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남한에서 민족주의는 유효한가-푸네스님의 글을 읽고

저도 민족주의와 친일에 대한 짧은 생각을 써 볼까 합니다.

생각은 짧은데 글만 길어질 것 같아 조심스럽긴 하지만

의견의 공유라는 온라인의 순기능에 초점을 두고 너그럽게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꼭 푸네스님께 드리는 얘기는 아닙니다만, 푸네스님의 글을 읽고 생각을 전개했다는 점 먼저 밝힙니다.

생각의 기회를 준 푸네스님께 감사드립니다. (그러나 저의 퇴근을 세시간 늦추셨습니다 ㅠ저 이제 퇴근합니다 ㅠ)

 

21세기의 남한에서 민족주의는 여전히 유효한가에 대한 질문을 던져봅니다.

 

1. 민족주의 일반에 대하여

 

저는 민족주의가 일종의 신화라고, 더 정확히는 지배계급의 이익을 위해 작동하는 신화라고 생각합니다.

푸네스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조선시대의 양반계급은

아마도 같은 조선의 똘복이보다는 대륙 어딘가의 선비와 계급적 동질감을 공유했을 것입니다.

서양에서도 그러했겠고, 한 나라의 왕조에 대해 반란이 일어나면 다른 왕조가 군대를 보내어

혁명군을 제압하거나 망명한 몰락 왕조를 보호하거나 하는 일도 드문 경우는 아니었습니다.

자본주의 이전의 계급사회에서도 여전히 국가는 존재하였지만

그 구성원들이 실감하는 민족의 개념은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가 말하는 민족의 개념과는 차이를 보입니다.

 

자본주의가 발전하면서 민족주의는 국가 내의 계급적 차별을 은폐하고

하층 계급의 불만을 외부로 발산시키는 데 공을 세웠습니다.

민족국가들 사이의 경쟁에 바탕을 둔 자본주의는 민족주의를 끝없이 부추기고 파퓰리즘에 기반한 쇼를 벌이지만,

어느 지점에서 민족적 갈등이 자본의 이익과 대치하는 경우 민족의 가면을 벗어던진 사례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민족자결권을 주장한 윌슨이 쿠바와 도미니카, 아이티 등 민족국가의 자결권을 해쳤던 것처럼,

한국의 정상들이 정기적으로 독도에 대해 강경한 발언을 하는 듯 하지만

과거에 얽매이지 말고 미래로 나아가야 한다거나 기다려달라고 한다거나 했던 것처럼요.

 

여기까지는 저와 푸네스님의 인식이 공유하는 부분이 많은 듯 합니다만 다른 점을 얘기하자면,

저는 말씀하신 주목받지 못한 희생자들에 대한 조명은 오히려 더욱 명백한 과거 청산이 선행되어야 가능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또한 한국의 역사에서 친일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던 유일한순간이 지나가버렸다고 생각하지 않고,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며 미약하나마 우리에게는 다양한 방법과 기회가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2. 3세계 민족주의에 대하여

 

서구의 민족주의와 제3세계의 민족주의-소위 말하는 식민지 민족주의는 다른 양상을 가지고 있습니다.

짐이 곧 국가입네 하던 시기에서 군주가 사라지고 민족이라는 개념이 자리잡기 시작했다는 해석을 많이 봅니다.

저는 전문가가 아니라 학술적 논의로 들어가면 어렵습니다만,

프랑스혁명에서 유래해 나폴레옹 전쟁을 통해 유럽 일반에 전파되었다는 서구의 민족주의는 제국주의적입니다.

-프랑스 혁명에서 유래했다는 것은 민족주의가 당시 부르주아지의 요구에 부합했고 그에 맞게 발전해 왔다는 반증이기도 하지요.

 

그러나 한국을 포함하여 제3세계의 민족주의는 제국주의에 반하고 제국주의와 결탁한 지배세력에 반하며 성장해 왔습니다.

따라서 그 제국주의와 결탁한 지배세력에 대한 반감을 서구식 민족주의의 작동으로만 보는 것은 엄밀하지 못하다고 생각합니다.

제국주의 국가의 하층 계급이 민족주의에 경도되는 것은

해당 국가 내에서 자국 자본가들의 이익에 기여하고 스스로의 손해를 가져오기 쉽습니다.

반대로 식민국가의 하층계급이 민족주의를 걸고 싸우는 것은 어떠한 지점까지는,

제국주의적 압제가 해소되고 자국 내 계급의 문제가 보다 명확히 드러나는 단계에 이르기까지는 효과적인 진보의 동력이 됩니다.

 

한국이 해방되었을 때에, 물론 일본이 패전하고 열강의 참정이 있었으나,

그 이전까지 과연 누가 독립을 가장 열망하였는가 하면 당시의 지배계급은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일본 아래서 기득권을 누렸으니까요. 3.1운동은 거리에서 시장에서 일어난 것이지 관청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지요.

 

3. 21세기 남한의 민족주의에 대하여

 

현대 한국에서 누가 가장 통일을 원할 것인지 생각해보면 과거와는 좀 다른 모습을 볼 수도 있습니다.

오히려 일반 국민들은 하루하루 먹고살기 바빠 그런지 이산가족들이 상당수 죽어서 그런지

워낙 북한의 실상을 들어서 그런지 여튼 민족적 동질감이 많이 옅어진 반응을 보입니다.

노동자들의 경쟁은 더욱 심해질 것이고 국민들이 감당해야 할 흡수통일의 비용은 클 것입니다.

 

그러나 자본가들은 이미 개성에 공단을 만들고 북한의 값싼 노동력을 이용했습니다.

치적 위험을 무릅쓰고 들어간 것은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의 개념이지 통일을 위한 대의적 차원은 아니었지요.

그것이 얼마나 성공적이었는가와 별개로 북의 값싼 노동력이나 자원, 새로이 창출될 시장 같은 것들은 매력적이었습니다.

 

개성공단 조성을 앞두고 남북 접경지역의 땅값이 올랐으며,

재계는 중소기업 인력난 해소를 위해 개성공단 조성 기간을 단축해 달라고 정부에 요청했습니다.

북한 노동자들의 임금 수준은 한 민족임을 감안하여중국이나 동남아보다 약간 높은 수준에서 형성되었고

개성공단 분양가는 평당 15만원대 였습니다. 개성공단에 입주한 122개 기업의 생산액은 3 2000만 달러이고,

47000명 근로자 중 46000명이 북한 노동자입니다.

문제가 발생할 시 보상은 수출입은행 등에서 총 투자액의 90%까지 해준다는군요.

