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긴 바낭] 민족주의와 친일의 문제


이지아 소속사 덕분에 혹은 이지아의 할아버지를 알던 정대철 때문에 듀게에 때아닌 덕망있는 친일파 논란이 일었네요. 사실 논란이라기보다는 의의를 제기하는 몇몇 사람들에게 집중적인 포화가 퍼부어지는 것이지만요. 그냥 조용히 있는 편을 택할까 하다가 아무래도 몇 가지 이야기를 하고 가야 할 것 같아서 몇 자 남깁니다. 지금 상황에서 논쟁을 하자는 건 아니고, 그냥 이런 입장도 있다는 것으로 생각해 주시는 것이 여러 사람 건강에 좋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제가 지금 얘기하는 건 이지아나 그의 할아버지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 민족주의와 친일파에 대한 일반적인 얘기입니다. 덕망있으시다는 그 분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 못하니 제가 논의하는게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기본적으로 한국에서 친일파가 나쁘다는 이야기에 반대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심지어 최근 게시판에서 덕망있는 친일파에 대한 이야기를 하신 분들 조차도 친일이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시지는 않게 보입니다. 그건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불필요한 논란을 막기 위해 이부터 밝혀야 할 것 같습니다.  

한국의 역사는 과도하게 민족주의적입니다. 어느 나라 역사도 민족주의적이지 않은 역사는 없습니다. 여기서 민족주의적이라는 말은 비판적으로 사용한 것이 아니라 가치중립적인 의미로 사용한 것입니다. 민족주의라고 하면 우리는 흔히 우리 민족이 최고라고 하는 민족우월주의, 혹은 자랑스런 대한 민국이라고 하는 국가 중심주의만 생각하기 쉽습니다. 우리 나라에서는 특히 전자의 민족주의 - 즉 인종족 민족주의와 그에 기반한 민족 우월주의 - 만 민족주의로 불리는 경향이 많지만 근대 국가가 모두 nation-state이고 민족이라는 말이 nation을 번역한 말이라고 할 때, 사실상 민족주의의 요소에는 인종적인 민족과 국가를 구성하는 국민이라는 두 가지의 의미가 다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민족을 강조하는 것만 민족주의로 생각하는 경향이 많습니다. 특히 뉴라이트가 등장해서 일본 우익식의 파렴치한 국가주의를 앞에 내세우면서 80년대의 민족적 민족주의를 그들 국가의 적으로 돌리면서 그러한 경향이 더욱 심해진 것 같습니다.

그러나 민족주의적 역사 기술이라고 한다면 단지 그러한 것만을 이야기 하는 것은 아닙니다. 프랑스의 철학자 발리바르나 유명한 중국 민족주의 연구가 두아라가 말하는 것처럼 민족주의 역사 기술의 가장 큰 특징은 역사 기술에 있어서 주어가 '민족'이 되었다는 것, 그렇게 '민족'이 주어가 되면서 민족이 의인화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의의화된 민족의 역사는 특정한 내러티브 속에서 전달됩니다. 마치 영웅 소설처럼 영웅이 탄생하고, 영웅의 아름다웠던 영화롭던 과거가 있고, 영웅이 고통을 겪고, 그 고통을 극복하고, 점점 더 성장하고 발전하는 영웅이 된다는 내러티브. 근대 국가의 민족을 중심으로 하는 역사기술은 이러한 영웅신화의 내러티브와 닮아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근대 민족국가의 역사들은 대부분 과거의 그 아름다웠던 과거를 되살리기 위해 끊이없이 외부의 고난을 극복해야 하는 것으로 진행됩니다.

많은 연구들은 민족이라는 정체성이 근대 이후에 생겨난 것이라고 이야기 합니다. 모든 민족주의는 그래서 회고적입니다. 우리는 현재의 민족정체성을 혹은 국민 정체성을 과거의 비슷한 인종 공동체나 지역 공동체에 투사해서 그들도 우리와 같은 정체성을 지닌 채 현재 우리의 국민 국가를 만들어 오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한 것, 혹은 우리 민족 공동체 혹은 국가 공동체가 추구하는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한 것이 우리의 역사라고 믿습니다. 그것은 단지 한국 뿐 아니라 유럽의 많은 국가들에서도 그리고 우리가 매우 잘 아는 동아시아의 다른 국가들에서 언제나 일어나는 일입니다. 예를 들면, 역사에서 고대사가 중요한 이유가 그것입니다. 한민족의 뿌리는 고조선까지 이어져야만 하고, 프랑스인의 역사는 골족에서 시작해야 하고, 중국의 한족의 역사는 갑골문자에서 시작됩니다.

