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야그] 고문경찰과 인간다움


사실 몇몇 가지를 적어볼렸다가, 아직 공부가 부족한 것 같아 잠시 미뤄뒀습니다. 그런데 나름의 뉴스 덕분에 묻어두었던 생각이 새록새록 돋아나네요.

이번에 목사직을 박탈당한 이근안 씨가 고 김근태 씨를 고문한 것은 1985년의 일입니다. 네, 바로 그 자랑스러운 88올림픽을 개최하기 고작 3년전의 일이어요. 하지만 그 전에도, 후에도 고문은 공공연하게 벌어졌습니다. 정치범들에게도 그랬지만 일반 심문에서도 그랬어요. 죄가 없는대도 억울하게 심문을 당하고 맞은 끝에 정신병까지 앓은 사람이 수다하거든요. 이제 와 그런 일이 있었어? 라고 생소하게 들을 수 있는 지금이 얼마나 다행한 것인지.

 

따지고보면 이근안 씨는 일제시대 이후 대대로 이어지던 고문 경찰의 계보를 잇는 5공 때의 기술자입니다. 이승만 때는 노덕술이었죠, 고문으로 임화란 청년이 죽자 얼어붙은 한강 아래 시체를 유기하고 "저놈 잡아라!"라며 도망간 것으로 꾸몄는데, 이걸로 처벌받기는 커녕 반공투사라고 이승만 대통령에게 표창까지 받았지요. 탁 치니 억 하고 죽었다라던 박종철 사건도 유명하지요.
그 외에 최운하도 있고 김창룡도 있어요. 고문이고 뭐고 수단방법 가리지 않고 사람들 조져서 성과(같지도 않은)를 내고, 그 덕분에 권력자들에게 이쁨받고 온갖 특혜를 받아서... 그렇게 잘 먹고 잘 산 사람들 말이죠.

 

그러니까, 이근안 씨 본인은 자신이 억울하다고 생각할 겁니다. 고문을 한 사람이 자신만 있었던 것도 아니니까요. 솔직히 그는 나쁜 사람 맞지요, 평생 미안해해도 부족할 텐데 자기 변명을 자랑스럽게 이야기하고 다니니 정말 나쁜 사람이어요. 그 분 부인도 가족이니 옹호하고 싶은 마음을 이해는 하지만 참 답이 없더군요. 하지만 그 만큼, 혹은 그 보다 더 나쁜 사람들이 있잖아요. 이근안 씨가 이렇게나 조명을 받게 된 것은 고 김근태 씨가 이 사실을 밝혔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당연히 이근안 씨는 실행조이지 그 위로 박배근 전 치안본부장이라던지, 당연히 그 모든 사안을 명령하고 빨리 자백을 받아내라고 채근했을 윗사람들이 얼마나 많았겠어요.

사실 모든 상황의 근원인 - 두족류의 어떤 생명체와 참 닮은 어떤 사람은 떵떵거리며 살고 있으니 말입니다.

 

그 뿐입니까? 6공 때 한참 고문 조사로 이름 날렸던 정형근 씨도 묵사마로 지금 잘 먹고 잘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조금 불편한 게... 결국 털어도 후환이 두렵지 않은 만만한 상대를 물고 늘어지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좀 있습니다. 몇년 전 어느 인터넷 뉴스에서 성함은 기억 안 나는데, 이근안 씨의 상관이자 김대중 정권이 들어서자 보복이 두려워 중국으로 망명했던 사람이 귀국해서 당시 용공 대학생들의 행태를 고발하는 인터뷰를 했는데, 그들이 했던 극악무도했던 짓이란... 바로 남녀혼숙이었습니다.
그 기사를 보고 어이가 없었지만 그 이상으로 갑갑했습니다. 이근안씨도 그랬죠? 자기가 잡아낸 간첩들이 민주화 유공자로 인정되어 좌절감을 느낀다고요.
지금 우리가 보기엔 어이없지만, 그 분들은 자신들이 정말 좋은 일을 한다고 생각했던 거죠. 나쁜 공산당을 잡아내서, 대통령에게 충성하고 나라에 보탬을 한다고. 마찬가지로 고문을 당했던 방배추씨도 이근안씨가 고문을 하기 전에 대통령이 있는 쪽으로 절을 하더라는 경험담을 적은 적이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잠깐 머리를 식혀보도록 하지요.
이근안 씨나 수다한 고문경찰들이 나쁜 사람인 건 맞아요. 그들을 욕할 순 있어요. 하지만 왜 그렇게 되었는지를 생각해봐도 되지 않을까요. 어째서, 그들은 죄책감도 없이 '인간답지 않은' 그런 일을 할 수 있었던 지를요.
대의명분이란, 참으로 사람의 이성을 마비시키는 재주가 있는 것 같아요. 때로는 감정조차도요. 아파서 괴로워하고 우는 데도 여기에 측은함을 못 느끼고 꼴좋다고 웃는 것 만큼 잔인한 게 또 있을까요.