 

정치권의 입장에서 바라보면 빨갱이니 주적이니 하지만 적대적 공생 같은 용도는 차치하고,

본질적으로 어느 정치가이든 통일의 주역이 되는 것을 마다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 과정과 비용을 얼마나 유연하게 통제하느냐는 정치가가 누구냐에 따라 크게 달라지겠지만요.

츤데레의 대상을 북한에서 중국(동북공정)이라든가 일본(군국주의)으로 대신하겠지요.

 

현대 한국의 민족주의는 과거의 식민지 민족주의가 아닙니다.

21세기 한국은 이제 식민지가 아니고, 세계질서 상에서 상위 20~30위권에 드는..

반장은 못되도 분단장, 조장 정도 하는 꼬마 제국주의 국가가 되었습니다.

북한 뿐 아니라 중국이나 동남아, 아프리카에도 간다고 하고 말이죠.

 

21세기 현대 한국의 민족주의는 서구식 자본주의적 민족주의에 가깝습니다.

또한 민족주의는 좌파적으로도 우파적으로도 이용될 수 있고,

그러한 허점에 비해 강렬하고 즉각적으로 효과를 발휘하는 호소력 때문에

몇몇 진보적 공간에서는 농담의 소재로 등장할 만큼 전락한 것이 현실입니다.

촌스러운 것, 감정적인 것, 때로는 지배계급에 이용되는 것으로 비아냥의 소재가 됩니다.

 

4. 친일 청산과 민족주의에 대하여

 

그러나 친일 청산의 문제는 여전히 식민지민족주의의 관점에서 바라보아야 합니다.

민족주의가 단일한 추상이 아님을 인정한다면 말이죠. 친일파에 대한 한국인들의 반감은 청산되지 않은과거에 기인합니다.

 

나이 많던 친일파들이 죽었습니다. 그러면 그 후손은 아무런 연관이 없는 사람이므로 죄과를 묻는 것은 연좌제라 합니다.

그러나 21세기 한국에서도 과거청산이 빨갱이 좌파라고 무수히 손가락질 받으며 말을 꺼내야 하는 문제라는 현실은

그 후손들에 의해서 역사의 은폐와 왜곡이 자행되고 있음을 외면하고는 설명할 수가 없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핏줄로서의 후손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며(많은 경우 그렇기는 하겠지만 통계적으로 확인해보지 못했으므로),

친일 지배세력의 유형/무형의 자산을 이어받은 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것입니다.

 

친일인명사전이 법적 구속력을 가지는 것도 아니고, 친일파의 족보를 대대로 이어 붙이겠다는 것도 아닌데

후손들은 불명예를 당했다고 여깁니다. 인정하지 않으려 하거나 은폐하려 합니다.

(말하지 않아도 내가 낸데 하는 짜한 사람들이 많아서 그럴 수도 있겠습니다만)

 

친일 후손들의 재산 환수에 대하여는 이미 법적으로 결론이 난 듯 하나,

법 제정이 꽤 전에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바로 올해 7월까지 69건의 항소가 남아있었다고 하고,

바로 엊그저께인 12 19정미7중 하나인 친일파 송병준의 후손이 패소했습니다.

조선왕실의 종친으로 일본정부로부터 후작 직위와 공재 168000(현재돈 67억원)을 받은

이해승의 후손의 재산 환수는 아직 법정에 남아있습니다.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는 각각의 사주가 친일인명사전에 수록되자 국가의 정통성을 훼손하려는 좌파사전이라고 강력히 주장하였고

방우영 전 조선일보 명예회장은 방응모 전 사장은 친일한 적이 없다며 사전 등재를 취소하려는 소송을 냈습니다.

법원은 친일한거 맞다고 확인해 주었는데, 이 경우는 핏줄인 게 확실하군요.

 

정치인은 너무 많고 기업 자본의 경우에도 독립운동 한다고 재산을 말아먹은 자본가가 있었는가 하면

일제와 독재에 기생하여 재산을 지키고 불린 자본가가 있을 것이고 그렇겠지요.

국가검정 교과서는 통제되고 아이들은 그 교과서로 배웁니다.

 

말하고 싶은 것은, 여전히 청산되지 않은 과거-과거가 아닌 과거-현재 진행형의 역사라는 것입니다.

연좌제라는 것은 할아버지나 부모가 좌익사범이었기 때문에 신원보증서에 빨간 줄이 가서 취업이 취소된다든가

여권이 안 나온다든가 하는 것인데,-물론 이보다 포괄적 의미이지만- 

친일 후손들이 조상의 친일을 인정조차 하지 않는 마당에 너무 과한 말입니다.

 

5. 식민지 민족주의의 유효함에 대하여

 

피해자를 위로하고 재조명하는 것은 가해자의 존재를 인식하는 데서 출발합니다.

너무도 당연한 말이지만, 가해자가 가해자임을 인정하지 않을 때,

그런데 그 가해자가 기득권일 때 피해자는 더한 핍박 속에서 묻혀가게 되어 있습니다.

 

실제로 역사 속에서 기득권층이 내가 살기 위해서상대를 극악으로 몰거나

자신들의 잘못을 은폐하려는 시도는 수도 없이 있어왔습니다.

떳떳하게 살기 위한 선택은 솔직히 인정하고 사회에 기여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무죄임을 증명하려면 저들이 빨갱이임을 혹은 저들의 존재 자체를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게 만드는 것입니다.

 

위안부 문제가 더 조명되고, 독립운동가 후손의 열악한 처우가 더 조명되면

반대로 떵떵거리며 살고있는 친일파의 후손들에게 비난이 가해질 것은 너무도 쉽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그것을 싫어하리라는 것도 너무 쉽게 짐작이 가능합니다.

 

따라서 시일이 지나고 문제가 복잡하니 그만두자는 무용론

가해자를 잊는 것일 뿐 아니라 동시에 피해자를 잊는 것이기도 합니다.

배상을 한다는 것은 죄를 인정하거나 인정 당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친일후손들의 재산을 국고로 환수한 금액의 90% 이상이 독립유공자에게 환원되었다고 합니다. 다른데 쓴 게 아니라요.

 

위안부 문제에 대한 정부의 대응이 사실은 생존자들이 다 죽기를 기다리는 것이라는 이야기가 있는데,

죽은 자는 말이 없다고, 가해자도 죽고 피해자도 죽으면 끝나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사회 구성원들이 공감할 때 진정으로 과거가 과거로서 제자리에 돌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한국의 식민지 민족주의가 여전히 유효한 또 하나의 이유는

안타깝게도 꼬마 제국주의인 한국 곁에 분단장을 넘어서 부반장쯤 되는 중국과 총무쯤 되는 일본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완전히 사장된 주의로 치부하기에는 식민지 민족주의가 발현될 여지가 여전히 존재하고

우파도 좌파도 그것을 여전히 이용하고 있습니다.

