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전 대통령처럼 극단적인 평가를 받는 정치인도 드물지 않나 싶어요

갑자기 뜬금없는 소리긴 하지만 노무현 전 대통령, 그리고 좀 더 넓게 보면 친노세력처럼 극단적 평가를 받는 정치인도 드물지 않나 싶어요. 듀게에는 노 전 대통령이나 친노세력 이야기가 나오면 알러지 반응을 일으키는 분들이 좀 계시는데 긍정적/부정적 평가 차원의 이야기가 아니니까 그런 분들은 숨을 잠깐 골라주시기 바래요.

그게 뭐냐하면 노 전대통령은 한 쪽(보수진영)에서는 종북좌파 빨갱이 취급을 하고 있고 또 다른 한쪽(진보진영)에서는 MB와 다를바가 없는 극악무도한 신자유주의자라고 하고 있으니까 기이한 노릇 아닌가요?  박정희 같은 경우도 상반된 평가가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가 우파였다는 것을 부정하는 사람은 없지 않나요? (남노당 시절 전력은 예외로 하고 집권 후 행보만을 보면 말이에요)

먼저 보수진영에서 노 전 대통령을 좌파로 보는 것은 아마도 참여정부의 대북정책 때문이 아닌가 싶어요. 물론 보수진영의 브레인들은 노 전 대통령이 좌파가 아니라는 것을 알 것이라고 믿어요. 단지 좌파로 몰고 싶을 뿐인거죠. 그래서 그 분이 실제로 어떤 경제적 정책을 펼쳤는지하고는 상관없이 대북 강경책을 쓰지 않았다는 면에서 무려 한미FTA를 적극 추진하고, 이라크 파병을 하였음에도 종북 좌파라고 공격하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진보진영의 경우는 노 전 대통령을 시장주의자 우파로 생각하는데 이 부분에 대해선 저도 동의를 합니다. 진보진영에서 조차 노 대통령 집권 전에 그 분을 진보 인사로 알고 있었다면 그 것은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봅니다. 그래서 아마도 배신감으로 인해 진보진영의 노 대통령에 대한 비판이 더 거셌던 것으로 보이는데 제가 생각할 땐 노 전 대통령은 원래 그런 분이었고 집권 이후에 그닥 변한 것은 없다고 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노 전 대통령이 이명박과 뉴라이트, 박근혜와 수구세력과 조금도 다를바가 없다는 주장에는 동의할 수가 없어요. 경제 정책에 있어서 그들과 큰 차이가 없다고 하더라도 대북, 인권, 언론 등의 정책에선 그들과 차별점을 보일 수 있는 정책을 내 놨거든요. 물론 참여정부 기간에도 노동자가 탄압을 받았고 대추리에서의 무자비한 진압이 있었어요. 2008 촛불집회 때 혁혁한 공을 세웠던 어청수는 참여정부가 키워준 인물이었죠. 그런 부분을 다 인정한다 하더라도 똑 같다는 점에는 동의를 못하겠어요. 이명박 정부=악한 정부, 노무현 정부=착한 정부라는 차원으로 이야기 하는 것은 아니에요. 그리고 만약 노무현정부=이명박정부라고 강력하게 주장하는 분이 계시더라도 더더욱 왜 한쪽에서는 종북좌파, 다른 한쪽에서는 극악무도한 신자유주의자로 공격을 받는지에 대한 미스테리가 풀리는 것은 아니에요. 일단 제가 말씀 드리는 초점은 이명박정부와 노무현정부가 다르다는 것이 아니고 왜 양쪽 진영에서 상반된 평가를 받고 있느냐는 것이기 때문이에요.  

  

    • 다들 자기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한가지 기준으로만 평가하니까 그렇게 되는 것 같아요.
      많은 보수 분들에게 제일 중요한 건 국가 안보이죠. 그러니까 새누리당이 복지 운운해도 되는 거고요.

      그런데 극단적 평가로만 따지면 박정희가 더하지 않을까요?
      최고와 최악 대통령 조사에서 양쪽 다 최상위권이실 것 같은데. ^^;
    • 전 그를 공격하는 사람들에 의해서건 그를 찬양하는 사람들에 의해서건 너무나도 심하게 (좋은 쪽으로던 나쁜 쪽으로던) 과대평가된 정치인이라고 생각해요. 뭐 다들 보고 싶은 것만 보기 마련이긴 하지만 그 정도가 너무 심한 케이스
    • 박 승 전 한은총재가 회고록에서 이렇게 쓰셨는데, 노무현 전 대통령은 서민을 위한 정책을 펴려고 하였으나, 그의 정책들은 부유층의 부를 증가시켰다. 나는 이것을 "노무현의 역설"이라고 부른다, 라고 하셨습니다. 서민들은 노무현 정책의 결과를 기억하고, 부유층은 노무현 정책의 의도를 기억한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특히 부동산과 관련해서요.
    • 노무현 정부는 많은 실책을 저질렀지만 그 중에서도 부동산 폭등을 막지 못했다는 점이 제일 치명적인거 같습니다. 제일 자신만만해 했던 분야에서 와르르 무너지니 총체적인 위기를 초래할 수 밖에 없었고, 소수 지지자들의 열광적인 지지를 빼면 보편적인 국민들의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평가는 부정적입니다. 본문에서 언급하셨듯이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평가가 엇갈리는 이유는 노무현 본인의 철학이 분명하지 않았기 때문이지요. 좌측 깜박이 키고 우회전을 했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그의 정책에는 일관성이 없었습니다. 미처 준비되지 못한 상황에서 덜커덕 대통령이 되었기 때문이지요.
    • 적어도 ... 노무현 정부는 부동산 폭등을 '막지 못한' 것이지 부동산 버블을 '장려'한 건 아니죠.
    • 분양원가 공개에 반대하면서 '10배 남는 장사도 있다'고 하시지 않았었나요?
      저는 대연정하면서 노무현 대통령이 한나라당과 열린우리당이 별차이가 없다는 말이 진심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물대포도 노무현 정권이 원조입니다요
    • 그 다음이 이명박 대통령이었던 점과 정치 공세로 인한 자살 때문에 객관적 평가가 어려워진 면이 있죠. 시간이 흐르면 진정될 거라고 봅니다, 라고 쓰자마자 아닐 수도 있겟다는 생각이 팍팍 드네요.
    •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한가지 기준으로만 평가하니까 그런 현상이 벌어진다는 견해엔 저도 공감이 되네요.

