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야그] 원수를 용서하는 가장 좋은 방법
1958년, 광주에서 살인사건이 벌어집니다. 권총으로 사람을 다섯 발이나 쏘아죽인 사건이었지요. 그런데 범인은 여수고교 2학년 생 이옥의, 이제 겨우 19살의 앳된 나이였습니다.
어째서 이런 소년이 사람을 죽였는가... 그건 복잡한 사연이 있었습니다.
8년전, 6. 25 한국전쟁이 한창이었을 때 소년의 아버지는 살해당하고 맙니다. 북한이 점령했을 때 부역자였던 사람이 밀고하는 바람에 인민군에게 죽임을 당했다지요. 그리고 당시... 11살이던 이옥의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현장을 목격하고 맙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는 전쟁 즈음이었습니다. 가장을 잃은 가족들 사는 것은 대단히 힘들고 어려웠겠지요. 그렇게 힘든 것도 힘든 것이겠지만, 아버지가 살해당한 광경을 목격한 충격이란 이루 말 하기 어려운 것이겠지요.
그리고 8년 동안 소년은 내내 복수를 마음에 품고 있었습니다.
...원래는 '잘' 살아나가는 것으로 복수를 하려했지만, 아버지를 팔아넘겼던 원수를 맞닥뜨리자 분을 이기지 못하고 훔쳐온 총으로 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자살을 하려 했지만 실패하고 경찰에 자수하고 맙니다.
...근데 광주지검에 가니까 문이 잠겨있어서 경찰서로 가서 자수했다지만.
그러면서 "원수를 갚았으니 이제 소원은 없고 벌은 달게 받겠습니다. 사람을 죽이다가 살겠다는 게 염치없습니다."라고 고백했습니다.
이런 사건이 알려지자 사람들이 나섰습니다. 소년의 공판 날에는 폭우가 쏟아지는데, 방청객들이 구름처럼 모여들고 제발 좀 봐달라는 청원이 쏟아졌지요. 소년이 진술을 하면 사람들이 펑펑 울어댔습니다. 그렇다 해도 살인사건이니만큼 짧아도 5년, 길면 7년의 구형이 내려졌습니다만.
결국 사정이 딱하다고 생각했는지 좀 깎아서 3년 징역에 집행유예 5년을 구형했습니다. 당시 방청객은 눈물바다가 되었다더군요.
이리하여 모두 의로운 소년의 복수 이야기로 잔뜩 들떠 있는 즈음, 경향신문 기자는 홀로 이런 말을 하더군요. 좀 심한 거 아니냐, 원수를 용서하라는 말도 있는데... 하고요.
뭐 그야 어쨌든. 세상에 모두 사이좋게 지내면 참 좋겠지만, 진실로 다툼이 있고 원수도 많고 복수할 일도 많습니다.
그래서 얼마나 많은 사람이 복수에 눈이 뒤집혔습니까. 에드몽 단테스는 몽테크리스토 백작이 되고, 브라이드는 빌을 죽이려들고, 마이에브도 일리단을 쫓아다니고(응?)
사실 가장 지대로 복수한 사람 중에 탑을 꼽자면 역시나 춘추전국시대 오자서가 있겠지요. 이 사람은 원래 초나라 사람이었는데, 왕에게 밉보여서 아버지와 형이 살해당합니다. 그러자 오나라로 도망간 뒤 그 나라 왕에게 잘 보여 재상이 되고, 오나라 군대를 이끌고 와서 초나라를 아그작을 냅니다.
그리고 그 다음 한 일이... 아버지와 형을 죽였던 임금의 무덤을 파내어 시체를 끄집어 내 채찍으로 300대 손수 때렸다죠.
그런 뒤 당연히 너덜너덜해진 시체를 호수 바닥에 내버렸다고 하니 이거 정말 원수 지대로 갚은 거지요.
이것만으로도 헐 스러운데 죽는 순간까지도 복수를 한 사람도 있었지요. 오기란 사람인데, 왕의 아들이 즉위한 뒤 그를 죽이게 했는데, 상처를 입고 죽어가면서도 죽은 옛 임금 시체 위에 엎드립니다. 그 위로 무수한 창과 칼이 쏟아졌고... 해서 오기가 죽기는 했는데, 그 와중 죽은 임금의 시신에 상처가 났다고 해서 오기를 죽였던 사람들이 대거 목이 날아갑니다.
뭐 이런 사람도 있긴 했습니다.
그런데... 복수하는 데 꼭 따라오는 말이 있죠.
그거 해봐야 허무하다, 그냥 그 생각 버리고 잘 먹고 사는 게 진정한 복수다... 라고요. 말이야 쉽지요. 하지만 나중에 먹으려고 아껴놨던 마지막 딸기를 홀랑 먹어버린 원한마저도 수십 년을 가는데 그보다 더한 원한이 그리 쉽게 잊히겠습니까.
