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차 보고 잡담.(스포포함)
칼퇴근하고 화차 보고 왔습니다.
뒷자리 사람들은 영화 이상하다고 투덜거리며 나갔지만
저랑 동생은 굉장히 재밌게 봤어요.
후반부의 감정과잉이 조금 거슬리긴 했는데 한국영화 특유의 신파도 없고
늘어지지도 않고 주제의식도 분명한 편입니다.(설마 전부 원작 덕인가요)
김민희 영화 처음 보는(걸로 기억하는)데 연기는 둘째 치고 외모 자체가 역할에 무척 잘 어울립니다.
독특한 얼굴 생김새도 비현실적으로 마르고 긴 팔다리도 모두요.
영화가 제가 민감한? 취약한? 부분을 정확히 짚어줘서 좀 과하게 감정이입하면서 봤습니다.
일단은 잘 생기고 다정한 '수의사' 선생님.
정말 동물 좋아하지만 수학이 싫어서 문과로 도망가면서 수의사의 꿈을 포기했던 관계로
수의사 앞에서 이성이 마비되는 경향이 있는 저는 이번에도 남주의 직업 때문에
과하게 문호한테 마음 쏟으면서 영화를 봤네요. 그냥 의사였으면 안 이랬을텐데 말이죠.
다음으로 사채.
호인(이라 쓰고 만인의 호구라고 읽습니다) 노릇 하시는 아버지 덕에
사업을 하는 게 아닌데도 집이 망한(?) 적이 있어요.
빨간 딱지가 나붙는 정도는 아니지만 23평 아파트에 살다가
그 반도 안되고 집밖에 공동변소가 있는 집에 세들어 살았습니다.
이런 환경 탓에 상속포기라는 단어를 알게 된 속도가 상위 1% 안에 들리라 자부합니다.
여튼 사채업자는 구경도 해본 적 없지만 그 폐해에 대해 굉장한 공포심을 가지고 있어서
식당이랑 버스 터미널 장면이 너무 무섭고 끔찍했습니다.
마지막으로는 여성과 물리적 폭력요.
전 사회적 성으로서의 여성과 생물학적 성으로서의 여성 중에 후자의 약함에 훨씬 두려움을 가지고 있습니다.
제 성의식의 어떤 부분이 꼬이기라도 한 건지 전쟁 같은 극한 상황에서도 제일 무서운 건 강간이고,
<눈 먼 자들의 도시>를 읽으면서도 남녀구분 없이 수용한단 설정에 바로 강간 걱정부터 했거든요.
이런 탓에 버스터미널에서 끌려갈 때도 충분히 짐작은 했지만
그래도 "언니 나 택시비 좀 주세요" 하는 장면에선 억장이 무너지는 심정이었어요. 아 정말...
영화가 이런 식으로 절묘하게 여기저기 건드리는 바람에 엄청 집중하고 감정소모하면서 봤습니다.
차경선이 원래부터 어딘가 망가진 인간이었든 아니든 살아온 과정 때문에 동정할 수밖에 없었어요.
두서 없는 글 읽느라 수고하셨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