      부동산 폭등을 막지 못했건 , 부동산 폭등을 조장했건 보수진영에서 노 전 대통령을 종북좌파라고 평가하는건 희극 아닌가요? 전 그게 궁금한거죠.
    • ㄴ희극이라기보다는 제 정신이 아닌 거죠.
    • '원래 그런 분이었고 집권 이후에 그닥 변한 것은 없다고 봅니다.' 이 부분은 쉽게 동의할 수 없네요. 원래 그런 분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대통령 되기 전까지는 '안 그런 척' 했었죠. "반미면 어떠냐?"고 했다가 미국의 충실한 삽살개가 됐고, 아파트 분양원가 공개한다고 했다가 말을 바꿨죠. 이런 말에 속아서 지지했다가 실망하고 배신감을 느낀 사람들에게 '속은 놈이 잘못'이라고 하는 건 무리가 있죠.
    • amenic/ 한나라당-새누리당으로 이어지는 집권 및 보수 세력은 늘 자신보다 왼쪽을 종북좌파로 평가해왔습니다. 김대중이라고 달랐던 것 같지는 않네요.
    • 철과와인/
      같은 논리로 '속은 놈이 잘못'이니 노무현을 계승한다는 친노 정치인 안뽑으면 되겠죠
      물론 그 분들께서는 '절대적인 악'인 반새누리 운동에서 뒤에서 총질하는 반역자라고 하시겠지만요
    • 그리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강력한 의지가 들어간 정책에 있어서만은 지금 이명박정부와 큰 차이가 없다고 봅니다. FTA나 대추리나 부산 에이펙이나. 이때 참여정부에서 시민들에게 가한 비민주적인 인권탄압은 지금 이명박정부가 훌륭하게 계승했죠.
    • 철과와인/

      '미국 안 가봤다고 반미냐. 그리고 반미라면 또 어떠냐'고 했지 반미하겠다고 한 건 아닌걸로 기억하는데요. 아파트 분양원가 공개한다고 말한 적이 있는지는 잘 기억이 안 나지만요.
      그리고 철과와인님 의견대로라면 노무현 지지자와 이명박 지지자는 일치해야하고 종북좌파란 딱지는 절대로 붙여져서는 안된다고 보는데 왜 현실은 그렇지 않은걸까요? 전 그게 궁금한거죠.
    • 철과와인/

      제가 생각하는 것보다는 노무현을 과대평가하시는 듯. 저는 노무현이 '원래 그런 사람이었다'에도 동의하지 않지만 '안 그런 척'하다 변할 만큼 노회한 사람인 것 같지는 않아요. 그보다는 대통령이 되고 나서, 자리가 사람을 보수적으로 만들었다고 봐야 하지 않나 싶어요. 대통령이 되고 나니 국민을 상대하기보다는 온갖 기득권 세력들과 협상을 해야 하는데, 그러다 보니 어지간히 오른쪽으로 기울어져도 자신이 균형 감각 있게 처신하고 있다고 착각하게 된 것 아닌가, 그렇게 봅니다.
    • 철과와인/

      탄핵되지 않아서 아까우셨겠습니다.
    • amenic/ 반미하겠다는 뜻이 아니고 미국과 대등하게 할 말은 하겠다는 의미로 저 말을 한 거죠. 당시 효순이 미선이 사건으로 반미 정서가 팽배한 상황에서 저 발언으로 많은 인기를 얻었습니다. 하지만 정말 그랬다고 생각하시나요? 미군 거처를 마련해주기 위해 자국의 국민을 군까지 동원해 개 패듯 팬 정부가 참여정부입니다. 제가 알기로 시위를 진압하는데 정부에서 군을 동원한 건 광주항쟁 이후 처음일 겁니다. 이런 사안에 실망하고 배신감 느끼는 건 당연한 거죠.

      예수/ FTA 추진 과정에 있어서만은 누가 탄핵 좀 시켜줬으면 좋겠더군요. 님 같은 분이야 이명박 개갞끼 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겠지만.
    • 극렬하게 비판이라.... 잘 모르겠어요. 그냥 비판하던 사람들은 그 일을 한 게 노무현이든 이명박이든 그 일 자체를 비판하는 거죠. 되려 노무현이 대통령이면 비판 안 할 것 같던 사람들이 비판한다는 분위기도 있었던 것 같구요. 양측에서 비판받는 거야 그 사람의 정치적 입장이 딱 그 위치에 있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예수/ 좌측에서 노무현 비판해서 노무현 탄핵하려던 사람들 잘 없습니다. 최소한 탄핵 정국 속에 그 논리에 동의할 만한 사람들 찾기 어려우실걸요. 비판한다고 너 한나라당이랑 같은 사람 이렇게 보는 거 피곤해요.
    • 헉? 물대포는 김영삼정부 시절부터 이미 사용되기시작했었어요. 그냥 있는대로만 까도 까기 충분할텐데 왜들 없는거 까지 만들어 까는지 모르겠네요....
    • 근데 새누리당(한나라당) 지지자들과 이야기 해 보면 노 전 대통령이나 진보진영이나 다 똑 같게 생각해요. 진보진영에선 믿고 싶지 않겠지만 그냥 한통속으로 보는거죠.
      진보진영의 의견이야 제가 부연 설명할 필요없이 철과와인님의 의견을 보시면 잘 아실거에요. 그냥 이명박=노무현이에요. 왜 이런 현상이 벌어진 것일까에 대해 의문을 던진거고 노 전 대통령을 긍정적으로 보자는 의견이 아니었는데 역시 대화는 그 쪽 방향으로 흘러가는군요.
    • 예수/탄핵 때 수많은 좌파들의 탄핵반대시위를 못보셨나봅니다. 노무현을 반대하는 것과 탄핵을 요구하는 건 다릅니다.

