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당동 커피 소사이어티
커피값이라는 게 참 애매하죠. 1000원짜리 테이크 아웃 커피가 어떤 분들에게는 극단적으로 싸고, 또 어떤 분들에게는 믿을 수 없게 비쌉니다. 기호식품의 운명이란 그렇습니다.
며칠 전, 제가 무척 좋아하는 한 커피숍에 앉아있는데 옆 테이블 손님이 말을 거셨습니다. 얼마 전 열린 카페쇼에 다녀오셨나 봅니다. 거기서 기가 팍 죽어왔다고 하십니다. 커피하는 분인가보다, 워낙 쟁쟁한 샵도 많고 쟁쟁한 바리스타도 많으니까. 속으로 짐작하는데, 덧붙이십니다. "제가 무슨 일하는지 궁금하죠? 저는 커피 하는 사람이 아니에요."
"그럼 혹시 차 하는 분이세요?"
제 짐작이 맞았습니다. 차를 취급하는 분이셨어요. 그런데 왜 기가 죽어 오셨을까요? 그분 말씀이, 차는 커피랑 상대가 안된답니다. (여기서 무수한 듀게 차 애호가들의 반발이 예상되지만), 저도 일정부분 공감해요.
커피 좋아하는 사람들은 보통 차도 좋아합니다. 안 그런 경우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그래요. 좋은 커피를 즐기는 분들은 좋은 차도 즐기죠. 그런데 차를 좋아하는 분들은 커피를 못 마시는 경우가 많았어요. 아무래도 홍차나 녹차에 비하면 커피는 너무 강렬하고, 쓰고, 야성적이고, 거칠어요. 그에 비해 차는 점잖고, 섬세하고, 델리킷 하달까 프레좌일 하달까, 그런 어려운 느낌을 받습니다. (제 경우에는요.) 이런 점이 차에 좀 더 접근하기 어렵게 만드는 걸까요? 뭐 이건 그냥 제 어렴풋한 느낌일 뿐이고요. 실제로 그 옆테이블의 차박사님(별명이 차박사라고 하더군요)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아주 명백하고도 실제적인 이유로 차는 커피에 못 당한다고 결론을 내리신 거죠.
차는 가격면에서 커피랑은 상대가 안됩니다. 좋은 차는 좋은 커피보다 비싸요. 훨씬 비싸요. 너무 비싸요. 왜 그럴까요? 차쪽은 잘 모르다보니 어떤 희소한 차들이 하늘높은 줄 모르고 값이 올라가는지 궁금하네요.
하지만 비싼 커피 쪽은 조금 압니다. 분명 비쌀 만한 이유가 있는 커피들이 있어요. 그런 커피에 비싼 가격을 지불하는 건 아깝지 않습니다. 프랜차이즈 커피숍에서 한 잔에 사오천원씩 주는 것은 너무 아깝지만요.
오늘 소개할 사당동의 커피 소사이어티의 아메리카노는 3500원입니다. 여기에 COE(Cup of Excellence) 커피가 7천 원입니다. 제 기준으로, 이곳은 아주 저렴한 가격으로 훌륭한 커피를 제공하는 멋진 곳입니다.
커피소사이어티에 가는 길은 멀고 험난합니다. 사당 혹은 이수역에서 내려 마을버스를 타고 종점까지 가야하죠. 하지만 아파트단지에 사이에 자리잡고 있는 덕분에 조용하고 아늑한 분위기에서 커피를 즐길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
카페 내부입니다. 여기까진 봤을 땐 평범한 동네 카페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습니다. 하지만 열길 물속은 알아도 한길 카페 속은 모른다고. 커피를 맛보지 않고서야 어찌 이 카페에 대해 평가를 하겠습니까!
커피소사이어티는 COE 혹은 프리미엄급의 생두를 사용합니다. COE(혹은 ACE, Alliance for Cup of Excellence)는 남미를 중심으로 결성된 커피 단체로 매년 커피 대회를 개최하고 있습니다. 아프리카 국가인 르완다를 제외하고, 브라질, 니카라과, 엘살바도르, 코스타리카, 과테말라, 온두라스, 멕시코, 콜롬비아 등의 남미국가가 회원국으로 있습니다. COE 대회에선 3주의 대회기간동안 국가별, 농장별로 출품된 생두에 대해 평가를 합니다. 심사위원은 최소 5회 이상의 커핑을 통해 점수를 매기고, 상위 10위권에 든 커피를 다시 평가합니다. 여기서 85점 이상을 받은 고득점 생두들은 옥션에 참가할 기회가 부여됩니다. COE맴버로 가입된 카페나 단체들은 이 옥션에 참가하여 커피를 구매하죠.