 

일본군 장교였던 박정희를 비롯해 반민특위를 무산시킨 이승만, 현재에 이르기까지,

강경한 제스쳐와 실리적 협상(이라 부르고 양보라 읽을수도)을 진행해 온 한국의 기득권과 마찬가지로

중국 역시 중화사상과 민족주의로 통치해왔으나 막상 중국 내에서 반일감정이 극심해 질 때는 중국 국민들을 통제합니다.

 

반면 소수이지만 일본의 군국주의에 반대하는 일본인들과 한국의 식민지 민족주의자들 그리고 좌파들이 협력하는 것은,

한국 정부가 민족주의적으로 일본 정부에 독도 문제의 완전한 해결을 이루어 내는 것보다 훨씬 더 가능성이 높은 일일 것이며

민족주의적 가치를 공유하지 않더라도-계급적 관점에서도 의미있는 일이 될 것입니다.

 

6. 반성에 대하여

 

친일인명사전에 대해 잘 아신다고 하니 비전문가인 저보다 먼저 보셨으리라 예상됩니다만

친일인명사전 발간보고대회 자료에서 본 당사자들의 고백 중 검사의 고백을 인용할까 합니다.

 

-이 검사생활, 이것이야말로 왜정 압력 하에서 독립운동에 신명을 바치시던 애국지사들에게 대하여는

지금도 면목 없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필자의 공사의 생활에서 마음에 꺼림직한 일은 거의 없습니다만 왜제하의 검사,

즉 고관을 지냈다는 것만은 한없이 후회되는 일입니다. 그동안 사상사건을 취급시키지 아니하던 왜제하의 검찰정책 때문에

큰 죄를 지을 기회는 없었으나, 굴절했고 왜제통치에 협력을 하였다는 것만은 아무리 사과를 하여도 모자랄 것입니다.

 

-허일태/ 신동운/ 엄상섭 권력과 자유

 

이것은 이 고백이 통렬하고 뼈아파서 덧붙이는 것이 아닙니다.

당사자의 반성이 이러한 수준이며 (성명서를 발표하고 사표를 냈습니다)

이제와 후손들에게 석고대죄를 하라거나 뭐 그리 큰 반성을 요구하는 게 아니라는 이야기입니다.

 

 

    • 다 읽었습니다. 사랑과 행복 일단 감사히 받고요ㅎㅎ 추천 버튼이 없는 것이 아쉽네요. 구구절절 공감하고 동의합니다.
    • 다 읽었습니다. 구구절절 공감합니다.

      저는 소시적에 몇몇 게시판 돌아다니며 - 주로 새끼 파시스트들이 득실대는 밀리터리 게시판-_-;; - 민족주의자임을 내세우면서 친일파 문제로 키워질하느라 엄청 바쁘게 뛴적이 있는데, 그때 생각나면서 속 한구석이 쓰리네요.
      참...언제나 우리 사회에서 이 문제가 해결될는지.
    • 잘 읽었습니다. 가해자를 잊는 것은 피해자를 잊는 것이라는 말씀에 특히 공감합니다. 청산해야 할 과거를 제대로 청산하지 않고 어물쩡 넘어간 결과가 바로 이런 것임을 새삼 실감하고나니, 전두환 문제도 이대로 두어선 안된다는 생각이 듭니다. 언젠가 덕망있는 할아버지고 연희동 이웃이었다 이런 말 나오지 말란 법도 없을 듯 하고요. 그나마 친일인명사전 작업을 해둔 것이 얼마나 다행인다 싶어요.
    • 고맙게 잘 읽었습니다. 이런 치열한 고민과 정제된 글 읽는 게 너므 좋습니다. 고민해서 해결될 일은 아니지만 그렇게 논의될 가치가 있는 일입니다. 많은 생각을 접해서 좋았네요.
    • 3에 대해 궁금한 부분이 있습니다. 개성공단 사업이 자본의 이해관계에 맞아들어갔다는 얘기는 이해가 쉽사리 안가는 게, 굳이 따지자면 하이리스크, 하이리턴, 하지만 정부 예산으로 어느 정도 보조되는 하이리턴 아닌가요? 언급하신 수출입은행 보험도 통상적이라면 생산 기업에서 보험료를 내고 가입해야 하는 보험이고요. 더 나아가 통일의 경제적 효과에 대해서 논란이 있는 건 물론이고요.
    • 잘 읽었습니다. 많은 부분 동의를 하고, 약간은 오해도 있는 것 같아서 해명을 해야할 의무감을 느낍니다. 이렇게 진지하게 반응해 주셔서 너무나 감사합니다.

      1. 민족주의에 관한 논쟁들 중에 민족주의는 지배이데올로기이기 때문에 사라져야 한다는 주장들이 있는데, 저는 그런 주장에 완전히 동의하지 않습니다. 한편으로는 그것이 지배계급의 이익에 봉사하고 사회의 모순을 은폐하기도 하지만, 어느 공동체에든 반드시 필요한 공동체에 대한 소속감을 제공해 주고, 또 그를 통해 피해자들에 대해 얘기할 수 있는 프레임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2. 진보의 동력이 되는 민족주의라는 부분은 위에서 말한 것처럼 동의합니다. 하지만 1세계의 민족주의와 3세계의 민족주의가 질적으로 차이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예를 들면 지금 한국 사회에서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인종차별 혹은 경제적 발전 정도에 따른 출신 국가에 따른 차별 등의 문제들은 그 어떤 제국의 민족주의보다 질이 나쁜 형태로 발현되는 민족주의라고 봅니다.

      3. 네 동의합니다.

