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주기.
제목대로, 오늘은 우리 그녀의 3주기였습니다. 1주기와 2주기는 이모들과 같이 보냈지만, 이제는 이모들이랑 연락을 안 할 생각이고.
아부지님은 생각하고 있으실지 모르겠어요. 역시 연락 안 했죠, 오늘 3주긴거 아시냐고 해서 뭐하겠어요. 우리가 제사를 지낼 것도 아니고.
이 추운 날 성산대교 밑에 가서 맥주라도 뿌릴 수야 있겠지만, 3년째가 되고 나니 다 부질없다는 생각이 들었지요. 사실은, 오늘이 그 날인
것도 새벽에 누워 잠을 청할 때, 묘하게 1월 4일이라는 숫자가 마음에 걸리는 듯해 곰곰이 생각하다 깨닫게 된 거죠. 그래요 전 그 정도 딸.
그래서 어떻게 보내야 할까, 곰곰이 생각해 봤지만, 딱히 할 수 있는 게 없었어요. 사실은 뭔가 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는지도 몰라요. 덤덤하기
그지없는 마음을 느끼면서 대체 이 무감함은 뭔가, 궁금해지기도 했죠. 그래서 잠에서 깨자마자 벱후님한테 전화했어요. 오늘이 그 날인데,
혼자 있기도 청승맞고 그러니깐 와서 밥이나 같이 먹자고. 근데 불러놓고 나니 괜한 짓을 했다 싶어요. 이런 날 누구랑 같이 있든 혼자 있든
무슨 큰 차이가 있겠어요. 그녀가 없다는 사실 때문에 위로받아야 할 시기는 이미 지났는데.
어쨌든 벱후님은 추위를 뚫고 와주었고, 비주얼이 몹시 구린 감자탕을 배달시켜 나눠 먹었어요. 맛이 있진 않았지만 없지도 않고, 배가
불렀으니 그걸로 된 거고. 평소처럼 아는 사람 뒷담화와 개드립 가득한 일상대화를 심상하게, 혹은 낄낄대며 나누다가 헤어졌습니다.
다이소에서 산 2천원짜리 장갑 자랑하는데, 껴보고선 좋길래 내꺼 찜뽕, 삥뜯었어요. 벱후는 울면서 돌아갔습니다. 일진놀이했어요.
그리고 뭘 할까, 생각하다가 아무 생각 없이 쇼핑을 시작했어요. 어디 나가지도 않으면서 겨울 껍데기를 왜 사겠다고 그리 돌아다녔는지
모를 일이지만 아무튼, 꽂혔으니 골랐고, 대차게 고른 기세가 무람하게도 막상 결제할 때 찌질스레 머뭇. 으익 몰라 다음주에 보험금 나온다며!!!
그러고, 나니까 열한시. 오늘이 끝나가는군요. 아무 일 없이 넘길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역시 지금 이 순간 그녀에 대해 조금이라도 생각하고
무언가를 적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아서. 2주기때도 그랬듯 혼자 일기장에 쓰다가는 너무 청승떨며 궁상맞아질 것 같아 공개개시판에 쓰기로 했죠.
그렇게 적어내려 가면서, 오늘 이상하리만큼 태연하고 아무 생각이 들지 않았던 건, 어쨌거나 태연을 가장한 자기방어기제일 뿐이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되었어요. 그녀에 대한 제 그리움은 맥락이 없어요. 멀쩡히 지내는 아무 순간 아닌 그런 때에 문득 벅차게 밀려와,
토해내지 않으면 견딜 수 없게 만드는. 그렇다고 그런 맥락 없는 울음을 양껏 토해내는 게 제대로 된 그리움의 표현인 것 같지는 않아요.
이제 오랜 시간이 지났으니까, 그녀가 저를 잊고 있었으면 좋겠어요. 나는 뭐 어차피, 앞으로 평생 일년에 한두 번은 넘치게 기억할 테니까.
그러나 만약 지켜보고 있다면, 지금의 저를 보고 나쁘지 않다, 고 생각해 줬으면 좋겠어요. 저는 지금의 제가 마음에 드니까요.
나는 혼자 밥도 잘 해먹고, 지금 몸은 좀 불편하지만 금방 괜찮아질거고, 이쁘고 따뜻한 내 동물들과 같이 살고 있고, 필요한 포지션에서
넘치는 배려를 해 주는 주변 사람들도 필요한 만큼 가지고 있다고. 뭐가 막 넘치고 되게 잘나고 진취적이고 쌩쌩한 청춘은 아니지만,
나는 지금 내 생의 속도와 질감에 어느 정도 만족하며 살고 있다고. 그러니, 그것으로 그녀도 만족해 주었으면 좋겠어요. 만약 그녀가
살아있다면 그녀와 저는 아직도 불구대천의 원수마냥 으르렁대며 서로를 할퀴었을 게 자명하지만. 어쨌건, 지금은 없으니까.
오늘 많이 추웠다면서요. 전 며칠째 밖에 나가지 않아 잘 모르겠지만 오늘 한강에 갔더라면 너무 추워서 더 아득했을 것 같기도 해요.
그녀가 지금 따뜻하고, 편안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다시 한 번 바라건대, 나를 잊어버리고 있기를. 혹은 그 어디에도 없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