그런데 이렇게 민족이 주어가 되는 민족이 주체가 되는 역사가 쓰여지면서 몇 가지 문제들이 생겨납니다. 그 중 하나는 민족의 서사시의 줄거리에 방해가 되는 다른 세세한 부분들이 무시되고, 축소될 뿐 아니라 왜곡되는 경우도 생겨난다는 것입니다. 사실 이것은 모든 "집단의 역사"의 문제이고 "서사로서의 역사"가 갖는 문제이기도 합니다. 근대 이후 우리는 헤겔식의 "역사의 정신"이라는 서사에 너무나도 쉽게 길들여져 있습니다. 하나의 집단은, 혹은 하나의 국가는, 혹은 하나의 민족은 어떠한 완성을 위해, 즉 그것은 민족의 통일과 독립이 될 수도 민족 경제 발전을 통한 세계 몇 위 권의 경제 국가가 되는 것으로 혹은 민주주의 발전, 자유의 승리 이런 것들을 이루기 위해 싸워온 역사라고 믿는 것입니다. 그러한 서사에 방해가 되는 요소들은 숨겨지거나 알려진다고 하더라도 최소한 중요성을 부여받지 못한 채 역사 기술 속에서 사라져 버리게 됩니다.

모든 국가는 국민화 혹은 국민 교육을 통해 이러한 역사를 내면화합니다. 자유를 위한 위대한 투쟁을 벌인 미국의 역사, 고대시대부터 하나의 민족 정체성을 안고 살아왔지만 일제에 의해 좌절되고 끊임없이 민족의 통일을 위해서 노력하는 한국의 역사 등. 그러는 와중에 역사기술에서 주어가 되고 주체가 되는 민족이라는 정체성이 구성원들에게 끊임없이 내면화가 되고 어쩔 때는 그 국가의 정체성 보다 그 국가의 내면화 과정에서 심어주었던 이념 - 자유, 민족국가 수립, 경제 발전, 억압에 대한 저항 등등 - 이 국민들의 내면에 더욱 강하게 자리잡게 됩니다.

한국의 민족주의에 관한 연구 중 리처드 그린커라는 인류학자는 아주 흥미로운 지적을 합니다. 80년대 한국의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정부에 반대하던 학생들의 성격을 분석하는 것은 매우 재미있다며, 사실 노학연대로 대표되는 대학생들이 주도한 한국의 혁명적인 민주화 과정에서 이 과정을 주도했던 운동권 대학생들은 사실 한국의 억압적 교육 시스템 속에서 그러한 시스템이 가르쳤던 걸 가장 잘 내면화 했던 사람이었다는 것. 그러면서 어찌보면 국가가 주입하려고 했던 박정희와 박종홍류의 한국적 민주주의, 한국적 민족주의의 원칙을 내면화하면서, 그것들을 공부하고 외우고 그를 바탕으로 시험에 정답을 써내었지만, 사회에 던져졌을 때 자신들이 맹목적으로 배웠던 것과 현실이 다르다는 것을 깨달으면서 정부에 그리고 사회에 원칙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했던 사람들이라는 거지요.

사회의 지배적 계층이던 혹은 사회에 저항하는 계층이던지 간에 그 사회에서 공유하고 있는 어떤 내면의 생각들이 있습니다. 그것이 효과적으로 전유되어 대중들에게 전달 될 때 강력한 공감대를 가져와서 설득력을 갖게 됩니다.

다시 거대한 집단이 주체가 되는 역사 기술에 대해 이야기로 돌아갑니다. 현재에 와서 민족이라는 정체성이 모두에게 당여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시기에서 과거를 본다면 민족을 중심으로 하는 역사가 당연하게 받아들여집니다. 우리는 종종 그러한 민족이라는 정체성도 이후에 교육으로 인해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망각하곤 합니다. 예를 들면 조선시대에 일반 백성들과 양반들은 한 국가를 이루고 살면서도 서로 같은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예를 들면, 양반들은 그들을 한자를 사용하는 귀족 계급으로 인식하면서, 더 넓은 한자 문화권의 선비들과 공유하는 정체성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에 비해 상민들은 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공동체로서의 정체성은 가지고 있었고, 그들 역시 양반들과 자신들이 같은 사람이라는 생각을 가졌다는 증거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구한말에 개화파 지식인들의 주도로 근대적 민족주의 사상이 활발하게 전래되고 국민을 만들기 위한 시도가 강력하게 시행되지만, 여전히 국민이라는 의식은 만들어가는 과정 중에 있는 어떤 것이었습니다.

