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소드 연기에 대한 짧은 글.

앞에 세간티니님이 올리신 메소드 비판에 대한 글이 재밌었습니다.

그래서 저도 올려봐요.

 

그 글의 댓글에는 하정우가 메소드를 부정했다는 내용의 리플이 있었는데

저도 하정우의 그 인터뷰를 봤습니다.

하정우가 학교에서 연극을 할 때 정서의 기억을 이용해 연기를 하는데 지나치게 자신의 감정에 빠지다보니 상대배우와 단절이 되면서

자아도취적인 연기를 보였고 그 공연은 실패했다 라는 내용이었는데요

그런 비판은 이미 있어왔고 때문에 샌포드 마이즈너라는 또다른 메소드의 거장은 리액션을 강조하는 방법론을 들고 나왔습니다.

그니까 이미 그런 단점을 보완한 아메리칸 액팅 메소드가 이미 있었어요.

 

메소드.....

리 스트라스버그가 메소드를 처음 주창했기 때문에 메소드란 용어의 협의는 그냥 스트라스버그의 연기론입니다. 

허나 흔히 우리가 이야기하는 메소드는 리 스트라스버그의 메소드와 스텔라 애들러의 짬뽕이죠.

 

스트라스버그는 그룹시어터 시절 스타니 슬랍스키의 제자에게 시스템에 대한 강의를 듣고 스타니 슬랍스키에 심취합니다.

그러면서 오감의 기억과 정서의 기억을 더욱 발전시키고 메소드란 용어로 자신의 연기론을 구축했는데

또다른 그룹시어터 멤버 스텔라 애들러는 스트라스버그의 메소드에 반기를 들어요.

지나치게 개인적이고 무엇보다 관객과 단절이 일어난다고 생각을 했던거예요. 

 

애들러는 스타니 슬랍스키와 따로 이야기를 주고받은 이후로 스트라스버그와 완전히 돌아섰습니다.

스타니 슬랍스키는 시스템 초기에 강조했던 정서의 기억을 대폭 수정하고 행동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는데 

애들러는 이 이야기를 듣고 스타니 슬랍스키가 지금 연기론의 방향을 대폭 수정했다 우리도 고민해보자라고 스트라스버그에게 이야기했으나

스트라스버그는 자신이 정립한 메소드를 꺾지 않았다고 합니다.

 

*여기서 잠깐*

스트라스버그의 정서의 기억에 대한 오해가 있는데 스트라스버그는 오감을 이용해 정서를 유발시키는 작업을 했습니다.

우리가 흔히 아는 것처럼 슬픈 장면에서는 배우 자신이 슬펐던 때를  단순하게 떠올리며 감정을 쥐어짜는 게 아니라

비슷한 경험을 했던 과거의 상황을 오감으로 떠올리는 거예요. 당시 내가 경험했던 상황에서는 어떤 냄새가 났는지 상대방은 어떤 색의 옷을 입었고 주변의 나무는 어떠한 형태와 색을 띄었으며 주변에선 어떤 소리가 났는지, 또 내 앞에 있는 물건들은 어떤 촉감으로 기억되는지....최대한 많은 정보를 기억하며 오감으로 떠올리는 거죠.

그렇기 때문에 스트라스버그의 메소드는 먼저 오감을 단련하고 상상하는 훈련을 한 다음 과거의 경험을 오감으로 떠올려 정서를 유발하는 방법으로 진행을 합니다.

 

스텔라 애들러는 스타니 슬랍스키의 행동론에 영향을 받아 행동의 신체화을 주장하고 대본의 폐기!!를 외치며 상상력의 확장을 강조합니다.

극작가는 배우에게 필요한 정보를 모두 주지 않는다. 대본보다 훨씬 많은 것을 상상하고 확장하여 인물을 구축한다라는 게 요지입니다.

드니로식 접근이 바로 스텔라 애들러 메소드의 확장과 변주죠.

 

마이즈너는 스트라스버그와 애들러의 장점을 흡수하고 여기에 리액션을 강조하며 많은 제자를 이끌었습니다.

(마이즈너의 메소드는 상대 배우가 대사를 하면 상대 배우의 대사를 그대로 복창하고 자신의 대사를 말하는 방식으로 리액션의 포인트를 짚어갔다는

아주 사소한 방법론 밖에는 아는 게 없어서 뭐 별로 덧붙일 말이 없네요.)

 

현대의 메소드는 꽤 오랫동안  목적 중심주의가 대세인 거 같아요. 행동중심주의라고도 할 수 있는데요. 

 

극에는 매순간 배역의 목적이 있고 그 목적을 수행하지 못하게 하는 장애가 있습니다.

배우는 목적을 수행하기 위해 이 장애를 뛰어넘을 행동을 하게 되는 거죠.

목적을 수행하고자 하는 열망의 크기, 장애를 꼭 뛰어넘어야 하는 절실함 (대본에는 결과가 나와있지만)이

진실함을 잴 수 있는 척도가 되는 거구요, 

요즘에는 감정이란 언급 자체가 많이 줄어드는 거 같아요.

앞서 말한 목적을 강력하게 수행하려고 할 때 감정은 알아서 따라온다는거죠  

 

여하튼 메소드는 계속 수정과 보완을 해가며 발전해가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애들러 + 스트라스버그 식의 메소드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오감의 기억이나 정서의 기억을 습득하는 데는 2년인가? 기억이 가물가물한데 그 정도 걸리는 걸로 알고 있어요.