      amenic/분양원가공개는 공약이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 amenic/ 아닌데요. 철과와인 님이 진보 대표 수장이라도 되나요? 당장에, 한겨레(진보라고 말하기는 그렇지만)나 창비(이 정도면 진보 맞는 듯)나 이런 데서 '이명박=노무현'이라 주장은 소수에 속합니다.
    • amenic/ 말 왜곡하지 않아 주셨으면 좋겠네요. 전 노무현과 이명박이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노 전 대통령의 '강력한 의지'가 들어간 정책에 있어서만은 이명박 대통령과 별 차이가 없다고 말했고요. FTA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노 전 대통령이 이명박 대통령과 어떤 차이를 보였나요? 전 이 점을 말하는 겁니다.
      • 그러니까 이명박은 노무현의 '강력한 의지'만을 '계승'했군요. 세종 신도시는 미약한 의지였던 것이고, 사학 개혁도 미약한 의지, 지역 구도 탈피도 미약한 의지일 거고...



        '강력'이고 '계승'이고 정치적 수사로 그치는 게 아쉬울 뿐입니다요. 아 이명박 강력 작살...
    • 좌측에서 그렇게 보는 거야 경제/노동시장 정책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거라 그런거 아닐까요? 그 부분에 있어서만은 큰 차이 없는 것도 사실이구요. 당장 fta만 봐도...



      그냥 누굴 비판할 때 쟤가 어떠어떠한 건 잘 했는데 이건 못했어 이렇게 잘 얘기 안하잖아요. 그냥 저걸 잘못했어 라고 얘기하지. 노무현의 공에 대해서는 진보진영도 잘 안다고 생각해요. 다만 그걸 굳이 이야기할 이유? 계기? 같은 게 별로 없을 뿐이죠.
    • 노무현의 노자만 나와도 화르륵 불타오르며 죽어라고 까대는걸 딱 두종류 봤네요. 조중동과 철과와인님. 객관적인 평가고 나발이고 존재 자체가 싫은 거 있죠? 안티라고 하나.

      그만큼 무조건적인 옹호도 많이 받는 양반이지만;; 저번엔 박정희에 이번엔 518을 끌어대네요.
    • soboo/
      물대포를 처음 도입한 것은 노태우때(1989년)입니다
      물대포를 추가로 도입해서(2005년, 2006년, 2007년) 시위대에게 신나게 쏜 정부가 노무현 정부죠
      물대포 관련해서 노태우가 시조 노무현이 중시조 정도 되죠
    • amenic님이 궁금해하시는 그 현상의 기초는, 늘 그들보다 약간이라도 왼쪽에 있으면 '종북좌파' 딱지를 씌워온 '민정-민자-한나라-새누리'의 스펙트럼에 있습니다. 그게 이유인 줄 다들 알지 않나요? 노무현도 자칭 좌파 어쩌구 하면서 그 프레임을 인정하며 말려들어가기를 주저하지 않은 거고요.
    • Durazine/ 철과와인님 편 들자는 건 아닌데 노무현 얘기만 나오면 까대는 게 아니라 주로 fta 같이 철과와인님이 관심가지는 분야에서의 노무현의 실책(이라고 여기는 부분)을 비판하신다고 생각했는데요. 이유없는 안티라고 하시면 철과와인님 좀 억울하시겠어요.
    • Duranzine/ 제 말에 사실관계가 틀린 게 있나요? 과연 어떤 게 객관적인 평가일까요? 저에게는 5.18을 끌어들인 것에 열 낼 게 아니라 5.18 이후 처음으로 군인을 투입해서 시민들을 무차별 폭행한 것에 열을 내는 게 정상적인 사고인 것 같습니다만.