 

결국은 그런 거죠, 어떤 이유로든 사람을 함부로 대해서는 안 된다는 거.
박종철 사건이 벌어졌을 때, 원인 중 하나는 당시 경찰들끼리 성과를 내기 위해 경쟁이 붙은 탓으로도 봤답니다. 어떻게든 성과를 내야 하니까 사람을 족치고 본다 이거죠. 결국에 억울한 사람이 죽고 문제가 되자, 오히려 일선 경찰들은 - 고문을 못하면 어떻게 용공 분자들을 색출해내겠느냐고 걱정을 했다 합니다.
또, 어떤 교수님이 하신 경험담인데, 오래전 서대문 형무소에서 안내를 맡으셨다가 나이 지긋한 분들이 "저런 고문을 하다니 일제 나쁜 놈들" 하다가도, "빨갱이들은 저런 고문 당해도 싸다." 라는 말을 하시더랩니다.
즉 그 분들에게, 공산당은 사람도 아니니까 고문이고 뭐고 해도 된다는 생각이 뿌리박혀 있었다는 거죠. 전쟁을 겪은 세대이니 어쩔 수 없다고는 생각합니다. 그 분들이 편협하다고 말하는 것이야 쉽겠지만, 우리는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까 그게 걱정이어요. "그래도 싸, 당해도 괜찮아"라고 타인을 함부로 대하는 것 말입니다.

 

그게 그 당시에는 공산당이나 빨갱이였겠지만, 이제 와 다른 말로 얼마든지 바꿀 수 있을 겁니다. 미혼이니까, 돈이 없으니까, 좋은 대학을 나오지 못했으니까, 혼혈이라던가, 부모님이 없다던가, 비정규직이니까, 고향이 어디라던가, 외국인이니까. 기타등등. 하지만 언제 어떤 순간에도 내가 인간인 것과, 상대방이 인간인 것을 잊어서는 안 되어요.

왜냐하면요, 언제 어느 순간 내가 바로 그 피해자의 위치에 놓일 수 있거든요. 가끔 개인은 시대의 흐름에 꼼짝 없이 밀려 구석에 몰릴 수도 있어요. 에이 그런 일이 있겠어, 하다가도 어느 순간 어떻게 몰려 억울한 일을 당하고도 동정도 못 받는 그런 상황이 되어버리니 말여요.

 

그래서 아무리 네발 달린 동물보다 나쁜 사람일지라도, 함부로 대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그런 의미에서 저도 이근안 씨에게 법이 허락한 것 이상의 보복은 해선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인간이니까요. 물론 제대로 된 벌을 안 받은 저기 29만원 씨는 다시 생각해봐야 하겠습니다만 말이어요.

 

p.s : 몸살감기 크리가 떠서 와병중입니다... 죽겠네요.

