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항) 학림을 다시 방문했어요.

거리가 먼 곳인데 (대략 4~50분 정도) 약속이 그 근처에서 잡히는 경우가 많아 올해는 학림에 자주 가게 됩니다.


처음 방문했던 기억이 아직도 뚜렷합니다. 월드컵 이태리 전 때였으니까요. 그전까지 학림은 머릿 속에서는 책에서 보던 도시전설(...) 속에서나 존재하던 곳이었죠. 김지하나 김승옥, 전혜린, 등이 드나들던 곳이었다니 들어는 봤지만 실제로 있을까 싶은 상상 속의 공간이었어요.

월드컵 기간은 아시다시피 사람들이 거리에 바글바글한지라 스크린으로 중요한 경기를 보기가 보통 어려운게 아니었습니다. 친구와 상의 하에 가까운 까페에 들어가기로 합의를 했는데 근처에 익숙한 간판 하나가 눈에 띄더군요. 그래서 학림에 들어가게 된거죠. 시절이 하 수상(?)한 기간이라 tv가 당연히 비치되어 있었고요 

지금이나 당시나 커피를 좋아하지 않던 시절이라 학림의 커피를 마시기는 커녕 차를 선택했어요. 워낙에 중요한 이태리 전이라 학림을 구경하기 보다는 축구에 정신이 더 정신이 팔렸고요.

계산 후 경기를 지켜보던 저희는 안정환의 골든골이 들어간 순간 거리로 뛰쳐 나가 광란의 밤을 보냈습니다.



10년 뒤에 방문한 학림에서는 당연히 tv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 오랜 기간이 지나서야 찬찬히 학림의 모습을 볼 수가 있었어요. 비흡연자인 제게 흡연석인 2층은 출입금지인 곳이었지만

요. LP를 틀어주더군요. 까페, 아니 다방에서 나오는 음악이 100% 클래식 음악이었습니다. 다행히 최근에 취미를 붙이기 시작한지라 연주자가 누군지 짐작해보기도 했고 의외의 연주를 들어보기도 했습니다. 가령 골드베르크 변주곡은 여태 글렌 굴드의 연주만 접했는데 다른 연주자의 연주를 들으니 상당히 다른 느낌이더라구요. 굴드의 연주가 촘촘하다면 그 연주자는 마치 건축물을 쌓아가는 느낌이 들었고요. 


글을 쓰려고 펜을 가져갔는데 펜같은 구식 도구를 쓰는 사람이 없어 흐뭇해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백발의 어르신이 창가에 털썩 앉으시더니 펜으로 무언가를 써내려가더군요. 제 중2병은 순식간에 제압을 당했어요. 오래된 다방에 백발의 어르신이 펜으로 노트에 무언가를 적는 모습을 보니 소설가나 시인이 아닐까하는 생각마저 들더군요. 중장년층의 방문이 많은 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외국인들도 많았어요. 그 중 한 명은 단골인 모양인데 혼자 와서 컴퓨터로 무슨 작업을 하더군요. 이런 오래된 다방에 외국인 단골이라니 이 사람은 어디가 마음에 들어 단골이 된건지 궁금했지만 말을 걸어보진 않았어요. 전 소심하니까요. 뒷좌석에서는 남녀가 소개팅을 하고 있었어요. 글을 써지거나 책이 읽히진 않고 뒷자리 사람의 대화만 들리더라구요.(...)


커피는 드립커피를 주문했어요. 메뉴를 보니 여기서만 주문할 수 있는 커피 중 레귤러 커피, 아메리칸(노가 아닙니다 노가!) 커피, 스트롱 커피, 로얄 블렌디드 등이 있었는데 이게 드립커피란 거라네요. 처음 마셔보는 맛이었습니다. 검색을 해보니 이런 커피를 핸드 드립 커피라 부르는 모양인데 꽤 마음에 들더라구요. 흡족한 나머지 친구에게 원두를 선물로 줄까해서 문자를 보내보니 친구는 원두를 가는 기계가 없어 시음이 불가능했어요. 치즈 케이크는 부드럽기는 한데 제 입맛에는 안맞더군요.


6시 이전에는 다방을 방문하면 자리가 있는데 저녁 6시 이후에는 다른 곳도 비슷하겠지만 빈 자리를 찾기가 힘들어요.


P.S 요새는 잡담을 써도 이상하게 문장의 어미가 부자연스럽고 딱딱한 느낌만 나네요.


    • 레귤러 커피가 옛날다방 커피 아닌가요.
    • 가끔영화/오, 그런가요. 옛날 다방 커피맛을 몰라 몰랐어요. 그러면 이게 핸드드립이 맞는지도 혼란스럽네요.
    • 저도 처음 갔을 때 일을 또렷히 기억합니다. 카페 다니길 좋아하는 친구와 프랜차이즈가 아닌 카페를 찾고 있었어요. 길 건너편에 빨간 네온사인으로 빛나는 coffe&drink(맞나요?)인지 뭔지를 보고 뭐가 저러냐 진짜 촌스럽다 ㅋㅋㅋ 하면서 길을 건너갔죠. 그런데 그게 학림이었던 거예요. '명동백작', '지금도 마로니에는'같은 걸 열광하면서 보던 문학소녀 친구가 깜짝 놀라 즐거워했어요. 지금도 가끔 생각나면 갑니다. 사람 구경이 좋아서 담배 안 피워도 2층에 가요. 오래된 건물이라 그런지 창가는 너무 춥더라구요.

      여기 특정 시간만 되면 '서른 즈음에'나오는 거 맞나요? 밤에 자주 흘러나왔던 것 같은데.
    • 페니/저도 한번 2층에 도전해봐야겠어요.
    • 학림 좋아요. 오래된 느낌이 나고 은근 연령대가 다양한 사람들이 드나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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