      amenic/ 님 말에 답이 담겨있는 것 같은데요. 새누리당 사람들은 자신들보다 왼쪽은 모두 '좌빨'로 모니 이 모든 사단이 벌어지는 것 아닌가요?
    • rad/ 아니 그걸 알면서도 "그리고 물대포도 노무현 정권이 원조입니다요" 라고 하신건가요? 그니까 있는 사실만 갖고도 얼마던지 깔 수 있는데 왜 굳이 오바질이냐고 하는겁니다.
    • soboo/
      mb정권만 물대포를 사용했다고 하니까 하는 말이죠
      노무현 정권 전에 물대포가 3대 였는데 11대 추가 도입해서 14대를 시위 현장에 사용했으니(367%증가) 웃기지 않나요?
      이명박의 11시 물대포 뭐라고 하는데 노무현 정권은 새벽 1시에도 물대포를 쏴댔거든요
    • rad/ 아니 누가 뭐래요? 본인도 잘 알면서(노무현 정권이 물대포 원조가 아니라는거) "그리고 물대포도 노무현 정권이 원조입니다요" 라는 말을 하냐는 거죠.
      '원조'의 사전적 의미까지 끌어 와야겠습니까? 굳이 할 필요도 없는 과장을 섞어서 신뢰성을 스스로 실추시키냐는 말입니다. 제가 딴지를 거는 이유는 반박이 아니라 안타까워서 그래요.
    • soboo/
      안타까워 안 하셔도 되는데요
      3대하고 14대하고 차이가 있는데 신뢰도가 왜 떨어진다는 건지요
      대연정이 노무현 대통령의 구국의 결단이었는데 뱁새들이 반대해서 실패했다고 주장하시는 양반들도 멀쩡하게 활동하는데요
    • rad/ 아니 왜 자꾸 다른 이야기를 하세요?
      원조라고 한게 과장이었다고 인정하는게 그리 어렵나요? 뭐 그만큼 노무현에 대한 적개심이 깊으신거라 이해는 합니다. 님을 안타까워 하는게 아니라 그런 쓸데 없는 적개심과 과장과 뻥튀기로 노무현에 대한 정당한 비판까지 싸잡아 급이 떨어지는게 안타까워서 그래요. 종북주사파들 때문에 진보세력 전체가 욕 먹는것이 열받는것과 마찬가지로 말입니다.
    • soboo/
      글쎄요 "10배 남는 장사도 있다" "본질은 도청이다' '구국의 대연정' 이런 것도 다 옹호하는 양반들에게 정당한 비판이라는 것은 통하지 않는데요
      노무현이 경제관료들에게 100% 사기 당해서 한미fta 추진했고 아무 책임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정당한 비판이요?
      서로 각자 할 이야기만 하면 되는 거죠
    • rad/ ? 그냥 "노무현이 물대포 원조"라는 뻥을 치길래 "김영삼때부터 이미 사용되어 왔다"고 한것입니다. 그냥 있는대로만 까도 되는걸 굳이 없는 사실까지 만들지 말라고 하는거에요. 그런데 계속 동문서답이네요. 그냥 저 놈들은 개새끼니까~ 막 이래도 되!!! 인건가요?
    • soboo/
      노무현 fta는 착한fta 이명박의 fta는 나쁜fta라고 하는 마당인데요 뭐 어떻습니까?
    • '물대포 원조'라는 부분에서 노무현의 책임을 빼놓을 수 없는 이유는, 93년부터 2001년까지 물대포가 사용된 경험이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YS 때까지 사용되던 물대포가 다시 사용되기 시작했던 것은 너무나 분명하게도 노무현 당시, FTA 반대 시위를 저지하기 위해서 동원됐었죠.

      물대포에 있어서 노무현이 책임이 없다고 말할 때조차도, 이른바 '명박산성'에 대해선 노무현의 책임을 면할 수 없죠. 지금과 같은 명박산성, 콘테이너와 경찰차를 동원한 공간의 차단은 노무현 정권 때 최초로 가장 적극적으로 사용됐던 전술이거든요. '팩트'에 잘못된 것이 있다면 얼마든지 수용할 수 있지만, 아마 '팩트'를 따지자면 노무현 정권의 책임을 어물쩍 넘기기 어려울 겁니다.
    • 24601/ 아니.... 님까지 이러시면 안되죠 -_-;;
      "'물대포 원조'라는 부분에서 노무현의 책임을 빼놓을 수 없는 이유" 라니요? 무슨 원조에 책임을 운운할 수가 있어요? 그냥 원조는 원조일 뿐입니다. 노무현이 원조가 아니라는건 팩트자나요. 아니 왜들 그렇게 구차하고 구질구질한거에요?
      "노무현도 물대포를 쐈다" 면 충분합니다. 마치 노무현시절은 태평성대로 모든 시민들이 행복하게 살았다는 듯이 생각하는 극히 일부의 멍청한 노빠들이 답답하셔서 그러는 심정은 이해가 가요.
      제가 좌파들의 프로파간다의 뻥치기 습관을 질색하는 이유는 대중적인 민주주의 사회에서 전달하는 정보의 진실성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노무현이 원조다"와 "노무현도 했다"를 어거지로 끼어 맞출 필요가 없어요.
      그냥 "노무현도 물대포 쐈다"만으로도 충분하다는 겁니다.
      칠레FTA 당시 전농에서 "농민들 다 죽는다"고 했는데 그래서 다 죽었나요?
      다 죽은거나 마찬가지, 이제 다 죽어가는 중이다라는 구차한 변명이나 설명을 굳이 할 필요 없이....
      한칠레FTA를 하면 농가의 이런 저런 부분에서 피해가 있으니 그에 따른 대책을 보장해야 한다 > 보장 하지 않으면 결사반대하겠다....라고 나갔어야죠.
      시간이 흐를수록 무책임하고 주관적인 과장과 뻥치기는 꼭 신뢰하락이라는 부메랑으로 돌아오게 되어 있습니다.
    • 아니 버스로 길막는 것까지 노무현이 최초입니까? 아직도 '이게 다 노무현때문'이라니..
      설마 둘러싼건 노무현이 최초라고 하고 싶은건가요?
    • soboo// 저까지 이러면 안된다니 무슨 말씀인지 모르겠네요. 저야 말로 노무현이라면 이가 바득바득 갈리는 사람인데요.

      영화처럼, soboo// '버스로 길막기', '현수막으로 가난한 동네 가리기', '콘테이너로 봉쇄하기' 등등이 모두 노무현 정부 때 최초라면 이해하시겠습니까? 이건 무엇보다 '팩트'에요.

