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윤현 감독에 대한 다소간의 기대와 실망
저는 '파업전야' 나 '오 꿈의 나라' 를 본 세대는 아닙니다. 대단했다고 얘기는 많이 들었어요.
'접속'은 고등학생일 때 극장서 봤어요. OST를 서로 생일선물로 주고받고 그랬죠..(70만장인가 팔렸다던 기억이 납니다.)
당시 기준으로도 전도연이 좀 촌스러워서 친구들과 보고 나오는 길에 '전도연 코디 누구야?' 뭐 이런 말을 했던 기억이 나고, 뭔가 많이 절제했다는 느낌? 세련되긴 했는데 생각보다 별로 재미는 없다는 느낌? 이 기억나네요.
지금 뜯어보면 또 어떨지 모르죠. 우리나라 90년대 공전의 히트작들인 은행나무 침대, 쉬리 이런 영화들은 (좀 더 거슬러 올라가서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나 '결혼이야기' ? ) 가끔씩 보고싶은데 케이블 티비에서도 도통 해주질 않아요.
암튼 서른 남짓에 데뷔작으로 공전의 히트를 치고, 영화계의 새세대로 주목을 받았고, 온화하고 모범생 스타일의 얼굴로 방송이나 지면에도 자주 오르내렸죠. 저는 이전 세대 영화감독에 대한 스테레오타입(뭔가 거칠고 주먹구구에 꼬질한 외모? ㅋ)을 벗어난 장윤현에게 좀 호감이 갔는지 그 후 행보에 관심을 가졌더랬습니다. 재능있고 합리적인 사람으로 보였어요.
그런데 이후 제작한 '연풍연가'는 정말로 말할 수 없이 안일한 작품이었고(장동건은 이 작품에서 발연기의 진수를 보여줍니다.), 연출한 '텔미썸딩'은 당시에 심은하팬이어서 미모에 만족한 부분은 있습니다만, 겉먼만 잔뜩 부린 부실한 영화였다고 생각해요.(한석규 내리막길의 서막이었죠.)
사회생활을 잘 하는지 강우석 감독과 죽이 잘 맞았는지 제작, 투자책임 등으로 시네마서비스와 지속적으로 일을 했지만 감독으로서 커리어는 '썸', '황진이'가 줄줄이 망했으니 완전한 내리막이라고 봐야겠죠..
그래도 새로 영화를 찍었네요.
가비..
티져를 본 바로는 제가 그동안 실망햇던 장윤현의 약점들이 그대로 드러나지 않을까 불안합니다.
1. 청담동 앤틱샵같은 그 세트말이죠... 정구호씨와 일을 했던 걸로 알고 있는데, 텔미썸딩도 혼자사는 형사가 모던하다 못해 모델하우스처럼 보이는 집에 사는 것이 몰입에 적잖이 방해가 되었습니다. 황진이도 검은색을 위주로 뭔가 새로운 미장센(?)을 추구한 것 같은데 겉돌았어요. 이명세 감독처럼 아예 세트티가 나는 특유의 미학을 추구하는 것도 아니고, 그저 깔끔하고 세련된 걸 추구하는 것 같은데 애매합니다. 감각없는 졸부가 인테리어 디자이너한테 돈만 주고 맡긴 것처럼 그저 허황해요. (이재용 감독은 같은 정구호씨를 쓰는데 좀 낫죠.)
2. 나름 헐리우드 영화 벤치마킹인데, 방향이 옳지 않아요. 황진이에도 액션을 좀 넣어야 관객들이 본다고 생각한 모양인데 놈이 위주로 돌아가는 얘기보고 기함을 했네요. 텔미썸딩에도 별 뜬금없이 트럭이 시체든 상자를 치고 연쇄추돌하는 장면이 있는데, 돈 쓴 효과가 전혀 없어요.(그래도 강우석이 장윤현이 액션 잘찍는 감독이라고, 한반도였나? 자동차 장면은 그에게 맡겼다죠..)
영화를 종합선물세트처럼 만들려는 게 역효과라고 생각합니다. 다 어정쩡해지지 않게 집중을 해야죠.
3. 대사가 안 좋고 스토리에 힘이 없어요. 접속에도 문어체 대사는 좀 있었지만 워낙 한석규가 잘 소화를 했고(에로틱한 영화를 본 모양이군요? 뭐 이런 대사가 기억나네요), 텔미썸딩과 황진이는 대사로 실소를 좀 자아내죠. 텔미썸딩은 나름 인터랙티브 무비를 표방했지만, 뿌린 떡밥도 다 회수가 안 된 느낌이 강했고..
암튼!!
가비의 세트는 본인의 장기인 청담동 앤틱샵 스타일을 극단으로 밀어붙인 것 같고(뭐 아관파천 시절이면 러시아 스딸이겠네요), 유선과 김소연의 패션은 아주 매혹적이긴 합니다만 내용에 어울릴지는 좀 지켜봐야겠어요.
그리고 기차장면 ㅠㅠ 인디아나존스 생각납니다. 뭐 경성스캔들같은 분위기도 아닌 것 같고 진지한 영화인데.. 클라이막스에 액션을 우겨넣기 위한 헐리우드 흉내내기가 아니길 바랍니다.
암튼 평이 최악이 아니면 한 번 봐야겠어요.
장윤현이 하고 싶은 걸 거의 다 한 것 같은데, 잘 녹여내어 그럴듯한 오락물을 만들었다면 미지근한 애정이나마 좀 지속해보고, 정말 아니다싶으면 십수년 막연하게 가져온 기대를 접어야 할까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