      4. 서사로서의 역사의 개념 문제와 관련되어 있는 민족주의의 하나의 성격은 - 그리고 어쩌면 가장 중요한 - 서사 속에 우리의 주인공 (민족)의 고난의 시기가 있으며 그 고난의 시기를 불러 일으킨 대상에 대한 적대감과 극복의지가 포함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이는 "적"과 '동지'를 구분해내는 서사를 부여한다는 점에서 민족주의 정체성 성립에 매우 중요한 요소입니다. 이러한 민족 서사에서 한국 사회를 떠받히던 두 개의 축은 "반일"과 "반공"이었는데 이 두 가지 모두가 최근들어 많이 흔들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렇게 보수주의자들이 길길이 뛰고 있는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보수주의자들이 "친일"의 배경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들은 "반공"을 통해 정체성의 기반을 확립하려 하지만 이미 먹히지 않는 시도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반 사람들이 "친일"에 대해서 갖고 있는 격한 심정들의 논리구조가 그대로 "반공"을 주장하는 사람들에게서 발견된다는 사실은 두 가지의 뿌리가 동일하다는 것을 의심해 볼 수 있는 증거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과거의 청산이 중요하다는 것에 동의합니다. 하지만 르낭이 말한 것처럼 민족주의의 핵심 중 하나는 "기억"과 동시에 "망각"이기도 합니다. 한국의 근대사가 수립되는 과정에서 "망각"된 것은 친일의 문제만이 아닙니다. 예를 들면, 보다 끔찍한 사건이었던 보도연맹이라던가, 제주학살 같은 사건들은 민족의 서사를 만들면서 우리의 망각의 저편으로 사라져버렸습니다. 그리고 그 밖의 무수한 다른 문제들 예를 들면 독재의 문제라던가 재벌의 전횡이라던가 하는 문제들도 망각속에 존재합니다. 우리는 모두 그런 사건들이 일어났는지 알고 있지만, 예를 들면 친일 부역자에 대한 분노를 표현하는 식으로 그러한 명백한 과거의 잘못들에 대해 반응하지 않습니다.

      친일의 해결도 그런 점에서 역사 속에서 망각된 우리의 과거들을 발굴하면서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면, 조선일보 방응모는 그리고 그의 후손들은 친일파여서만 문제가 있는 사람이지 않습니다. 그들이 친일 행적을 알리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만 사실 지난 20여년의 민족문제 연구소의 발굴작업 이후에 더 이상 그들의 행적 발굴은 정치적으로도 학문적으로 중요한 업적이고, 앞으로 그 업적을 뛰어넘을 수 있는 더 이상 성과가 있기도 힘들고 지금 그것이 가지고 있는 위상을 뛰어넘는 어떤 정치적 의미가 그로부터 나올 것이라고도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방응모의 친일은 조선일보가 아무리 부정하려고 하더라도 그리고 부정하려 하면 할 수록 점점 더 감추기 어려운 문제가 될 것입니다. 하지만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는 문제에 있어서 저는 다른 다양한 방식들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다시 말하면 조선일보는 친일이 아니여도 문제가 됩니다. 그들 사주의 친일 행적은 우리에게 프레임을 제공해 줄 뿐입니다. 그냥 방응모는 친일파 호로새끼라고 말한다고 조선일보는 없어지지 않습니다.

      제가 걱정하는 건 친일의 문제가 사실상 어느 정도 밝혀진 지금에 있어서 그것이 그냥 여러 사람들에게 면죄부를 주고 끝나버리는 것이 아닌가 하는 것입니다. 즉, 친일의 당사자들(대부분 죽고 없습니다만)과 그와 연관된 조직 그리고 가족들은 그러한 불명예를 당한 것으로 자신의 과오가 모두 끝났다고 생각하는 것이고 일반 사람들은 그들의 친일 행적을 알고 그새끼 호로새끼라고 욕하면서 자신들의 소임을 다했다고 생각할 수 있게 된다는 점입니다.

      5. 상당히 타당한 지적입니다. 그런데 지난 20년간 일본군 성노예 운동을 보면서 느낀 건 이러한 구도 속에서 일본의 어떠한 전향적 태도 변화를 기대하는 것은 힘들지 않을까라는 생각입니다. 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의 운동방식이 그런 점에서 매우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데, 한편으로는 가해자에 대한 처벌과 피해자에 대한 보상을 요구하면서 동시에 피해자들의 처우개선에 대해서 노력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이 가능한 것은 피해자들의 피해를 유발한 것의 책임이 일본 정부에 있다는 것이 확실하기 때문입니다.

      일반적인 친일의 문제에 있어서는, 쉽지 않은 구석이 있습니다. 즉, 이들의 친일 행적이 대부분 구체적인 사람에 대한 것이 아니라 민족 전체에 향한 것이기 때문에 이들이 가해자인지도 불분명합니다. -누차 강조하지만 이들이 잘못을 저질렀는지 아닌지에 대한 의문이 아니라, 이들을 특정한 피해의 가해자로 구별해 낼 수 있는가의 문제입니다. - 이들을 가해자라고 생각하더라도 이미 대부분 고인이 된 그들에게 할 수 있는 최대의 일은 그들의 친일행적을 드러내는 것 뿐입니다. 아마 법적으로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그들의 친일재산을 몰수 하는 것일텐데 이미 진행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피해자들은 훨씬 더 특정하기 쉽고 아직도 그로 인한 피해를 보고 있는 것을 알기가 더욱 쉽습니다. 그리고 그들 중 많은 분들은 지금 바로 어떠한 도움이 필요합니다. 저는 친일파 문제 해결하는 것들을 하지 말자는 것이 아니라 그 과정에 많은 문제가 있음을 보이고 싶었던 것이고, 그리고 우리가 친일파 문제 해결이라는 일에 몰두하면서 정작 중요한 피해자들은 잊고 있지 않았냐는 문제제기를 한 것입니다. 아마 잘 아시겠지만, 그나마 위안부 생존자를 위한 특별법 제정으로 위안부 피해자들의 생활은 그나마 많이 좋아졌지만 대부분의 다른 피해자 및 독립유공자의 생활은 여전히 많은 도움을 필요로 합니다. 그들의 기본적인 생활을 해결해 주지 못하면서 친일파에 대한 적개심만을 드러내는 것은 제 생각에는 공허하고, 1번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지배계층의 계략에 말려드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6. 저런 반성이 우리 사회에 정말 필요한 것이고 감동적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저는 저 반성이 우리에게 감정적 카타르시스 말고 실제로 친일을 배경으로 세워진 한국의 기득권을 해결하는데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문스럽습니다. 오히려 저런 반성이 필요한 사람들은 지금 현직에 있는 검사들일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분노가 과거로 향하면 향할 수록 우리 현재의 문제를 보기 어렵게 만든다고 생각합니다.
    • loving_rabbit / 정확히 하자면 정부에 의해 보조되는 것은 '하이 리턴'이 아니라 '하이 리스크'라고 생각합니다.하이 리턴의 요소는 정부가 보조해주는 것이 아닙니다. 지리적 인접성(유일하게 육로를 통해 도달할수 있는 국가가 북한이지요), 언어의 동일성, 민족적 동질감에 높은 교육수준과 낮은 임금 그리고 낮은 임대료는 정부의 보조와 관계없이 존재하는 메리트입니다. 정부는 이러한 메리트가 실현되지 못할 경우에 대하여, 정치적 불안정성과 그에 따르는 위험에 대하여 보상/보조를 합니다. 이것은 차라리 기업 입장에서는 타 국가에 진출할 때보다 더욱 특혜가 많은 경우이며, 현실적으로 보상이 입주기업의 70%선에서 이루어지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보험에 가입한 기업) 여전히 통일부가 나서서 보상해야 한다는 책임론이 지속적으로 제기되는 실정입니다. 그렇지 않더라도-당장 김정일이 죽은 현재에도 개성공단에 입주한 기업들은 일부는 주가가 다소 하락하였지만 일부는 되려 오르기도 하는 등 생각보다 낮은 리스크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통일의 경제적 효과에 대한 논란은 댓글로 달기에는 너무 길어질 것 같습니다만, 통일 후 자본의 관점에서의 이익/불이익과 전체 국민 관점에서의(즉, 세금으로 어디까지 충당하고 무엇을 보조해야 하는가의 문제)이익/불이익이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통일에 소요되는 재원은 국민 전체의 세금에서 나오는 것이며 특정 기업이 부담하는 문제가 아니지요.
    • 푸네스 / 2. 현재 한국의 민족주의는 1세계 민족주의와 3세계 민족주의가 혼합된 과도기적 성격을 띄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것을 현상과 맥락에 따라 분리해서 보아야 한다고 생각하고요.

