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낭-예전의 그 청춘들은 다들 지금은 갈 곳이 있겠죠?
해마다 명절만 되면 모이는 사람들이 있었어요. 졸업하고 오래 백수였거나, 취업하고 견디지 못하고 뛰쳐 나오거나, 기타 등등의 사유로 친척들 만나기가 끔찍했던 사람들.
그 그룹의 여왕벌 (미안하다;) 이었던 친구 하나가 저랑 단짝이라서 저만 A대출신이고 다들 B대학 출신이었어요. 집들은 제 모교 근처라서 명절이면 쫓겨나서 모이곤 했습니다. 후문 바로 앞에 있던 주유소라는 호프집 (술값이 쌌지요), 그리고 후문에서 좀 먼 곳에 있던 편의점형 술집이 단골이었어요.
편의점형 술집은 이름이 기억 안 나는데, 인스턴트 안주거리와 술병을 골라서 계산하면 테이블이 제공되는 곳이었죠. 당연히 가격이 싸서 주머니 가벼운 청춘들이 모이기 좋았습니다. 거기 주인 언니가, 당시로선 꽤 많아 보였던 서른네 살. 이 언니도 결혼을 안 한 터라 굳이 안 열어도 되는 가게를 명절때면 늘 챙겨 열곤 했어요.
당시엔 없던 말이지만, 당시를 생각하면 딱 떠오르는 단어가 있습니다.
'찌질.'
가게 위치만 기억나고 이름은 전혀 기억 안 나는데 거기 모였던 청춘들이 지금 뭐 하고 있을지 갑자기 궁금해집니다.
일부는 원하던 시험에 붙고, 일부는 도망치듯 결혼을 해서 배우자에게 의지하게 됐고, 일부는 정신 차리고 취업을 했고. 저와 친구가 막내였으니까 그 청춘들은 지금 적당히 자리를 잡은 중년이겠군요. 그때의 궁상맞은 청춘을 지금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마지막으로 봤던 그때 이후 꽤 많이 세월이 흘렀으니까 상당수는 학부형이 됐을 거예요.
남부럽지 않은 우왕좌왕 이후 쓸 데 없는 생각 말고 무조건 의대 가라고 강요하는 부모가 됐을지, 만사 오케이, 오케이, 그런 게 청춘이다. 방황 좀 해도 큰일 안 난다 하는 부모가 됐을지.
그때나 지금이나 저는 집에서 전을 부쳐야 합니다. 어쨌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