그런 와중에 사실 친일이라는 문제를 이야기하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한국의 친일파 이야기를 할 때 많이 등장하는 이야기는 프랑스의 비시 정부입니다. 저는 두 가지가 전혀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비시 정권과 프랑스의 나치 부역자들은 몇 년 되지 않는 짧은 기간 동안에 그것도 국민 국가가 이미 형성되어서 서로 간에 전쟁도 여러 번 수행했던 그런 사람들의 문제였습니다. 그에 비해 조선의 일본 합병은 조선왕조가 근대 국가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식민지로 병합되었고, 그리고 그 기간은 짧게 잡으면 35년 을사조약부터 시작한다면 40년에 이르는 한세대가 넘는 기간이었습니다. 저는 이 기간 역시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면, 저는 세계에서 몇 안 남은 식민지 중의 하나인 하와이에 살고 있습니다. 하와이는 원래 왕조 국가였지만 1898년에 미국에 합병되고, 1959년에는 미국의 50번째 주가 됩니다. 외부에는 잘 알려져 있고 심지어 일반 미국 사람들도 잘 모르고, 게다가 하와이 안에 살고 있는 사람들도 잘 모르기는 하지만, 여기에도 여전히 독립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와이가 외부에서 보면 낙원인 것 같지만, 사실 여기 원주민의 입장에서 보면 그렇지 않습니다. 평균적으로 다른 인종 - 백인, 동양계- 들보다 원주민들의 경제 사회적 지위는 현저하게 낮습니다. 거주 지역 역시 대체로 구별이 되고 하와이 원주민들이 모여 사는 지역은 대체로 경제적으로 낙후한 지역입니다. 대부분의 원주민들은 호텔 등 관광업소에서 메이드 등으로 일하거나 식당에서 주방보조 등 최하층 서비스 계층에 종사합니다. 하와이의 상황은 제가 볼 때 한국과 크게 차이가 나지 않습니다. 아마 한국이 아직까지 일본의 식민지였다고 한다면, 여기와 비슷할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하와이 독립운동을 하는 사람들도 미국 정부에 협조하는 하와이언을 민족의 피를 빨아먹는 민족의 반역자라고 부르지는 않습니다. 이들의 민족의식이 떨어져서 그럴까요? 그럴 수도 있습니다. 그런 이유는 우선 사실 내가 하와이 원주민이라고 말 할 수 있는 사람이 이제는 거의 없습니다. 그런 사람이 소수라서 그런 것이 아니라 너무도 많은 인종들이 혼합되어 있어서 누가 하와이 사람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하와이 왕조의 기금으로 운영되는 카메하메하 학교에 입학하는 기준은 하와이 피가 무조건 한 방울이라도 섞이면 하와이 사람으로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카메하메하 학교나 하와이 주립대에 진학하면 등록금을 내지 않고 다닙니다. 다른 하나의 이유는 식민지의 과정이 진행되면 진행될 수록 개별 자본가, 지식인, 공무원들의 문제는 민족의 문제이기 보다 자본의 문제거나, 지식인 개인의 문제거나 행정적 구조의 문제인 경우가 더욱 많고 그런 문제로 제기 하는 것이 보다 효과적이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더 중요한 건 세상은 언제나 일상이 지배한다는 것입니다. 당장 2011년을 되돌아보지요. 아마 역사는 2011년을 과거로 되돌아가려던 사익추구 집단 이명박 대통령에 대항하는 운동이 광범위하게 벌어졌고 SNS의 등장으로 새로운 의사소통 방식을 통해 과거와는 다른 방식의 저항을 성공적으로 수행한 해라고 기억할 것입니다. (뭐 그냥 가정입니다. 정말 그렇다기 보다)  그러나 이러한 역사는 과연 우리 현실을 얼마나 설명하고 있는 걸까요? 김진숙 위원장이 크레인에 오르고, 한 회당 200만 다운로드로 꼼수를 듣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가카의 불법은 가이 없고, 하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에게는 오늘은 어제는 그리고 금년은 그냥 먹고 살기 바쁜 한해였을 것입니다. 우리는 역사의 흐름 속에서 어떤 싸움을 대립을 움직임을 그리고 어떤 정신의 흐름을 보고 싶어하지만, 실제로 그것은 사후적으로 해석된 것이고, 그러한 사후적 해석은 관점에 따라 다양한 방식으로 새롭게 쓸 수 있습니다.