      4. 민족의 서사를 만들면서 사라져버린 현대사의 희생자들과 마찬가지로 민족의 서사를 만들면서 사라져버린 일제치하의 희생자들을 바라보는 것이 보다 일관성 있는 태도일 것입니다. 역사는 반복되며 어느 순간에서 어떻게 새로운 전기를 마련할 것인가는 현대를 사는 우리들에 의해 결정될 것입니다. 위의 어느 분이 걱정하셨듯이 과거를 청산하는 역사를 제대로 만들어 놓지 않으면, 그러한 경험과 고민을 쌓아놓지 않으면 후에는 현대사의 피해자들이 현재 일제치하의 피해자들과 동일한 대우를 받게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 때에 가서 우리의 후손들이, 제주사건의 피해자/유족들이, 독재치하의 민주화지사/유족들이 죽기를 기다리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인식을 바꾸고 경험을 쌓고 그러한 문화를 만들어가는 일입니다.

      방응모는 친일파 호로새끼라 말한다 해서 조선일보가 없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뭐 친일파이기만 했던 것도 아니고 따지자면 기회주의자들인데,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은 그들의 기회주의를 더욱 공고히하고 정당화 해주는 결과밖에 가져오지 않을 것입니다. 조선일보가 사회에 미치고 또 미쳤던 악영향 중 단 하나일 뿐이라 해도 그것은 안티-조선일보의 진영에서는 여전히 유효한 근거입니다. 그런 식으로 근거들을 삭제해 나가면 종국에는 무엇을 근거로 안티를 주장하겠습니까.

      그리고 여전히 '친일청산'의 프레임보다는 조선일보가 만들어놓은 '우익자본' 프레임이 더 강하게 작동하는 것이 현실에서, 그들이 한국 제1 언론이며 자신의 친일을 인정하지 않는 현실에서 타박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그들에게 '친일호로새끼 맞잖아'라고 말했던 사람들이 없었다면 과연 그들의 친일행적이 이만큼이나마 주목받고 알려졌을지 의문입니다.

      친일 후손들에게 조상들의 친일을 인정하라는 것은 면죄부를 주자는 것이 아닙니다. 이제 와 그들을 따로 단죄하겠다는 것이 아닌 것과 마찮가지입니다. 단 제대로 된 역사 의식을 세우고 같은 역사를 반복하지 않으며 피해자들의 정당한 회복을 위해서 다른 무엇보다 선행되어야 하는 조치입니다. 반성도 용서도 공존도 화해도 가해자의 가해사실에 대한 인정 이후에 가능한 일들입니다.

      5. 가해자의 모호함을 지적하면서 피해자의 특정하기 쉬움을 말씀하시는 것은 모순적입니다. 범위를 한없이 확장하다보면 민족 전체가 가해자이자 피해자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일본 정부와 한국 우익들이 피해자들의 보상 요구를 일축하고 여론을 호도하기 위해 사용해 온 전술이기도 합니다.

      일례로 극우는 아직도 정신대에 대하여 돈을 벌려고 자발적으로 간 것이라는 말을 합니다. 그러한 관점에서 보면 위안부는 돈을 벌려고 일본군에 매춘하며 그들의 사기를 올려준 민족의 배신행위를 했다는 논리도 성립합니다. 그러면 보상같은거 없습니다. 푸네스님께서 위와 같은 주장을 하실 것이 아니시라면, 말씀하신 것과 같은 생각은 매우 위험합니다.

      친일파 문제 해결과 피해자에 대한 적절한 보상과 위로는 동시에 행해져야 할 일이며 지금 말씀하시는 그나마 획득한 성과, 그나마 제정된 특별법, 그나마 좋아진 일부의 생활은 수많은 사람들이 그 책임소재에 대하여, 그들이 피해받았음이 명확하고 그에 대한 보상이 필요함에 대하여 연구소와 거리에서 싸워 얻어낸 것이지 누군가의 온정에 의해 거저 주어진 것이 아닙니다. 이는 이러한 싸움이 계속될 때에 더 많은 피해자에 대한 적절한 보상이 이루어질 수 있음을 시사합니다.

      제가 굳이 글의 반 정도를 할애하여 민족주의 일반과 1세계 그리고 3세계 민족주의에 대해 말한 것은 바로 이 문제에 있어서 친일파에 대해 보여지는 적개심을 1세계 민족주의의 프레임에서 해석해서는 안된다고 말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6. 저 반성이 우리에게 주는 감정적 카타르시스가 제 생각에는 그리 크지 않습니다. 아주 일부일 뿐이고, 여전히 자신은 공사에 있어 부끄러움이 없었고 공직수행에서도 사상문제를 다루지 않았으므로 큰 죄를 짓지 않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누가 벌준 것이 아니라 그들이 사표를 낸 것입니다. 그러나 그 일조차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는 점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시간은 연속적입니다. 친일을 배경으로 세워진 한국 기득권의 정통성에 대한 의문은 과거 친일행적에 대한 인식에서 출발합니다. 주요 공직자와 정치가의 역사 인식에 대하여 국민은 검증할 수 있습니다. 이 같은 반성이 필요하다 하시면서 과거의 일에 대해서는 시간이 지났으니 필요없다 하시면, 지금 현직 검사들 역시 시간이 지나고 잊혀지면 될 것을 굳이 지금 반성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문제의 우선 순위는 이익에 따라 달라지게 마련이기에 우리에게는 여전히 명분과 정당성이 필요합니다.

