 한 송이 그리다가

아차!

잘못 그렸다.

물감으로 그려서 지워지지도 않고

결국 새 종이 받는다.

아까운 포도 그림.

 

(해설 : 아차! 가 당시 저희 아들의 심경과 표정을 생생히 재현해주어 아주 좋아합니다.)

 

 

[가을]

 

가을이 되면

논에는 허수아비가 참새를

쫓느라 애를 쓴다.

 

과수원은 감따는 아이들을 막다가

결국 빼앗긴다.

 

코스모스는 나몰라라

꽃이나 활짝 피고

 

단풍씨는 멀리가자

하고 잎과 함께

날린다.

 

산에서는 울긋불긋

단풍으로 치장을

하고

 

사람들은 곡식과 과일들을

걷는다.

 

빠알간 고추잠자리는

한없이 끝없는 하늘을

난다.

 

(해설 : 시인이 어린 시절(8살~11살)을 보낸 시골마을의 가을 풍경이 그대로 녹아 있습니다.)

 

 

[야구하기 참 힘드네]

 

이얏! 첫번째 공을 던진다.

볼이다.

에잇! 두번째 공을 던진다.

또 볼이다.

이것 참 던져도 던져도

만날 볼이니 참.

야구하기 정말 힘드네.

 

(해설 : 야구연습에 담긴 인생관조의 정서...는 아니고, 가식이 없어 좋았어요.)

    • 아우 귀여워........깜찍하네요.글솜씨도 좋은 듯.
    • 문학적 소양이 뛰어난 아이 같습니다.
    • 섬세한 소년이군요. 네 번째 시조 특히 맘에 드네요.
    • 재주가 좋네요. 전 두번째 시가 마음에 듭니다.
    • 와 세상에나... 감탄사가 절로 나게 모두 참 좋네요.
      지은이가 느끼고 경험하고 생각한 것들이 자연스럽고 진솔하게 시 속에 잘 녹아있다고 생각합니다.
    • 문학적 소양이란 뭘까요. 보면 책은 거의 안 읽는 편이고, 그렇다고 관찰력이 뛰어나거나 생각이 깊은 타입도 아니거든요. 다만 아이들의 글들엔 묘한 꾸밈 같은 게 있기 쉽상인데(마치 국어책 읽는 부자연스런 소리처럼요), 제 아이는 다행히 그런 방해물 없이 사물이나 생각, 감정을 보고 느낀대로 적는 맛이 있는 듯해요.

      [봄경치]는 요즘 쌀쌀한 봄날씨에 저도 길가의 앙상한 개나리 가지들을 보면서 언제쯤 꽃이 피려나 기다리던 마음이 있던 차에 읽어서 더 좋았구요,
      [포도 한 송이]는 실수로 망쳐버린 그림을 그냥 아무렇지 않게 생각지 못하고 연연해하는 게 예쁘더라구요. 그 심정 공감도 가구요.
      [가을]은 작년에 제가 정든 시골을 떠나 서울 고층아파트 단지로 이사와서 몸과 마음을 앓고 있을 때 읽고서 위안을 많이 받았던 시예요. 아름답고 평화롭던 풍경을 잃었다는 상실감에 시달렸는데, 이 시를 읽고는 제가 잃어버리고 말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아이 속에 그대로 있다는 걸 알게 됐고 어쩌면 저 역시 그 곳을 떠나왔으되 떠난 게 아닐 수도 있다는, 뭐 그런 생각들을 하고 힘을 냈어요. 과수원이 감을 빼앗겼다는 관점이나, 코스모스가 그냥 꽃이 핀 게 아니고 꽃이나 피었다고 적은 것도, 고 한 글자가 들어가니까 느낌이 확 달라져서 신기했고요, 단풍나무 씨앗은.. 전 유년기와 성장기를 아파트촌에서 시멘트처럼 보낸 사람이라 잘 몰랐는데, 가을에 바삭하게 마른 단풍나무 씨앗을 조그만 헬리콥터처럼 띄워날려 놀더라구요, 저희 애는요. 수없이 단풍나무 씨앗을 날리며 행복해하던 아이 얼굴이 저 구절만 읽으면 떠올라요. 그리고 잠자리가 끝없이 하늘을 난다는 얘기를 마지막에 배치한 것도(물론 저희 애는 아~무 생각 없이 적었겠지만) 좋더라구요.
      [야구하기 참 힘드네]는 그냥 귀엽죠, 뭐.:-)
    • 담대한 행 나눔이 인상적입니다.
    • 호레이쇼/ㅋㅋ 막 써서 담대해요. 얼른 나가 놀 생각에 나오는대로 막 적는 경향이..
      이런 시도 있답니다. 제목은 [점심 먹기 전 시쓰기]이고, 점심시간 종이 울렸으나 시 한 편 적어내야 급식을 시작하는 상황입니다.

      꾸루룩, 꾸루룩 배에서 호출이 왔다.
      순식간에 배가 고파오지만 시를 써야 한다. 에휴~

      저게 끝임. 제가 읽고서 성의없이 썼다고 뭐라 하려다가 시적 배경을 떠올려보고는 걍 넘 신랄하다고만 함.
    • brunette/ ㅎㅎㅎ 솔직해서 좋네요. 글 쓰는 태도가 그대로 잘 컸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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