80년대 대한민국은 자랑스런 민주화 투쟁을 통해서 제도적 민주주의를 얻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과연 80년대를 독재정권과 그에 맞써 싸우는 민중 혹은 민주화 운동 세력이라고 단순화 시켜서 이야기 할 수 있을까요? 독재체제는 대머리와 하나회를 중심으로 한 주변 쿠테타 인물들로만 유지되었던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80년대 독재체제를 유지하게 했던 원흉들을 어디까지 잡아 낼 수 있을까요? 혹은 과연 우리는 독재체제를 유지했던 원흉들을 잡아내고 싶기는 한걸까요? 우리가 그렇게 악이라고 생각하는 또 하나의 정치 체제인 독재체제 - 이것은 밑에 어느 분인가가 말씀 하셨던 것처럼 정치를 국민에게 주지 않는 정체이기 때문에 식민체제와 마찬가지로 악날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 를 우리가 식민지 시대를 생각할 때의 틀로써 다시 생각해 본다면, 그 당시의 독재체제의 모든 기관, 즉 경찰, 검찰, 행정부 그리고 자본가, 재벌, 사업가... 어디까지 이야기 해야 하는지 어려워 집니다.  이것은 독재체제가 나쁘지 않아서가 아니라 세상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혹은 우리가 배워왔던 것처럼 정의와 불의, 민족과 반민족, 민주와 반민주, 국가와 시민으로 대립되어서만 진행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몇몇 젊은 한국의 근대사학자들이 지적하는 것처럼, 식민시대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았습니다. 식민시대 뿐 아니라 어느 시대도 그렇게 단순하지 않습니다. 그것이 2-3년의 단기간이라면 정리하고 가기 쉽습니다. 하지만 한 세대가 흐르는 시간이라면 그 시간 동안에는 우리를 둘러싼 세계가 이미 우리의 일상 속에 깊숙히 자리잡는 시기이기 때문에 세상은 우리가 모두 실제로는 알고 있는 것처럼 그렇게 간단하고 단순하게 흘러가지 않습니다. 특히 억압하는 일본 제국과 억압받는 한민족이라는 도식은 많은 사실들을 왜곡하기도 합니다. 예를 들면, 서대문 형무소에 가면 일본군 순사가 조선의 처녀들을 고문하는 인형 모형들이 가득 전시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 거기서 고문을 하던 꽤 많은 수의 사람은 한국인이었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기억되지 않고 있습니다.

80년대 노동자들의 고통은 독재체제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들을 도구로 사용하면서 자본의 증식 수단으로만 생각했던 사용자들 때문이기도 합니다. 국제분업체계에서 개발도상국 생산기지에 무리한 요구를 하던 자본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분단으로 인해 국민국가를 이루지 못하고 그러한 분단이 외부의 공포라는 기제로 노동자를 통제하는 수단이 되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제 입장에서 볼 때, 근대 한국의 역사에서 가장 아쉬웠던 순간은 그래서 어쩌면 반민특위의 좌절입니다.  그 때가 어떻게 보면 한국은 친일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던 유일한 순간이었습니다. 새로운 국가가 만들어지고 새로운 국가의 국민과 민족이 만들어지기 위한 기초를 다지기 위해서는 반드시 과거를 해결되었어야 합니다. 그 때 그것이 좌절된 이후 친일파 문제는 이제는 거의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가 되어버렸습니다. 우리는 좋던 싫던 많은 부분 과거의 잔재들 위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날 수록 그 잔재들은 우리에게 해결하기 어려운 수수께끼로 남아서 우리들을 괴롭히고 있습니다.

친일의 행위를 비호하려는 글이 아닙니다. 다만 친일의 문제라는 것이 그렇게 쉬운 문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일제시대에도 부모들은 공부해서 훌륭한 사람이 되라고 했고, 그 때에도 고시가 있었고 그래서 고시를 보고 판검사를 합니다. 80년대 독재체제 안에서도 공부를 열심히 해서 고시를 보고 판검사를 합니다. 그들은 과거로 돌아간 지금의 엄혹한 시기에서도 조직 내에서의 권력을 위해 혹은 조직 자체의 권력을 위해 매일매일을 싸우고 있습니다. 제가 볼 때 지금의 정치 검찰도 나쁘고, 80년대 공안 검찰도 나쁘고, 일제시대의 친일 검사도 나쁩니다. 하지만 일제시대의 검사가 꼭 일제시대에 검사를 했기 때문에 나쁘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저는 친일의 문제는 지금 많은 사학자들이 매달려 내온 결과물들이 최대의 성과라고 생각합니다. 그를 통해서 해방 이후 애국자로만 조명받던 많은 인물들의 보다 공정하게 평가 받는 계기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동시에 그들을 단죄하는 것은 이미 시점을 놓쳐 버린 지금에는 그저 나의 도덕적 신념을 확인받는 것 이상의 의미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공정하게 하려면 “친일”이기 때문에만 그들에게 화살을 돌릴 것이 아니라, 세습 재벌, 독재를 통해 부를 축적한 자들, 모두에게 그 비난이 향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제 생각에서 과거를 보는 더 바람직한 방향은 피해자들에게 눈을 돌리는 것입니다. 그러한 체제 안에서 영문도 모르고 당했던 수많은 사람들이 아직도 고통의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동시에 현재의 많은 피해자들이 사회 속에서 들리지 않는 비명을 지르고 있는 것처럼 그들의 비명도 들리지 않습니다. 그나마 성노예 피해자들의 목소리만이 20년의 수요집회를 통해 간간히 기념비 처럼, 이제 100회가 되엇습니다. 10년이 되었습니다. 1000회가 되었습니다. - 라고 들리고 있을 뿐입니다. 그 밖의 징용 피해자, 원폭 피해자, 원폭 피해자의 2세, 등 많은 사람들의 목소리를 듣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민족주의자의 입장이라면, 친일에 날선 공격을 하는 것은 물론 사람들의 공감대와 지지를 얻는데 더욱 효과적이겠지만, 사실 더 중요한 것은 민족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리고 그 당시에도 외면당하면서 꿋꿋이 자기 길을 갔던 사람들의 재조명이 더욱 필요할 것입니다. 물론 일부 독립운동가의 행적 역시 민족주의 서사 안에서 과장되거나 왜곡되거나 호도된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또 동시에 잊혀져 버린 수많은 사람들의 행위, 식민 지배 속에서 억압받던 사람들을 위해서 싸웠던 많은 사람들이 잊혀졌습니다. 저는 민족주의의 관점에서는 한국 사회의 지배계층이 해방이후 친일 부역한 사람들로 채워져왔던 것 (사실 이 기준을 넘어설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 지 궁금합니다)보다 더 큰 문제는 그렇지 않고 자신을 희생하면서 싸웠던 사람들이 잊혀졌다는데 있다고 생각합니다.  