 

 http://www.facebook.com/historyminstrel

    • 저질기억력 소지자라 어질어질, 검색해도 잘나오지는 않는 사건이라 언급하기가 좀 그렇지만요.
      서독과 동독이 나뉘어져있던 시절, 서독으로 넘어가는 사람들을 동독 경비병들이 저격한 일에 대해서 법원이 살인죄를 인정한 일이 있었던걸로 기억해요.
      명령이였다지만 적극적으로 거부할려고 했다면 다리를 맞췄어야 하지 않았냐는 취지의 판결문이였던걸로 기억하는데 앞서 말씀드렸다시피 저질 기억력의 소유자인지라^^;;
    • 그리고 자랑스런 86아시안게임을 개최하기 고작 1년전이었죠.
      빨리 완쾌하세요. 아프신 중에도 재미있는 글을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 여러가지 생각을 하게 하는 글이네요. 어여 쾌차하시기를 바랄게요.
    • 불과 몇년 전까지도 바다 건너 합중국에서는 테러용의자들에게 대놓고 고문을 하고 있었죠.
    • 노덕술씨의 아들이 노재봉씨라는 루머가 있군요. 본인이 아니라고 하는데...
    • 아무리 사람같지 않은 사람에게라도 우린 사람답게 굴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개가 우릴 보고 왕왕 짖는다고 우리도 개를 보고 왕왕 짖을 순 없잖아요.
      LH님 어여 쾌차하시길... 뻘소리지만 공사현장의 LH 마크를 볼 때마다 님을 떠올립니다. -ㅂ-;;
      • 전 버스에 붙은 LH 리빙한국(식기류)광고 볼 때 생각나요.ㅋ~
      • 공사현장의 LH마크면 토지주택공사를 말하는거죠? Land & Housing의 약자죠 :)
    • 여러 선현들을 거쳐 마릴린 맨슨에 이르기까지, 여러 번의 냉소적인 가르침이 있었죠.
      "The death of one is a tragedy, but death of a million is just a statistic."
      ...아무쪼록 하나하나 잊지 않는 방향으로 전개되는 세계가 되었으면 합니다.

      [사족]
      페이스북 친구 신청을 드렸더니 광속으로 받아주셔서 깜놀했네요 <-
    • chobo / 저도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 경비병들도 시대의 희생양이겠지만, 때로 인간은 그 상황에서 벗어나는 꼼수를 부릴 여유가 있긴 하죠...

      쑤우 / 그 시대를 살아온 사람은 모두 그런 상처 하나 쯤 가지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어요.

      amenic / 다른 건 몰라도 몸이 막 쑤시니 오타가 마구 나옵니다.

      고집멸도 / 사실 전 정답을 제기하기보다는, 생각을 하고 고민을 하게 하는 글이 더 좋아요. 그 과정이 괴롭지만요.

      autechre / 엠네스티에서도 물고문 반대 동영상을 만들곤 했죠. 너무 아름답게 찍어서 깜짝 놀랐습니다.

      beer inside / 설령 아버지가 어떤 사람이라도, 아들에게 잘못을 전가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겠지요. 별개의 사람이니까요.

      쑤우 / 헉, 신해철 루머는 처음 들어봅니다. 만약 진짜 아들이었다면... 음, 상상이 안 되네요 웬지.

      에아렌딜 / 하신 말씀이 아주 맘에 듭니다. 맞아요, 우리가 왕왕 짖을 순 없는 노릇이지요.

      옥수수가 모르잖아 / 웬지 닉을 바꿔야 할 필요성을 느낍니다 ㅠㅠ

      BeatWeiser / 하신 말씀에 동의합니다. 그리고, 일하느라고 컴 앞에 있어서요...
    • 이 와중에 김창룔 세 글자를 들으니 친일파 인명사전에서 빠졌던 씁쓸한 일이 떠오릅니다. 이종찬 장군도 들어간 그 인명사전에 김창룡이 빠져 있다면 말이 안 될 일.
    • 네버 렛 미 고 생각나네요. 잘 읽었습니다.
    • LH님 글을 모두 좋아하지만 조선시대같은 경우는 즐거운 내용이 많은데 근현대사 얘기는 모두 아픈 역사들이네요.

      아프신분께 요청하는게 죄송하지만 다음에는 밝은 얘기로 해주시면 감사~ 얼릉 쾌차하세요~
    • 01410 / 확실히 그 문제를 생각하면 참... 작성하신 분이 참 고생하셨지만 사람 하는 일에 어찌 아쉬움이 없겠습니까. 이렇게 담아두고 기억해서 또 다른 역사의 장에 기록해야겠죠.

      호레이쇼 /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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