      물대포요. 당연히 노무현이 처음이 아니죠. 그런데 제가 알기로 92년부텨 2002년까지 물대포는 시위현장에 등장하지 않았습니다. YS 정권 하에서도 말이죠. 10년이면 세상이 바뀐다는 기간입니다. 그 기간이 지나 다시 물대포를 등장시키고, 물대포 차량을 '업그레이드' 하고, 물대포 차량의 수량을 '확대'한 것이 노무현 정권 시절입니다.

      이 모든 것을 'DJ' 정권 탓으로 돌린다면 저부터도 반발하겠지만, DJ와 노무현은 너무나 큰 차이가 있습니다. 시위에 대한 대응에서부터 말이죠.
    • 24601 / 팩트는 무슨... 버스로 길막기는 제가 대학다닐 때도 시위때마다 등장했고, 그 이전에 광주민주화운동때 시민들도 시도했습니다.
      아니 바리케이트 설치는 시위대의 고전적인 방법인데, 닭장차 등장할때부터 시작되었던 버스로 길막기가 2천년대에 들어서 최초로 등장한게 팩트라고 당당하게 말씀하시니 황당하네요.
    • 영화처럼// '시위대의 고전적인 방법' 드립까지 하시니 어이없네요. 경찰이 자신들의 버스로 시위대를 봉쇄한 사례를 노무현 정권 이전에 들어보세요. 노무현 정권 이전에는 어찌됐든 경찰 몸빵에 의해 시위대를 막는 전술이었고(여기에 대한 가치판단은 다를 수 있습니다) 그게 '팩트' 입니다. 시위좀 해보셨어요?
      • 나원... 눈앞에서 봤던 사실을 이야기하는데 드립 운운하는 건 참 무례한 반응이군요. '팩트'라는 용어에 제가 모르는 무슨 수사적인 다른 의미가 있는건가요? 전 시위를 주동하는 세력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우리땐 시위가 생활이었어요. 닭장차로 벽을 치고 학생들 토끼몰이 하는건 일상풍경이었다고요. 너무 흔해서 따로 사례를 들라니 당황스럽군요. 80년대 시위현장을 보시긴 한건가요? 아님 시위를 책으로만 배우셨나요? 도대체 버스로 길막기가 노무현때 시작된 것이 팩트라는 어이없는 주장이 어떻게 가능한건지 이해할 수가 없네요.
        • 제가 위에서 이미 적었잖아요. 적어도 1992년에서 2002년까지 경찰 차벽은 없었다고요. 그 얘기가 뭐냐면 그 잘난 노무현이 최소한 10년은 거슬러 민주주의를 후퇴시켰다는 겁니다.
          • 아니 물대포 얘기 하셨지 언제 차벽 이야기를 했어요?
            그리고 92년부터 역사가 시작되기라도 했습니까? 노무현이 최초라는게 팩트라고 주장하시더니 이제는 92년 이후로 최초라는겁니까? 본인이 쓴 글을 좀 읽어보세요.
            "'버스로 길막기', '현수막으로 가난한 동네 가리기', '콘테이너로 봉쇄하기' 등등이 모두 노무현 정부 때 최초라면 이해하시겠습니까? 이건 무엇보다 '팩트'에요."와 "적어도 1992년에서 2002년까지 경찰 차벽은 없었다고요. 그 얘기가 뭐냐면 그 잘난 노무현이 최소한 10년은 거슬러 민주주의를 후퇴시켰다는 겁니다."는 같은 이야기가 아닙니다.
            soboo님 말씀대로 "노무현이 원조다"와 "노무현도 했다"를 어거지로 끼어 맞출 필요가 없습니다. 팩트는 '노무현도 차벽을 쳤다'는 것까지만입니다. 주장을 강조하기 위한 과장이 지나치면 주장의 신뢰성도 훼손됩니다.
    • Duranzine/ 근데 5.18 이후로 시위현장에 군대가 투입된 적이 있나요? 대추리에 한정해선 타당한 비교라고 생각되는데요... (노무현 시기)부산 에이펙 때도 해군이 투입되었다고 하는군요. 지금 당장 제주도 강정마을에 해군이 투입된다고 하면 이명박이 민주주의 후퇴를 가져온다고 난리를 치실 분들이 왜 이래여...
    • 여기서 조금 더 댓글이 진전되면 노무현과 박정희, 전두환도 다를 바가 없다는 말까지 나오겠네요. -_-;
    • 영화처럼// 조 모 교수처럼 당시 외국에 계셔서 잘 모르시나요?

      님이 인용한 제 문구 부분은 노무현이 최초라고요. '버스로 길막기' '현수막으로 가난한 동네 가리기' '콘테이너로 봉쇄하기' 이 세개의 시위 대응법이 노무현 이전에 사용된 적이 없다고요. 님이 아는 사례가 있으면 좀 들려달라니까요. 개인적 경험이든, 언론에 보도된 것이든, 책에 기록된 것이든 그것이 어떤 형태도 좋으니까, 노무현이 최초가 아니라는 증거를 대보세요.

      제가 아는 한도 내에서 님이 예전부터 있었다고 주장한 '경찰차벽'(버스로 길막기)도 제가 아는 최소한 1992년부터 2002년부터 없었다고 주장한 겁니다. 이 시기에 물대포도 마찬가지로 사라졌었고요.

      즉 님의 말대로 '경찰차벽'이 예전부터 있었던 것이라면, 최소한 1992년부터 2002년까지 경찰차벽이 시위 진압에 사용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노무현 정권은 시위진압방법에서 이전 군부정권의 방법을 부활시켰다라는 겁니다.

      이해를 잘 못하실까봐 다시 정리해드리면.

      1. 물대포는 이전에도 있었다. 하지만 1992년부터 2002년까지 물대포는 등장하지 않았다.