 



    • 잘 봤습니다. 많이 고민하고 쓰신 흔적이 보여 읽는 게 즐겁기까지 했습니다. 친일파 문제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며, 희생자에게 초점을 둘 필요가 있다는 데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사실 많은 논의들이 쟁점이 생길 때만 들끓어오르고 일회성인 것은 본질적인 해결을 더 어렵게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더 이야기하고 싶은데 오늘 너무 활자를 많이 봐서 졸립니다, 어흑.
    • 좋은 글 감사합니다. 제가 놓치고 있던 부분에 대해 다시 보게되네요. 그런데 한가지 이야기할 부분이 있습니다.

      예시로 든 하와이와 우리나라의 사정은 외형상 비슷합니다. 하지만 하와이에서 미국정부와 손잡고 현지인을 탄압하는데 앞장섰고 그
      대가로 거대한 부를 이룬 사람 혹은 그의 후손들이 자신을 정당화하고 과거를 은폐하려고 하거나 미국과 손잡은 것이야 말로 어쩔 수 없는
      시대의 기류였고 자신은 거기에 영합했을 뿐이라고 신문, 방송을 통해 당당히 이야기하진 않을꺼라고 생각합니다.

      대한민국에서 친일의 문제가 과거형이 아닌 것은 그당시 다른 사람을 착취하는데 앞장섰고 그 부로 지금도 권세를 누리고 있는 사람들이
      조용히 자신들의 부를 늘리는 데 그치지 않고 과거 그 자체를 정당화하는데 사람들이 분노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마 이 점이 하와이의
      사례를 우리나라의 친일파 청산에 적용시키는데 적합치 않은 부분이고요.
    • 허어어어얼...제가 하고자 했던 말을 (그러나 필력이 부족해서 또 귀차니즘 때문에 하다 말려고 했던것을) 완벽하게 정리해 주셨군요!!!! 네 맞아요. 프랑스랑 우리랑 동일선상의 비교는 저도 문제가 많다고 봅니다. 저 역시 4년간의 나치치하와 35년간의 일제시대는 시간적으로도 차이가 나지만 애초에 프랑스는 유럽의 강대국이었고 군사적으로도 유럽에서 최강의 육군을 가진 강대국이었습니다. 단지 나치의 전격전이 운이 좋았고 영,프 연합군의 대처가 소극적이어서 뒷통수를 맞은 것이었죠.... 어차피 43년이후로는 독일의 패망은 시간문제였고 그 짧은 3,4년의 시간동안 나치에 부역한 행위와 애초에 아무것도 없는 거지나 다름없는 구한말 조선에서 전쟁도 아니고 그냥 일본에 편입되어 35년....한세대의 시간동안 일제의 치하에 있었던 조선 사람이 친일행위를 하게되는것은 완전히 다른 경우죠.... 게다가 장제스가 밀어주지 않았다면 독립조차 못했을 것이고.... 지금 우리가 완전히 달라진 상황에서 지금 이 상태가 너무나 당연한 상황에서 과거를 보면서 친일행적에 대해서 단편적으로 말하는건 저는 좀 그래요. 저 역시도 그것보다 더 중요한건 그때 고생하신 분들이나 그런 절망적인 상태에서 독립운동 하신 분들이나 후손들에 대한 처우가 달라지는게 우선이라고 보고요...
    • 어제부터 나왔던 문제의 반복일 뿐인데요.

