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분 좋았던 일
오늘 듀게는 뭔가 안 좋은 일로 가득찬 것 같아서, 기분 좋았던 일을 쥐어짜봅니다.
어릴 때부터 남의 집 가는걸 별로 안 좋아했어요. 친구집도 마찬가지고, 친척집도 마찬가지입니다. 좋은 우리집 놔두고 왜?
남의 집에 가면 항상 무슨 말을 듣거나 해야되잖아요. 지금도 그래요. 친척집에 가면 가장 먼저 눈으로 빈방을 찾습니다.
어색한 하하호호 몇 분후에 빈 방에 들어가서 책을 보거나 방바닥에 그냥 누워 있어요. 왜 방바닥에 누워있어? 침대로 올라가서 자. 하면
웃으면서 슬 침대로 가서 잠을 자요. 친척이라도 왠지 남의 침대에 말 없이 눕는건 미안하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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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할아버지 집은 두메 산골입니다. 유일하게 좋아하는 남의 집이에요. 울 엄마집이 그 산골에서 잘 살았대요. 제사 같은 집안 행사를 하면
동네에 굶주린 사람들이 다 모여서 국밥 한 그릇씩 하곤 했대요. 물론 제가 외가에 찾아갈 때 즈음에는 그런 구경을 볼 시대가 지났지만, 엄마가 이야기할 때
상상하면서 듣곤 했습니다. 큰 가마솥에 붉은 소고기무국이 끓고 있는 모습이요.
외할아버지 댁은 넓었어요. 집은 그리 크지 않았는데, 안채랑 별채가 따로 있었어요. 안채는 외할머니와 친척들이 가득했습니다.
별채에는 항상 외할아버지 혼자 있었어요.
몇살즈음이었나...아마 초등학교도 들어가지 않았을 때였던거 같은데, 항상 가면 외할아버지 있는 별채로 갔어요.
저에게 몇살이냐. 키는 몇이냐고 웃으며 묻는 친척들이 불편하거든요. 지금도 마찬가지에요. 근데 외할아버지는 말이 없으셨어요. 00이 왔나..
한 마디에 주섬주섬 시골슈퍼에서 파는 젤리들을 꺼내주세요.
저는 외할아버지 눈치를 봅니다. 계피맛과 우유맛을 다시 봉지에 집어 넣거든요. 티비도 없었던 것 같은데, 외할아버지는 별 말 하지도 않아요.
그냥 계속 조용합니다. 저는 노란 장판을 들었다놨다 하거나, 노란 벽을 손가락으로 스치면서 있어요.
밥 먹으러 오라는 이모의 말에 저는 나가고, 외할아버지는 작은 상에서 느릿느릿
혼자 식사를 하세요.
밥 먹고 평상에 앉아서 발을 동동 굴리다가 아빠차를 타고 차에서 잠들어요.
자고 있는 저를 아빠가 들어올립니다. 이미 깼는데 그냥 안겨서 들어가요. 잠든척해요. 이불 깔아라.
아빠가 이불에 저를 눕히면, 그제서야 슬 일어납니다. 외할아버지 집에서 싸온 음식들을 푸는 엄마 옆에서 주섬주섬 뭘 줏어먹어요.
정말 하기 싫은 양치질을 하고, 방에 들어갑니다. 아직 거실 불이 켜져있고, 가족들은 조용조용 대화를 나눠요. 정말 별 것 아닌 한 줄기 거실 빛을 보다가 잠 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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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기분 좋은일을 생각하다가, 외할아버지 집에서 이름도 얼굴도 잘 기억 안나는 여자친구와 놀았던 일을 쓰려고 했는데, 뭐 이런 것도 나름 좋았던 것 같아요.
외할아버지 돌아가신지도 벌써 몇년이 지났으니까요. 마지막으로 뵈었는데 누군지 기억도 못하더라구요. 아버지 00이 알겠습니까? 하니까 누군지 잘 모르겠대요.
그냥 다 같이 하하 웃고, 00이 아입니까 00이.. 하다가 아...00이 하시는데, 이게 기억을 하셨는지, 그냥 립서비스인지 모르겠어요.
딱 일주일 후에 돌아가셨는데, 그래도 뵈어서 참 다행이다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