      2. 경찰차벽, 콘테이너 봉쇄, 현수막으로 가난한 동네 가리기는 노무현 정권이 최초다.

      3. 님의 주장대로 경찰차벽이 예전에 있었다고 할지라도, 최소한 1992년부터 2002년 사이에는 경찰차벽이 시위진압에 사용된 적 없다.

      4. 따라서 님 주장대로 하면 노무현은 '경찰차벽'이라는 군부독재 시절의 시위진압 방법을 부활시킨 것이다.

      이해하시겠습니까?

      위 1~4번까지 제가 잘못된 사실을 제시했다면 증거를 대보세요.

      amenic// 노무현을 박정희 전두환과 다를바 없다고 주장한 적은 없습니다. 그는 시위 진압에 있어서 새로운 경지를 열었을 뿐이죠.
      • 다를 바가 없는게 아니고 한술 더 뜬 사람이라고 평가를 하시는군요.
    • amenic// (요새 어떤 회원분이 자주 쓰는 방법을 본따자면)노무현의 자리에 이명박을 앉혀보세요. 현 정권에서 비판받는 수많은 시위진압 방법이 노무현 시절에 등장한 것이니까요. 영화처럼님의 의견을 받아들이자면, 군부독재와 비견되는 이명박 정권의 시위진압 방식은 노무현에 의해 부활한 것이니까요.
    • 보수와 진보 양쪽에서 노 전 대통령에 대한 해석이 왜 엇갈리는걸까라고 질문을 던진건데 역시나 결론은 '노무현 나쁜 놈'으로 끝나는군요. -_-
    • 공권력 또는 시위 진압의 선진화(?)라고 생각해야 겠죠. 최루탄이 없어지고 권위주의 정부 처럼 막무가네로 때려 잡을수 없어지니까 새로운 첨단(?) 장비을 적극적으로 도입을 시작했던게 참여정부인것으로 알고 있어요. 집시법이 참여정부시절 좀 고약하게 개정되어서 도심에서 시위는 거의 불법이라 어쩔수 없이 게릴라식으로 시위을 비번하게 시작한 것도 이시기죠.

      시위대을 해산하거나 잡을려고 물대포, 최루액, 테이져건, 체증을 위한 헬기나 사진기사 전경(?), 체포조등을 적극적으로 재도입하거나 새로 도입한거죠.
      참여정부 쓰던 방법을 이명박 정부도 쓰지만 개인 미디어의 발달로 폭력적인 진압방법은 인터넷에서 즉각적인 반응을 보이기 때문에 정치적 고려을 생각해서 그런지 세련(?)되어지고 상대적으로 덜 폭력적으로 변한거 같아요.
      지금도 상대적으로 덜 관심을 받는 노동관련 집회는 양측 모두 폭력적이죠.
    • 24601 / .... 누가 외국에 있었답니까? 하지 않은 이야기 덧붙여서 논점을 흐리지 마세요.

      1. 물대포는 이전에도 있었다. 하지만 1992년부터 2002년까지 물대포는 등장하지 않았다.
      => 저는 물대포 이야기 한적 없습니다. 24601님께서 "제가 위에서 이미 적었잖아요. 적어도 1992년에서 2002년까지 경찰 차벽은 없었다고요"라고 하셨죠. 그런데 이 이야기 전에 24061님은 "콘테이너와 경찰차를 동원한 공간의 차단은 노무현 정권 때 최초로 가장 적극적으로 사용됐던 전술"이라고 했지 '1992년에서 2002년까지'라는 기한한정은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2. 경찰차벽, 콘테이너 봉쇄, 현수막으로 가난한 동네 가리기는 노무현 정권이 최초다.
      => 이미 80년대부터 경찰차벽이 있었다고 개인적인 경험을 말씀드렸습니다. 이부분이 팩트가 아니라고 계속 말씀드리고 있고요.
      3. 님의 주장대로 경찰차벽이 예전에 있었다고 할지라도, 최소한 1992년부터 2002년 사이에는 경찰차벽이 시위진압에 사용된 적 없다.
      => 저는 이부분에 대해 언급한 적이 없습니다. 이 부분이 사실이라 해도 님의 2번주장이 사실이 아니라는 점은 변함이 없습니다.
      4. 따라서 님 주장대로 하면 노무현은 '경찰차벽'이라는 군부독재 시절의 시위진압 방법을 부활시킨 것이다.
      => 이건 24061님의 주장이고, 님의 주장에 대해서도 저는 이야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이것 역시 님의 2번주장이 사실이 아니라는 점에 영향을 미치지 않습니다.

      이해하시겠습니까?
      저는 처음부터 2번이 사실이 아니라는 것만 지적했습니다. 그것도 노무현 때 차벽을 사용하지 않았다는게 아니라, 그것이 노무현이 최초가 아니라는 사실을 말씀드렸습니다. 1,3,4번은 24601님께서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기위해 가지를 치신 것일 뿐, 저는 언급한 적 없습니다.

      아니, 최초라는 본인의 주장이 틀렸다는 걸 인정하는게 그렇게 어렵습니까?
    • 영화처럼// 문제를 님의 주장처럼 '경찰차벽'에만 한정짓는다면, 제가 위에서 요구한 것 처럼 님은 그것이 개인적 경험이든, 언론의 보도든, 기록된 책이든 어떤 증거를 제시하면 됩니다. 아마 영화처럼님은 토끼몰이 후 연행을 위해 경찰버스를 동원한 것과 '경찰차벽'의 이용을 혼동하는 게 아닌가 싶네요. 2000년대 이전 경찰버스는 명시적으로 시위대를 막기 위한 바리케이트로 사용된 적이 없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전경과 시위대의 직접적인 접촉으로 인한 인명의 사상을 막는데 도움을 준다는 측면에서 '진보'된 것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애시당초 특정 시위 장소의 진입과 출입을 가로막는다는 점에서 이는 집회와 시위의 자유라는 헌법에 보장된 기본권을 제한한 일이기도 하죠.