      민족주의적으로 바라보면 친일이 나쁘지만.. 이건 민족적 관점이 아니라 어떤 주권의 문제라고 분명히 할 필요가 있습니다. 당연히 현재의 민족이라는 가치관으로 과거를 바라보면 이리 저리 왜곡되기 마련이죠. 그런데 일제 시대 친일의 문제는 그런 관점이 아닙니다. 같은 민족에게 어떻게.. 가 아니라 국가라는 단위를 바라볼 때 공동체의 주권을 말살하는 것을 공동체의 일원으로 어떻게.. 라는 관점이에요. 공동체 의식이 없었다구요? '조선 사람'이라는 의식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조선 사람'이라는 것은 일제 시대 내내 2등 국민이라는 딱지로 작용하기도 했죠. 이걸 부정할 순 없어요.

      그리고 어디까지 친일로 볼 것인가.. 이 문제는 여러 가지 논의가 가능한 지점이에요. 단순 부역 행위까지 친일이냐... 이것도 어제 다 나온 얘기에요. 어제의 기준은 '친일 인명 사전'이었고 거기에 실리기 위해서는 몇가지 명확한 기준을 두었기 때문에 단순 부역 같은 행위는 명함도 못 내민다는 분명한 근거가 있었습니다.
      잘못한 걸 단죄하기 보다 잘 한 사람을 보상하자. 이건 반만 옳은 말이에요. 잘 한 사람을 보상하기 위해서 바로 잘못에 대한 단죄가 필요한 거에요.
    • 알베르토/그런 사람이 왜 없겠습니까. 독재정권을 옹호하고 비호하고 그를 통해 부와 권세를 누리는 사람도 여전히 있지요. 사악한 자본을 옹호하고 비호하고 그를 통해 부와 권세를 누리는 사람도 여전히 있고 그뿐 아니라 과거 그 자체를 정당화하는데, 그건 별로 분노안하고, 분노한다고 해도 모두가 분노하지 않는 상황과 친일에 대한 반응이 다른 것이 저에게는 이상하게 보일 뿐이지요.

      하와이는 사실 더 심각한 사람이 있지요. 1846년에 24살 먹은 찰스 리드 비숍이라는 사람이 하와이에 건너와요. 국민학교정도 밖에 안나오고 어떤 상사에 들어가서 잡일을 하다가 하와이로 건너온 사람이에요. 하와이에 와서 우연히 하와이주 법관 밑에서 일하게 되고 아마도 그 인맥을 바탕으로 하와이에서 자기 사업을 넓혔죠. 하와이를 사랑한다며 하와이 왕국 국민이되고 하와이에서 사업이 성공하다가 하와이 왕비랑 결혼해요. 그리고 하와이 왕족의 거대한 부동산과 재산의 대부분을 날로 먹게 되죠. 그리고 하와이 카메하메하 학교를 설립하고 왕족 재산을 관리하게 되어요. 하와이의 가장 큰 박물관이 비숍 박물관의 설립자에요. 이사람은 하와이를 사랑하고 하와이 문화를 사랑하는 진정한 하와이인으로 칭송되어요. 지금도 그의 후손들이 와이키키의 가장 비싼 로열 하와이언 호텔과 로열 하와이언 쇼핑센터를 운영하고 카메하메하 학교도 운영하고 하와이의 중요한 부동산을 무지 많이 가지고 있지요. 민족주의 관점에서 본다면 한국의 왠만한 친일보다 더 심각하다고 생각해요.
    • mad hatter/친일 인명 사전을 만드는 과정은 제가 아마 좀더 자세히 알고 있을 겁니다. 몇 가지 명확한 기준은 있기는 하지만, 그 기준이 합의 되는 과정에 많은 어려움이 있엇습니다. 그리고 저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은 그 명확한 기준도 문제가 되는 경우가 많다고 생각합니다. 단죄를 하지 말자라는 말이 아니라 하기가 어렵다는 말입니다.

      근대 국가 이전의 공동체 의식과 주권을 기반으로 하는 근대 이후의 민족 의식은 전혀 다른 것입니다.
    • 푸네스
      / 그렇다면 더 이상하군요. 말씀하신 찰스 리드 비숍이란 사람이 진정한 하화이안으로 칭송되는데 다수의 하와이인들이 별다른 거부 반응없이
      인정한다는 말인가요? 아님 그곳에서는 복잡하게 얽혀있는 문제이니 지금 우리나라에서 친일파에 대한 감정보다는 약하게 표현된다는
      것인가요?