      비유하자면 당장 전쟁용 칼을 벼르는 작업은 아닐지라도 기초 체력을 기르기 위해서
      잘못된 습관을 개선하는 문제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노력이 언젠가는
      어떤 비싼 칼 보다도 무서운 정신으로 나타날 수 있다고, 또는 그 자체로 날카로운 칼이 되리라고 희망합니다.

      덧. & all 긴 글 읽어주시고 또 의견 말씀해주셔서, 대화할 수 있다는 사실을 기쁘게 생각합니다 :)
    • 성의있는 답글 감사해요.
    • 예. 댓글로 말씀 하신 부분은 다 동의합니다. 그게 한국에서의 민족주의의 진보적인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말씀하신 부분들에 대해서 반대하는 입장이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 이외에 이제는 좀 더 나아가야 하지 않는가, 혹은 그러한 긍정적인 측면 뒤에 감추어진 부분들, 우리가 간과한 부분들이 무엇인가 하는 입장에서 했던 문제 제기입니다.

      다만 한가지 여전히 1세계 민족주의와 3세계 민족주의를 질적으로 가를 수 있는 어떤 것이 있는지는 의심스럽습니다. 예를 들면, 그건 한 사람에게 나타나는 것인지 아니면 집단에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것인지도 불분명 합니다. 아니면 한국 사회 내에 1세계 민족주의자들과 3세계 민족주의자들이 따로 따로 있는 것인지도 모호합니다. 오히려 제 생각에는 한국의 교육에서 서로 다른 민족주의가 있고 식민지 민족주의는 건전한것이고 바람직한 것이다라는 식의 틀로 교육이 이루어지면서 현재에 존재하는 많은 민족주의적 문제들과 한계들을 제어하는데 실패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에 대해 의심하고 있기 때문에 더욱 그 구별을 받아들이기 어려워 하는 것 같습니다.

      많이 배워갑니다. 감사합니다.
    • 푸네스님 글에 이어, 물길는달님 글까지, 행복해하면서 읽었습니다^^
    • 푸네스 / 어떤 부분을 말씀하시는 지 알고 있습니다. 푸네스님께서 그 지점에서 혼란을 느끼시는 게 아닌가 하고, 이전의 글과 댓글에서 어렴풋이 생각하였습니다. 질적다름을 논하기 전에 우선 그 발현 양상이 어떻게 다른지, 발화자가 누구인지,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 지 먼저 정리해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듯 합니다. 제가 직장인이고 이래저래해서 지금은 어렵지만, 이번 주말 안에-늦어도 토요일- 이 글에서 댓글로 관련한 정리를 간략하게나마 해보겠습니다. 혹시 그 때 까지 기억하신다면 글이 뒤로 많이 넘어갔더라도 한번 더 보아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 때 가서 새 글을 쓰기엔 관심있는 분들이 너무 적으실 것 같고, 뜬금없어 하시거나 지겨움을 느끼실까봐 조심스럽네요 :)주말에 또 글로 뵐 수 있으면 좋겠어요-차분히 정리할 시간만 있다면 더 빨리 글을 쓰고 싶을 만큼,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이 즐겁습니다. 저도 감사합니다.
    • 글이 길어 이 글에 답글로 달려고 했더니, 아무래도 게시판에 답글 기능이 없는 것 같습니다.
      원래는 '질적다름을 논하기 전에~' 부분을 정리하려 했으나 아무래도 다 알고계실 이야기 한번 더 하는 것 같아, 푸네스님이 말씀하신 의심에 대하여 정리해보았습니다.
      -1세계 민족주의와 3세계 민족주의를 질적으로 가를 수 있는가, 민족주의는 발화자의 정치적 일관성을 담보할 수 있는가, 민족주의는 민족주의끼리 따로 존재할 수 있는가-
      단지 제 생각일 뿐이지만 그리고 이제 와(글 올리는 약속시간도 안지킨 지금) 이 글을 보실지 모르겠지만 조금이라도 의미있는 얘기가 된다면 좋겠습니다.
      설령 아무도 보지 않으시더라도 ㅠ 제가 뱉은 말 제가 주워담는다는 의미로 늦었지만 댓글 올립니다.
    • 늦어도 토요일까지 글을 쓴다고 했는데, 댓글 쓰면서 이번주말이 크리스마스라는 걸 잊고 있었습니다.
      다행히 하루 놀면 하루는 쉬어야만 하는 비루한 체력의 소유자라, 어제는 놀고 오늘은 글을 씁니다.
      혹...시 어제 푸네스님께서 제 글을 다시 찾아 보시고 댓글이 없어 '뭐야 이 사람' 하셨다면.. 수고를 끼쳐드려 매우 죄송합니다.

      아무튼, 쉽고 가볍게 쓸 수 있는 주제는 아니기에 더군다나 생업에 쫓겨 발발거리고 사는 입장인 제가
      이 주제에 관해 쓰는 것이 어떨지 모르겠지만, 혹 전문가분들이 보시면 '무식하면 용감하다더니 사례 1이 여기 있군'하고 넘겨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1세계 3세계 민족주의가 본질적인 속성이 다르냐는 문제에 답을 구하고 그래서 어떠한 태도를 취할것인가 하는 문제는 어렵습니다.
      (적어도 제게는) 너무 어려워서, 쭉 제 글을 스크롤해보시면 문장 맺음말이 거의 모조리
      '~아닐까 싶습니다, ~라고 생각합니다, ~하지 않을까요' 라며 비겁한 망설임으로 점철된 사실을 파악할 수 있으실 겁니다.

      그러나 책 속에 존재하는 사상이 아니라 현실 세계에서 구현되는 하나의 흐름으로서 둘이 다르냐고 한다면
      저는 다르다고 생각하고, 따라서 어떤 사회적 현상을 분석하기 위해서는 그것이 필요할 때가 있다는 결론입니다.

      1. 식민지를 벗어난 식민지민족주의 자체의 모순

      민족주의는 하나의 정치이론으로 기능하기에는 일관된 정책 방향성을 제시해 주지 못합니다.
      민족의 주권과 이익을 지켜 잘 사는 길이라고 해도 '민족'이 어디까지인지 '주권'은 민족을 바탕으로만 성립하는 것인지
      '이익'은 누구의 이익인지 '잘 사는' 것이 대체 어떻게 사는 것인지 명확한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자유주의가 됐든 사회주의가 됐든 또는 다른 무엇이든 타 이념과 결합할 때 민족주의는 실제 정치에서 기능할 수 있으며
      그러한 관점에서 민족주의를 바라보는 것이 사회를 변화시키는데(혹은 안정시키는 데) 유효한 입장일 것입니다.

