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야그] 북악산의 총소리


1968년 1월 21일의 일이었습니다.
딱 봐도 엄청 수상한 사람들이 임진강을 건너 남쪽으로 내려가고 있었습니다. 사람 숫자는 31명, 먹을 것은 달랑 5일분이었습니다. 그렇지만 그보다 더 많은 ak 자동소총과 수류탄들을 짊어지고 있었지요. 출발한 곳은 북한의 연산이었고 목적지는... 바로 청와대였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을 암살하라는 명령을 받고 파견된 북한군 124부대 유격특별부대였습니다. 미리 황해도의 인민위원회 건물을 가상 건물로 삼아 청와대를 습격하는 연습을 하고 파견된 거였는데. 그 내용이란 게 청와대를 습격해 대통령을 죽이고 주한미국대사관도 털고, 육군 본부 등 각종 정부 기관들을 습격하는 어마 굉장한 내용들이었습니다.
이거 무슨 100원 줄 테니까 가서 빵 사오고, 통닭 사오고, 떡볶이에 간 마니 넣은 순대 섞어서 사오고 남은 건 군것질 해라, 라는 수준의 임무이긴 했습니다. 뭐 청와대만 습격하는 걸로 계획이 축소되었습니다만.

 

그래봐야 그들 북한 공작원들은 공작원인 주제에(...) 어설픈 구석이 있었습니다. 대표적인 것으로 명색이 침투조이면서도 암호 해독할 수 있는 사람이 없어서, 제자리로 복귀하라는 암호문이 하달되었건만 읽을 수 없어 그대로 침투를 했다는 웃을 수 없는 사태마저 있었다는 군요.

 

하지만 정예였습니다. 침투는 아주 교묘했고 진행도 엄청 빨랐습니다. 앞서 말한대로 임진강을 넘어서 - 철조망과 기둥 사이를 살짝 잘라서 티 안나게 빠져나오는 방법도 쓰고(경계 서면서 철조망을 잡아 흔드는 건 이 때 일 때문입니다), 각 군부대의 영역 틈바구니를 타고 행진하는 등 은밀히 진행해서 청와대 턱밑까지 오는 내내 단 한 번도 발각되지 않았습니다.  이들이 온 길은 나중에 김신조 루트라고 불린 양주시 거쳐서 우이동 지나 북한산 쭉 이어지는 길이죠. 이 사건 이후로 내내 여기는 민간인 출입금지였습니다만 94년 즈음 신분증을 지참하고 트래킹이 가능한 곳으로 바뀌었습니다. 법원리-미타산-앵무봉-노고산-진관사-북한산으로 이어졌다죠. 이들 북한공작조는 괜히 정예가 아닌게 험한 산길을 완전무장한 채 시속 10km로 행군을 해서 남한으로서는 부끄러울 정도로 속수무책이었습니다.

 

조금 어이없게도 이들을 처음 발견한 것은 마침 나무를 하러 온 우씨 형제 4명이었지요. 척 봐도 수상한 복장에 무기라서 나무꾼들은 금방 공비라는 걸 알아차렸지만 공비들로서도 상대의 인원이 너무 많았기에(...) 죽여서 입을 막는 것도 쉽지 않은 상황. 신고하면 몰살시켜버리겠다고 으름장을 놓은 뒤 풀어줬지요. 당연히 나무꾼들은 즉각 신고했습니다만... 공비들의 진행이 굉장히 빨랐기에 갑종 경계령이 내려지긴 했지만 설마 그렇게나 빨리 이동했으리라 예측하지 못했기에 허탕을 쳤습니다.

 

천만다행인 것은 공작원들부터도 무리를 해서(...) 지쳤기에 작전 진행 속도가 늦춰졌다는 것. 원래 북악산으로 가려다가 체력이 떨어져서 북한산 쪽에 베이스캠프를 쳤지요. 그런 뒤 청와대를 노리고 이동을 하다가, 마침내 자하문 초소에서 경찰에게 검문을 받았습니다. 처음에 자기는 당시 기세가 등등하던 방첩대 소속이라며 뻗대던 공작원들이었습니다만, 수상하다고 생각한 종로경찰서장과 형사들이 물고 늘어졌고, 마침 버스가 멈추자  발각한 것으로 착각한 북한 공작원들은 총을 쏘고 수류탄을 던지며 교전을 벌였습니다.
이 와중 부대장이던 김춘식이 형사들에게 사로잡혔고, 최규식 종로경찰서장은 복부에 총을 3발 맞고 그 자리에서 숨졌습니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공작원들이 던진 수류탄이 시내버스 안에서 터져 중학생과 아가씨 등이 숨을 거뒀다는 것.