      그리고 친일파에 대해 기준의 명확성때문에 단죄하기 어렵다는 점에는 동의합니다. 하지만 그 말이 친일행각이 명백한 사람들에게까지
      비난을 하지 말자는 뜻으로 쓰여서는 안되겠지요(푸네스님이 그렇다는 것이 아니라 친일 그 자체를 정당화하는 사람들에 대한 말입니다.)
    • LH/아 사실 말안하고 비밀로 하려던 팬입니다. 게시판에 올려주시는 글들 너무 재밌게 잘 보고 있습니다. 즐거우셨다니 긴 바낭의 보람이 있습니다.
    • 우리가 친일의 문제를 완벽하게 정리할수 없었던 이유는 해방된 남한은 친일파들을 정리할 힘 조차도 없었기 때문이잖아요. 미군정이 들어서면서 반공이 최우선 과제가 되고 그러다보니 친일 인사들을 그대로 등용하게 되고.... 그렇다면 미국 나쁜놈? 미국이 아니었음 독립조차 못했겠죠. 조선의 독립에 실질적으로 공헌을 한 조선인은 윤봉길의사정도겠죠....(도시락폭탄에 감동받은 장제스가 임시정부도 지원해줬고 조선의 독립도 주장했으니까요) 구한말부터 군사정권시절까지 사실상 남한은 스스로의 운명을 결정할 권한이 없었죠....
    • 알베르토/다수의 하와인들이 별다른 거부반응없이 인정할 뿐 아니라 하와이인들에게 칭송되는 사람입니다. 물론 비난하는 사람도 있지만 극히 소수이구요. 하와이라고 더 복잡하게 얽혀 있는 문제도 아니고 한국이라고 덜 복잡하고 그런 건 없다고 생각합니다. 제국주의와 식민지 과정은 세계 여러 곳에서 동시 다발적으로 약간의 시간차를 두고 벌어진 거의 비슷한 현상입니다.
    • 푸네스
      / 그렇다면 정말 놀랍군요. 위기의 시절에 다수의 사람을 착취하며 자신의 이익을 챙긴 사람과 그의 자손들이 당당하게 살면서 과거를 정당화
      하는데도 대부분이 칭송한다니. 위의 글에 따르면 제가 이런 감정을 느끼는 것도 민족주의 사관의 영향이겠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배신 그것도 전 국가적인 배신을 통해 부를 챙긴 사람을 칭송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어렵네요.(우리나라로 따지자면 이완용,
      송병준이 칭송받고 동상도 세워지는 형국일텐데 도무지 상상이 안됩니다..)

      그리고 한가지 더 하와이가 우리나라와 다른게 하와이는 지금도 미국의 땅이지만 우리는 이제 일본의 땅이 아니라는 점이지요.
      우리나라가 아직도 일본의 땅이었다면 하와이와 같이 거기에 협력한 사람들을 칭송할 수 있겠지만 그들이 물러간 이상 그 시절의
      패악에 대해 심판받아야 하는 것이고요.
    •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머릿속에서 중구난방 정리되지 않은 내용을 댓글로만 깔짝거리다 이처럼 명쾌하게 풀어내시는 필력을 보니 감탄스럽기만 합니다.
      소모적인 개념싸움에서 벗어나 제시하신 것과 같은 방향으로 논의가 전환되길 바랍니다.
    • bebijang/아래 논의를 보고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너무 잘 알겠서서 거들고 싶었는데, 거기서 짧은 댓글로 거들면 계속 이상한 방향으로 논의가 진행될 것 같아서, 그리고 저도 이 김에 한 번 이와 관련된 생각을 정리해 볼 필요가 있어서, 길게 써 봤습니다. 게시판에 오래 지내다 보면 맘 상하는 일도 가끔 생기는데, 그냥 또 별 일이 아닌 거니까 신경 쓰시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이미 그러신 것 같긴 하지만. ^^
    • 푸네스/이완용, 송병준이 아니라 일본에서 듣보잡 나까무라라는 청년이 식민지 조선에 건너와 고위층과 친해져서 고종의 조카와 결혼한 뒤에 왕실의 재산으로 사업을 크게 벌여 성공한 뒤에 왕실의 재산을 모두 넘겨 받아 조선 최고의 부자가 되어 대대손손 잘 살면서 조선의 왕조를 빛낸 인물로 길이길이 역사 남으며 칭송받는 경우인거죠. 식민지 조선에 가장 크고 유명한 박물관은 나까무라 박물관인거구요.
    • 반역자에 대한 처단보다 희생자들에 귀를 기울이잔 의견에 동감하는데요. 어제 많은 분들이 분노하신 이유 중 하나가 독립운동으로 희생한 사람들에 대한 처우가 거의 없고 열악하고 후손이 고생하고 있다는 현실에 비해 친일인명사전에 오른 인물의 후손들은 언플로 다른 이미지메이킹을 하고 있다는 사실 때문이 아니었던가요? 그리고 bebijang님,어제 정작 소모적인 개념 하나를 가지고 싸움을 하신 분께서 그런 리플을 다시니 당황스럽네요. 님께서 리플에 쓰신대로 푸네스님의 논의와 같은 방향으로 논의가 전환되는 것은 좋은 일이라고 생각해요.
    • 발리바르까지 인용해서 탈민족주의로 제국주의 부역 옹호하느라 수고하셨습니다.