      한국의 민족주의는 모순적인 면이 있습니다. 한국 민족주의의 태동을 구한 말로 볼 것이냐, 일제시기로 볼 것이냐,
      혹은 그 이전 / 이후로 볼 것이냐는 학계에서도 이견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저는 현대사회-바로 지금, 2011년의 남한-에서 민족주의가 발화되는 수 많은 지점들을 중심으로 바라보고자 하며
      그 모순이 어디에서 시작되었는 지에 초점을 두었습니다.

      현대 한국(뿐 아니라 종전 후 독립한 많은 제3세계 국가들)의 민족주의가 모순된 면을 가질 수 밖에 없는 것은
      단순히 해방 후 친일 잔재가 청산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닙니다. 1단락의 결말에서 밝히겠지만 저는 오히려 반대의 인과관계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조선의 독립은 물론 많은 독립운동가들의 희생이 있었습니다만 결정적으로는 일본의 패전과 연합국의 승리에 기인한 것이었으며,
      민족주의적 관점에서 연합군 세력-또 하나의 외세-은 이를테면 '해방의 은인'이 된 셈입니다.

      당연하게도 연합군 세력은 한국민들의 민족자결권을 우선하여 남한의 재건을 도모한 것이 아니었으며(스프에 곁들이는 후추 같은 것이었을까..)
      사실상 한국의 민족주의는 제대로, 민족의 민족주의로서 발화해 볼 기회를 갖지 못한 채 갈 곳을 잃은 모양새가 되었습니다.
      제국주의에 반대하며 성장해 온 식민지 민족주의로서는 마냥 기뻐하기만 할 수는 없는 비극적인 상황이 벌어진 셈이겠지요.

      이것은 단순히 한국만의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2차대전 이후 독일의 영향력아래 있던 아프리카의 많은 나라들이 영국과 프랑스, 벨기에, 남아공의 위임통치를 받아야 했습니다.
      종전 후 수많은 국가에서 민족주의가 팽배하고 또 그보다는 적은 신생국들이 생겨났지만 기본적으로 패전한 제국주의를 승리한 제국주의가 대체하는 형태로 정리되었습니다.
      승리한 제국주의 국가들은 그 이전부터 구축돼 있는 지배세력을 지원해서 새로운 식민지들에 대한 영향력을 지속하려 했습니다. 식민지민족주의는 대체된 지배세력을 대상으로 다시 지난한 싸움을 시작해야 했거나, 혹은 변절해야 했거나 하는 상황에 다수 처하게 되었습니다.

      어쨌든, 이 단락에서는 식민지 민족주의가 상정하는 '적'이 늘 동일한 적이아니었고, 어느 순간에는 동지 또는 은인 이었을 수 있으며, 그러한 변화의 과정에서 혼란과 모순이 발생할 수 있었다는 점을 얘기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시대 변화에 따라 분화되거나 변질된 민족주의는 이미 '식민지 민족주의'가 아니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앞서 말했듯, 어떤 사상과 결합하느냐에 따라 민족주의의 성질이 달라지기 때문이며, 식민지민족주의는 이미 하나의 정형성을 획득하고 있기 때문에 다른 사상으로 변질된 민족주의는 또 그에 맞는 이름을 갖게 되는 것 입니다.


      2. 각 민족주의는 각자 결합한 사상의 본질적 다름을 공유함
      -따라서 민족주의는 민족주의끼리 대립하거나 공존할 수 있음

      푸네스님이 1세계 민족주의와 3세계 민족주의가 본질적으로 다른가 라는 의문을 가지신 것이,
      1세계 민족주의는 제국주의적이고 팽창적이며, 3세계 민족주의는 방어적이고 저항적이라는 뻔한 기술을 한번 더 보고자 가진 의문은 아니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확실히 민족주의를 1세계 민족주의, 3세계 민족주의 라는 식으로 이분법적으로만 바라보는 것은 문제가 있습니다.
      인간을 둘러싼 정치/사회/경제적 상황이 변화하였습니다.
      이를테면, 현대 1세계의 민족주의가 네덜란드의 극우테러리스트와 같은 인종주의적 민족주의부터 다국적기업
      (그러나 선진국가에 본사를 두고 해당 국가로부터 보호를 받는)으로 대표되는 자유주의적 민족주의까지 다양한 층위로 나뉘었습니다.
      그런데 제3세계 국가들이 처해 온 상황은 그보다 더 복잡했습니다.

      식민지 민족주의는 새롭게 지배세력의 자리를 대체한 승리한 제국주의에 반대하는 역할을 맡아 재야의 한 목소리로-공산주의나 아나키즘과 마찬가지로-자리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또 한편에서는 제국주의적 민족주의가 '필요에 의해' 강조되고 독려되었습니다.
      이를테면 경제발전을 제1목표로 한 국가주의적 민족주의와, 식민시대이후 대체로 제3세계민족주의들이 새로운 제국주의 세력에 대항하여 발전한 민주적민족주의는
      서로 대립하며 민족주의 정권을 창출하거나, 기존 정권을 전복시키거나 하는 역할을 하였습니다.

      이는, 민족주의가 동일한 시대, 동일의 공간에서 대립하며 공존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1세계 민족주의와 3세계민족주의 뿐 아니라, 더욱 세분화된 각각의 민족주의는 해당 민족주의가 결합한 사상의 본질적 다름을 공유하는 가운데,
      다만 작동되는 매커니즘에 있어서 민족주의로서의 공통점을 가진다고 생각합니다.

      현대 한국에서도 민족주의는 대립하며 또한 공존합니다.
      한국이 이제는 꼬마 제국주의 국가로 성장한 관계로 여전히 재야에서 기능하는 식민지 민족주의의 목소리와
      (친일후손 재산 국가 환수에 관한 특별법이 현재 진행형이라는 사실이 보여주는)
      후발 자본주의국가로서 괄목할만한 경제성장을 이룬-한강의 기적이 담보하는 민족적 자부심이 담긴 제국주의적 민족주의의 목소리가 동시에 존재합니다.

      일본의 기업들을 넘어서자 라는 것이 한국 산업의 큰 목표 중 하나였다는 것은
      아직도 신문지면에서 빈번하게 찾아볼 수 있는 '일본 기업, 한국 기업에 위기감을 느끼다' /
      '현대, 토요타 넘어서' (단지 미국의 소비자리포트 결과일뿐이라 해도) / '일본의 00. XX, ZZ 기업 매출 다 합해도 삼성에 안돼' 등등의 헤드라인에서 쉽게 반증될 수 있습니다.
      혹자는 이를 '열등감에 기인한 민족주의'라고 설명하더군요.

