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당신에게 필요한 사람은 아니죠.
누군가의 마음의 고민을 들어줄 때 먼저 결론을 내려주는 편은 아닙니다. 제 경험상에서는 쉽사리 이해되지 않는 과정과 논리의 도출이라 하더라도 그것을 지적하기에 앞서 보다 많은 자신의 이야기를 거울처럼 반영하여 스스로가 어떤 이야기를 하고 있고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에 대해서 답을 내리는 것을 기다릴 따름입니다. 물론 그 결론은 때론 어리석기만 한 오답일 수 밖에 없으리라 생각이 들 때도 있지만 마음의 문제에 있어 정답인지 아닌지는 그렇게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오늘의 마음은 해답지가 아닌 또 다른 문제지일 뿐이고 그러기에 이런 마음의 고민의 결론과 새로운 질문에 대해서 스스로가 납득할 수 있는 의지가 더욱 중요한 것이라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어리석은 마음이 어리석은 행동을 초래한다면 그것이 반복되지 않기 위해 그 어리석은 마음을 스스로 버릴 수 있도록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자산이 여전히 많음을 상기시켜 주곤 합니다. 물론 때론 그 사람의 결론에 제가 납득하지 못할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 또한 어리석은 결론을 자주 내렸던 사람이고 그 사람의 일부분만을 반영하고 바라 볼 수 있을 뿐인데 더 좋은 결론을 쉽게 내릴 수 있겠어요. 그냥 거울처럼 힘들어 하는 사람 앞에서 마주 앉아서 마음의 이야기를 반영해 주고 그 사람이 스스로를 가다듬기를 바랄 따름입니다.
하지만 마음의 상처가 곪고 곪아서 그 상처를 도려내야 하는 사람 앞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자신이 상처를 헤집어 낼수록 상처는 더욱 깊어질 따름이고 그냥 거즈를 대고 치유를 바라고 있기에는 거울에 비친 그 사람의 거즈에는 고름과 피가 가득 베어 있곤 합니다. 이렇게 되면 전 재빨리 붕대를 감아 그 사람의 상처를 감춘 뒤에 슬금슬금 그 사람에게서 멀어지곤 합니다. 그래도 사람의 마음은 여리면서도 강하기에 그렇게 시간이 흐른 뒤에 우연히 소식을 듣게 되면 대부분은 잘 지낸다는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아마 이러면 약간의 안도와 더불어 제 자신이 그 사람의 힘든 시기에 도움이 되었다는 자부심을 스스로에게 부여할 따름이지만 제가 멀어진 이후에 그 사람이 더욱 큰 아픔을 겪고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되면 전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요? 그냥 믿는다는 가벼운 위로 외에 그 무거움을 감당해 낼 엄두가 쉽게 나지 않습니다. 누군가가 저를 필요로 하지 않는 순간의 섭섭함 보다 누군가에게 제가 소용 없었다는 것을 알게 되는 순간의 초라함이 저를 더 먹먹하게 합니다. 오만했던 중학교 시절부터 하루가 바쁜 성인이 되었어도 이런 감정의 파고는 유리 같다고 여기던 저의 마음의 표면에도 금을 가게 합니다.
언제부터인가 누군가의 마음을 전해 받고 전해 주는 것을 꺼리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때론 그것이 저에 대한 긍정의 마음일지라도 부담으로 다가와서 애써 거절하곤 합니다. 그리고선 염려 하는 것이 그것이 그 사람에 대한 상처가 되어 저에게 내비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입니다. 외로움 보다 두려운 것은 과도한 기대이고 그 사람이 그리고 나 자신이 힘겨워 지지 않을 만큼의 기대를 가진다는 것을 먼저 고민하게 됩니다. 그러는 와중에 사람에 대한 설렘이 사라졌어요. 전 이것이 긍정적인 것인지 부정적인 것인지 쉽게 판단이 나지 않습니다. 사람은 결국 서로에게 객체가 될 수 밖에 없다고 생각되기에 혼자 있는 것에 대한 두려움 대신에 편안함을 얻기도 했으니까요. 그러기에 사랑을 하는 사람들에 대한 부러움도 질시도 다른 감정에 비한다면 매우 작은 편입니다. 아마 3만원짜리 공연 티켓을 못 가게 되는 순간보다 훨씬 작디 작은 감정으로 여겨질 따름이지요. 그래서 전 제 자신을 무던한 사람이라고 여기었건만 누군가의 우울은 제 자신의 우울로 전염되어 감기처럼 아프게 합니다.
마음의 어리석음은 사람의 지식과는 별개로 움직입니다. 많이 공부하고 됨됨이가 올바른 사람일수록 마음의 어리석음에 직면했을 때 어리석은 행동으로 귀결되는 것을 목도하게 됩니다. 이것에 대한 비난이나 비아냥을 하는 것은 매우 쉬운 일이지만 그 사람의 어리석음을 스스로가 깨닫게 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전 가끔 이것을 망각하곤 합니다. 그래서 비판 대신 어떤 알량한 위로가 그 사람에게 힘이 되어 주리라 판단하고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다했다고 생각하고 힘든 사람의 곁을 떠나곤 합니다. 하지만 어리석은 그 사람의 태도에 제가 지친 것 이상으로 그 사람 또한 더욱 지쳐 있다는 것을 때늦은 후회 속에 알게 되기도 합니다. 아주 오래 전의 친구도 최근에 알게된 지인의 소식도 그리고 제 자신의 어리석은 아픔의 기억까지도.
이것은 일종의 어리석은 푸념의 글입니다. 새삼스레 알게 된 제 자신의 모자름과 맞물려서 타인의 고통을 제 멋대로 끝이라 생각하고 무심했던 착각에 대한 자책까지. 하지만 이제 다시 더욱 조각나 버린 타인의 마음의 상처를 어루만지기에는 두렵고 망설임 속에서 어떤 현명함을 찾고 있습니다. 아마 제가 가장 찾을 수 있는 가장 현명한 대답은 “믿음”이었지만 불행히도 전 사람에 대해 그리고 제 자신에 대한 “믿음”조차 크지 않기에 섣불리 “믿음”을 전달할 수 있을지 알 수 없습니다. 위로라는 말조차 제 목소리가 들릴 정도로 가까운 곳에 있는 사람에게 전달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제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낭떠러지에 있는 사람이라 위로조차 할 수 없게 되었다면 전 어떤 “믿음”을 인내심을 갖고 기다려야 하는 걸까요? 시간이라는 가속력이 붙은 멀어짐 속에서 전 친구라는 말 대신 타인이란 말로 망각하는 것이 더 나은 것일까요? 조금 화나요. 주저리 주저리 제 자신의 어리석음을 드러내는 글을 쓰는 것만이 최선이 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이런 고민이 제 자신에게도 그 누군가에도 필요한 것이 아님을 알게 되는 것 또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