      내일 일본이 쳐들어와서 이명박이 붙어먹어도 '개념정립이 불분명하다' 면서 '고뇌'하세요.
    • 글쓴이분은 논점이 없으신것뿐인데 마치 사회과학방법론의 인식론적 고민을 하고 계신다고 스스로 생각하시는것 같네요.



      죄송하지만 그런 인식론적 문제들이 '그래서 어려우니 냅두자' 식의 얘기가 아니라는 기초적 사실을 모르시는거같애요. 자꾸 '친일옹호하자는거 아닌데,어렵다' 식의 어그로는 결국 암것도 하지말잔 얘기빼곤 암것도 아닙니다.
    • 흠... 이 글의 솔직한 감상은 푸네스님은 지금 친일 자체를 고민하신다기보단, 역사의 흐름과 세월의 누적에 눌려 흐릿해진 친일의 '경계' - 그러니까 어디까지가 친일이고 어디까지가 친일이 아닌가 - 에 대한 불분명함에 대한 고민을 하고 계신것 같습니다.

      그런 고민은 여러사람이 머릴 맞대고 충분히 시간을 들여 해볼만합니다만, '덕망있는 친일파' 논리와는 좀 다른 고민이죠.
    • 아 그리고 리플보니 bebijang님은 마치 자신이 하고 싶었던 말을 푸네스님이 대신 해주신것처럼 말씀하시는데, 그렇다면 님은 그냥 말을 잘못하신거고, 거기다 자신이 잘못 말한것도 모르고(혹은 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바득바득 우기신것 밖엔 안돼요.
    • 팝풀/ 덕망이라는 개념에 대한 질타가 졸지에 '소모적 논쟁'이 되어 버리는 현실 덕망돋아요 진짜 ㅋㅋ그 소모적 논쟁에서 아무것도 모르고 어그로끈게 누군지요 ^^ 이건뭐 차포 다 떼고 본질호도는 甲 진중권말대로
      말을 해도 알아듣질 못하니 이길 자신이 없다 이 생각이 납니다.관련 스레드에서 이야기 많이 하신 팝풀님
      진짜 황당하시겠어요
      • 저도 '니들끼리 대표 정해서 입장정리 해오라'던 진선생 말씀이 떠올라 마음이 많이 애잔했답니다.
    • redeemer/독해능력에 큰 문제가 있으신 것으로 보여 뭐라고 답을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어려우니 냅두자'라는 결론을 어떻게 이끌어 내셨는지 모르겠네요.
      complex/베비장님이 어떻게 생각하실지는 모르겠지만, 베비장님이 이야기하신거나 제가 말한 거나 큰 맥락에서 그리 틀리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 푸네스님, 베비장님, 어떻게 어제 논쟁에서 베비장님이 푸네스님이 말씀하신 바를 얘기하려던 거리고 우리가 추측할 수 있죠? 베비장님은 일관적으로 "덕망있는"과 "친일파"가 양립 가능하단 말씀만 하셨어요 일관성 있게. 정말로 푸네스님이 하시려던 말씀을 하시려던 거면 이렇게 설명을 하셔야지요. 계속 어깃장만 놓으시던 분께서 이제 내가 하려던 말씀이 이거였다고 하시면.. 우리가 무슨 남의 마음 궤뚫어보는 텔레파시 능력이 있는 것도 아니고.. 논쟁에서 정말로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그 부분에 다가가세요. 소모적인 논쟁이 되지 않기 위해 친일에 대한 다른 논의를 해보려던 사람도 벙 찌게 만드셔놓고...
    • 팝풀 / 논의가 개인의 도덕성과 정치성을 구분해야 된단 데서 친일의 스펙트럼에 관한 쪽으로 확장되면서 제 설명이 많이 부족했습니다. 푸네스님처럼 차분히 설명할 능력도 안됐구요. 1:多의 상황이다보니 즉문즉답으로 소모적이 될 수 밖에 없었고, 그나마 관련글도 모두 훑지는 못한 것 같습니다. 다시 차분히 논의할 기회가 있겠지요. 기분 푸셨으면 좋겠습니다.
    • 이따위 황당한 글이 단지 '점잖고 길게' 쓰여졌다는 이유로 공감을 받는다는게 이해가 안됩니다.

      피해자가 있다는걸 인정하고, 억압에 맞서 싸운 사람들이 있다는건 인정하면서
      어떻게 그 피해를 준 가해자는 없거나 모호하다고 하는지 이해가 안가네요. 피해자는 하늘에서 떨어집니까?

      피해자는 있는데 가해자는 없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시간이 많이 지났으니 처벌해봤자 정신승리다?
      범죄저지르고 시간때우면서 도망다니면 니가 이긴거라고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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