      이들이 공통적으로 자극하는 민족감정이 제국주의적인 자부심이라면,
      위안부 문제와 독도 문제, 일본의 신사참배와 역사교과서 문제가 자극하는 민족감정은 신민지 역사를 가진 국민들의 억울함입니다.

      후자의 민족주의적 감정이-해결되지 못한 문제에 대한 억울함과 정당한 역사인식에 대한 갈급함이-
      전자의 제국주의적 민족주의 감정의 문제-그래서 내부의 계급적 문제를-은폐하고 호도하는 역할을 하는지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사실상 이 두 문제는 발화자도, 발화내용도, 목표하는 바도 전혀 다릅니다.

      전자의 민족주의는 제3세계든 선진세계든 돈을 많이 벌고 칭찬을 많이 받으면 좋은데, 제3세계에는 약탈자로서 기능하는 반면
      그것이 어려운 선진세계에서는 인정받고 동류가 되면 좋은 사대주의적 성향을 띄고, 지배세력의 이해관계에 따라 언제든지 내쳐지겨나 변형될 수 있으며,
      자본가는 돈을 가져가고 국민은 자부심을 나눠갖는 불공정한 배분을 정당화합니다.
      그래서 이러한 민족주의는 '발명된 전통'이라느니 '상상의 공동체'라느니 하는 많은 비판을 받고 있습니다.
      발화는 위로부터 시작되며 결실은 공평하지 않고 민족주의의 외피를 쓰고 있으나 단 한가지의 바이블은 '발화자의 이익'입니다.

      

      3. 발명된 전통 이전의 기층감정이 존재함

      민족주의라는 이념을 보는 것은-아니 다른 어떤 사상을 보는 것이라 해도 마찬가지로- 저는 다른 무엇보다 여기에 존재하는 사람들,
      살고 있고 살아왔고 살아갈 사람들을 보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후자의 민족주의, 친일 청산 문제를 둘러싼 식민지 민족주의는 주체가 명확하고
      (민족이라는 정서를 공유한-위안부, 독립유공자, 이름이 남지 않은 희생자들-후손들과 그 가족들, 이웃들)
      대상이 명확하고(식민지배세력) 요구하는 바(역사의 정립)가 명확합니다.
      그래서 실질적 이해관계보다는 당위와 명분에 호소하며, 피로써 헤쳐온 역사를 공유하는 자들이 경험을 바탕으로 생성해 낸 '기층 감정' 입니다.

      이러한 기층감정을 제국주의적 민족주의와 같은 것으로 취급하는 것은 첫째로 현실에서 지나치게 동떨어져 있습니다.
      학술적으로는 물론 의미있는 고찰일 수 있겠으나 위안부 할머니에게 가서
      '할머니, 할머니가 일본군에 당하신 일은 베트남 여자들이 한국군에 당한 일이랑 비슷한 거거든요,
      그래서 우리는 할머니의 호소를 같은 민족으로서 인정하기가 조금 찜찜한데요, 이제 좀 더 발전적으로 반전운동을 함께 해 보시는게 어떨까요'
      라고 말을 하는 것이 의미가 없듯이 말입니다.

      둘째로 도리어 제국주의적 민족주의가 은폐해 온 여러가지 문제들에-계급과 자본의 문제들에- 효과적으로 대항할 수 있는 동력을 스스로 내다 버리는 일이 될 것입니다.
      한국의 지배세력은 여전히 한국의 피지배세력보다는 외국의 지배세력과 더 큰 이해관계를 공유하고 있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족'으로부터 표를 얻고 내수시장이라는 '안마당'을 유지해야 하는 모순적 처지에 놓여 있습니다.
      식민지 민족주의는 한국의 지배자들이 정치적 선택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그러한 모순을 더욱 극명히 부각시키는 역할을 할 수 있고
      (해당 모순을 은폐하려는 제국주의적 민족주의에 맞서), 나아가 대중적 호소력을 이용해 실제 행동으로 연계시킬 수 있는 효과적인 매개가 될 것입니다.

      셋째로, 식민지 민족주의가 올바른 것이라는 교육에 의하여 제국주의적 민족주의에 대한 비판의식이 고양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은
      우리가 함께 해결해나가야 할 모순이며, 전자가 옳다고 교육하며 후자를 묻어두는 것과 같이 후자가 나쁘다는 이유로 전자를 묻어두는 것도
      바른 해결법은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대체로 이런 방식은, 지금 현재의 기득권 세력에 득을 주는 경우가 더 많지요.


      4. 민족주의적인 요소들은 정치적 일관성을 담보하지 않음

      결국, 민족주의의 발화자가 개인이라고 해서 단일한 민족주의적 목소리를 가지고 있다거나,
      발화자가 집단이라고 해서 공통의 민족주의가 존재한다는 결론을 담보하는 것이 아닙니다.
      애초에, 어떤 민족의 구성원이 안고 있는 민족주의적인 요소들-집단적 정체성, 소속감, 자부심 등-은 사상적 일관성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개인일 경우 개인적인 반성과 경계에 의하여 '일관되고자하는' 의지가 어느정도 결실을 보일 수 있겠으나,
      친일파 잔재의 청산 문제에 목소리를 높이면서 한국에 와서 일하는 제3세계 노동자들에 대하여 극우적 인종차별 행태를 보이는 것도 드문 사례는 아닙니다.
      (오히려 개인적 의지로 일관된 견해를 보이는 사람을 찾는 게 더 드문 일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독도 문제에 분노하는 많은 이들이, 제국주의 군대(이라크라든가)의 파병으로 민족의 이익!이 늘어날 것이라며 찬성하는 경우도 드물지 않습니다.
      (역시 생각보다는 많은 사례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이것은 정치적 일관성을 담보할 수 없는 민족주의의 특성에 의한 것이며,
      따라서 단지 그러한 이유로 현실에 존재하는 민족주의를-정확히는 민족주의'들'을- 부정할 이유는 되지 못합니다.
      민족주의가 어떤 역사를 가지고 어떻게 분화되어 왔으며, 그것들이 각각 어떤 사상과 결합해 어떤 기능을 하는가,
      현실 정치의 지형에서 그러한 것들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 분석하고 그에 대한 입장을 취하는 것이 강의실을 벗어난 우리 삶에서의 역할이 아닐까 합니다.

      -
      길이에 비해 글이 투박한 것은 제 생각이 정교하지 못하기 때문으로 양해부탁드립니다.
      혹시 보신 분들께서 지적이나 비판 의견주시면 감사히 받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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