과연 그 정도의 시간과 공을 들일만한 가치가 있는 건가라는 의문.

 

애들러는 상상력의 확장을 주장했는데 그 상상력의 산물이 극본 속 인물의 본질을 흐리는 게 아닌가하는 의문

(ex-영하 40도의 추위에서 남자가 여자에게 고백을 한다고 하면 애들러 메소드로 그 추위에 대해 묘사를 하는 배우는

입술이 얼어붙고 온몸은 오한으로 부들부들 떨 수도 있을거란 말이죠?  그 연기를 보고 관객들이 와 진짜 너무 추워보인다.

진짜 영하 40도 추위에 있는 사람 같아 라는 생각을 하며 찬사를 보낸다면? 정작 그 고백의 진실함과 사랑의 감정은??)

 

또 스트라스버그든 애들러든 인물의  '전사'를 중요하게 여기는데 이게 너무 비효율적이지 않는가 하는 의문이 있어요. 

거의 자서전에 가까운 배역에 대한 준비를 하지만 관객에겐 보이지 않는데 굳이 이걸 준비해야 하나라는 의문이죠.

 

해럴드 핀터가 예전에 그런 인터뷰를 했어요. 콜렉션에 대한 인터뷰였나? 잘 기억은 안 나는데

인터뷰어가 핀터에게 이 장면에서 이 여자는 왜 이런 대사를 했습니까?라는 질문을 던졌어요.

뭔가 엄청나게 심오한 답변을 기대했던 모양인데

핀터는 대본을 대충 들춰보더니 '아 바로 앞에서 이런 말을 했으니 그 말을 하지 않았을가요?'라고 대답을 했습니다.

 

연출의 지시에 따라 '전사'를 준비하는데 애를 많이 먹었던 배우들은 그 인터뷰를 보고 환호했다는 소문이....

 

 

아 워낙 메소드가 방만하고 제가 아는 게 일천해서 글이 정리가 잘 안되네요. 읽어주신 분들 고맙습니다.

 

 

 

 

 

    • 흥미롭게 잘 읽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모 배우도 흔히들 메소드 배우라고 하던데, 그 배우가 나오는 작품을 모두 여러 번 보았지만 흔히 생각하는 메소드 연기같진 않았어요. 역시 하나로 정의할 수 없는 거였군요. 마지막 핀터 에피소드 재밌네요ㅎㅎㅎ
    • 글 너무 잘 읽었어요. 분덜리히님의 연기론에 대한 글은 늘 심도깊고 머리에 쏙쏙 들어오네요.
      의견 겸 질문인데요, 저는 애들러의 방식에도 공감하는 편이에요. 극의 인물을 표현하는 것 만큼이나
      배우의 개성이 드러나는 것도 중요한 것 같아서요. 배우들이 같은 대본을 보고 같은 역을 연기해도 다른 느낌이 배어나오는 건
      배우들의 상상의 방식이 다르기 때문이 아닐까요? 말씀처럼 극중 인물의 본질을 흐리는 정도까지 가면 안되겠지만 적당한 상상력은
      독특하고 매력적인 캐릭터의 창조에 도움을 주지 않을까요??


      사족인데, 갠적으로 행동의 신체화는 대단히 중요한 부분인 것 같아요.
      패기에 찬 배우지망생일수록 속에선 감정이 이글이글 끓어오르면서 그걸 겉으로 표현 못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서요 ㅎㅎㅎㅎㅎ
    • 애들러식 상상의 확장은 배역의 디테일이 추가되면서 드니로처럼 개인이 숨을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주는 성격이 있어요. 상상력 엄청 중요하죠. 본질을 흐리는 정도가 아니면 당연히 좋구요.
      근데 말씀하신 개성이라는 측면만 주목해서 보면 오히려 배우의 개성은 배우가 배역을 끌고가는 전술에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연기는 크게 회유와 협박 이 두가지 형태로 진행이 되거든요. 회유와 협박의 강도를 어떻게 조절하고 어떻게 믹스할지 고민하다보면 개인의 개성이 묻어나올 때가 많아요. 예를 들어서 나의 목적이 상대방에게 자백을 듣는다라는 것이라면 자백을 받아내는 과정이 나의 전술이 되는 거고 회유와 협박을 이용해 전술을 수행하는 거죠. 회유와 협박에는 수백가지의 방법과 강도가 있고, 배우는 '만약에 내가 동일한 상황에 있다면?' 방법을 써서 어떻게 풀어낼지 고민을 하는 거죠. 같은 활자라도 이 전술은 개인의 성격과 지성에 따라 또 경험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지고 여기서 보통 그 배우의 개성이 나온다는 생각을 합니다.
    •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좋은 연기로 가는 길은 참 많고도 어렵군요.
    • 역할 몰입에 대한 신화가 있는 것 같아요. 무당 빙의처럼. 제가 저 하정우를 언급했던 사람인데요. 그의 연기 방식이 참 좋았던게 체계적이고 초점이 명확한 노력을 할 줄 아는 사람 같았어요.
      '진실을 담아라' 라는 투의 말이 맞는 말이고 좋은 말인데 추상적이고, 왜곡될 소지가 많아서..
      여튼 어렵죠. 배우는 좀 똑똑해야 되는 거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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