COE에서 높은 순위에 오른 커피는 일반 생두에 비해 몇 배(혹은 십수 배)나 높은 가격에 낙찰 됩니다. 농부들은 여기서 얻는 수익의 80%를 가져갑니다. COE의 강점은 여기있습니다. 농부들은 합리적인 경쟁을 통해 고품질의 생두를 공급하고 합리적인 수익을 보장받습니다. 바이어들은 질 좋고 출처가 명확한 커피를 경쟁을 통해 구입하고, 좋은 가격에 판매를 할 수 있죠.
COE생두는 가격도 비쌀뿐더러 구입하기도 만만치 않습니다. 그래서 저 COE스티커는 더 빛을 내는가 봅니다. 많고 많은 커피용품중에서 유독 COE스티커만이 눈에 띄네요.
이 곳의 COE생두 혹은 프리미엄급 생두는 모두 매혹적인 빨간색 기센(Giesen)로스터를 통해 볶습니다. 좋은 생두에 훌륭한 로스터기 그리고 커피를 사랑하는 로스터까지. 벌써 맛있는 커피가 상상되네요.
생두와 로스터기에 비해 에스프레소 머신은 소박합니다. 시모넬리 아피아를 사용하고 있죠. 하지만 커피의 맛은 90%가 생두에서 결정된다고들 합니다. 그리고 남은 10%의 90%는 로스팅에서 결정되고요. 추출에서 결정될 수 있는 요소는 사실 매우 적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추출에 따른 차이 또한 현격한 게 재미죠.)
정수기는 홍대 헤이마에서 쓰는 것과 같은 에바퓨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COE 생두의 향연에 놀라셨다면 이제 가격에 놀라실 차례입니다. 아메리카노가 3500원. 테이크아웃하면 3000원. COE 혹은 프리미엄 생두(COE와 맞먹는 고급 생두)를 사용한 블렌딩치곤 말도안되는 가격이죠. 남는 게 있을지, 가게는 잘 운영되고 있는지 손님이 걱정하게 만드는 샵입니다.
드립 커피의 가격도 컵오브엑설런스 상위권 커피라는 점을 감안하면 아주 저렴한 가격에 판매되고 있습니다. 사장님의 자비로움의 끝은 어디까지일까요. 일단 메뉴판 앞에서 넙죽 절을 하고 아메리카노 한 잔을 시켰습니다.
연이어 마셔본 드립커피는 코스타리카였습니다. COE에서 18위에 오른 생두로 만들었습니다. 새콤한 맛이 팡!팡! 터지는 맛이 인상적이네요. 여운이 길지는 않았지만 짧게짧게 느껴지는 상큼함이 매력이라 별 불만은 없었습니다. 식어서는 고소한 맛이나기도 했죠. 좋은 생두와 적절한 로스팅의 승리입니다. 생두에 문제가 있거나 로스팅 포인트가 잘못 잡혔을 경우, 커피가 식었을 때 지나치게 신맛이 도드라지거나 매력이 사라지는 경우가 흔하거든요.
서재를 보면 주인이 어떤 사람일지 짐작이 되죠 :)
매장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는 각종 COE 관련 인증서들.
사장님은 처음에 소박하게 로스팅을 해서 이웃들에게 나눠주셨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더 많은 사람들과 커피를 나누고 싶어 동네 상가에 카페를 마련하셨구요. 이윤을 얻기보다 좋은 커피를 나누고 싶은 마음에 저렴한 가격에 커피를 판매하기 시작하셨다고 합니다. 커피를 정말로 사랑하시기 때문이죠. COE 생두를 고집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입니다. 하지만 저로서는, 이렇게 적자를 보며 운영을 하시다가는 카페가 문닫게 될까봐 전전긍긍입니다. 오지랖이죠. 커피값이 오르는 건 슬프지만, 좋은 카페가 사라지는 건 더더욱 슬프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