      제가 말하고 싶은 부분은 바로 이 부분에 있습니다. 님의 주장이 사실일 경우에조차, 그것이 노무현 정권의 시위진압 방법이 더 민주주의적인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논의의 진전을 위해서는 두 가지를 제시해주시면 됩니다. 첫번째 쟁점은 간단한 사실의 확인입니다. 경찰버스가 2000년대 이전 시위대를 방어하기 위한 바리케이트로 경찰에 의해 이용된 적이 있었는가. 두번째 쟁점은 더 복잡한 것이기는 하지만, 우리가 단지 전경의 시위진압 전술에 대한 오타쿠적 관심만 있는 게 아니라고 한다면 더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변화한 경찰의 시위진압 전술이 과연 민주주의적 권리의 확대 혹은 축소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 하는 점입니다. 영화처럼님과 몇몇 분이, 쟁점이 되는 경찰의 몇몇 시위진압 전술이 노무현 정권 때 최초가 아님을 끝까지 강변하고 싶은 것은, 노무현 정권이 집회와 시위의 자유라는 민주적 쟁점에서 진일보한 정권이었다고 주장하고 싶은 것 아닙니까?(이게 아니라면 굳이 논쟁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이 드네요.)

      첫번째 쟁점의 경우 영화처럼님이 증거만 제시해준다면 얼마든지 제 주장을 철회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여전히 집회와 시위의 자유가 법적으로 보장되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두번째 쟁점은 여전히 현실적이고 중요한 쟁점이라고 생각합니다.

      ------------------------

      추가 : 제가 잘못 알고 있을까봐 한두시간 검색해봤습니다. 제가 찾은 것은 조선일보 자료입니다. 2006년에 보도된 기사입니다.

      http://srchdb1.chosun.com/pdf/i_service/pdf_ReadBody.jsp?Y=2006&M=11&D=14&ID=2006111401336

      "차벽은 지난 2002년 고(故) 효순·미선양을 추모하는 광화문 촛불시위 때부터 등장한 방법이다. 집회시위 현장에서 최루탄이 사라지면서 경찰과 시위대의 직접적인 충돌로 많은 부상자가 발생하자, 경찰과 시위대의 거리를 확보하기 위해 만든 우리나라만의 독특한 진압방식이다."

      물론, 2000년대 이전 자료를 인터넷으로 검색하는 데 한계가 있을 수 있습니다. 아마 '조선일보'라는 이름도 못미더울 수 있겠죠. 네이버의 '뉴스라이브러리' 검색에서도 찾기는 힘드네요. 보통은 2002년 효순ㆍ미선 촛불시위 때부터 '차벽' 설치에 대한 기사를 찾아볼 수는 있습니다. 일단 저는 좀 더 자료를 찾아볼 생각입니다.
    • 24601 / 개인적인 경험은 계속 제시했지않습니까. 사진을 제시하라는 건가요? 저도 인터넷을 뒤져봤지만 사진은 찾기 힘드네요. 최근의 도로봉쇄장면과 '80년대로 돌아간것 같다'는 시민들의 소감만 잔뜩 검색되네요. 그런 소감을 이야기하는 시민들도 저와 같은 장면을 공유하고 있겠죠. 어쨋든 시위때마다 도로양쪽으로 길게 늘어서있던 경찰버스에 대한 기억을 애써 외면하려는 건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간신히 찾은 건 말씀하신 2002년 효순,미선양 추모시위때의 차벽 사진입니다. 2002년 12월이니, 노무현 이전에 차벽이 사용되었다는 사실의 확인이 되겠죠?
      http://smallstory.tistory.com/64

      그리고 저는 처음부터 '버스로 길막기'를 지적했습니다. 마지막 댓글에서 제가 용어를 혼동하긴 했지만, 저는 처음부터 명박산성 스타일의 차벽치기에 한정해서 말씀드리지 않았습니다. 버스를 이용해 시위대의 진로를 방해하고 도주로를 차단하는 진압형태에 대해 이야기했죠. 댓글이 진행되는 중에 '경찰차벽'(버스로 길막기)으로 범위를 좁힌건 24601님입니다. 애시당초 서로 다른 의미로 이야기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군요.

      "제가 말하고 싶은 부분은 바로 이 부분에 있습니다. 님의 주장이 사실일 경우에조차, 그것이 노무현 정권의 시위진압 방법이 더 민주주의적인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 님이 주장하고 싶은 부분이 이부분인건 알겠는데, 거기에 대해서는 전 가치판단 하지 않습니다. 그건 24601님의 의견이니까 그대로 존중합니다.

      "영화처럼님과 몇몇 분이, 쟁점이 되는 경찰의 몇몇 시위진압 전술이 노무현 정권 때 최초가 아님을 끝까지 강변하고 싶은 것은, 노무현 정권이 집회와 시위의 자유라는 민주적 쟁점에서 진일보한 정권이었다고 주장하고 싶은 것 아닙니까?(이게 아니라면 굳이 논쟁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이 드네요.)"
      => 이부분은 24601님의 오독입니다. 전 노무현 정권의 시위진압이 민주적이지 않았다는 주장을 하기위해 사실관계를 과장하지 말라는 이야기를 하는 겁니다. '원래 있었지만 한동안 사용되지 않던 비민주적인 시위진압 방법을 노무현 정권때 다시 사용했다'는 주장과 '노무현이 최초다'라는 주장은 마찬가지 의미라고 퉁치고 넘어갈 수 있는 표현이 아니란 말씀입니다.
    • 영화처럼// "시위때마다 도로양쪽으로 길게 늘어서있던 경찰버스에 대한 기억" => 애시당초 그런 기억이면 문제될 것이 없었습니다. 저는 처음부터 분명히, 경찰버스를 이용한 시위 대응전술로서 차벽을 말했던 겁니다. 애시당초 경찰버스를 길거리에 세워놓아 교통이 막히는 게 문제였다면 제가 문제제기할 것도 아니었습니다.