그리고 지휘부를 잃은 공작원들은 뿔뿔히 흩어져서 달아났습니다.

김신조 씨가 체포당한 것은 홍은동에서였습니다. 그냥 얌전히 잡힌 것도 아니고 m1 소총을 쏘아대며 총격전이 벌어지고, 처음 김신조 씨는 수류탄으로 자폭을 하려다가 어찌어찌 실패하고 생포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 외로는 서울 곳곳에서 교전이 벌어지고, 총격전이 벌어졌습니다. 지붕을 타고 달아나던 공작원 하나는 민가에 떨어져서 가족과 싸우다가 그 집 아들이 총격에 사망했고, 공작원이 던진 수류탄이 터져 중학교 수위 아저씨가 사망하기도 했습니다. 버스를 기다리다가 유탄에 숨진 여성도 있었습니다.

앞서 생포되었던 김춘식은 조끼에 수류탄 핀을 꿰매 벗기면 터지게 하는 자폭장치를 마련해둬서 무장 해제 중에 수류탄이 터져서 사망합니다. 여기까지가 22일, 민간인 사망자는 7명이고 북한 공작원은 5명이 죽었습니다.
...다친 사람은 더 많고요.

 

이 사건으로 당연히 나라는 발칵 뒤집혔고, 이후로 달아난 공작원들을 색출하기 위해 군부대들이 동원되어 각종 산야를 샅샅이 뒤졌습니다.
그리하여 30일까지 처음 침투했던 31명의 공작원 중 27명이 사살되고(남은 한 명은 시체가 발견되고 남은 둘은 월북한 것으로 추정), 국군은 23명이 전사했습니다. 다친 사람은 52명이나 되었지요.

이 사건으로 인해 당시 군대 다니던 분들은 휴가가 취소된 것 뿐만 아니라 복무 기간이 3~6개월 가량 연장이 되어버렸고, 그리고 이 사건을 계기로 예비군도 만들어졌지요.
그 와중 많은 분들이 돌아가셨습니다. 총격전에 민간인이 휘말려 아까운 목숨을 잃기도 했지요.

유일하게 생포된 사람이 지금 목사로 있는 김신조 씨인데,
"내래 박정희 멱 따러 왔수."라는 말 한마디로 남한을 충격과 공포의 도가니탕으로 만들어버렸지요.

 

그를 제외한 북한 침투 공비들은 대부분 사살되었습니다만, 도주가 길어지면서 어떤 공비는 심각하게 굶주린 티가 났고, 주머니에는 무기 대신 배추 시레기 한 줌과 날무우가 발견되기도 했지요.  이쯤되면 어처구니 없는 계획을 세워 자기 국민 목숨과 남한에까지 피해를 입힌 북한 당국에게 열불이 치밀게 됩니다.
소문에 따르면 김일성은 본인이 아닌 일부 급진파가 추진한 일이라서 미안하다고 비공식적으로 사과했다지만... 그 말 죽은 사람들과 그 가족에게 말하면 아 그랬군요, 하고 넘어갈 수 있을 리 없지요.
이후, 김신조 씨는 전향해서 남한에 정착한 뒤로 자식들이 간첩 딸이다라는 손가락질을 받아 고생 했다고 하더군요. 그렇지만 그 당시 휘말려 목숨을 잃은 분들, 또 그 가족의 아픔만 하겠습니까.

 

생각해보세요.
지금 북악산 자락은 누구나 아무렇지도 않고 거닐고, 술 마시고, 놀고 뒹구는 그런 거리이지만. 한 때는 그처럼 무서운 시기가 있었습니다.

어느날 밤길을 걷는데, 갑자기 총을 든 사람들이 나타나서 겨누고 위협하고, 심지어 죽이기까지 하는 거여요. 결혼을 얼마 앞둔 아가씨가 버스 기다리다가 총격전에 휘말려 숨을 거두기도 했고, 멀쩡히 다녀오겠습니다, 하고 나갔던 중학생이 수류탄에 맞은 시체가 되어 돌아온단 말이지요. 그렇게 무섭고 살벌하고 끔찍하던 시기였습니다. 그러니 간첩이란 말에, 공산당이란 말이 얼마나 무섭고 징그러웠겠어요.