하지만 확실히, 복수를 하는 사람은 그리 끝이 좋진 않은 거 같습니다.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원한을 가진 사람 몇몇을 꼽아보자면, 세종이 있고 연산군, 경종, 그리고 정조가 있네요. 세종은 왕이 되자마자 장인어른을 잃었어요. 외척을 안 키우겠다는 아버지 태종의 뜻이기도 하지만 여기에 동조한 신하들 탓도 있었지요. 연산군은 잘 알다시피 친어머니가, 경종도 마찬가지고 정조는 아버지 사도세자를 잃었지요. 이 중 제대로 복수랄까를 한 건 연산군과 경종입니다. 연산군은... 뭐 유명하고, 경종은 이런저런 수법을 써서 어머니 장희빈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던 노론을 도륙냈지요.
한편 세종은 자기 장인을 죽이는 데 크게 일조했던 박은이나 유경영을 그들이 늙어죽을 때까지 끼고 있었습니다. 진짜 속도 좋았어요.
그리고 정조는... 보통 그가 즉위했을 때 "나는 사도세자의 아들이다!" 라고 말한 것으로 아버지 복수를 뙇! 하고 외친 것으로 흔히들 착각하지만. 그 문맥을 읽어보면 "그렇다고 우리 아버지 추증하겠다고 아부하는 놈들 가만 안 둔다."라는 내용이었습니다. 그걸 생략하고 앞부분만 이야기하니까 무슨 복수귀처럼 보이는데. 아닙니다. 정조는 끝까지 정치를 했지 아버지 원수를 위해 살진 않았어요.
뭐 사실 세종이나 정조나 원한이 없었겠어요? 세종은 아내가 눈물 지을 때 마다 어금니 꽉 깨물었을 테고, 어릴 때 부터 암살 위협을 받아왔던 정조는 진짜 다 죽이고 싶었겠죠. 하지만 다른 누구도 아니고, 나라 안에서 가장 막강한 힘을 가진 임금님이 되어서까지 원수를 갚지 않았다 이거죠.
왜 그랬을까요?
정치적인 이유... 가 가장 쉬운 답이겠지만. 또 그런 거 같진 않아요.
생각해봐요.
죽이면 끝이어요.
"너 임마 그 때 울 장인/아버지 죽였지?" 하면서 끌어내다가 경을 치고 목을 베어버리면, 그럼 그걸로 끝나요. 비명 소리 듣고 나뒹구는 시체를 보면 잠깐 후련하겠지만, 그건 금방 가셔요. 그렇게 오래 힘들어하고 괴로웠는데 상대방은 단 며칠 만에 죽어버린다니까요? 뭣보다 나중엔 가족을 잃은 누군가가 복수를 하려들 지도 모르죠.
그러니까 살려두고, 이것저것 일 시키는 거죠. 되도록 많이, 그리고 힘들게. 어차피 상대방도 일 잘하니까 여기까지 올라와 선대 왕의 총애를 받았던 조정의 중진이어요. 일을 못 할 리가 없잖아요. 그러다가 그 사람이 일 너무 많다고 안 하려 들거나 땡깡을 피우면 조용히 분위기 잡아놓고 낮은 목소리로 "그런데... 그 때 그 일 말이잖아 ^ㅅ^" 하는 것만으로도 상대방 얼굴이 땡볕에 널어놓은 무말랭이처럼 파들파들 말라갈 겁니다. 말이야 바른 말, 상대방이야말로 정말 쫄아있을 걸요? 자기가 원수인 거 자기가 가장 잘 알테니까요. 차라리 한 대 맞기라도 하면 속이나 편할텐데, 눈 앞에는 언제나 그림같은 얼굴로 방긋 웃는 임금님이 일을 턱턱 맡기고 있을 뿐입니다.
그렇게 그 사람들은 불안과 초조함에 시달리며 늙어 죽는 그 날까지 두 발 뻗고 잠들지 못했을 듯 해요. 이것도 나름 좋은 복수 방법이란 생각이 드네요.
그래서 탈무드에는 이런 말이 있지요.
원한이 생겼을 때 그대로 갚아주는 것은 원수갚음이고,
그렇지 않고 은혜를 베풀어주는 것은 미워함이라고.
여기저기 고소를 남발하며 자기가 저격수라고 주장하는 총기난사범(...)인 어떤 국회의원씨가 어떤 서울시장님께 용서받고 나서 "날 용서하다니 참을 수 없어!"라는 드립을 쳤다지요. 그 소식을 듣자 정말, 잘, 용서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얼마나 미우면 용서를 했겠어요, 참 대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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