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그런 것들.

평소에 자주 생각하는 것이라 써 봅니다.
원래 그런 것들, 단어로 줄이면 "선천"입니다.
우리가 선택할 수 없었지만 벌써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들이죠.
태어날 때의 성별과 시공간적 위치, 혈통 등은 자기가 선택할 수도 없고, 나중에 바꿀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렇다는 것은, 생애에서 자신이 속하지 않았던 모집단에 대해 경험을 바탕으로는 죽어도 말 할 수 없다는 것이죠. (죽고 다시 태어나야 말 할 수 있겠죠)
그렇기에, 이런 모집단을 대신해서 말할 때는 대리전이라는 것을 고려해야 합니다.
문제는 사람이 자신이 속하지 않은 집단에 대해서는 단순화시키고, 모집단에 대해서는 복잡화시킬 때가 있습니다. 이는 선천의 특성에 따른 경험적 무지의 소산이라고 할 수 있죠. 두 번 또는 세 번, 아니면 열두번 산 사람은 없으니까요.
모집단에 대한 옹호와 외집단에 대한 비난은 그렇기에 주의해야 합니다.
언제나 외부자로서, 또는 내부자로서 접근할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미 주어졌고, 바꿀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매우 민감한 부분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종교나 정치적 신념, 가치관 같은 것도 선천 정도는 아니지만 바뀌기 매우 힘든 부분이기 때문에 이 도식이 성립한다고 생각합니다. 바꿀 수 있으니 덜 민감하지만요)

그리고 "대리전"라는 단어에 대한 짧은 설명.

ㄱ과 ㄴ이 논쟁을 할 때, 정신을 차려보면 ㄷ와 ㄹ에 대해 대신 그것들의 논리를 써주거나 감정 차이를 주장하며 싸우고 있을 때가 있습니다. 또는 ㄷ에 대해 이쪽이거나 저쪽인 것을 결정할 것이라고 논쟁할 수도 있습니다. 이는 결국 ㄷ이나 ㄹ이 아닐 경우에는 전혀 그 결과를 알 수 없는 것이 되며, 말 그대로 시간을 허비하는 것 뿐이라 할 수 있죠.
(한국과 미국, 자기가 아는 3자에 대한 상황도 대리전이 될 수 있습니다. 결국 그 사람의 말을 들어야 확실해지죠. 대한민국은 이래, 라고 생각한다 하더라도, 산 위에 올라가서 "대한민국아! 정말 그러니?"라고 소리질러도 대답하는 것은 없죠. 집단은 매우 자의/주관적으로 설정되는 겁니다)


그리고 이 글을 쓴 이유는 아래의 이 글에서 DJUNA님의 원래 그런 나라입니다_란 댓글과 그에 대한 반응들입니다.

다른 글을 읽다가 이 글을 보니 매우 쌩뚱 맞아서 이유를 써야겠네요.

    • 어떤 것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 예를 들면 동네 뒷산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조차도 그 사람의 선입견이나 사고방식에 따라 표현이 너무나 차이가 들어가지요.
      어떤 사람은 oo는 ㅁㅁ다 라는 간단한 문장에서조차 그 문장 뒤에 숨겨져 있(다고 생각하)는 뜻을 읽어내곤 하더랍니다.
      어렸을 때는 그것이 똑똑한 사람이라 내가 읽지 못하는 행간의 뜻을 읽어내는구나 하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왠지 그조차도 자신의 뜻을 대입해서 읽어내는 것, 결국 자기 주장과 뭐가 다른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사람으로서 태어난 이상 누구나 주관이 있고 자기 생각이 있는 게 당연하겠지요. 하지만 그 차이로 인해 가끔씩 싸움이 일어나고 갈등이 일어날 때마다, 무엇이 옳은지 고민하게 됩니다.
      어렸을 때 가장 크게 다짐한 것이, 내가 아닌 다른 누구의 입장도 함부로 미루어 짐작하지 말자고 생각했던 것이었습니다. 내가 그 사람이 되어보지 않는 이상 그 사람의 진정한 뜻을 알 수 없을 테니까요. 하지만 그렇게 해선 영원히 평행선이더군요. 결국 저도 자기 뜻을 주장하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싸우는 것조차도 받아들이기로 했습니다. 그게 최선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요.
    • 이 쯤 해서는 그분이 한마디 해명글 정도 올려주셔도 좋을 것 같은데 별 말씀은 없으시군요.
      아직 못보신것이길 바랍니다.
    • 에아렌딜님_

      저명한 철학자들도 소통의 문제에 대해서는 포기할 정도이죠. 비트겐슈타인도 '말할 수 없는 것에 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고 했고(후기에 생각을 바꾸긴 하지만요), 레비나스의 경우에는 서로의 대화가 평행선을 이루면서 "싸우는 것조차도 받아들이"는 방식으로 소통을 설명했어요. 평행을 이루며 서로가 그 상황 그대로를 계속 이어나가는 걸 말이에요. 머리가 아프도록 세부적인 것에 민감한 사람들도 이렇게 말하는데 그렇지 않다면 얼마나 힘든 일 일까요. 전 에아렌딜님이 그런 결론에 이르른 것이 철학자의 결론과 다를바 없다고 말씀드리고 싶네요. 그나마 희망적인 선택이요.

      잠시님_

      "원래"라는 단어를 "선천"이 아닌 뜻으로 쓰면 전혀 다른 이야기니까, 제가 오독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생각하던 것'이라는 단서를 붙여서 글을 썻어요. 이건 뭐, 제 생각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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