 

새삼스럽지만 전쟁이 없었다면, 그리고 분단이 되지 않았더라면 총을 들 필요도 없지요.
그냥 총각 어디서 왔어? 하고 묻고 같이 밥을 먹을 수도 있고, 시덥잖은 이야기 하고 싸우기도 하고 웃기도 하고. 그러다 친구 먹고 좋은 인연 만날 수도 있고, 그럴 수 있었을 지도 모르는데. 그런데 총부리 겨누고 싸워대고 죽여야 했단 말이죠.

그 때는... 여유는 없고 아픔은 있고, 긴장을 풀 수 없고 끝없이 의심하고 원망해야 했습니다. 그 때가 그랬던 시기였음을 안다는 것을 안다면, 아마 우리네 어르신들을 좀더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요. 박원순 서울 시장을 때리고 김근태 씨에게 욕을 퍼부었던 아주머니도 그냥 좀 이상한 사람이나보다, 하면 간단하지만. 그 분이 겪어왔던 현대사의 질곡과 비극을 생각하면... 그 상처를 이겨내지 못했다고, 그 분이 별나다고 말하긴 어렵다 봐요.
어쩌겠어요. 황소라면 바늘로 콕 찔러도 아픈 줄 모르고 벅벅 긁고 말겠지만 병아리는 그 정도로도 아파서 죽을 수 있어요. 약한 게 그 분 잘못은 아니잖아요. 그만큼 끔찍한 시대였으니까 상처도 큰 거죠.

 

어제 한겨레에서 나온 어버이 연합 어르신들의 취재 기사를 보고, 한편으로 측은하고 안타까웠습니다. 그 분들도 결국 우리의 아버지이자 어른들이거든요. 비록 그 분들은 나이 들어 머리 굳고 완고하시며 했던 말 계속 반복하고 절대 자기 고집 굽히지 않으시더라도. 그 분들이 겪은 아픔과 낫지 않은 상처를 생각한다면 마냥 말이 안 통한다고 마냥 욕하지 말고, 이해하려는 노력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 해봅니다.

...이러는 저도 얼굴 맞대곤 말 못할 거 같습니다만.
그래도 젊은 사람이 조금 더 말랑말랑하지 않겠습니까?

 

하여 오래된 사건 펄럭펄럭 뒤져서 간략하게 써봤습니다.

내일 글 예고. 비키니로 갑니다.

 

http://www.facebook.com/historyminstrel


 

    • 희한한데요! 꿈에서 오늘 아침 비슷한 글을 본 거 같아요.
      꿈에선 평창동 부촌과 주민등록번호 얘기도 나누고 그랬어요!
    • 정말 달필이세요.
      맞아요. 6.25부터 대한민국의 굴곡많은 현대사들이 각자의 가슴에, 각각의 형상으로 담겨있죠.
      다음번 비키니 글 기대해봅니다.
    • LH님 사...사.....사..........사극작가하세요!!!
    • 헬마스터 / 오, 신기하네요. 분명 주민등록증이 이 사건 이후 만들어졌고 1호가 박정희 대통령이었지요. 오늘 게시판에서도 같은 주제의 글이 올라와서 좀 신기했습니다 ^^

      eE / 감사합니다. 칭찬은 작가를 춤추게 합니다... 기대에 부응할 수 있었음 하네요.

      샬랄라빡 / 사실, 시나리오나 소설 쪽은 제가 쥐약이라서... 저도 안타깝습니다.
    • 도서관에 있는 LH님 책 다 읽고 없는 것도 다 사서 봤어요!! 다 읽은 것도 화장실 갈 때 자주 들고 가서 또 봐요! 어쩜 그렇게 재미있게 역사를 잘 쓰세요~ 듀게 오면 꼭 지난 글 전부 검색해서 읽어요. 이 글도 너무너무 재밌네요. 앞으로도 글 많이많이 부탁드려요 ^^
    • LH님의 책은 어떻게 볼 수 있나요? 책이름이나 저자이름이라도 좀 알려주세요.
    • 저도 LH님 책 읽고 싶어요

      쪽지로 알려주세요
    • 저때 살아돌아간 공비가 나중에 송이버섯 가지고 남한에 특사로 다녀가지요..
    • 라일락 / 감사합니다 ㅠㅠ 정말 감사합니다. 힘 내서 분발해서 더 쓰겠습니다.

      카블 / 제가 올린 글 중 자기소개 항목에 있긴 합니다... 여기서 제가 직접 이야기하자니 좀 부끄럽...

      자두맛사탕 / 넵, 두 분 모두 쪽지로 보내드리지요.

      볼리바르 / 저도 그 이야기 들었네요. 풍문으로만 들었는데 사실이댑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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