      게다가 영화처럼 님은 이렇게 썼습니다.

      "닭장차로 벽을 치고 학생들 토끼몰이 하는건 일상풍경이었다"

      이게 "시위때마다 도로양쪽으로 길게 늘어서있던 경찰버스"와 같은 뜻으로 읽히나요?

      제가 계속 1992~2002년을 얘기한 건 2002년 12월 촛불시위 때 차벽을 세웠던 기억이 있어서였습니다. 물론 그 부분에 있어서 노무현이 2002년 12월 대통령에 당선되고 2003년 2월 취임했으니, '노무현이 최초다'라고 말한 건 제 잘못임을 인정합니다.

      그럼 경찰 차벽의 책임을 DJ에게 물어야 할까요? 임기를 2개월여 남겨놓은 대통령에게? 그것도 전 온당케 생각되지는 않습니다. 제가 찾은 기사는 2006년에 나온 겁니다. 즉 2003년 노무현 대통령 취임 이후 경찰 차벽을 이용한 시위 대응전술이 일반화됐고, 그것이 사회적 문제로 제기되면서 '자제하겠다'고 경찰청장이 말한 겁니다. 바로 노무현이 대통령에 있던 시절이죠.

      다시 정리하면, 차벽은 2002년에 최초로 사용됐습니다. 여러 증거상 말이죠. 즉, 제가 '노무현이 최초다'라고 말한 것은 잘못된 사실입니다. 그러니 정정하겠습니다. 제가 처음에 썼던 문장 "경찰차를 동원한 공간의 차단은 노무현 정권 때 최초로 가장 적극적으로 사용됐던 전술"에서 '최초'를 삭제하고 몇 가지를 고쳐 "경찰차를 동원한 공간의 차단은 노무현 정권 때 본격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했던 전술"이라고요.('최초'를 빼고 '시작'을 넣었다고 같은 말 아니냐고 말하진 마세요. DJ말 '최초'로 시도됐지만 '본격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한게 노무현 정권이라는 뜻이니까요.)

      정작 가장 중요한 부분에 대해서는 '가치판단'을 하지 않으시겠다니 뭐라 말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우선은 넘어가죠.

      오독이라는 부분에 대해선 두 가지만 말씀드리죠. 일단 "다시 사용했다"도 사실은 아니죠. 어찌됐든 님의 착각과 달리 경찰 차벽이 2002년 최초 사용됐음이 제가 찾은 자료와 님이 찾은 자료 양자에서 공통되게 드러나고 있으니요.

      게다가 전 그 둘(최초다, 다시 사용했다)을 "마찬가지 의미라고 퉁치고 넘어"가고자 한 바 없습니다. 오히려 전 영화처럼님의 주장(다시 사용했다)이 사실이라면 노무현 정권이 군부독재정권의 비민주주의적인 시위 대응전술을 부활시킨 것이다라고 주장했습니다. 물론 2002년 12월 처음 사용됐으니, 군부독재 정권의 시위 대응전술 부활은 아님이 밝혀졌습니다.
    • 26401 / 참 인용과 연결을 임의대로 해서 자기주장의 근거로 쓰지좀 마세요. 전 노무현이 최초라는 주장이 틀렸다는 지적만 했습니다. 그걸 인정하기 싫어서 여기까지 끌고온건 24601 님이죠. 이제야 마지못해 인정하면서도 구구절절 사설이 길군요. 누가 김대중대통령 책임을 물었나요? 오히려 여전히 노무현 당선자의 책임론을 물고 늘어지는게 구차스럽네요. 노무현의 시위진압이 민주적이지 않았다는 걸 주장하려면 그것만 주장하면 됩니다. 그걸 주장하기 위해 노무현이 최초로 했다는 잘못된 사실을 호도하지 말라는 이야기 하나만 계속하고 있으니 논점 좀 흐트리지 말아주십시요.

      '시위때마다 길가에 늘어선 전경버스'가 무슨 용도로 쓰였을것 같습니까? 교통정리라도 하려고 서있었다고 생각하는건가요? 진로와 퇴로를 막고 시위대를 몰아 체포를 용이하게하는 장벽으로의 기능을 당시에도 수행했다고 이야기하는데도 자꾸 못들은척 하니, 벽보고 이야기하기도 지치네요.

      계속 이야기했지만, 버스로 길을 막아 시위대에 대응하는 형태의 차벽은 2002년 이전부터 사용되었습니다. 님이 잘못을 인정하는 근거가 된 사진속의 차벽 형태는 제가 계속 말씀드렸던 그시절 풍경과 다르지 않다고요. 착각한건 제가 아닙니다. 님이 계속 주장하신 차벽이 산성형태로 시위대의 진입을 원천봉쇄하는 형태를 말씀하신 거라면, 2002년의 사진과도 다른거죠. 2002년 사진의 차벽을 인정하신다면, 제가 계속 이야기한 '버스로 길막기'도 같은 형태라는 말입니다.

      님의 마지막 문장은 여전히 오류입니다. 찾을수 있었던 사진이 그것뿐이지 2002년 12월 처음 사용도 아니고, 밝혀진 것도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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