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야그] 10만원 짜리 농구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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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학생들 사이에서는 모 등산복 메이커가 그리 유행을 한다죠. 옷값이 40만원대로 대단히 비싸서 부모님 등골이 휜다고 하여 등골브레이커라고도 불린 댑니다.   우리 때는 안 그랬는데, 대체 요즘 애들은 철이 없다, 정신머리가 없다라고 성토하는 목소리가 높아집니다. 그깟 바람막이 코트 하나 아무 거나 입으면 되는데 왜 그리 부모님을 힘들게 하냐고 말이죠. 그런 의미에서 가슴에 손 하나 얹고 자신의 과거를 성찰하는 시간을 가져보도록 합니다.  
  90년대 학교를 다니신 분들. 10만원짜리 농구화를 기억하십니까?  
  그 때는 한창 농구의 열풍이 몰아닥치던 때- NBA에서는 마이클 조단, 샤킬 오닐 등이 뛰어다녔고, 텔레비젼에서는 드라마 마지막 승부가 했으며, 농구대단치에서는 문경은, 이상민, 서장훈이나 현주엽 등이 있었고... 슬램덩크 만화에 빠져 책상 위를 만화 캐릭터로 도배한 녀석들도 있었고, 농구장에서는 공 던지며 풋내기 슈웃- 을 외친다거나, 내가 강백호다! 라고 외치는 유치찬란한 놈도 하나 쯤은 있었습니다. 아, 학교 앞에서 줄줄이 걸어놓고 팔았던 농구선수들의 컬러 사진들도 있었죠. 개중 이상한 사진들도 있긴 했고.   ...뭐, 그랬던 때였죠.   이 대목을 보며 쪽팔린 사람이 하나 쯤은 있을 겁니다.  
  또 그 때 학생들의 마음을 들뜨게 했던 그 것은... 바로 농구화!   에어조단, 샤크어택! 여기에 덩크 시리즈나 뉴터보제트라던가, 다크스타등등. NBA 농구 스타들의 이름을 딴 각종 농구화들은 반짝반짝 아름다웠고 수많은 학생들은 그거 한 번 사달라고 엄마를 졸라댔지요.  
  그렇게 산 외제 농구화를 신고 학교에 가면 애들이 우와~ 하고 입을 딱 벌렸고, 그 순간만은 공부를 못하던, 못생기던, 친구가 없던 간에 많은 이들의 우러름을 받는 선망의 대상이 되었고... 당연히 기분은 째졌지요.   그런데 93년도 당시 에어조단 농구화의 가격은 9만 6천원. 결코 작은 돈이 아니었습니다. 뭐 그 때나 지금이나 출판사 계약금은 100만원에서 변동이 없지만, 아무튼.  
  어른들은 정-말로 못마땅해 했습니다. 애들이 브랜드 증후군에 걸렸다고, 국산 좋은 신발들도 많은데, 외제품에 목을 매는 애들의 이기적이고 잘못된 과소비를 비난했지요. 강남 중학생 70%가 수입브랜드 농구화를 신는다는 통계도 나왔습니다.   신문에서는 요즘 부모들이 그냥 오냐오냐해줘서~ 이후로는 모든 분들이 살면서 한 번쯤은 들어봤을 '우리 땐 안 그랬는데'의 잔소리를 실었고, 비싼 수입 농구화 대신 7천원 짜리 국산 농구화를 즐겨 신는 현명하고 똑똑한 학생들의 미담 및 인터뷰를 다투어 실었습니다  
  "우리나라 농구화를 신고도 농구 잘 할 수 있어요!"   "국산 농구화를 신었더라면 우리나라가 IMF를 겪지 않았을 거여요!"  
  ...라는 모범답안을 줄줄 읊어대는 아이들이 인터뷰를 해대긴 했습니다만. 웬지 비웃음이 피식피식 나오는 것은 필자 뿐만이 아니리라 믿습니다. 제 모든 사회적 위신과 명예(그런 게 있던가)를 걸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걔들도 가지고 싶었을 걸요.   그거 다 어른들이 무슨 대답 원하는 지 뻔히 보이니까, 어쩔 수 없었으니까 참았던 거지, 멋있는 거 싫어하는 사람 없습니다.  
  결국 이런 사회적 계몽으로 안 되니까 마침내 학교에서는 농구화를 신고 등교하는 것을 금지했지요. 마산의 어느 학교는 아예 학칙으로 정해버렸습니다. 하지만 언제나 그런 것을 뚫고 나가는 꼼수가 있는 법. 학교 근처 지하철의 사물함은 꽉꽉 들어찼고, 그게 아니더라도 학생들은 학교를 벗어나는 족족 가방에 숨겨왔던 농구화를 신고 다녔죠.   더하여 농구화 삥 뜯는 애부터 도둑도 많았습니다.  
  그럼 부끄러운 과거는 그만 이야기하고, 왜 그랬을까요?   왜 그런 신발쪽 하나 사고싶어서 그리 안달을 냈을까요... 그냥, 신발일 뿐인데. 그 땐 정말 뭔가가 씌인 것 처럼 목숨 걸고 갖고 싶었던 것들이 많았죠.  
  뭐 그 옛날의 농구화 유행과 지금의 노스페이스 유행은 완전히 같지는 않습니다.   디테일하게는 다르지요. 색깔별로 계급을 정하거나 그런 것은 아니긴 했습니다... 기발한 디자인의 농구화를 신고 오면 우와, 하긴 했지만요. 그래도 왜 그런 일이 벌어졌는가에 대한 분석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았습니다.   97년도 보도를 인용해보지요.  
