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재자의 자식들 - 스탈린의 아들과 딸

 

 

오늘 아침 출근준비를 하다 국제뉴스에서 스탈린의 외동딸이 향년 83세로 타계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사실 지금에서야 그렇게 큰 뉴스거리는 아닐 것입니다. 그런데 저한테 조금의 울림이 있었죠. 그것은 그녀의 죽음 때문이 아니라 스탈린의 아들, 그중에서도 장남 야코프의 죽음에 대해 한동안 생각을 많이 했던 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녀의 죽음에 잊혔었던 그의 이름이 다시 불려 왔습니다.

 

역사에는 수많은 독재자들이 차고 넘치죠. 그리고 당연하게도 그들에게는 자손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중에서도 장남들은 어떤 삶을 살았을까요. 다 잘 먹고 잘 살다 갔을까요. 아마 대부분 잘 먹고 잘 살다 간 경우도 있을 테고 권력에 취해 비명횡사한 경우도 있을 테지만 스탈린의 아들, 야코프는 그 경우가 조금 더 복잡하고 애매하고 모호합니다.

 

야코프는 독소전쟁 중 군인으로 출전해서 최전방에서 싸우다 포로로 잡혀 죽음에 이르렀습니다. 라는 것이 최소한의 팩트입니다. 그러나 그 안에는 여러 조각들이 겹쳐 있고 가려져 있고 왜곡되어 있기도 합니다. 팩트가 곧 진실이 아니라는 걸 보여주는 한 예라고 할까요.

 

그는 제 2차 세계대전, 독소전 중 우크라이나에서 독일군에게 포로가 잡혀가 독일군의 선전용으로 이용되다 탈출 시도 중 사살되고 맙니다. 라는 짧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 그의 죽음을 다룬 이야기 중에서 가장 잘 알려진 이야기입니다. 독일군도 스탈린의 아들을 포로로 잡아두기가 불편해서 소련에 포로로 잡혀있던 독일군 원수 파울루스와 교환을 요청합니다. 그러나 스탈린은 " 난 그따위 나약한 아들을 둔 적이 없다"고 하여 모욕감을 느낀 혹은 책임감을 느낀 그가 자살했다고 합니다.

자살설의 다른 이야기도 있습니다. 1980년, 영국의 선데이 타임즈는 야코프의 죽음에 대해 다룹니다. 당시 야코프는 포로수용소에서 영국군 장교와 함께 방을 썼는데 야코프가 화장실을 너무 더럽게 써서 영국군 장교가 그를 비난하며 청소를 시켰고 모욕을 느낀 그는 주먹다짐을 벌였고 결국 독일군 포로수용소 소장을 찾아가지만 그는 철저히 외면당합니다. 심한 모멸감에 그는 러시아어로 저주의 말을 내뱉고 수용소의 고압철조망에 몸을 던져 자살했다고 합니다. 참 영국 언론스러운 이야기라 할까요.

 

 해금된 소련의 비밀문서에 조금 더 밝혀진 사실도 있습니다. 증언에 따르면 야코프가 독일군의 선전용으로 이곳저곳을 떠돌다 폴란드 병사들과 친해졌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들에게서 소련군의 비인간적인 학살소식을 듣고 독재자인 자신의 아버지에 대해 부끄러움을 느껴 갑자기 탈출을 시도했고 그 자리에서 독일군에 의해 총살당합니다. 마치 자살을 위해 그런 행동을 한 것처럼 말입니다.

 

마지막으로 하나의 이야기가 더 있습니다. 야코프가 포로로 잡힌 후 스탈린도 남몰래 걱정을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미 그런 아들 없다고 선언을 한 마당에 누구도 내색을 할 수 없었죠. 그 와중에 주코프 장군(이상하게 애정을 가지고 있는 장군 중 한명입니다)이 비밀리에 구출 계획에 대해 말하고 스탈린은 계획을 승인하게 됩니다. 그러나 결국 구출은 여러 이유로 실패하고 야코프는 죽음을 맞이하게 되죠.

 

 저는 그의 죽음에 대한 '진실'이 궁금하지 않습니다. 위에 있는 이야기들은 모두 사실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겠죠. 그렇기에 그런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만 궁금했던 것은 피의 숙청을 아무렇지 않게 진행할 수 있는 그런 강한 아버지 밑에서 살아가야 했던 그의 '마음', 포로로 잡혀 독일군의 선정용으로 쓸일 때의 그의 '고독', 자살이든 타살이든 간에 죽음을 맞이 할 수밖에 없었던 그의 '진짜 마음'이 항상 궁금했습니다. 그와 저는 아무런 상관 관계도 없는데 말이죠. 결국 이런 문제가 거의 다 그렇듯 결론을 얻지는 못했지만요.

 

아이고, 바낭을 참 길게도 썼네요...

 

아, 참고로 스탈린의 둘째 아들이자 막내인 바실레이도 그의 형처럼 군인으로 촐전했지만 무사히 돌아 왔습니다. 그러나 스탈린 사후 위대한 지도자에서 사악한 독재자로 격하된 아버지의 모습과 현실에 절망을 느껴 알콜 중독에 빠져 살다가 41세에 그도 자살하고 맙니다...  

 

 

 

    • 아. 가슴이 먹먹해 지는 이야기네요. 딱히 뭐라 말을 덧붙이기가 쉽지 않네요.
    • 밀란 쿤데라가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서 화장실 얘기를 멋지게 풀어낸 기억이나요.
    • 저도 스탈린의 장남 얘기를 들은적이 있었는데, 참 딱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냥 그 밖에는 할 말이 없네요.
    • 쇼스타코비치/ 그 책에 그런 내용이 있었군요. 아주 어릴적에 읽고 완전히 내팽겨 두었는데 다시 꼼꼼히 읽어 봐야겠습니다.
    • 이제까지 생존했었군요. 아주 어릴적 서재에서 낡은 "나는 스탈린의 딸"(혹은 이와 비슷한)이라는 책을 발견하고 호기심에 몇페이지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습자지같은 속지, 왠지 향긋한 책냄새, 그리고 세로줄... 어릴적 생각이 나네요 (글과는 관계없는 리플이네요).
    • 인상적인 글이네요.

      역사 속에서 개인들이 살아간다는건 어찌도 힘든지.
    • 아 뭔가 생각하게 만드는 글이군요...잘 읽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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