  "오로지 성적만을 잣대로 평가하는 숨막히는 교육 풍토에의 반발이다. 공부 못하는 애들은 자신이 무가치하다고 생각할 수 밖에 없고, 그래서 공부 잘 하는 애들의 들러리라는 생각을 떨치고 자아존중감을 갖추기 위해 새로운 행동으로 과시하려는 욕구가 있다. 그래서 유명브랜드나 희한한 옷을 입으려 하고 옷차림에 관심을 가지면서 생활을 옥죄는 공부에게의 중압감도 피하려 한다..."  
  다시 한 번, 날짜를 확인해보니 97년도입니다ㅡ 하하하.  
  그 당시 농구화 유행을 보면서 제가 뭔 생각을 했는지는 기억이 안 납니다. (다행히) 하지만 이제 머리가 자라고 나서 생각해보면... 그렇게 나쁘지는 않았다 싶습니다. 어른이 되고 사회에 나오고 보니까 더 그렇게 느껴지네요.  
  사회학 이론에는 저보다 더 정통한 분들이 많겠지만, 저 나름으로 주워모아 생각해보자면, 어릴 때 부터 허다하게 들어왔던 말이 있지요. 튀지 말고 남들처럼 하라는 겁니다. 개성을 억누르고 집단의 하나가 되라는 말인데 보통 이 실천 방법은 두 가지입니다.   1. 남들 하지 말라는 것 안 하는 것   2. 남들이 하는 것을 따라 하는 것.  
  그런데 그렇다고 해도 남과 달라지고 싶은 욕구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거든요. 남보다 멋있어지고, 예뻐지고 싶고 그런 거죠. 이런 상충되는 욕구와 관념 사이에서 합의한 결과가 바로 10만원 대 농구화가 아닌가 싶습니다.   "남들이 하는 대로"의 농구화이되, "멋져지고 싶은 욕구"도 충족되는 거죠.   시계바늘을 이십여년 전으로 돌려, 제 앞에 수입 농구화와 국산 신발을 놓는다면? I당연히! 농구화 쪽을 집을 겁니다. 멋있잖아요?   지금도 그렇듯이 그 때도 공부의 압박은 대단했고 공부 못하면 못난 취급 받았죠. 공부 못한다고, 못 생겼다고, 친구 없다고 선생님들이 문제아라고 구박하는 앞에서 위축되는 데, 자존심을 10만원으로 살 수 있다면 사실 싼 거라고 생각합니다.  
  요 근래 노스페이스 유행의 가장 문제는, 멋져보이고 싶어서 입는 게 아니라, 그걸 안 입으면 따돌림받고 빵셔틀을 하기 때문에 입는다는 거죠.   작은 차이 같지만 사실은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옛날에는 선망이었다면 이젠 절박해진 거지요. 그런 의미에서 가난한 엄마를 졸라서 억지로 노스페이스 사갔다던 학생의 이야기가 마냥 아이가 철없다고 탓할 수 만은 없어집니다. 왜 이렇게 된 걸까요? 이 사회가 그만큼 나와 다른 것을 용인하지 못하고, 나보다 못 가진 상대를 함부로 대해도 된다고 용인하는 걸까요? 그래서 어떤 의미에서 진정으로 개성을 압살하는- 그런 각박한 사회가 되어버린 걸까요?  
  언젠가 이 유행도 가라앉겠지만, 이 모든 현상의 진정한 근원이 해결되지 않는 한 또 다른 문제가 나타나리라고 봅니다.
    • 좀 더 세대를 거슬러 올라가면 나이키와 조다쉬 청바지였다죠 :)
    • amenic / 죠다쉬- 이죠, 죠다~쉬. 그 전 학생들이 선호하던 메이커도 잼나더군요 ㅎㅎㅎ 국민 책가방 이스트팩도 있고요.
      • 아 죠다쉬라고 썼군요
    • '자존심을 산다'는 부분에 아주 크게 공감합니다. 예전과 비교하여 문화가 더 자유로워지는 방향으로 발전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남들의 눈에 어떻게 보이는가'하는 부분에서의 압박은 더 심해진 것 같아요. 관련 뉴스들 보면, LH님 말씀처럼 '요즘 십대들 쯧쯧'하는 논조나 댓글들이 많던데, 십대들이 그렇게 자라도록 만든 이 사회를 만든 어른들의 책임을 제대로 고민하는 경우는 드물더라구요. 요즘 십대들이 안타깝고, 미안하고 그렇네요.
    • 제가 나온 부산의 한 중학교는, 92년에는 구두를 신는 것을 금지했었는데-
      93년에 교내에 농구화 유행이 시작되자, 구두에 대한 규제를 풀고- 농구화에 대한 규제를 시작했었죠.
      이러나저러나 두발은 늘 3cm였습니다.
      아, 갑자기 옛 생각이 새록새록하네요.
    • 혹시 슈퍼볼 시리즈를 기억하시는 분은 안 계신가요. 조던 전에 나름 먹어줬던 프로스펙스 농구화인데 말임다. 한때 저희 동네 중학생들의 선망의 대상.
    • 술술 읽히네요 역시 재밌게 잘봤습니다 :)
    • 13인의아해 / 저도 좀 많이 미안합니다. 그들을 이해하고 상처를 보듬어봐야 한다고 생각해요... 어른들의 사회가 그대로 투영된 게 아닐까도 싶습니다.

      차차 / 그러고보니 두발 규제도 만만치 않았죠. 머리 염색한 친구들이 검사하는 날 먹지를 가져와 머리에 부비던 게 생각납니다.

      유빅 / 옷, 여기 다시 역사의 한 자락이! 프로스펙스 광고도 전 기억납니다.

      세레브로 / 즐겁게 읽으셨다니 다행입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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